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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늑삼

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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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최근연재일 :
2019.09.26 14:17
연재수 :
78 회
조회수 :
15,174
추천수 :
333
글자수 :
667,027

작성
19.04.11 17:35
조회
179
추천
6
글자
10쪽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5)

DUMMY

* * *


아침은 언제나 부산하기 마련이었다. 그건 세상 어느 곳이든, 세상 사람 그 누구든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의 경우엔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처자 어떻든?"


"누, 누구··· 요?"


진혁이 밑도 끝도 없이 던진 뜬금없는 질문에 귀동이 짐짓 모르는 척하며 시치미를 떼려고 했지만, 이미 귀동을 꿰뚫고 있는 진혁 앞에선 무의미한 행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어? 수상한데?"


진혁의 눈매가 옆으로 쫙 찢어지며 가늘해지자 귀동이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품고 뒷걸음질부터 쳤다.


"예? 뭐, 뭐가요? 아, 아니예요!"


말까지 더듬거리며 진혁의 시선을 회피했는데도 여구히 뒤통수가 따갑게 느껴지자 귀동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진혁을 완전히 외면해 버렸다.


"어라? 이젠 이 우형을 무시까지 하네. 흥! 그렇단 말이지."


귀동이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역려 마당의 우물가로 향하자 진혁이 그 뒷모습에 대고 입을 삐죽거리더니 끝내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이른 아침부터 왜 그리 짓궂게 구느냐?"


역려 우물가 한쪽에서 세면을 마친 이경륭이 진혁에게 다가오며 점잖이 나무랐다.


"아버지, 여기 수건이요."


진혁이 건넨 수건을 받아들며 이경륭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귀동이의 저 모습이 정상이더냐, 아니면 현재 네 모습이 정상이더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이경륭의 무두무미한 질문에 진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쯧쯧, 그 나이면 청춘이 한창이거만 네 녀석은 어찌 그리 방심도 없는 것이더냐?"


"에구, 또 그 말씀이세요? 때가 되면 어련히······."


이경륭이 혀를 차며 한마디를 더 건네자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진혁이 난감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곤 말까지 살짝 흐리며 서둘러 자리를 모면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그렇게 이경륭의 닦달에서 막 벗어나려던 진혁은 이어진 이경륭의 한마디에 헛숨을 삼키며 다시 뒤돌아섰다.


"됐다. 그나저나 어제 그 처자는 어떻더냐? 네 녀석하고 동갑이라고 하더라만."


"허업! 그 처자 나이가 소자랑 동갑이라고요? 한참 꼬맹이던데 나이는 옹골차게 먹었네··· 가만, 그럼 귀동 아우보다 두 살이나 더 많은 거잖아. 크큭큭."


헛숨까지 삼킬 정도로 해연히 놀란 진혁이 혼잣말을 하듯 몇 마디를 중얼거리다 불현듯 귀동을 떠올리곤 마치 쌤통이라는 듯 괴이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그러나 이어진 이경륭의 아리송한 한마디에 바로 멈춰야만 했다.


"그응! 누가 그 처자를 말하더냐?"


"예? 어제 그 처자 말고 또 어떤 처자가 있었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경륭이 낯빛을 바꾸며 미간을 지그시 모으더니 이내 화제를 돌렸다.


"아, 아니다. 그건 그렇고··· 궁술 경연장에 가기 전에 아비가 한마디 해 줄 게 있으니 잘 듣거라."


"예, 아버지."


"사내란 모름지기 무슨 일이 일어나도 쉽사리 동요되면 안 된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던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적절하게 할 수 있도록 여러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행히 네 녀석은 큰 장점 하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침착하다는 것인데, 물론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다 보면 제때를 놓칠 수도 있기에 자칫 그로 인해 침착성이 부정적 평가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러한 점이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해가 되진 않는다."


"······."


"이따 경연장에 나가 보면 네 나이쯤의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소지하고 있는 활 등 일단 외형적인 모습에서부터 열등의식이 느껴질 수밖에 없을 텐데, 자칫 거기에 굴복되면 네 침착함을 잃고 경연을 망칠 수도 있다. 그러니 미리부터 심지를 굳건하게 하고 마음을 차분히 다스려서 네 본연의 침착성을 잃지 않도록 하거라."


이경륭이 무엇을 염려해서 이런 말을 하는지 진혁도 잘 알기에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


"예, 아버지.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여 모르니··· 출전표에는 칠보가 아닌 금산이나 태인으로 기재하거라."


이 노파심 또한 이경륭의 지난 과거에서 태동한 굴레로 아직까지 얽어매어 있는 잔재였다.


* * *


"··· 흥부 제비가 들어온다. 흥부 제비가 들어올제, 부러진 다리가 봉통아리가 져서 절뚝거리고 들어온다."


"얼쑤!"


"얘! 제비 장수 호령하되 '너는 어찌해서 새끼는 하나만 까고 다리가 저리 봉통아리가 졌느냐' 이렇듯 호령하니."


"얼씨구."


"흥부 제비가 여쭈오되 소조가 아뢰리다. 소조의 에미 애비가 만리 조선을 나갔다가 흥부 댁에 집을 짓고 형제 다섯을 깠삽더니마는, 운수가 불행하여 대맹이가 들어와서 형제 넷을 잡아먹고 다만 소조가 남었는디, 날기 공부를 하려 하고 대발가에 발을 붙이고 발발떨고 날려다가 거중에 뚝 떨어져 두 다리가 부러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만, 어진 흥부 주인 덕에 죽을 목숨이 살았으니 어찌하면 은혜를 소조가 갚사오리까. 제발 덕분에 통촉하시오."


