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미없습니다.
물론 제가 제 글을 재미없게 볼 정도로 제가 못 쓴다는 점도 있지만 주요 원인은 내가 이 글을 쓴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뿌려진 이 떡밥은 이래서 이런 거고 이런 저런 스토리로 이어진다. 혹은 이 인물은 이런 사람이고 저런 사람이며 심지어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이 인물은 저 인물과 결혼하고 이놈은 결국 주인공의 통수를 친다. 그리고 여기 잠깐 나온 이놈은 알고보니 이런 놈이다. 등등…… 쓴 게 나다 보니까 작가가 자기 소설을 본다는 건 마치 10번 이상 본 영화를 학교에서 또 틀어줬을 때 그 기분과 같은 겁니다. 니글니글하죠. 시청자가 이런데 그 스토리를 짠 작가가 그 영화를 보면 어떨까요. 아무리 충분히 재밌고 연출도 좋은 영화라도 보는 사람도 몰랐던 떡밥과 복선, 거기에 혹시라도 뒤에 이어지는 후속작을 위해 깔아놓은 떡밥들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데 재밌을 리가 없죠.
……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작가가 소설 내에서 오류 잡아내기가 힘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스토리상 '이놈이 왜 이런 쉬운 길 냅두고 이렇게 감?' 혹은 '이놈 갑자기 왜이럼? 안 그러셨잖아요?' 같은 오류는 스토리를 꼼꼼히 읽고 글에 몰입하는…… 그러니까 독자가 잡아내는 오류입니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제 생각이지만, 작가분들의 글에서 자주 보이는 이러한 오류들이 발생하는 게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10번 본 영화를 11번째 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오류를 찾는 거랄까요? 비유가 영 시원찮습니다만, 이 경우에 그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 오류를 찾기 매우 힘들 겁니다. 너무 지루해서 액션 같은 게 나오는 게 아니면 휙휙 넘길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류가 거의 없는 분은…… 괴물이죠. 재미없는 걸 몇 번이나 꼼꼼하게 보면서 고쳤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전 퇴고 여러 번 하신다는 작가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책 한 권 분량을 한 번 하는 것도 죽을 맛인데 그 이상을 몇 번이나 한다니. 역시 프로는 프로다 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더군요.
음…… 횡설수설했지만 결국 오류라는 건 작가가 초사이어인 작가가 아닌 이상 흔히 있는 일이고, 오류 지적은 작가가 하는 거보단 독자가 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 말입니다. 뭐 그런 오류를 아예 안 나오게 하거나 거의 안 나오게 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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