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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tDrago 님의 서재입니다.

단편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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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6.12.24 02:36
최근연재일 :
2021.10.23 18:28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4,296
추천수 :
0
글자수 :
32,485

작성
18.09.10 01:45
조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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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5쪽

[콩트] 4. 무스탕

우선 당연하게도 비영리 목적입니다. 팬픽이나 패러디의 일종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즉각적인 삭제 조치하겠습니다.




DUMMY

여자는 황토색으로 보일 정도로 빛이 바랜 무스탕을 즐겨 입었다. 이 옷은 2차 대전에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입던 옷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던 배에 올랐던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적당히 고른 회색 티셔츠 위에 무스탕을 걸치고, 꽉 조이는 옅은 하늘색의 스키니진을 입고, 종아리를 감싸는 긴 어그부츠를 신은 옷차림이었다.

그녀가 이런 옷차림에 애착을 가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무관심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별 이유 없이, 편하고 누구도 흉을 보지 않을 옷이 필요했을 뿐이다. 무스탕은 무난한 옷이어서 갖춰 입으면 아무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것이 좋았고 덕분에 타인의 시선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태평양을 가로질러 가던 배가 큰 폭풍우를 만나 난파되고, 바닷물을 듬뿍 먹은 가죽옷은 무거운데다가 잘 벗겨지지도 않는 짐짝에 지나지 않았다.

조각 난 배 잔해에 몸을 싣고, 구름이 잔뜩 껴 까맣게 보이는 하늘 아래, 망망대해를 표류했다. 그 많던 승객 중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남실거리는 파도와 불안정한 기류를 타고 빠르게 날아다니는 물방울, 어그부츠는 어디로 가고 양말만 남은 발과 잔해를 꼭 붙잡은 두 손뿐이다. 여자는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서 숨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이가 따닥따닥 소리를 낼 정도로 추위를 느끼는데 몸은 도리어 열이 나는 것처럼 뜨거웠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구역질이 치미니 미칠 듯이 목이 말랐다.

반나절을 그렇게 떠돌았다. 두껍던 구름이 사라지면서 날이 환하게 개고,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는데 가까스로 작은 섬에 잔해가 닿았다. 그녀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움직여 물 밖으로 나왔다. 해변에 드리누워 숨이 너무 가빠서 아픈 가슴을 천천히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어디까지 떠내려 온 걸까? 흐릿한 시야에 덜 익은 코코넛이 주렁주렁 매달린 야자나무가 보였다. 이름 모를 새가 날아와 이파리를 부리로 쪼더니 표로로 날아가 버렸다. 고향에 있는 새장 속 카날리아가 생각이 났다. 일터를 옮길 때 데려가지 못해서 아쉬웠던 기억이다. 그러자 녀석을 아직도 돌보고 있을 부모님과 남동생이 떠올랐다. 저녁놀이 질 때까지 꼼짝 않고 누워서 생각만 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해가 질 무렵, 커다란 보름달과 밝은 별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쯤 그녀는 야자 잎을 바닥에 깔고 앞면이 바짝 마른 청바지를 위에 널었다. 푹 젖은 속옷과 양말, 티셔츠는 당연했다. 바닷물에 절었다가 꼬독꼬독하게 마른 무스탕은 몸에 꽉 조일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태양빛과 체온으로 달궈진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웅크리고 스스로를 꼭 껴안은 채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중천에 뜬 해를 보면서 일어났을 때 몸에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심한 갈증을 느꼈지만 마실 물이 없었다. 아플 정도로 허한 배는 먹을 걸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억지로 아픈 몸을 움직이면서 시간을 보려고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찾다가, 지금이 몇 시인지 알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무스탕만 걸친 채 해변을 누볐다. 떨어진 야자나무를 바위에 깨서 목을 축였고, 뜨겁게 달궈진 모래에 발바닥을 데였다. 한 바퀴를 돌아 원래 있던 자리에 왔을 때, 출발했을 때보다 해가 약간 서쪽으로 기울어 있는 걸 보았다.

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억세 보이는 줄기와 풀을 엮어서 발을 감싸고 움직였다. 한결 좋아졌지만 결국 움직이다 보니 긁히고 찢겨 발에 상처가 났다. 그래도 가파른 절벽 사이에 숨겨진 동굴을 발견했고, 여자는 얼마 안 되는 짐을 옮겨 그쪽에 거처를 잡았다. 독이 있을지도 모르는 열매를 먹고, 핸드드릴을 만들어 어두워질 때까지 시도한 끝에 불을 붙였다. 손은 피투성이였다. 그래도 따뜻하고 밝은 빛에 안도했다. 불 앞에 여자는 결심한 듯 입고 있던 무스탕을 벗었다. 그리고 가죽을 조금씩 구워 먹었다. 그것은 질이 나쁜 육포 맛이 났다. 그래도 떫고 신 나무열매나 쓴 맛이 나는 식물의 뿌리보다는 무척이나 먹을 만 했던 것 같다.


작가의말

단편 좀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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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단편] 6. 마기 21.10.23 12 0 10쪽
13 [단편] 6. 마기 21.10.23 11 0 5쪽
12 [단편] 5. 홈스테이 18.12.30 44 0 6쪽
» [콩트] 4. 무스탕 18.09.10 62 0 5쪽
10 [콩트] 3. 나 -完- 17.04.25 172 0 6쪽
9 [단편] 2. 러브레터 -完- 16.12.26 229 0 4쪽
8 [단편] 2. 러브레터 16.12.26 196 0 4쪽
7 [단편] 2. 러브레터 16.12.26 150 0 5쪽
6 [단편] 2. 러브레터 16.12.25 275 0 3쪽
5 [단편] 2. 러브레터 16.12.25 256 0 4쪽
4 [단편] 1. 그녀는 마지막에 괴물의 꿈을 꾼다. -完- 16.12.24 233 0 2쪽
3 [단편] 1. 그녀는 마지막에 괴물의 꿈을 꾼다. 16.12.24 463 0 11쪽
2 [단편] 1. 그녀는 마지막에 괴물의 꿈을 꾼다. 16.12.24 348 0 6쪽
1 [단편] 1. 그녀는 마지막에 괴물의 꿈을 꾼다. 16.12.24 1,840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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