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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tDrago 님의 서재입니다.

단편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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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6.12.24 02:36
최근연재일 :
2021.10.23 18:28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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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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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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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단편] 6. 마기

우선 당연하게도 비영리 목적입니다. 팬픽이나 패러디의 일종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즉각적인 삭제 조치하겠습니다.




DUMMY



나그네는 임호텝의 손에서 길러졌다. 누가 제 어미고 아비인지는 몰랐다. 길에 버려져 있던 핏덩이를 노인이 주워다 길렀다고만 주변 걸인들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나그네가 보기에 임호텝은 비렁뱅이였다. 평소 우드(류트) 연주하는 걸 즐겨 했는데 솜씨가 나빠서 길거리를 순회하면 푼돈을 받아 그걸로 먹고 살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비렁뱅이의 연주를 좋아했고, 그 비렁뱅이 자체를 존경했고, 가르침을 청하길 꺼리질 않았다.

나그네에게는 그가 특별한 사람이었다.

“너는 북극성 아래서 태어났단다.”

그는 나그네가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북극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북극성은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길잡이별이었단다. 그 아래서 태어난 너도 언젠가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어줄 운명을 타고난 거야. 저 별을 기억해두었다가 그날이 오면 따라가거라.”

“그날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자연스레 알게 될 거다. 네가 이끌어야 할 무언가도 말이야.”

나그네는 그게 그의 입버릇이라고만 생각했다. 북극성 아래서 태어나다니. 그런 특별함이 자신에게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임호텝은 줄곧 북극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머리를 쓸어주면서 밤하늘을 함께 올려다보았다. 십수 년을 그랬다.

어느덧 노인의 믿음이 곧 그의 믿음이 되어 있었다. 존경하는 스승이자 유일한 가족이 그리 해주었으니까 나그네는 특별할 수 있었다. 북극성 이야기가 설령 노인의 망상이고 헛소리라고 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망상이라면 그 망상을 현실로 바꿔주리라는 꿈을 가슴속에 품었다.

임호텝은 무척이나 박학다식한 사람이었기에 나그네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빌어먹던 아이는 청년이 되어 약초꾼으로 자랐다. 의사 일을 겸해 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다녔는데 그 솜씨가 좋아서 그의 약방에는 항상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남자 중에는 드물게도 조산 일을 할 줄 알았고, 그의 손을 타고 나온 아기는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다는 소문도 돌았다. 소문은 도시에서 도시로 빠르게 퍼져나가더니 사람들은 그에게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며 그를 마기(마법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즈음 임호텝이 몸져누웠다. 오랜 길거리 생활에 노환이 겹쳐 건강이 악화한 탓이었다. 나그네는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써 보았지만, 세월이란 병을 이겨낼 방법은 없었다. 신께서 천천히 호흡을 거두어가듯이 나날이 몸이 차게 식어가던 게 어찌나 두렵던지.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함과 조바심을 느끼던 나날. 한 남자가 그의 약방을 찾아 왔다.

그는 과거에 임호텝을 따르던 수많은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스승님을 모시러 왔다.”

처음에는 그를 경계했다. 환자에게 알 수 없는 탕약을 먹이려 하기에 나그네도 맞서 봤지만, 호위병에게 제압당해 순식간에 무릎 꿇려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더더욱 찢어놓았던 건 그 탕약이 병증을 가라앉혔다는 사실이었다. 쌕쌕대며 몰아쉬던 숨이 고르고 안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나그네는 저 탕약이 무엇인지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그냥 이 근방에서는 나지 않는 아주 귀중한 약재로 지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은인의 쾌차를 기뻐하지 못할망정, 그는 허무함에 묻혀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따지듯이 묻고 말았다.

“할아버님을 어디로 모실 생각입니까. 보다시피 많이 쇠약해지셨습니다.”

“궁전으로 모실 것이네. 남은 동안만이라도 내가 곁에서 수발을 들 것이야. 내 자네에게는 한 가지 부탁이 있네. 자네가 정말 스승님을 위한다면은 스승님을 설득해주게. 나를 따라나서실 수 있도록. 억지로 모셔 가면 분명 다시 돌아오려 하실 테니.”

궁전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나그네는 그가 평범한 부호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그네에게 임호텝은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과거를 궁금해할 필요도,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그저 거기 있는 게 당연한 사람. 나그네는 머리가 멍해져 입을 뻐끔댔다. 그는 임호텝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말이 소리가 되어 나오질 않는 걸 가까스로 끄집어냈다.

“할아버지······. 임호텝 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남자는 군말 않고 노인의 과거를 들려주었다. 노인은 한때 유목민 집단의 우두머리였다고 한다. 명망 높은 인물로 소문이 자자했고, 여러 제후가 그를 곁에 두기를 소망했으나 그 모든 청을 거절하고 유랑을 계속했었다고. 예언에 빗나감이 없어서 그의 말 한마디를 귀에 새기고자 황금을 포댓자루로 짊어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손에 넣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길에 버려져 있던 고아 한 명을 발견하고서 스스로 도시에 메이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남자는 이 나라의 재상이었다. 임호텝은 당시 수제자였던 그에게 부족을 이끌어달라 하고는 자유로이 살으라 명한 후, 도시에 입성했다. 그리고 살면서 더이상 예언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질 좋은 리넨 옷을 벗고, 맨발로 땅을 밟았다. 양젖으로 만든 치즈와 부드러운 밀빵 대신 거친 기장으로 만든 죽을 쒀 먹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아무도 그에게서 비범함을 찾지 못했다. 드높던 이름은 세월에 묻혔고, 영험하던 능력은 기운을 잃었다. 노인은 비루해졌다. 곧게 폈던 허리가 구부정해지고, 얼굴은 야위어 주름이 졌다. 재상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된 원인을 아이에게서 찾았다.

