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 저울은 항상 균형을 맞추려 한다
15. 수평 저울은 항상 균형을 맞추려 한다
“3성 각성자가 없어. 2성이 열 명이고, 나머지는 1성이야.”
천두진이 건우 앞에 앉아서 마른 생선을 찢어 먹으며 말했다.
그 생선은 강에서 마을을 돌아서 다시 강으로 가게 만든 해자에서 통발로 잡은 것이었다.
그 통발도 이제는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 주민들에게 관리를 맡기고 있었다.
“1성이 스무 명 좀 안 되지?”
“정확하게 열여섯이지.”
“2성이 열 명이나 되는데 1성이 열여섯이라. 확실히 2성보다 피해자가 많은 거겠지.”
둘은 건우의 집 2층 테라스에 마주 앉아서 마을 정경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마을은 아직 3단 터에만 건물들이 있고 그 아래 1단과 2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민이 200명이 넘었지만 아직 주거는 3단 터만 써도 충분했다.
3단 터에 3층짜리 건물 몇 동을 세워, 가족이나 연인은 물론이고 남녀, 개인의 잠자리도 독립적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숲에 있는 야수 몬스터가 대부분 2성급이라서 어쩔 수 없이 1성급 각성자들의 피해가 클 수밖에. 일반인들은 더 많이 죽었을 거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2성급 몬스터들이 있으니까 사냥만 열심히 하면 2성까지 성장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란 장점도 있잖아.”
“그렇긴 한데, 마을 주변에 사냥감이 별로 없다는 게 또 함정이지. 사냥감만 있으면 석궁이 있으니까 2성까지는 정말 금방일 텐데.”
“으음. 원정을 좀 보내야 하나? 그건 위험한데······.”
두진의 말에 건우가 고민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나올지 모르니 그렇기는 하지.”
“아니, 내가 걱정하는 건, 숲의 야수 몬스터가 아냐.”
건우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야수 몬스터가 아니라고? 그럼 뭐가······. 아, 다른 차원의 주민들?”
건우의 말에 천두진이 의아한 듯 말을 하다 스스로 깨달은 듯이 되물었다.
“그래, 이 숲이 지구의 자연 환경이 아닌 건 분명하잖아. 그러면 이곳에 사는 주민도 있을 거란 말이지. 그게 아니면 우리들처럼 다른 차원에서 날아온 이들이라도.”
“그럴 수도 있겠네.”
“솔직히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그런 놈들을 만나지 않은 것은 무척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한 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훌쩍 몸을 날려 지붕에 올라섰다.
천두진 역시 건우의 뒤를 따라서 지붕에 올라 곁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 저 강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
건우가 그리 멀지 않은 강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 강 너머에 그 다른 차원의 이종족들이 있을 거라고?”
“마을에 들어 온 주민들 중에 영역 경계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었지?”
두진의 물음에 건우가 엉뚱한 화제를 꺼냈다.
“음. 뭔가 보이지 않는 것이 막고 있다는 그거?”
두진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긴 했다.
숲의 먼 곳에 앞을 막는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있다는.
“수가 적기는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몇 명 있어. 그걸 보면 우리는 지금 일정 범위의 구역 안에 갇혀 있는 거지.”
“그런 추측을 하고 있긴 하지.”
“난 그게 옳은 추측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저 강 너머엔 다른 차원의 주민들이 있을 거야.”
“한정된 공간에 우리와 다른 종족을 함께 넣어 뒀을 거라고? 정말 그런 거면 위험한 거 아냐?”
“저 쪽이 적대적인 놈들인데 3성급 이상이 있으면 곤란하지. 그래도 4성급까지는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겠지만.”
“석궁이랑 염지력으로?”
“그래. 하지만 그 이상이면 뭐······.”
건우는 말꼬리를 흐렸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래 기억에 의하면 그럴 일은 거의 없다.
묘하게도 차원 융합 후에 나눠진 구역은 전력 균형이 적당하게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대장.”
“왜?”
“강 건너에도 우리 지구인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저 너머에서 이미 이종족을 만났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왜 그런 가능성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거야?”
