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판타지나 무협 같이 전투씬이 많은 장르 소설에서 주인공과 대치되는 존재는 무조건 의심할 여지 없는 '악역'으로 놔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소설에서 보면 주인공에게 시련을 주는 주체 중에는 대다수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악역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물론 예외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예외가 나오는 것이 어디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지만 주인공과 적대하는 포지션에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비교적 선하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라는 설정이 있으면 대부분은 서로 타협 및 화해하는 쪽으로 가는 거 같더라고요. 심지어 그런 놈들은 나중에 주인공과 한편이 되어서 활약하기도 하지요.
제가 오늘 보던 소설에서는 대충 보면 주인공이 제국이라는 강대한 적에 의해 조국을 잃었는데, 그 제국의 왕이 대륙을 통일하자 폭군이 되어서 날뛰는 동안 봉기해서 자신의 조국을 되찾고 부흥시키기 위해 일어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뭐, 적어도 주인공 시점에서 보면 정복자 측은 불구대천의 원수일 것입니다. 또한 정복을 한다는 것은 하는 쪽에서도 나름 이득을 얻으려 하는 것이니 여러 마찰과 갈등이 있을 것이고, 애초에 정복자라는 존재가 혈기왕성한 것도 어쩔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조국을 잃고 분노에 차던 주인공이 무능하고 악독한 제국의 횡포에 반발해 대의를 등에 업고, 의롭고 유능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 일어선다는 것인데…전 좀 삐뚤어진 독자라서인지 잡생각 없이 곧이곧대로 읽지는 못하거든요.
삐뚤어진 저는 다른 설정들은 그대로 두고 만약 정복자인 제국의 황제와 지배층 대다수가 매우 어질고 유능하며, 정복한 땅의 백성들에게도 유화정책으로 최대한 마찰 없이 다스리고, 개개인의 인격도 흠잡을데 없이 훌륭하다고 한다면 어떨까 생각이 들거든요. 혹시 그럼 이야기가 성립이 안되려나?
왜 주인공은 대적하는 적보다 상대적으로 옳아야만 하는가? 왜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로 선한 인물을 죽여서는 안되는가? 왜 주인공은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실상부한 '악역'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왜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인간다움'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존재해야만 하는가?
그런 것을 생각해본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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