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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늑삼

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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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최근연재일 :
2019.09.26 14:17
연재수 :
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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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33
글자수 :
667,027

작성
19.04.0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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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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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2)

DUMMY

* * *


금산 외곽의 꽤 높다란 구릉 중턱에 초가집 한 채가 움츠린 채 자리하고 있었다. 그 초가집 툇마루에서 구릉 아래를 내려다보면 금산 밖으로 이어지는 대로와 그 대로 옆에 있는 역려가 훤히 보였는데, 그 역려는 금산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역려였다.


"허험! 두 분 모두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모르겠소. 사랑채가 원체 변변치 않아서······."


삼십 대 후반쯤의 사내가 상방 앞에서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낸 뒤 방문을 열었다. 그리곤 방 안에 있는 두 사내에게 간밤의 안부를 물었는데, 그 말투나 말속으로 보아 이 초가집의 주인 같았다.


"허, 거 무슨 당치 않은 말을··· 이만하면 그야말로 감지덕지가 아니겠소. 밤바람을 막아 주기만 하면 헛간인들 마다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오. 안 그렇소, 김 접주?"


안무를 묻는 인사에 방 안에서도 맞대꾸가 이어졌는데, 나지막하면서도 꽤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이구, 귀한 손님들인데 어찌 헛간을 내어 준단 말이요. 정 내어 줄 방이 없으면 내 안채라도 쾌히 내어 줬을 것이요."


방 안에서 이어진 맞대꾸에 미소를 짓던 집주인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서며 한껏 너스레를 떨어 댔다. 그러자 맞대꾸를 했던 사내 또한 웃음을 웃어 보이며 그 너스레에 장단을 맞춰 줬다.


"허허! 농이오, 농. 김 접주가 간밤에 군불을 얼마나 때어 줬는지 새벽녘까지 아주 곤히 잤소이다."


"그랬다면 다행이요. 귀하디귀한 손님들이 오셨는데 혹여 접빈이 소홀했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는데··· 자, 이제 곧 조반상을 들일 건데 어서 조반 들 준비나 합시다."


집주인을 포함해 세 사람은 각 고을의 동학 접주들로 집주인 김덕명은 이곳 금산 접주였고, 다른 두 사람은 고부 접주 전봉준과 태인 접주 김개남이었다. 이렇듯 고을이 각기 다른 동학 접주들이 이곳 금산에 모여 있게 된 건 다름 아닌 전봉준 때문이었다. 전봉준이 고부 봉기 때 모인 농민들을 해산시킨 뒤 태인으로 움직여 태인 동학 접주 김개남을 만난 다음 그와 함게 어제 이곳 금산으로 이동했기 때문인데, 오늘의 이 만남이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시발점이 되리라곤 이들도 아직까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잠시 후 상방으로 조반상이 들어오자 김덕명이 전봉준과 김개남에게 인사조의 말을 건넸다.


"자, 차린 건 별로 없지만 시장했을 테니 어서들 드시요."


"허, 요즘 같은 춘궁기에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거늘. 그런데 뭘 차린 게 없다고··· 김 접주도 어서 앉아 같이 듭시다."


사실 이 시기쯤 되면 어느 집 밥상이든 단출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봄나물도 때 이런 철이라 찬거리가 변변치 못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 시기엔 밥과 간장 종지만으로 밥상을 차리는 여염집도 수두룩했다.


"아, 그나저나 어젯밤에 말씀드렸던 건 생각 좀 해 보셨소?"


수저를 들고 첫술을 뜨려던 전봉준이 뭔가 문득 생각난 듯 동작을 잠시 멈추더니 다소 진중한 어조로 김덕명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후우, 관리의 학정 때문에 쌓인 울분이라면 나 또한 전 접주나 김 접주 못지않을 것이요. 그런 만큼 당연히 뜻을 함께하고 싶은데··· 솔직히 헛물만 켜다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고······."


전봉준이 건넨 말에 김덕명이 먼저 한숨부터 앞세웠다. 그리곤 착잡한 표정으로 자신의 입장을 넌지시 표명했는데, 하지만 뒷말에 묘한 여운을 남기며 말끝을 슬며시 얼버무렸다. 그러자 이제껏 묵묵히 듣고만 있던 태인 동학 접주 김개남이 호기로운 말로 장담을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김 접주, 그래서 우리가 이리 찾아온 게 아니요. 김 접주 염려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크게 뭉쳐야 하기에 말이요. 내 장담컨대 김 접주만 합류하면 곧 큰 눈 덩이로 변할 수가 있을 것이요."


