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010. 분 단위는 상대 안 해.
피식.
아, 진짜!
또 저렇게 웃네.
“내 질문이 웃겨?”
“그럼 울어?”
“뭐?”
아씨, ‘뭐’ 이거 안 하고 싶은데. 또 나오네.
“말하는 것 보니까, 초짜에 분 단위로 노는 놈 같아서 그런다.”
분 단위로 노는 놈이라.
말하는 분위기를 보니, ‘분’이라는 시간 단위를 쓰레기로 보는 느낌이다.
“그쪽은 기록이 얼마나 되길래···.”
“일주일 하고 일곱 시간 사십칠 분.”
헙!
얼마라고?
후드티 말이 사실이냐며 대머리 노인을 봤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와씨! 일곱 시간이라고 해도 악! 소리가 나올 판인데, 일주일?
접속하는 순간부터 게이머를 시도 때도 없이 죽이려 드는 게임인데.
괴랄한 죽음의 코스를 일곱 시간도 아니고 일주일이나 버텼다고?
7분 VS 일주일, 일곱 시간, 사십칠 분!
놀랍고 당황스러운 만큼, 후드티 주둥이가 왜 저리 시궁창이 됐는지 그 역시 이해가 됐다.
저 기록을 단번에 이룩하진 못했을 거다.
반복적으로 죽어 나가며 꾸준히 정보를 갱신 했을 것이고 백퍼센트를 자랑하는 감각 공유 때문에 매번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을테니....
천사 같은 성격을 가졌더라도 성격파탄자가 되기 충분한 시간이었겠네.
나도 일주일쯤 버티게 되면 후드티처럼 입에 걸레도 물고 성격도 파탄나려나?
아니, 잠깐. 이거 좀 이상한데?
일주일을 그 안에서 버티는 게 가능한 일인가?
밥은?
똥은 변비로 비벼본다고해도 오줌은 싸야 할 건데.
설마, 영양제 주사 꽂고 환자처럼 거시기에 소변 주머니라도 차고 게임을 했다는 건가?
그것도 그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체실험용 의자에 누워서?
한두 시간도 아니고, 일주일하고 일곱 시간을 넘기고 추가로 사십칠 분이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테고 대머리 노인도 사실이라고 인정을 했으니 사실이겠지만.
뭔가... 이상하고 의심스럽고 납득이 되질 않았다.
내심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솟구치는 의심을 잠시 내리 눌렀다.
질문을 하더라도, 의심이 가는 부분을 확인한 다음에.
상대가 거짓으로 둘러 댈 수 없을 때 하는 게 맞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입을 다물고 있자, 후드티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쩔 거냐고?”
“···.”
고개를 들어 후드티를 바라봤다.
“뭘 빤히 쳐다 봐?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꺼지란 말 못 들었어? 사람 소리가 개소리로 들려서 개 소리로 멍멍 해줘야 알아듣는 거야?”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면, 정직원은 후드티 저년 몫이 분명해 보인다.
아니지. 후드티 말고도 다섯이 더 있다고 했다.
내가 아르바이트 공지를 확인하고 이곳에 온 것은 하루 전. 연달아 세 번을 접속하고 세운 기록이 7분.
후드티는 제하더라도 나머지 다섯도 이보단 더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RS 소프트 직원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직원 운운하며 제안을 했다는 건...
정직원 떡밥을 던져서 나를 최대한 우려 먹겠다는 그런 의미겠지.
“야, 대답하라고.”
딱 세 번만 죽고 미련 없이 돌아선다는 본래 목적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문과에 문학 전공자라, RS 소프트가 만든 게임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 현실 구현 백 퍼센트는 또 어떻게 적용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이들이 돈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아니니.
최대한 돈부터 챙기고 보자.
엿 같은 경험을 해야하지만, 의구심 몇 가지 때문에 회당 백만 포인트를 포기하기엔 현실이 너무 궁했다.
회사나 게임에 대한 의문은 그 이후에 풀어 보든지,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돌아서든지.
이건, 그때 가서 분위기 봐서 눈치껏 하자.
“야! 사람이 말을 하면!”
“어이, 후드티. 아니, 시궁창.”
“뭐? 시궁창?”
“왜? 시궁창 맞잖아. 입만 열면, 욕이 넘쳐흐르고, 개소리 멍멍거리고 있잖아.”
후드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야렸다.
어쭈, 잘하면 한 대 치겠네.