두진은 문든 건우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는 듯이 물었다.
“그냥 그럴 거 같아서.”
건우는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하지만 실제로 미래 기억에 의하면 하나의 영역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 종족이 만나면 명확한 변화가 일어난다.
상황에 따라서 극명하게 달라지는 변화.
지금 그걸 아는 사람은 건우 이외엔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서 건우도 그걸 말해주기 어려웠다.
“그냥?”
“그래. 그냥 느낌이 그렇다고.”
그렇게 대답하는 건우의 시선이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먼 하늘에 어렴풋이 붉은 빛이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다른 방향을 바라봐도 역시 붉은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건우는 모르는 척 다시 강 건너 숲으로 시선을 내렸다.
“뭐 대장 말이 맞았으면 좋겠네. 그 쪽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없으면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대장은 지금 차원 융합이란 상황을 주도하거나 혹은 조율하는 존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영역을 나누고 뭔가 상황을 이끄는?”
“그건 모르지.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다고 추측은 해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
“하긴. 그런데, 그럼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게 뭘까?”
두진이 건우의 추측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물었다.
“뭐긴, 일단 전력 상승을 먼저 해야지. 각성자들 모두를 3성까지 끌어 올리는 게 급하겠지.”
“3성까지?”
“숲의 야수 몬스터가 2성급이니까 그걸 잡다보면 결국 3성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는 거잖아. 2성급 몬스터 잡아서 4성 되기는 너무 어려우니까.”
“그래서 마을의 각성자들을 3성까지 빨리 키워야 한다?”
“그래.”
“그렇게 힘을 키우는 이유는 뭔데?”
“응?”
“그러니까 공격이냐 방어냐를 묻는 거지.”
“그거야 상대를 확인한 후에 결정할 문제지. 물론 나는 그래도 평화주의자긴 해.”
“알았어. 그럼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 주민들은 어떻게 할 건데?”
“어쩌긴, 알아서 살아야지. 지켜주고 최소한의 먹을 것도 제공하잖아. 거기에 내가 만든 석궁도 호신용으로 주고.”
“따로 간섭은 안하겠다는 거야?”
“외교와 국방 이외의 문제는 자율에 맡기겠다는 거지. 내가 일일이 참견하고 다닐 수는 없잖아.”
“외교와 국방만 대장이?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래, 하지만 누가 마을의 주인인지는 잊지 말아야 할 거야. 그걸 잊으면 모두 내쫓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경고를 잊지 않는 건우의 말에 두진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수긍했다.
마을 지분의 대부분이 건우에게 있다는 사실은 두진도 인정하는 바였다.
게다가 지금이든 앞으로든 마을에 대한 공헌도가 제일 높은 사람은 건우일 수밖에 없었다.
무력이 곧 권력이 된 세상에서 마을에 대한 공헌도까지 제일 높은 건우의 위상을 의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 * *
고형숙은 2성급 각성자로 박정태와 연인 사이였다.
차원 융합 전에 고형숙과 박정태는 조근호가 이끄는 팀에 속해서 정유남, 유세민과 함께 필드 사냥을 했다.
그러다가 차원 융합으로 낯선 숲에 떨어졌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3성급 각성자 세 명이 세운 마을에 정착하고 바뀐 세상에 적응을 하는 중이었다.
“어때요? 뭐 있어요?”
“야수 몬스터들만 잔뜩 보여요. 다른 건 아직.”
“그렇군요. 그런데 탐색조(探索鳥)의 유지 범위가 5킬로미터 정도라고 했나요?”
“맞아요. 강의 폭이 대충 2킬로미터니까 건너편 숲으로는 3킬로미터 정도 살피는 게 고작이죠.”
“그게 어디에요. 그래도 형숙이 언니 덕분에 강 건너를 정찰할 수 있게 된 건데요.”
“그래도 겨우 2성이라 아쉬운 게 많······. 어? 뭔가 있어요.”
이유진과 이야기를 하던 고형숙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유진은 그런 고형숙을 방해하지 않고 긴장한 표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인간, 아니, 수인족이 있어요.”
