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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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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45
추천수 :
3,321
글자수 :
283,832

작성
22.12.13 20:15
조회
9,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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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글자
9쪽

두 번의 기회

DUMMY

1.


[두 번의 기회를 주겠다. 살아남아라. 이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마지막 자비다.]


느닷없는 경고음과 함께 사람들의 눈앞으로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친 하루의 끝.

누군가는 퇴근길에 올랐고, 누군가는 뒤늦은 출근길에 올랐을 시간이었다.

가방이 무거운지 어깨를 축 늘어트린 학생은 학원으로 등원했고, 어느 주점은 슬슬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메시지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지극히 공평하게 나타났다.


“두 번의 기회······?”


메시지를 마주한 누군가가 첫 문장을 저도 모르게 입에 담았다.

그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별안간 부득이한 현실을 맞이해야 했다.


“미, 미친 저게 뭐야······ 도망쳐!”

“으아아아악!”

“사, 살려······!”


그렇게 멸망은 시작되었다.


*


17년.

꼴도 보고 싶지 않은 스팸 메시지가 눈앞으로 뜬 이후로 세상은 너무나도 변했다.

극변한 세계에서 인류는 먹이사슬의 최약체가 되어 생존을 위협받았다.

그것은 신의 형벌이었고, 또한 신의 자비였다.

참으로 두 가지 얼굴을 고스란히 가진 ‘신’을 상기하며 차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X같네 진짜.”


그 빌어먹을 세상에서 무려 17년을 버텨온 인류 최후의 결사대는 이윽고 세상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곳은 바벨의 탑 81층.

신의 메시지대로라면 앞으로 19층만 더 올라간다면 인류의 종말은 끝이 난다.


“시발, 진짜 X같다니까 진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차도윤은 눈앞에서 울컥 피를 토해내는 강너울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초연한 얼굴로 그저 입 꼬리를 씩 올려 웃을 뿐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고개를 돌려보면 결사대의 시체는 쓰레기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가증스러운 몬스터들은 그들의 피부를 뜯고 장기를 파먹으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벌써 17년이나 이어진 현재였다.

누군가가 죽고 사는 일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 되었다.

그를 올려다보는, 피투성이 여자가 눈에 힘을 주어 말했다.

구멍이 난 복부에서 피가 하염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이미 틀렸어.”

“뭐?”

“너라도 끝을······.”


강너울은 힘겹게 입을 열다가 더는 소리를 내질 못하였다.

공허한 눈동자는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죽었다. 별안간 자신의 말도 채 끝내지도 못한 채 이다지도 허무하게.


키이이익!


그녀의 죽음을 기다렸는지 연신 하늘을 빙빙 돌던 와이번이 급강하했다.

차도윤은 미간을 팍 구기며 들고 있던 검을 하늘을 향해 그어 올렸다.

와이번은 일격에 반 토막이 났다.


“진짜 X같아. X같다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와이번으로부터 쏟아진 핏덩이를 비처럼 맞았다.

차도윤은 신경질적으로 땅을 팠고 그곳에 동료의 시체를 하나씩 묻어주었다.

종종 이름도 알 수 없는 몬스터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날 선 그의 공격을 피해내는 종자는 없었다.

그는 일찍이 ‘검성’이라 불렸다.

차도윤은 짧게 묵념을 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이후로 그는 최후의 결사대원이 되어 홀로 바벨의 탑을 공략해야만 했다.

82층.

83층.

84층······.

지독히도 고생스럽고 고독한 싸움은 그로부터 무려 2년이나 더 이어졌다.

멸망이 시작된 지 벌써 19년.

99층에 이른 차도윤은 괴물의 시체 위로 솟아오른 빛줄기를 올려다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생겨난 문은 인류의 소망이던 100층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드디어······ 왔다.”


가족, 연인, 친구, 수많은 동료의 시체를 발판으로 삼아 여기까지 왔다.

긴 세월을 살아남아 겨우 바벨의 탑 정상을 눈앞에 둘 수 있었다.

이제 한 걸음만 내딛는다면 모두의 소망이던 인류의 종말은 막을 내린다.

모두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엔딩.


[‘100층’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주의, 100층으로 진입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진입하시겠습니까?]


덩그러니 떠오르는 메시지를 읽어내린 차도윤은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뭘 물어.”


이윽고 장검을 움켜쥔 그는 하나 남은 손으로 제 심장을 겨누었다.

100층으로 향하는 포탈을 응시한 채 차도윤은 조금의 미련도 두지 않았다.

신이 그들에게 준 두 번째 기회.

