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협소설을 처음 읽은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읽어 본 무협소설이 꽤나 재미 있었고 그래서 그 이후로는 가까운 대본소에 비치되어 있는 무협소설들을 모두 점령 하다시피 독파한 후 더 이상 볼만한 책이 없을 때 인근의 다른 대본소를 찾아가며 각각의 대본소 깨기를 시도하며 다녔던 기억이 있다.
대본소 중에서도 그야말로 초초대형 대본소들이 있는데, 지역 대본소와 달리 거의 모든 출판사들이 일단은 책을 납품하고 인기가 없으면 반품을 거절하지 못할 정도의 권위가 있는 대본소들이다. 인기가 좋은 작가나 작품은 한질만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두질 세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대표적인 곳이 청계천 고서점 일대와 동대문운동장 주변 그리고 신설동(동대문도서관 근처) 정도에 몇몇 곳이 그랬다. 그야말로 대본소를 찾아 원정을 다니며 알게 된 것인데 중학교 시절 주말에 도서관을 간다며 갔다가 자주 대본소 쪽으로 걸음을 하곤 했다.
이때가 정통무협 소설과 다르게 기정(奇情)무협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막 나오던 시기였는데 정통무협은 거의 삼국지연의 수준으로 페이지 하나에 아래 위 칸을 또 나누어서 거의 여백이 없이 위간 아래간을 빡빡하게 글이 쓰여져 있었고 전투 장면도 칼이 부딪히는 장면 하나 하나를 모두 설명하면서 그것을 일합 이합...등으로 표현하며 꽤나 지루한 연결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 각 장이 새로 시작할 때마다 삽화를 그려 넣는 것도 독특했는데 그당시 삼국지연의 출판 형식이 대부분 그런 식이다.
그 이후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 기정무협 소설 이라고 해서 스토리의 빠른 전개 그리고 대본소 매출 올려주기와 출판사의 권수 불리기라는 양쪽 이익의 극대화가 맞물린 세로 쓰기 전법이 구사되던 시기와 맞물린다.
세로쓰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조금 설명을 하자면, 문장을 읽어갈 때 좌에서 우로 연결하는 것이 현재 대부부인 것에 비하여 예전의 신문처럼 위에서 아래로 읽어가다 끝나면 다시 옆줄의 위에서 아래로 읽게 한 방식이 있었는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읽게 쓴 것이 세로쓰기이다.
이러한 조판 형식이 대본소와 출판사에게 왜 유리한가 하면, "하하" "호호" "윽" 등의 표현을 하고 엔터를 쳐서 다음 칸으로 연결할 때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은 가로쓰기 보다 길이가 긴 쪽의 세로쓰기에서 표현을 하면 심한 경우 오십자도 쓰지 않고 한페이지를 의성어와 의태어 등으로 채워 놓고 끝나는 경우도 생길 정도로 같은 분량이라도 권수가 많이 늘어나기 때문인데, 출판사와 대본소는 권수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통무협도 세로쓰기 였으나 위간 아래간을 꽉곽 채우기 위한 세로쓰기로 의성어 의태어는 거의 없었음)
그래도 정통무협 보다는 기정무협 소설이 더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그것은 정말 흥분과 재미가 아니면 그나마 대본소라도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무협장르가 아에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명서점에서도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이 나오며 팔리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무협소설 전집을 직접 사서 읽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서점 조차 아에 취급을 하지 않으려던 시절이었다.
대본소라는 곳이 어느 때든 적당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책을 찾는 곳이니 만큼 그 적당한 시간에 해당되는 만큼의 돈을 투자하고 재미를 찾을 뿐이지 거기서 마음의 양식을 찾거나 지식을 쌓기 위해서 책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고 당연히 칼 싸움만 묘사된 정통무협 보다 빠른 스토리 전개와 무협 소설에 연애소설을 합한 기정무협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당연했다.
이때 부터 유명작가 그리고 인기작가가 등장했다.
서효원, 사마달+검궁인, 야설록, 금강, 냉하상, 와룡강, 백상 등이 대표적이다.
70년대 후반 부터 시작하여 80년대 대본소 전성시대에 기정무협 소설계를 이끌었던 분들이다.
용대운님도 80년대에 시작했지만 "군림천하"가 나오기 전까지 내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도 별로 아쉽지 않은 필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점은 "사신"이 나오기 전의 설봉님도 마찬가지이다.
서효원님이 먼저인지 사마달님이 먼저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요절한 천재작가 서효원님이 젊은 나이에 가신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짧은 기간에 수 많은 명작들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사마달+검궁인 이라는 2인1개조의 공저 시대를 이끌었던 분들이다. 그 이후로 수 많은 공저 시스템 작가들이 즐비하게 나왔다.
야설록님은 지금 만화계로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그전에 무협계에 나오자마자 연속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녹수" 시리즈 물이 기억에 남는다. 이 보다 빠를 수는 없다는 식의 빠른 스토리 전개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대본소 시스템이 전자오락과 인터넷게임 때문에 부침을 겪을 때 만화계에 자리를 굳히면서 정착한 경우로 보인다.
금강님은 냉정과 다정(애정표현)을 적절하게 가장 잘 조화시켜서 나의 스타일과 대본소를 만족시켰고 그래서 더욱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나오는 족족 다 읽었다. 금강님은 "풍운" 시리즈 물들이 대표작이다.
냉하상님은 다작이 아니었거나 대본소 주인들이 선호하지 않았던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와룡강님은 워낙 다정계의 일인자로 등극한 케이스라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대본소 무협소설계를 유지하는데 지대한 공로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더불어 그당시 야동이 없던 청소년 시절의 남자들이 와룡강님의 소설들을 읽었다면 지금처럼 성정체성 혼란을 겪는 일이 많아 고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무협소설에서 강한 남자와 의리를 내세운 애정행각은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성장했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지금의 무분별한 야동으로 훈련하는 청소년들 보다 바람직 했다고 본다.
백상님은 원래 용대운님과 설봉님 처럼 "화산문하"가 나오기 전까지 내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화산문화 이후로 전작들까지 찾아 모조리 읽으면서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이후로 PC통신과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온/오프 시장이 나뉘어지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작품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시장(김홍신 현대무협) -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무협소설로 판단함
퇴마록(이우혁 현대판타지) - 판타지의 대중화를 열었다고 봄
드래곤라자(이영도) - 판타지의 명작
묵향(전동조) - 무협과 판타지를 동시에 구현한 퓨전 장르 개척
소드엠페러,다크메이지(김정률)등 - 퓨전장르에서 다작을 히트시켜 중흥기를 맞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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