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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늑삼

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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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최근연재일 :
2019.09.26 14:17
연재수 :
78 회
조회수 :
15,166
추천수 :
333
글자수 :
667,027

작성
19.04.09 17:28
조회
186
추천
5
글자
11쪽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3)

DUMMY

* * *


정읍현에서 전주까지 가려면 중간에 있는 태인, 금산, 금구, 금천을 지나야 했다. 그렇게 차례로 각 고을을 지나 전주에 다다르면 전주의 초입인 완산골 못미처 쑥고개가 버티고 있었는데, 그 쑥고개는 전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로 그 길을 지나는 길손들에겐 마지막 쉼터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 고갯마루엔 서너 채의 주막집도 있었는데, 오가는 나그네들을 서로 붙들기 위해 주인들이 주막 밖까지 나와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기에서 좀 쉬었다 가요. 예?"


"그래, 우리도 저곳에 들러 잠시 쉬어 가는 게 좋겠구나."


송유석의 대답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제일 가까운 주막을 향해 서연이 뛰다시피 했고, 서진도 무척이나 지친 듯 숨을 연신 헐떡거리며 서연의 뒤를 바짝 좇았다.


그렇게 주막을 향하는 세 사람의 뒤를 그림자가 살짝 드리웠는데 그림자의 길이로 미루어 보아 해가 중천을 지난 지 꽤 된 듯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 후 송유석과 두 딸이 지났던 그 길에 세 사람과 한 마리의 늑대가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 그림자의 길이로 보아 곤시(오후 3시)쯤 된 듯한데 저곳에 들러 잠시 쉬어 가는 게 어떨까요?"


진혁이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대충 유추해 내더니 잠시 쉬어 갈 것을 제안했다.


"에구, 에구. 그러자꾸나··· 아비도 이제 늙었는지 이깟 고개 좀 오르는데도 숨이 차는구나."


진혁의 제안이 마치 고소원이라는 듯 몹시 아프거나 놀라거나 반갑거나 힘들거나 원통하거나 기가 막히거나 할 때 내는 '에구' 소리를 이경륭이 반복해 가며 무척이나 힘들다는 표현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이경륭의 행위가 귀동에게는 한낱 요식행위로 비춰진 모양이었다.


"춘장 어르신, 다분히 엄살로 보이십니다요."


"어, 엄살이라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일 앞에서 힘차게 걸었지 않았습니까요. 그런데 진혁 형님이 잠시 쉬어 가자고 하니까 갑자기 에구, 에구 하시는 게··· 아무래도 소인이 보기엔 엄살이 확실히 맞는 것 같습니다요. 낭순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크르릉!


귀동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조곤조곤히 조잘대다 마지막엔 낭순이에게 슬쩍 동조를 구했다. 그러자 낭순이가 그 즉시 으르렁대며 대꾸를 했는데, 이경륭을 비롯한 진혁과 귀동, 이 세 사람의 해석이 각기 다 달랐다.


"거 봐라, 귀동아. 낭순이는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


"보십시요, 춘장 어르신. 낭순이도 맞다고 하잖습니까요."


"아버지, 그리고 귀동 아우. 그런 게 아니라 낭순이 제 녀석도 다리가 아프다며 잠깐 쉬어 갔으면 좋겠다고······."


크르르릉!


"이 녀석아, 그게 아니라잖아."


"진혁 형님! 아니라잖아요."


"··· 쩝! 으이그, 저 똥 강아지 같으니라고 장단 좀 맞춰 주면 어디가 덧나나."


낭순이를 이용해 장난을 한번 치려던 진혁은 낭순이의 헤살로 무위에 그치자 미간을 좁히며 나지막이 구시렁거렸다.


크르릉, 크르르릉!


"우쒸, 이 똥 강아지가 귀까지 밝아서 이젠 중얼거리는 말까지 다 알아듣고··· 어? 무슨 노래 소리지? 아버지, 무슨 소리 안 들리세요? 귀동 아우, 뭔 소리 안 들려?"


진혁이 으르렁거린 낭순이를 타박하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뜬금없이 이경륭에게 질문을 건네고, 곧이어 귀동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음, 판소리 심청가 중의 한 대목 같구나."


"진혁 형님, 저 고갯마루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요. 근데 여, 여인네 목소리인데요."


아닌 게 아니라 고갯마루 쪽에서 판소리 한 곡조가 낭랑히 들려오고 있었다.


"낭순이 네가 그래서 아까부터 으르렁댄 거구나.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다."


* * *


"··· 얼시구나 절시구, 얼시구나 절시구, 어둡던 눈을 뜨고 보니 황성 궁궐이 웬일이며 궁 안을 바라보니 창해 만 리 먼먼길 임당수, 죽은 몸이 환 세상 황후 되어 천천만만 뜻밖이라 얼시구나 절시구, 어둠침침진 방에 불 켠 듯이 반갑고 산양수 큰 싸움의 좌룡 본 듯이 반갑네··· 흥진비래 고진감래 날로 두고 이름이라 얼시구나 절시구, 여러 봉사들도 좋아라고 춤을 추며 노닌다 얼시구나 절시구, 얼시구 지화자 좋네, 얼시구나 절시구, 태곳적 시절 이래로 봉사 눈 뜬단 말 처음이로구나··· 얼시구나 절시구, 일월이 밝아 중복되니 요순천지가 되었네, 심황후 폐하도 만만세, 황제 폐하도 만만세, 부원군도 만만세, 천천 만만세를 태평으로만 누리소서··· 얼시구 얼시구 절시구 얼시구나,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좋네, 이런 좋은 일이 또 있나."


주막 마당엔 남여노소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소리가 다 끝났는데도 모두들 멍한 눈빛으로 서연의 입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잠시 지나고 어느 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며 동시에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에서도 찬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짝짝짝! 짝짝짝짝!