이게 함정일지, 또는 신이 내린 또 다른 시련일지라도.

혹은 어리석은 인간을 향한 조롱일지도 모르겠으나.


“돌아가야지.”


망설일 것도 없이 차도윤은 100층으로 향하는 문을 바라보며 제 심장에 칼을 꽂아 넣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은 쉽게 허물어졌고 그는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죽는다는 건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지만 참으로 덧없고 허무하기까지 했다.

주마등처럼 기억도 스쳐지나갔다. 여러모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빛이 보였다.


[남은 기회는 한 번이다. 살아남아라. 더 이상의 자비는 없을 것이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인 차도윤은 눈앞에서 일렁이는 메시지를 보았다.

뒤늦게 감각이 돌아왔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이 귀를 자극했다.

직접 찔러 넣은 심장이 어째 아픈 듯했지만 내려다보니 멀쩡한 몸뚱이가 보였다.

근육 하나 없어 빈약한 몸이었지만 잘려나갔던 오른팔이 버젓이 붙어 있었다.


‘돌아왔다.’


확신과 함께 차도윤은 가방부터 열어젖혔다.

무기로 쓸 만한 게 있을까 뒤적였지만 아쉽게도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19년 전, 학과 수업이 끝나고 별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평화롭던 세계에서 느닷없이 무기를 갖고 다닐 리가 없다.


“일단 이걸로······.”


차도윤은 가방에서 굴러다니던 볼펜 하나를 꺼내어 쥐었다.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걸로도 충분히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


“이, 이게 뭐야?”

“어? 어어?”

“······진짜 돌아온 거야?”

“살려줘! 사, 살려······ 어?”


금세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차도윤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도통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차도윤의 걸음은 빠르고 확신이 있었다.


“어? 차도······!”


그리고 그 확신의 끝에서 차도윤은 냅다 볼펜을 한 사람을 향해 찍어 내렸다.

대학교 선배이자, 친한 형.

박현수.


“끄으윽!”


목덜미에 칼이 꽂힌 그가 괴로운지 신음을 흘리며 황망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너 이 새끼······!”


차도윤은 목덜미에 꽂아놓은 볼펜을 빼었다 몇 번이고 다시 찔러 넣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아래로 쓰러지는 박현수를 응시하며 차도윤은 차갑게 웃었다.


“억울해?”

“끄륵······.”

“그러게 왜 내 뒤통수를 쳐.”


박현수의 목덜미에서 솟구친 피가 차도윤이 쓰고 있는 안경을 뜨겁게 적셨다.

하지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차도윤은 그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도 않았다.


“억울해하지 마. 결국 형이 자초한 일이니까.”


박현수. 나이 스물 하나. 평소 꽤 도움을 주던 고마운 선배였으나 이윽고 다가올 미래에선 빌어먹을 짓을 벌일 종자.

이놈은 모종의 이유로 동료의 등에 칼을 꽂았고, 친한 후배이자 동생인 차도윤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다.


“확실한 건 하나야.”


신음을 흘리며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가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차도윤은 나지막이 말했다.


“형에게 두 번째 기회는 없어.”


뭘 더 할 것도 없이 박현수는 부르르 떨어대다 그대로 절명했고.


빠아아아앙!


불현듯 도로 한복판에서 버스 하나가 불에 타들어가며 질주했다.


콰아앙!


버스는 가까운 건물에 부딪쳐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불똥이 사방에 튀면서 전봇대 하나가 옆으로 쓰러졌다.

소란은 이곳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비명은 사방에서 들려왔다.

또한 고요한 침묵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차도윤은 서늘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삼스레 실감이 난다.


‘회귀.’


신은 이 세계를 멸망에 이르게 했으면서도 인간에게 두 번의 기회를 줬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신은 자비롭고 무자비하다.

신은 공정하고 불공정하다.

신은 누구에게나 그렇다.


차도윤은 오늘로부터 19년을 살아남았다.


“다시 시작되는구나.”


이것은 자비로운 신이 준 ‘두 번째 기회’였으며, 무자비한 신이 내린 ‘마지막 회차’.


[시련이 주어집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십시오.]


2022년 12월 13일.

우리는 모두 회귀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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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라헬 스트로디아 +2 23.01.15 1,538 5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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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냥 받아들이세요. 무엇이든 23.01.10 1,940 55 12쪽
31 증명해보이면 되겠지? 23.01.09 1,955 5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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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저들이 너희들의 원수다! 23.01.02 2,348 58 12쪽
23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23.01.01 2,586 57 12쪽
22 난 여기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22.12.31 2,780 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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