“하! 초짜 주제에.”
후드티가 어이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려 하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기록이 일주일이라고?”
“.....”
“거기까지 얼마나 걸렸는데?”
“뭐?”
‘뭐’. 이런 소리 내면 대가리 삐리한거라더니, 저도 뭐. 이러고 있네.
“네가 걸린 시간보다 더 빠르게 일주일을 달성해 보이마.”
“하!”
후드티가 웃기지도 않는다며 콧방귀를 날렸다.
“미친 거냐?”
“아니.”
“일주일을 살아남으려면 개같이 죽어 나갈 텐데. 그거 버틸 수 있겠어?”
“해 보면 알겠지.”
“그냥 버티는 것도 아니고, 내 기록을 깨겠다고?”
“왜 내가 네 기록을 깨기라도 할까 봐 쫄리냐?”
“이거 완전히 도른놈이네.”
어. 나도 알아. 내가 생각해도 오버했어.
“딱 보니까. 그냥, 자존심이 상해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것 같네.”
설마, 내가 대가리 삐리한 놈도 아니고.
그건 아니지.
실패하든 성공하든. 일단 이렇게 질러놔야, 접속 기회를 늘릴 수 있을 것 같거든.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
그런데,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도전하는 건 절대 아니야.
최대 접속은 최대 비용이잖아.
아무리 봐도 정직원은 안될 것 같고.
아르바이트가 언제 어떻게 종료할지 예측할 수 없으니, 그 전에 돈이라도 실컷 땅기기로 했다.
“그러다 안되면 어쩔 건데?”
질문 같은 질문을 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번 만큼만 챙겨서 런~치면 하면 그만이야.
안되면 될 때까지 하라! 뭐 이런 군대스러운 마인드로 아득바득 달려들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
3년 6개월 간, 군에서 박박 갈리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안되면 애초에 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자다.
후드티는 나와 잠시 눈싸움을 하다가, ‘흥!’하고 콧방귀를 날리곤 접속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쯧, 성질하고는.
“어르신.”
“응?”
“저도 하겠습니다.”
“괜찮겠나? 진아 양이 세운 기록. 그거 두 달이나 걸렸는데. 남은 기간···.”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고 도전을 외치자, 대머리 노인은 내 말에 살짝 감동한 표정이 됐다.
대머리 노인은 주먹을 쥐고 ‘오케이!’를 외쳤다.
괜히 어설프게 감동한 표정 짓지 말고, 알바비 펑크 나지 않게.
RS 소프트 통장 잔고나 잘 챙겨놔요.
“열심히 해서, 우리 RS 소프트의 정직원이 되어주게나!”
아까는 잠시 혹했는데, 이젠 별로.
그런데 정직원 대우가 궁금하긴 하네.
“저기 어르신.”
“그래. 상진 군.”
“그런데, 정직원 되면 연봉이 얼마나 될까요?”
“8천만 포인트로 책정했네.”
“8천만이면, 월 수령액이···.”
“이것저것 떼고 나면 대략 550만 포인트 정도?”
“550만···.”
“물론, 지금 아르바이트에 비하면 부족한 금액이지. 하지만, 자네도 알지? 베타 테스트 비용이 평범치 않다는 거.”
“저도 압니다. 지금 하는 접속 아르바이트는 비용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그리고 기간도 한정돼 있고.”
“그래. 우리가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보니, 살짝 무리한 셈이지. 하지만, 정직원 급여도 그 정도면 어디 가서 부족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야. 막말로 스카이 돔에 올라가 먼지 닦는 것보단 낫지 않나.”
그건 맞다. 피폭 위험까지 끌어안고 돔 천장을 기어 다니는 거에 비하면···. 확실히 좋긴 하지.
“해주고 싶은 말은 더 있네만, 자세한 것은 자네가 정직원이 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세.”
“저기, 그런 의미에서.”
“?”
“팁 좀 주십시오. 설명도 뭣도 없이 그냥 접속해 보면 안다고 무작정 밀어 넣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죽는지 알았습니다.”
“팁이라. 사실 게임에 접속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상황을 풀어나가는지 우리는 알 방도가 없네. 이게 모니터링이 전혀 되질 않거든.”
잉? 이게 말이 방구야. 자기들이 만든 게임인데, 모니터링이 안 된다고?
역시, 망작 스멜~
정직원은 시켜줘도 절대 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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