"과연 그렇게 될 수가 있겠소?"


자신의 호언장담에 김덕명이 침울한 표정으로 의문을 표하자 김개남이 다시 나서 자신의 지론이라도 되는 듯 분명한 어조로 몇 마디를 더 건넸다.


"분명히 그리될 수가 있소. 원래 눈을 크게 뭉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지만, 일단 작게 뭉친 눈을 한 번만 굴리기만 하면 큰 눈 덩이로 변하는 건 금방이요. 그 이치는 세력도 마찬가지요."


전봉준이 이처럼 김개남을 대동한 채 세력을 모으고 다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고부 봉기를 통해 그전엔 미처 깨닫지 못한 걸 깨달았기 때문인데, 전봉준이 이번에 깨달은 건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학정, 토호들의 탐학과 수탈이 극에 달한 현 세상에선 아무리 관리를 바꿔 봤자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관리들 전체가 이미 다 썩어 빠져서 갈린 관리나 바뀐 관리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기 때문인데, 막말로 관리라 하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아서 이놈이 그놈이었고, 그놈이 저놈이었으며, 저놈은 또 이놈이었기 때문이다.


당금의 현실이 이런 실정이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밑바닥을 아예 통째로 뒤엎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악순환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걸 전봉준은 저번 봉기 때 홀연히 깨달은 것이다. 비록 거창할 것도,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깨달음이었지만 그때의 그 깨달음이 전봉준의 앞날을 송두리째 바뀌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잠시 이어진 침묵을 깨고 김덕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합류 여부에 대해 답변을 드리자면··· 사실 나에게 물을 필요조차 없는 거였고, 그랬기에 어제 그 얘길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한 상태였소."


"허허, 김 접주가 그리 결정하리라 우리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소. 안 그렇소, 김 접주?"


김덕명이 합류 의사를 표정하자 전봉준이 그 즉시 환한 웃음을 보이며 반색을 했다.


"어제 오면서 전 접주와 이야기한 대로 딱 그리되었소. 하하하!"


김개남까지 낭랑한 웃음을 보이며 반색을 하자 김덕명이 다소 민망한 듯 너스레를 떨더니 이내 낯선 이름을 거론하며 화제를 돌렸다.


"허, 이런··· 도리어 내가 지금 놀림을 당한 것이요? 허허허. 한데 전 접주, 무장의 손 대접주가 동참할 것 같소? 손 대접주를 따르는 사람이 워낙 많아 그이만 떨어들이면 아주 큰 힘이 될 게 자명한 사실이 아니요."


"그럼 앞으로의 계획과 일정은··· 혹여 염두해 둔 바라도 있소?"


김덕명의 질문에 전봉준이 짐짓 정색을 하며 자신의 의중을 내비쳤다.


"그렇잖아도 여기 태인 김 접주와 바로 무장현으로 나설 참이오. 일단은 손 대접주를 만나서 내 심중의 뜻을 허심탄회하게 한번 밝혀 볼 생각이오."


"무장으로 바로 갈 참이요? 음··· 그럼 나도 함께 갑시다."


"허, 진정이오? 마음의 준비도 할 겨을이 없었을 터인데··· 어쨌든 김 접주가 함께해 준다면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오. 고맙소."


"어차피 동참하기로 결심한 바, 천군만마는 되지 못할지언정 일군무마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안 그렇소? 허허허."


방금 전 이들의 언급한 이는 무장현의 동학 대접주 손화중이었다. 손화중은 재작년 선운사 동불암 만애불에서 세상을 바꿀 배결을 꺼냈다는 소문이 퍼진 후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단일 접으로는 전국의 동학 교단 가운데 최대의 조직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무장현뿐만 아니라 고창과 부안 일대까지 조직을 넓히고 있었는데, 인근 고을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선 명성이 꽤 자자한 이였다.


