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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인간으로 본 중국, 중국으로 본 인간

영화 두 편을 봤다. 제목은 <인생(人生)>과 <영웅(英雄)>이다. <인생>은 1940년대를 시작점 삼아 중국의 격변하는 모습을 한 가정에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역사에선 주연은커녕 조연 자리도 맡을 수 없는 평범한 인물이다. 반면 <영웅>의 주인공인 진시황과 무명은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진시황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인물이고 무명은 비현실적인 검술 실력을 가진 자객이다. 이 둘은 역사의 흐름에 휩쓸려가는 <인생>의 주인공과는 달리 역사를 자신의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영웅이다.

영화는 내게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감독은 평범한 삶을 사는 ‘중국인’에서 ‘국가’로 관심을 전환했는가?> 이 두 영화의 감독이 동일 인물이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다. 세월이 감독을 바꾼 것인지...?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이 두 영화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영화만을 보고 한 인간의 사상을 단정하는 것은 예술가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일 수 있다. 동일 인물이 만든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두 영화를 가지고 한 인간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영화의 기법이나 자질구레한 것들은 다 치워두자. 핵심이 되는 사상과 주제만을 놓고 봤을 때 두 영화는 명백하게 서로 충돌하고 있다. 감독의 사상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정당하게 사용한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 같다.

다만 한 인간의 사상을 떠나 오직 두 작품 자체만을 보고 할 수 있는 말은 있다. 그것은 ‘두 작품이 다루는 대상은 동일하다’는 말이다. <인생>은 평범한 인간, 평범한 가정으로부터 중국을 보여주었다면 <영웅>은 비범한 인간, 그리고 ‘대의(大義)’라는 사상 안에서 중국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인생>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는 거대한 격변의 시기 속에 무력하게 휩쓸려가는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렸을지언정 시대의 흐름 그 자체가 된 것 역시 그들임을 인지하게 한다. 그 미력한 존재들이 모여 거대한 파도가 되고, 그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은 구구절절 예를 들지 않아도 될 만큼 분명한 사실이다.

<영웅>은 <인생>과는 대조적이다. 작품 속에서 진시황이라는 한 인간의 생사는 천하의 명운을 가를 정도로 중요한 요소로 묘사되며, 그 중요한 인물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권도 무명이라는 한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대의라는 것은 실로 낭만적이다. 무명은 일개 조나라 백성일 때는 진시황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자객으로 진시황 앞에 섰을 때는 진시황의 대의에 공감하고 검을 던진다. 어쩌면 이야말로 일개 자객인 무명을 영웅의 신분에 올려놓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대의를 안 순간, 민중은 영웅이 되며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게 된다고 하면 맞을까?

<영웅>은 그야말로 화려한 영상미의 진수성찬이지만 내용은 무척 단순하게 구성하고 있다. 영화는 진시황과 무명의 대화와 회상으로 대부분을 채운다. 무명이라는 인물이 진시황 앞에 당도하는 것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무명은 자신이 자객들을 죽인 사연을 말하며 진시황에게 접근한다. 진시황은 그런 무명의 이야기만 듣고도 허점을 밝혀낸다. 얼마 가지 않아 진시황은 자신을 암살하려는 무명의 계획을 간파하고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무명은 대의를 위해 암살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는다.

‘한명의 고통은 온 천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진과 조의 원한도 천하란 대의(大義)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영웅>이라는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해낸 무명의 대사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멋은 생명이기 때문에 대의라는 것을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 대의라는 것으로 천하 만민이 평안하게 되며 전쟁이 끝나는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은 어떤 것이라고 암시할 뿐이다. 냉철한 눈으로 보자면 이 영화가 싸구려 선동 영화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싸구려 선동 영화 수준에서 벗어나려면 구체적으로 그 대의라는 것이 명확히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묘사가 있던지, 대사를 너무 싸게 치지 말던지, 비전을 가진 가상세계의 인물이랄지 어떤 형상화된 지도자 상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신하들로부터 이해받지 못 하는 진시황의 고뇌 같이 예술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소재 등을 활용하려는 노력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 압도적인 영상미를 제외하면 구성상으로 체제 선전 영화와의 차이점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다. 영상미가 너무 빼어난 바람에 더 선전 영화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부언하자면 사기에 실린 형가의 협의(俠義)와는 대조적인 대의를 택한 무명이라는 가공의 인물의 등장도 이런 의심을 더한다. 주제 내지는 구성부터 정하고 이야기를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드니 말이다. 고대 중국에서 협객의 협의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은혜는 갚고 원한은 복수로 푼다.’는 것인데 무명은 오히려 대의로 은원(恩怨)을 초월했으니 형가와 대조적인 인물이 아니랄 수 없는 것이다.

「왜 감독은 평범한 삶을 사는 ‘중국인’에서 ‘국가’로 관심을 전환했는가? 」이제 나는 여기에 나아가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 볼 필요를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통해 중국 사회(국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동시에 할 수 있으며, 그 대답을 위의 ‘선전 영화 운운하는’ 관점으로 해보자면 이러하다.

감독의 관심사가 변한 것은 정부의 압력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추측하건대 중국이란 나라는 내부에 큰 모순과 갈등이 내재하고 그것을 달랠 수단의 하나로 이 영화가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중국은 강하고 부유하지만 그 땅의 인민들이 부유한 것은 아니며, 그들이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에 사는지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삐딱하게 말할 수도 있겠다.

