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라 가벼운 것을 원하시는 분들의 취향은 아닙니다. 가끔 철학적인 것도 섞여 있고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부끄러움조차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그저 간식처럼 여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때로는 물과 같은, 때로는 밥과 같은 글이더군요.
물론 가볍게 여기시고 싶으시다면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밥을 간식으로 먹는 자도 많고 밥에다가 무언가를 섞어서 간식으로 만드는 자들도 있습니다. (참고로 달짝지근한 우유에 밥을 쪄서 만든 멕시코 지역의 전통 간식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맛있더군요.)
그럼에도 물과 같은 것은 가끔 알아야 되는 것, 생각해야 하는 것을 무례할 정도로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무례하고 무례하게 여길 정도로 이 요구가 잘 보이는 것은 제가 살아온 삶과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약자와 강한 자의 관계를 꺼렸고 스스로 약자였지만 강자가 되기를 원하면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때로는 불편하고, 심지어 부끄럽기도 하더군요. 왜 이런 생각을 멀리했는지, 왜 나는 스스로 거짓된 떳떳함을 만들어 가고 있는 지 말입니다.
인컬케이터는 작가의 생각을 투영하고 있지만 제가 접한 대부분 소설과는 달리 억지를 권하지 않습니다. 캐릭터에는 작가의 일부분이 들어갑니다. 어떤 작가들은 그 일부분을 부인하고, 어떤 작가들은 그 일부분을 노골적이게 키웁니다. 인컬케이터에서 작가는 방관자와도 비슷한 느낌이 나더군요. 마치 스스로 세상을 창조하고 그곳에 생각을 심어둔 뒤 자라나는 싹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마 인컬케이터를 읽은 몇몇 독자들은 제가 이런 거창한 단어들을 쓰는지에 이해를 할 수 없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저 무겁고 어두운 글인데?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제가 거창한 단어를 쓰는 이유는 제가 다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다시 저를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아시안계의 외모로 살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도시로 가면 갈수록,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차별은 없어지지만 시골에서는 다릅니다. 노골적이지는 아니지만, 무시를 많이 받고 어릴때는 왕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영어나 한국어를 둘 다 동시에 경험했기에 말을 잘 더듬었고 아이들은 저를 놀렸죠. 제가 태어난 곳에서는 생김새로 인해 외톨이가 되었고 저와 똑같은 검은 머리칼에 낮은 코가 많은 곳에서도 외국인이라며 외톨이였습니다. 나이를 먹었지만 유독 그것만이 남아서 괴롭히더군요.
매우 작은 일이고 유치한 일이라 잊어버린 옛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소설을 읽고 다시 생각을 해보니 잊어버린 것이 아니고 의외로 그때 받은 상쳐가 아직까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대로 저를 돌아보거나 그 작은 상쳐가 아직도 있다는 것에 수치감이 들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 당시 저는 그들보다 약했고 지금도 약하지만 스스로 강해졌다고 다른 이들을 낮게 보는 것이 보이더군요. 왜 저는 강함을 원할까요? 왜 남을 짓누르고서 라도 강함을 원할까요?
철학을 읽어도, 교수들과 토론을 해도 진지하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아마 소설이기에 더 마음에 닿았고 더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소 저에게는 생각의 변화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매우 좋은 쪽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오래되고 수치감을 느끼는 상쳐를 끄집어 낼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스스로 치유할수 있는 기회를 준것은 꽤나 희귀한 경험이고 하찮게 여길수 밖에 없던 장르소설이 그 기회를 준것은 아직도 놀라고 있습니다.
물론 생각을 요구하는 것 왜에도 소설은 꽤나 탄탄한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고 그 속에서는 개성이 뚜렸하고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있읍니다. 심지어 오크 한 마리, 트롤 한 마리조차 세계관 일부임이 분명하고 그저 주인공의 경험치뿐만은 아닙니다. 재미로 읽어도 충분한 소설입니다. 저도 재미를 위해 읽기 시작했고 아마 생각이 바뀐 지금도 재미를 위해 읽을 것임니다. 다만 그 재미 사이에서 발견한 작은 생각들을 가끔 즐기는 것뿐이겠죠.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쓸데없는 횡설수설 같지만 결론은;
재미있으면서 교훈이 있는 소설.
이네요. 요즘 장르문화를 통틀어서도, 문피아에서도 보기 힘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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