* * *


머리 위로는 높게 치솟은 소나무 가지가 불어오는 봄바람을 반기느라 연신 살랑거리며 부산을 떨어 댔다. 그리고 발 아래로는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작은 오솔길이 아련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오솔길은 그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갔음을 자신의 검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아버지, 저 앞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길을 잡을까요?"


등에 동개를 맨 차림으로 앞서 걷던 진혁이 저 멀리 갈림길이 보이자 미리 나서 이경륭에게 물었다. 자신이 계속 지로하겠다는 뜻이었는데,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매번 반복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저 아래에서 옹동골 쪽으로 들어서거라. 태인현을 거치면 걷기는 편한 대신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소요될 테니, 옹동골을 관통하여 금산사 아래로 바로 빠져나가자꾸나."


진혁이 앞장서겠다는 뜻을 다시금 내비치자 이경륭 또한 다시 한 번 순순히 응해 주며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아버지. 그나저나 귀동 아우는 아주 신이 났네요. 밤새 한숨도 안 잤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습니다."


귀동은 낭순이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깔깔댔는데, 간밤에 잠 한숨 못 잔 사람이라곤 결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허허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느냐?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인데도 그 깊은 산속에서만 갇혀 살고 있었으니··· 진혁이 네가 앞으로도 많이 살펴 주거라."


"예, 아버지."


"하긴 네 녀석도 산속에서 근 십이 년을 살았으니 귀동이는 네 녀석에 비할 바가 못 되겠구나."


이경륭이 귀동에 대한 얘기를 하다 말고 돌연 진혁을 언급하더니 일순 표정이 어두어졌다. 그러자 그 즉시 진혁이 다소 야단스럽게 경망을 피워 댔는데, 그런 호들갑은 눈치가 빠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눈치놀음이었다.


"하하! 소자도 이젠 산사람이 다되긴 했죠. 하지만 아버지······."


"후우, 그게 다 이 못난 아비를 만났기 때문이다."


진혁이 미리 기미채고 서둘러 호들갑을 피웠지만 이경륭의 회한 섞인 한숨이 한발 더 빨랐다.


"에구, 또 그 말씀이세요? 이젠 그만하실 때도 되지 않으셨어요?"


간발의 차이로 이경륭의 한숨을 막지 못한 진혁이 샐쭉한 표정을 짓더니 타박에 가까운 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말투와 달리 말속엔 아버지를 향한 치사랑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끙! 이 녀석아, 이미 마음속 깊이 내려앉은 앙금인데··· 그게 어디 마음먹는다고 쉽게 사라지겠느냐?"


진혁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경륭은 그저 앓는 소리를 앞세우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야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동안 그토록 말씀하셨으면 이젠 지겨울 법도 하실 텐데··· 아버지는 지겹지도 않으신가 봐요."


진혁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가 못내 안타까웠다. 가끔씩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과 마주할 때면, 그 애잔한 눈빛 때문에 자신이 도리어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이경륭의 눈빛엔 진혁 때문에 아파하는 애달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허험! 그건 그렇고, 궁술 경연은 자신 있느냐?"


진혁의 표정이 침울해지자 이경륭이 어색해진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진혁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자신감이야 차고 넘치지만 소자의 실력이 그 자신감을 얼마큼 뒷받침해 줄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 보려고 다짐 중입니다."


자신의 물음에 진혁이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겸손함을 담아 대답하자 이경륭은 절로 흐뭇함이 느껴졌다. 평소 다른 무엇보다 겸손함을 은연히 강조했는데, 그걸 잊지 않고 진혁이 그대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면 되었다. 그리고 훗날 무과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닿으련지 모르겠다만,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으니 결과에 그리 연연해 하진 말거라."


"예, 아버지. 소자 또한 이번 경연을 소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기회로만 여길 뿐 특별한 의미는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새 훌쩍 장성해 버린 진혁이었다. 그런 진혁을 이경륭이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의 내일 일정을 통지해 주며 귀동에 대한 당부까지 덧붙였다.


"··· 그래, 그럼 되었다. 그리고 참, 아비는 내일 사람을 좀 만나야 하니 궁술 경연이 끝나면 진혁이 네가 귀동이 데리고 약재 시장을 좀 다녀오거라. 약재 시장은 궁술 경연이 열리는 감영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있을 게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당부하자면 귀동이 데리고 다니며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는 것도 좋지만, 귀동이가 가지고 있는 저 약재··· 비싼 값 받아주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하지 말거라."