“몇 번이고 너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스승님께서 뜻이 있겠거니 하고 참은 세월이 길고도 길었지. 이제 네가 장성했으니 더는 스승님의 도움 없이도 혼자 살아갈 능력이 있지 않으냐. 그만 이분을 굴레에서 놓아드려라. 이분은 네 진짜 조부가 아닐뿐더러 가족도 아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 너도 율법을 배웠다면 은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나그네는 그의 말에 반박할 말이 없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궁전은 이 허름한 벽돌집보다 수십 배 살기 좋을 것이니 남은 인생을 우수한 주치의가 지어주는 값비싼 약을 받아먹으며 무병장수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곁에서 함께한 네가 하는 부탁이라면 분명 따라주실 것이다. 처음에는 헤어짐이 섭섭하겠지만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는 걸 알지 않으냐. 더는 이분 곁에 머물려고 하지 말아라. 너같이 천한 고아에게는 과분한 분이시다. 원한다면 먹고 살 만큼의 제물도 내어주마. 일 년은 먹고 놀아도 바닥나지 않을 양이다. 이름뿐이어도 스승님의 손주였던 자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이니라.”

유일한 가족, 유일한 스승, 유일한 우방이자 동경의 대상. 그래서 언젠가 반드시 넘어야 했을 목표. 짧은 이야기였어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를 새삼스레 알 수 있었다. 그의 곁에 머무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내가 이토록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었느니라 말할 수 있을 그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나그네는 끝끝내 자신의 욕심을 놓았다.

‘할아버지 이제는 노래 한 소절에 푼돈을 빌어먹지 말고, 모자란 고아 하나를 가르치느라 지식을 낭비하지도 말고, 병을 앓다가 죽을 뻔한 경험은 더더욱 마시고, 오래오래 더 뜻깊은 일에 행동하며 왕국에 이바지하실 수 있어요.’

“저는······. 그냥 모른 척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별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을 머릿속에 그려본 적이 없기에 슬픔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루 정도는 말미를 줄 수도 있네만.”

나그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할아버지, 아니 이분과 다시 하루를 지낸다면 지금처럼 마음을 굳힐 자신이 없습니다. 재상께서 잘 모셔주시리라 믿고, 처음부터 만나지 않은 인연인 것처럼 그렇게 잊겠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스승님께서 자네를 살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좋다.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내 선의이니 이 돈으로 어디 먼 곳으로 떠나 약방을 차리도록 하거라.”

재상은 탁자 위로 주머니를 놓았다. 분명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은 재물이겠지. 끈이 풀어져 새끼손톱만 한 보석이 우수수 쏟아졌다. 나그네는 그 탁자 위에 양피지를 올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고민하다가 결국 ‘감사했습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다시 볼 일은 없길 바라지. 무운을 비네.”

호위병 둘이서 노인을 들것에 날랐다. 재상이 편지를 가지고 낙타에 몸을 실었다. 나그네는 그들이 떠나고서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때, 고요한 집안이 너무도 컴컴해 문득 두려워졌다. 이제 그는 혼자였고, 혼자라는 건 사막 한가운데에 알몸으로 버려진 기분과 비슷하다는 걸 체감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했기에 하루 반나절을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가 그 모든 걸 잊어보려고 이틀을 술을 찾았다. 삼일을 방탕하게 놀았고, 반나절은 잠을 잤다.

그렇게 일주일째 새벽. 몽롱한 정신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그 많던 보석이 반절로 줄어 있었다. 나그네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으나 어지러워 주저앉았다. 마침 창에 사선으로 달빛이 비쳐 들어왔다. 하늘에 보랏빛 여명이 걸려 있었다. 밤과 낮이 공존하는 시간대.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감추는 가운데 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북극성이 붙박인 게 보였다.

불현듯 전류가 몸을 타고 흘렀다. 임호텝이 말하던 그 날. 북극성 아래서 태어났다는 그 말. 설령 거짓이라도 진실로 만들겠다는 다짐. 모든 게 이때를 가리키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그네는 부리나케 짐을 쌌다. 그리고 무작정 북극성을 쫓았다.

그래. 가다 보면 어디든 닿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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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6. 마기 21.10.23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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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단편] 5. 홈스테이 18.12.30 44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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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콩트] 3. 나 -完- 17.04.25 172 0 6쪽
9 [단편] 2. 러브레터 -完- 16.12.26 229 0 4쪽
8 [단편] 2. 러브레터 16.12.26 196 0 4쪽
7 [단편] 2. 러브레터 16.12.26 150 0 5쪽
6 [단편] 2. 러브레터 16.12.25 275 0 3쪽
5 [단편] 2. 러브레터 16.12.25 256 0 4쪽
4 [단편] 1. 그녀는 마지막에 괴물의 꿈을 꾼다. -完- 16.12.24 233 0 2쪽
3 [단편] 1. 그녀는 마지막에 괴물의 꿈을 꾼다. 16.12.24 463 0 11쪽
2 [단편] 1. 그녀는 마지막에 괴물의 꿈을 꾼다. 16.12.24 348 0 6쪽
1 [단편] 1. 그녀는 마지막에 괴물의 꿈을 꾼다. 16.12.24 1,840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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