<영웅>이라는 작품에 나타난 역사 인식의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이 같은 감독의 영화인, 더구나 그보다 먼저 나온 <인생>에 나타나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분명 큰 틀에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효율적인 방법이고 기본이 되는 방법이다. 역사의 흐름을 굵직한 사건들과 중요 인물들, 문명의 도구들로 채워놓으면 인과관계 파악도 되고 역사가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역사가 왜 그렇게 지성들에게 대단한 취급을 받는지를 생각해보자. 그건 역사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인류가 과거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전쟁은 나쁜 것이니까 하면 안 된다’라는 식으로 몽상가의 이상을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를 배움으로써 더 좋은 세상이 무엇인지 정도는 인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이라든지 인간이 느끼는 정신적인 가치들은 생존의 보장 뒤에 찾아오는 작은 기분 좋음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것이라도 얻으려면 최소한의 평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조나라 백성의 얼굴도 모르고, 상관도 없다. 그들이 진나라에 점령되고 느꼈을 고통 따위 알 바 아니고 슬프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가 되고, 우리의 현실이 되면 다를 것이다. 대의라는 이름 아래 북한을 무력 통일한다고 치면 그때 흘릴 피와 고통을 그런 식의 역사에선 다뤄주지도 않을 것이고 약간의 조작만 가해도 일본의 조선 침략은 정당화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일들에 당연히 괴로워할 것이고 또한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인생>이란 작품이 활용하는 무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얼굴을 알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알기에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우리 세대에 많은 우려를 사고 있는 sns나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됐다. 우려스럽다면 우리 세대가 잘 활용하는 방법을 만들어 물려주면 된다. 고대의 이름 없는 민중과는 달리 현대의 민중은 그들이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할 능력이 생긴 것이다. 우리 세대가 낳을 아이들은 우리보다도 더 발달된 정보 문명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보고, 일개 민중의 감정을 직접 읽고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의 인간은 우리보다도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감독의 작품을 지나치게 깎아내린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영웅>을 보는 우리들은 폐쇄된 사회에 있지 않다. 어쩌면 예술가의 책무라는 것은 논의를 유발시킨 그 순간에 끝난 것일지도 모른다. 개방된 사회에서 우리는 작품을 보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가에게 모든 책임을 씌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너무 직선적으로 주제를 표출해서 선전 영화라고 단정 지었지만 사실 무명의 죽음으로 어두워지는 배경이라든지 다른 식으로 영화를 해석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영화가 꼭 감독 자신의 사상을 표현해야만 된다는 법은 없다. 예술가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고, 감독이 중국의 중화사상을 표현했다면 시청자로서 비판할 사람은 비판하고 동조할 사람은 동조하면 되는 것이다.

「왜 감독은 평범한 삶을 사는 ‘중국인’에서 ‘국가’로 관심을 전환했는가?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 사회(국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이제 마지막으로 이 질문에 답해보겠다.

감독은 관심을 전환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는 표현의 주체를 달리 했을 뿐, 그 시선은 중국에 머물러 있었으며 중국의 민중, 중화질서와 대의 같은 중국인들을 구성하는 여러 측면들을 각각 잘 표현해낸 것 같다. 우리가 중화사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든 중화사상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사상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냉철한 실리주의가 아닐까. 중국 사회의 중화사상은 분명 중국에겐 약점이 될 수 있는 사상이다. 일본이 전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완전하게 세탁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듯이 중국의 국력이 나날이 신장하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대가를 치를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이리저리 잘 끼여서 실리를 취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자연히 따라 나올 것이므로 중국의 언어를 배우고 중국사를 공부하는 일은 중국이 성장한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 하면 친근감을 느끼고, 우리 역사에 대해 알아주면 고마워한다. 문화는 소국이 대국을 이기지 못 하리라는 법이 없으며, 문화는 곧 돈이 된다. K-pop, 드라마, 영화, 게임 등 한류가 개척해놓은 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수확물을 얻는 것도 우리 세대의 몫이다. 자연과학 분야만 해도 중국인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은 지가 벌써 수십 년이 되었다. 더 이상 중국을 무시하지 말고 중국에도 유학을 많이 가야 된다. 배울 건 배우고 이용할 건 이용하면서 앞으로 찾아올 혹독한 시대를 견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누군가의 요청 때문에 재미있는 영화 두 편을 보게 됐다. 그가 감상을 요청한 다른 장르의 작품인 광인일기나 아Q정전은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예술품일 테니 조만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맹목과 맹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사상적 기반은 회의주의다. 나는 습관 그 이상으로 항상 의심하려 애쓰며 다른 입장에서도 또 한 번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려 노력한다. 때문에 이 글을 하나의 논지로 쓰지 못해 산만해진 감이 있다. <인생>을 너무 적게 언급한 문제도 있지만 다 쓰자면 너무 길어질 테고, 핵심적인 부분으로 만족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그리고 당신이 영화에 대한 판단을 단정적으로 내리기보다 영화가 중국사회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을 존중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 같은 한국인의 의견 뿐 아니라 중국인의 의견도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이 스스로에 대해, 나아가 그들의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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