"얼쑤!"


전라 감영 앞마당은 굉장히 넓었다. 하기야 감영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 전체가 도열하려면 그만한 공간을 필요로 했기에 감영 앞마당이 넓은 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넓은 앞마당 한쪽에 제법 촘촘히 짜여진 멍석 두 장이 서로 가장자리가 살짝 겹친 채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멍석 한가운데엔 화려하게 단장한 여인네가 쥘부채를 쥔 채 목청껏 소리를 높이고 있었는데, 그 바로 옆에는 나이 지긋한 노인네가 북을 앞에 두고 앉아 걸걸한 목소리로 간간이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음, 소리꾼보다는 고수의 연륜이 돋보이는구만."


전라 관찰사 김문현이 옆에 있는 판관 민영승에게 넌지시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게 말입니다. 추임새가 시의 적절하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영감 말씀대로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김문현의 한마디에 민영승이 다소 과장되게 감탄을 하며 한껏 맞장구를 쳐 댔다.


"그래서 주객지세가 되지 못하고 저리 객반위주가 되는 것이네. 고수에 비해 소리꾼의 기량이 너무 떨어져서··· 그래도 소리하는 여인네는 제법 삼삼하게 보이는구만. 험, 허험!"


"예? 아, 역시 영감은 대단하십니다. 소리에도 이처럼 조예가 깊으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여인네가 있으면 주저치 마시고 언제든 소관에게 귀띔만 해 주십시요."


"허, 허어험!"


멍석이 깔려진 판소리 경연장 앞에는 왕골로 짠 돗자리가 깔끔한 빛을 내며 깔려 있었다. 그 돗자리 위엔 간단한 다과가 차려진 소반 여러 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는데, 그런 소반마다 어김없이 서너 명씩 앉아 있었다. 모두들 지체 높은 사대부의 양반네들인 듯 하나같이 화려한 비단옷을 차려입었는데, 실제로 이들은 전주 인근의 양반네들로 개중엔 한양에서 높은 벼슬까지 지내다 퇴관한 노선비들도 더러 있었다.


어쨌든 이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재산가들이란 사실이었다. 물론 그 재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재산 형성에 부조리와 비밀이 많았다는 얘기였고, 그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저거 보게. 구경 나온 백성들도 아까보다는 훨씬 조용하지 않은가."


김문현이 거만한 표정을 하곤 거드름을 피워 대자 그 즉시 민영승이 장단을 맞춰 주며 알랑방귀를 뀌어 댔다.


"확실히 그렇군요. 영감 말씀대로 앞에 나온 순창 소리꾼보다는 반응이 영 시원치 않습니다. 역시 영감의 안목은 대단하십니다."


사실 소리판을 만드는 요소는 비단 소리꾼과 고수만이 아니었다. 소리꾼과 고수의 사이를 교모히 비집고 들어가 나름대로 추임새를 넣는 청중들의 호응도 대단히 중요했는데, 특히 소리꾼의 기량을 겨루는 경연 같은 경우엔 청중들의 호응이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열을 가리기 위해선 판가름 잣대가 필요한 법인데, 청중들의 호응도 그 판가름 잣대의 자료 일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영승이 그렇게 김문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알랑거리며 아첨을 떨고 있을 때, 경연 참가자들의 대기 장소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서연아, 네가 가진 재주면 충분하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거라. 내 그동안 누누이 얘기했지만 너무 잘하려고 하면 그게 자꾸 신경 쓰여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평소 이 애비 앞에서 소리한다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에고, 아버지. 그 말씀 오늘만 벌써 세 번째예요. 이러다 정말 귀에 못이 박히겠어요."


송유석이 잔뜩 무게를 잡아가며 경연에 대해 뭔가를 강조하려고 했지만, 서연은 한낱 잔소리로 받아들이며 한쪽 귀로 흘리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허! 이런 고얀 녀석 같으니, 이 애비가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는데······."


부녀지간의 분위기기가 또다시 엉뚱한 데로 흘러가려 하자 서진이 다급히 나서 저지했다.


"아버지, 운봉 소리꾼 끝나면 다음이 우리 차례예요. 그러니 그만하세요. 그리고 서연이는 제가 잘 이끌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요."


"오, 오냐. 알았다. 서진아 너만 믿는다. 허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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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6) 19.04.12 193 5 24쪽
»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5) 19.04.11 180 6 10쪽
16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4) 19.04.10 175 6 15쪽
15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3) 19.04.09 187 5 11쪽
14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2) 19.04.08 185 7 16쪽
13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1) 19.04.05 229 7 13쪽
12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6) 19.04.04 216 4 15쪽
11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5) 19.04.03 173 4 16쪽
10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4) +1 19.04.02 239 7 13쪽
9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3) 19.04.01 269 7 11쪽
8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2) 19.03.29 279 6 13쪽
7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1) 19.03.28 325 5 11쪽
6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5) +1 19.03.27 387 5 16쪽
5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4) +1 19.03.26 479 8 18쪽
4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3) 19.03.25 602 6 13쪽
3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2) 19.03.24 883 9 13쪽
2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1) 19.03.23 1,481 13 20쪽
1 서장 : 탈신도주 (脫身逃走。몸을 빼내어 달아나다) +5 19.03.22 2,720 1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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