고형숙이 눈을 감고 말했다.
“무슨 수인족이요?”
“늑대요. 늑대인간이 있어요. 주위에 늑대 야수 몬스터들이 몰려 있··· 아니 늑대인간들이 늑대 야수를 부리는 거예요.”
“늑대 인간들이면 하나가 아니네요?”
“넷, 넷이 있네요.”
“혹시 몇 등급인지 알 수 있어요?”
이유진이 조심스럽게 고형숙을 보며 물었다.
“탐색조를 가까이 접근시키면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탐색조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요.”
“탐색조가 죽으면 형숙 언니에게 문제가 생기나요?”
“사흘 동안 소환이 불가능해요.”
“으음. 그럼 일단 거리를 유지하죠. 건우 대장하고 두진이를 불러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요.”
“알았어요. 나는 계속 지켜볼게요.”
고형숙은 눈을 뜨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 그녀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이유진은 고형숙을 두고 밖으로 나와 곧바로 건우와 두진을 찾아 움직였다.
건우는 마을 2단에 경작지 조성을 끝내고 이제는 제일 아래인 1단에 성벽과 미로, 밭 같은 것을 만드는 중이었다.
마을의 주인이라면서 하는 일이 제일 많은 사람이 건우였다.
“대자앙! 대장!”
3단 터의 끄트머리에서 건우를 부르자 건우가 손을 흔들고는 훌쩍 몸을 날려 뛰어 왔다.
중간 중간 발이 닿는 곳마다 흙기둥이 솟아올라 도약력을 더해주었다.
그 덕분에 건우는 한 걸음에 수십 미터를 건너뛰었다.
“무슨 일이야?”
이유진 앞에 훌쩍 뛰어내린 건우가 물었다.
“형숙 언니가 강 건너에서 늑대인간들을 발견했어요.”
이유진이 작은 목소리로 상황을 알렸다.
건우는 깜짝 놀라며 곧바로 형숙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일종의 마을 회관으로 쓰는 곳이라 형숙도 그곳에 나와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
“형숙 씨, 뭔 알려줄 거 있나?”
건우가 실내로 들어서며 눈을 감고 있는 형숙에게 물었다.
“네 명의 늑대 인간이 늑대 야수 쉰 마리 가량을 이끌고 강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늑대 인간의 무장이나 복장은?”
“무기는 보이지 않고, 가죽 갑옷을 입었어요. 갑옷의 수준은 일반적인 수준이에요.”
“갑옷에 쇳덩이, 아니 금속 재질이 있나?”
“없어요. 단단해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금속 보다는 뼈로 보여요.”
“음. 알았다. 계속 살피고, 탐색조를 잃지 않도록 조심해.”
“알았어요.”
“유진 씨는 여기서 형숙 씨와 함께 있어.”
“어디 가시려고요?”
“음, 강을 좀 건너볼까 하고.”
“네? 강을요?”
건우의 말에 이유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 밑으로 터널을 뚫을 수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야. 그게 가능하면 우리에게 굉장히 유리한 상황이 되겠지.”
“아, 강 밑으로 터널을······. 그러면 되긴 하겠네요.”
“일단 가능한지 알아보고 올 테니까 순찰대와 사냥팀들 들어오면 외부 활동은 중지하고 대기하라고 전해.”
“알았어요.”
그렇게 급한 명령을 내린 건우는 곧바로 강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둑에 닿은 후에는 곧바로 염지력을 이용해서 지하로 내려갔다.
‘나 하나 정도는 충분히 강 밑으로 지나갈 수 있지. 하지만 그 긴 거리에 터널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어려워.’
건우는 수심이 수십 미터가 되는 강 밑으로 이동하며 터널을 만드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건우가 아무리 땅을 단단하게 굳혀 놓아도 차원 에너지가 빠져 나가면 조금씩 그 견고함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2킬로미터가 넘는 땅 속을 이동하는 것과 터널을 만들어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뭐, 상관은 없지. 일단 건너간 다음에 고정 좌표를 설정해 놓으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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