낭순이하고 신나게 장난치며 저만치 뒤따라오는 귀동은 허리에 큼지막한 봇짐을 걸머지고 있었는데, 그 안엔 그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캐 모았을 귀한 약초들이 한가득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


사실 귀동이 어젯밤 잠을 설친 몇 가지 이유 중에 허리에 걸머진 약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귀동은 자신이 채집한 약초가 집안 살림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는 게 너무나 가슴 벅차고 뿌듯하기만 했는데, 그런 만큼 그 일을 가능케 해 주는 약초야말로 귀동에겐 천고의 보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약초를 챙기느라 밤새 한숨도 못 이룬 것도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예, 아버지. 어차피 우리도 오소리 쓸개를 잘 팔아야 하니 소자가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내일 뵈실 분은 어떤 분이세요?"


이경륭이 자신의 내일 일정을 미리 말해 주며 한사람을 언급하자 그렇잖아도 진작부터 궁금해 했던 사람이라 진혁이 넌지시 물어봤다.


"오래전 아비가 북방 군영에 잇을 때 아비의 부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진혁의 궁금증에 이경륭이 과거 자신의 부장이라고 밝혔는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과 달리 눈빛엔 아련한 옛 기억이 맺혀 있었다.


"재작년부터 계속 뵙는 것 같던데요. 혹시 소자의 지레짐작이 맞을지 모르겠는데요. 한번 말씀드려 볼까요? 대략 팔 할 이상은 맞힐 자신 있는데······."


진혁이 얼굴 한쪽에 애잔함을 숨긴 다음 애써 태연한 척하며 한 마디를 건넸는데, 중간부터 중얼거리듯 하더니 끝내 뒷말을 살짝 흐렸다.


"허! 네 녀석이 이 아비에게도 관심법을 펼친 것이더냐?"


진혁이 말끝을 얼버무리며 슬그머니 눈치를 보자 이경륭이 다소 과장된 반응을 보이며 슬쩍 맞장구를 쳐 줬다.


"허억! 아침에 귀동 아우 놀린 걸 들으셨어요?"


진혁이 흠칫 놀라며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연히 듣다마다. 여인네들도 아닌 사내 두 놈이 그리 큰소리로 수다를 떨어 댔는데 어찌 들리지 않았겠느냐? 그래, 말이 나온 김에 어디 한번 들어 보자꾸나. 네 녀석이 짐작하고 있는 게 무엇이더냐?"


진혁이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자 이경륭이 거짓 호통을 한번 치더니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맞장구를 쳐 줬다.


"··· 아버지의 복권에 관한 일 때문이 아니십니까?"


진혁이 잠시 멈칫거리다 조심스럽게 일을 열었다. 그러자 이경륭도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회한 섞인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 맞다. 부질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자꾸만 기웃거리게 되는구나. 이 또한 불민하기 짝이 없거늘······."


사실 이경륭은 아들 진혁 때문에 그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어느덧 헌헌장부가 다되어 버린 아들이 자신의 과거 때문에 출사 길이 막혀 있으니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인데, 그런 입장이다 보니 하늘이 두 쪽 나거나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절대 가망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렇게 또 부질없는 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런 게 바로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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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6) 19.04.12 193 5 24쪽
17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5) 19.04.11 180 6 10쪽
16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4) 19.04.10 175 6 15쪽
15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3) 19.04.09 187 5 11쪽
»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2) 19.04.08 186 7 16쪽
13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1) 19.04.05 229 7 13쪽
12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6) 19.04.04 216 4 15쪽
11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5) 19.04.03 173 4 16쪽
10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4) +1 19.04.02 239 7 13쪽
9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3) 19.04.01 269 7 11쪽
8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2) 19.03.29 279 6 13쪽
7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1) 19.03.28 325 5 11쪽
6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5) +1 19.03.27 387 5 16쪽
5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4) +1 19.03.26 479 8 18쪽
4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3) 19.03.25 602 6 13쪽
3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2) 19.03.24 883 9 13쪽
2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1) 19.03.23 1,481 13 20쪽
1 서장 : 탈신도주 (脫身逃走。몸을 빼내어 달아나다) +5 19.03.22 2,720 1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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