"호오! 내 평생 이리 구성진 소리는 처음 들어 봤소이다."


"허어, 아직 앳된 처자건만 벌써 득음을 한 게요?"


박수 소리와 찬사가 한동안 이어졌다.


"주인장, 주막집인데 술을 팔아 주지 못해 미안했소. 하지만 이만하면 잠시 쉰 값과 물 한잔 얻어 마신 값은 충분하지 않겠소?"


서연의 소리가 끝나고 주막에 모여 있는 사람들로부터 박수와 찬사가 쏟아져 나오자 송유석이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주인에게 다가가 넌지시 거드름을 피워 댔다.


"아이고, 손님. 충분하다마다요. 물 한잔 값이 얼마나 된다굽쇼. 더구나 손님들은 애당초 술 마실 분도 없지 않았습니까요."


주막집 주인이 송유석의 거드름을 모른 체하며 맞장단을 쳐 줬는데, 자신 또한 귀한 구경을 했다는 듯 만면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험! 그리 말해 주니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소. 아무튼 고맙소."


송유석은 현 상황이 너무도 흐뭇한 나머지 인사를 가장한 거드름을 다시 한 번 피워 댔다. 그러나 주막집 주인은 송유석의 거듭되는 거드름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여전히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물론 주막집 주인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그 나름대로 다른 속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씀 마십시요. 고마운 건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죠. 이렇게 많은 손님을 몰아 주지 않았습니까요. 으히히히."


송유석과 주막집 주인이 그렇게 동상이몽의 인사치레를 주고받을 때, 상인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송유석에게 슬며시 다가오더니 조심스런 태도로 말을 걸었다.


"저, 노인장. 혹 전주로 들어가는 길이시오?"


"예, 그렇소만··· 어찌 그러시오?"


"아, 그럼 잘되었소. 내 너무 아쉬워서 그러는데 한 번만 더 따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겠소? 짧은 타령 한 곡조라도 상관없소. 만약 내 부탁을 들어 준다면 넉넉치 못할지라도 저 짐수레에 자리 한 켠을 마련하여 노인장의 따님을 전주까지 태워 드리겠소. 어떻소?"


송유석에게 다가온 상인은 서연의 구성진 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은 욕심에 혹시나 하고 자신의 제안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은 송유석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예, 그렇게 해요."


서연이었다. 상인이 송유석에게 건네는 말을 옆에서 솔깃하게 듣던 서연이 그 즉시 나선 것인데, 거의 이틀 가까이 걸음을 걸은 후유증은 이처럼 여인으로서의 예의고 체면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게 만들었다.


"정, 정말 그리해 주시겠소? 고맙소이다, 처자."


그렇게 거래 아닌 거래가 필요 불가결적으로 성립되어 서연은 다시금 목청을 드높이게 되었다.


"낙양성 십 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


"······."


서연이 부르는 타령은 '성주풀이'였다. 그 타령의 첫 번째 곡조가 끝나고 다시 두 번째 곡조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사이 이경륭을 비롯한 진혁 일행도 주막집 마당에 당도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건너 잔솔밭에 솔솔 가는 저 포수야 저 산비둘기 잡지 마라, 저 산비둘기 나와 같이 임을 앓고 밤새도록 임을 찾아 헤맸노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신이야."


짝짝짝!


"하! 구성지기 그지없구만."


"정말 대단하네그려."


다시 한 번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며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우! 우우우······.


그야말로 맙소사였다. 이경륭이 가끔씩 시조 한 수씩 읊고 나면 그때마다 옆에서 울부짖으며 호응을 해 오던 낭순이였다. 그런데 서연이 타령이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자 주저 없이 그대로 재연을 하고 만 것인데, 아마도 그동안 버릇이라도 된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든 사람들의 여흥을 깨기엔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낭순이의 헤살이었다.


"허걱! 낭, 낭순아··· 으이그,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진혁이 황급히 나서 낭순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낭순이의 울부짖음을 재빨리 멈추게 했지만, 이미 물은 엎어진 뒤였다.


"으악! 늑, 늑대다!"


"늑, 늑대가 여긴 왜?"


주막집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난데없는 낭순이의 등장에 하나같이 놀라움과 두려움을 표하며 몸을 피하거나 움츠렸다. 하지만 두 사람만은 달랐는데, 낭순이와 더불어 이 상황의 주인공이었던 서연과 그녀의 언니인 서진만큼은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물론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이유는 서로 달랐다.


서연은 자신이 목청껏 부른 타령에 열렬히 호응해 준 신비로운 늑대를 살펴보느라 눈빛을 반짝였고, 서진은 그런 늑대를 마치 강아지 다루듯이 하는 사내가 신기하게 보여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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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5) 19.04.11 179 6 10쪽
16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4) 19.04.10 175 6 15쪽
»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3) 19.04.09 187 5 11쪽
14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2) 19.04.08 185 7 16쪽
13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1) 19.04.05 229 7 13쪽
12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6) 19.04.04 216 4 15쪽
11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5) 19.04.03 172 4 16쪽
10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4) +1 19.04.02 238 7 13쪽
9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3) 19.04.01 268 7 11쪽
8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2) 19.03.29 279 6 13쪽
7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1) 19.03.28 325 5 11쪽
6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5) +1 19.03.27 387 5 16쪽
5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4) +1 19.03.26 478 8 18쪽
4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3) 19.03.25 602 6 13쪽
3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2) 19.03.24 883 9 13쪽
2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1) 19.03.23 1,480 13 20쪽
1 서장 : 탈신도주 (脫身逃走。몸을 빼내어 달아나다) +5 19.03.22 2,719 1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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