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키르기스님을 향한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저 아래 글을 읽고 예전에 읽어보았던 다른 먼치킨 소시민 물이 생각나서요.
대충 아주 짱쌘 주인공이었는데 소시민적인 삶을 살면서 자기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에 대해선 철저하게 보복하면서 스스로를 소시민이라 착각하는 그런 모순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소설에 대한 생각이 문득 떠올라 적어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힘이 있으면, 쓰기 마련이죠. 욕망이 죽은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하나씩 하나씩 자기 힘을 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죠. 너무 오래 자다보면 또 일어나고 싶고.
어떻게 안 쓸 수가 있죠? 절에서 수십 년간 선을 하신 분들도 자기 자신을 이기기가 그토록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이라면 일단 소시민은 절대 아니죠.
하지만 그뿐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주위 모든 사람들을 또 다 설득해야만 하죠. 여러분 같으면 여러분의 형이나 동생이 세계 최고의 갑부라면-현대 사회에선 돈이 바로 전투력이니까-용돈 좀 달라 안 그러겠습니까?
권리가 본인에게 있지만, 인간이란 게 오롯이 자기 스스로만으로 홀로 서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소시민적인 삶을 영위하려면 끊임없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어있죠. 알바생이라면 점장의 욕망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같이 욕망하지 않으면 금세 쫓겨나겠죠?
심지어 타자의 욕망조차 다 끊고 완벽한 AT필드로 철저히 고독한 개인을 표방한다고 해도 문제가 됩니다.
예컨데, 제가 어디 회사의 높은 분이 되어 1000억짜리 사업을 경매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합시다. 제게 힘이 생겼죠. 하지만, 제가 가만히 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제게 로비를 해올 겁니다. 우리 회사에 수주 맡기라고요. 천억쯤 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먼치킨 급의 힘을 지니고 푸줏간에서 고기를 썰든 라면 공장에서 일을 하든, 자기 능력을 드러내는 순간 결국 그 능력의 크기만큼 사회적 배분을 얻어가는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힘을 가진 자가 타인에 대해 봉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국을 혼자 때려 부술만한 힘을 가진 자라면 그 자가 황제가 되는 게 개연적인 전개란 생각입니다.
그래서 힘이 있는 사람들이 절대 그냥 조용히 있기 어려운 겁니다. 만약 조용히 있으려면 철저히 자기 능력을 숨겨야만 하죠. 그리고 평생 능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아야 하죠.
그리고 그렇게 힘을 숨긴다는 게 약간 의아하네요. 강대한 힘을 가지면서 그걸 숨긴다는 것은 에지간한 억울한 일도 겪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누군가 그런 힘을 갖고 싶어서 불철주야로 노력하기도 할 텐데... 또 우리가 수많은 동료를 잃어가며 어떤 목표를 이루었는데, 알고 보니 제 절친한 친구가 자기 능력의 1%도 발휘 안 했다? 이러면 엄청난 멘붕이 올 거 같네요. 물론 그걸 작가가 적절히 잘 설명한다면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그건 작가의 역량에 달린 일이겠죠.
즉 제가 보기에 먼치킨과 소시민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개연성의 문제인 듯 합니다. 모순적인 걸 설명해내려면, 그만큼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 필요할 거 같네요.
하지만, 개연성도 작가의 취향 아니겠습니까. 분명히 비개연적 전개를 바라는 독자의 수요도 엄청나니까요. 절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란 것엔 동감합니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