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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늑삼

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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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최근연재일 :
2019.09.26 14:17
연재수 :
78 회
조회수 :
15,164
추천수 :
333
글자수 :
667,027

작성
19.03.23 15:23
조회
1,479
추천
13
글자
20쪽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1)

DUMMY

한반도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 태백산맥에서 서쪽으로 내려 뻗은 노령 산줄기엔 여느 산줄기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고봉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개중에 가장 높은 산은 높게 솟은 만큼 산세도 험했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산 이름에 큰 산을 뜻하는 '악' 자가 들어 있을 정도였다.


사라라락.


인적이 머물고 있는 모악산 자락에 한줄기 바람이 훑고 오르자 새순을 틔우려는 나무마다 웅웅거리는 아우성으로 야단법석을 떨어 댔다. 그 한줄기 바람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큰 나무의 두툼한 가지부터 작은 나무의 앙상한 가지까지 저마다 빈 가지를 활짝 벌리며 반기는 모습이 결코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하지만 그 절실한 몸부림을 외면하며 바람은 한시바삐 떠나려 했고, 그런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두려는 나무들은 다급히 빈 가지를 흔들며 작은 요동을 쳐 댔다. 그 악착같은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바람 속 처처엔 나무들이 겨우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따뜻한 봄기운이 가득가득 스며 있는 것 같았다.


"진혁 형님, 봄이 오기는 오려나 봅니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허공을 휘저어 보던 귀동이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그리며 호들갑을 피워 댔다.


"왜, 살갗에 닿는 바람이 어제와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지? 하기야 세월이 벌써 춘삼삭의 하순에 접어들었으니 따스한 남녘 바람이 불어온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긴 하지."


언덕배기에 비스듬히 기댄 채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진혁이 귀동의 호들갑에 곁눈질로 살짝 힐긋거렸다. 그리곤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한마디를 건넸는데, 그 말투에도 나른함이 다분하게 배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다가왔는지 춘삼월도 머지않았네요. 어쨌든 진혁 형님, 양지바른 기슭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제법 따사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러게, 부지세월이라더니 그 길고 기나긴 겨울이 언제 다 지나갔는지··· 이럴 때 보면 세월여류라는 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단 말야. 귀동 아우, 안 그래?"


산 아래를 무심히 바라보던 진혁이 방금 전 귀동이 그랬던 것처럼 한 손을 허공에 휘휘 내저어 보곤 별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았다. 그런데 그 대꾸가 끝남과 동시에 귀동의 입에서 고함 버금가는 성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진혁 형님! 아쒸, 진짜 그럴 거예요?"


"으응? 별안간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귀동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뭔가를 뜬금없이 따지고 들자 진혁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의아히 되물었다.


"몰라서 묻는 거예요? 이제 갓 언문을 깨우친 소제한테 그리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써 대면 어떻게 알아듣냐고요?"


"응? 문, 문자? 무, 무슨 문자?"


진혁은 귀동이 무슨 말을 하는지 선뜻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멀뚱한 표정으로 다시금 되물었다.


"저기, 부지··· 뭐 하고, 세월······."


재차 이어진 진혁의 반문에 귀동은 뭔가 머쓱한 게 있는지 자신의 머리부터 긁적였다. 그리곤 방금 전과 달리 작은 모깃소리로 대답을 했는데, 그나마 더듬거리느라 그 끝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하지만 귀동이 그리 중략시키며 얼버무린 말임에도 진혁은 용케 알아듣고 외려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쒸, 이 우형이 누누이 얘기했지? 개떡같이 말하면 대충 꿰어 맞춰서 찰떡같이 알아들으라고."


"흥!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요?"


"왜, 그 쉬운 게 안 돼?"


"쳇! 한문학까지 깨우친 형님이야 쉽겠죠."


"그, 그런가? 그, 그렇담 미안해. 앞으론 이 우형이 주의하도록··· 그런데 방금 혀 찬 거야?"


만만치 않은 기세로 콧방귀까지 뀌며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귀동에게 똑같이 맞받아치며 핏대를 세우던 진혁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멋쩍은 표정으로 바뀌더니 결국엔 미안하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예? 에이, 이 소제가 언제 그랬다고··· 어찌 됐든 앞으론 그 약속 꼭 지켜야 해요? 헤헤, 알았죠?"


"잘, 잘못 들었나? 쩝, 그래··· 알았어, 약속할게."


치기 어린 언행을 보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헤헤거리는 귀동이었다. 그런 귀동에게 잠시 주저하다 이내 선뜻 약속해 주는 진혁은 약관 이쪽저쪽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사내로 허름한 겹바지에 짐승 가죽을 덧댄 윗도리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 차림새로 보아 전형적인 사냥꾼처럼 보였는데, 아닌 게 아니라 진혁의 등에는 활과 여남은 개의 화살이 꽂혀 있는 전통이 메어 있었고, 바로 옆에는 박달나무로 된 창대에 뾰족한 쇠붙이가 박힌 창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그나저나 진혁 형님, 요 녀석도 나름 뱃가죽이 따뜻한 모양입니다. 좀 전에 슬그머니 다가와 엎드리더니 당최 일어날 생각을 안 하네요."


이제 열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귀동은 아직 애티가 남아 있는 앳된 청년으로 위아래 모두 솜을 둔 무명옷을 입고 있었다. 그 차림새가 진혁과는 딴판이었는데, 더구나 옆구리엔 약초 몇 뿌리가 어지러이 담긴 땟국 자르르한 망태기까지 덩그라니 매달려 있었다.


그런 귀동의 옆에는 몸빛이 온통 회백색으로 뒤덮인 짐승 한 마리가 떡하니 엎드려 있었다. 앞발을 앞으로 쭉 내민 채 그 위에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얼핏 개와 비슷했는데, 좀 더 자세히 보니 개보다는 덩치가 두 배쯤 커 보이고 몸통 여기저기에 검은색이 약간씩 섞여 있는 게 영락없는 늑대의 모습이었다.


"우리 낭순이? 에이, 그런 거 아니고··· 꼴에 야행성이라고 밤새도록 싸돌아다니느라 곤해서 그럴 거야. 흥, 누가 야수 아니랄까봐."


진혁은 직접 보지 않아도 훤히 보인다는 듯 여전히 산 아래에 시선을 둔 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어라? 방금 우리 낭순이라고 했어요? 아까는 썩을 년이니, 호랑이 물어 갈 년이니··· 있는 욕 없는 욕 다하더니만, 웬일로 금세 바뀌었어요?"


진혁이 낭순이를 언급하며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귀동이 별일이라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은근슬쩍 비아냥거렸다.


"허험, 그때는··· 우리 이 낭자가 저 혼자만 산토끼 잡아먹고 와서 그랬던 거지, 뭐."


귀동이 비아냥대자 진혁이 뭔가 켕기는 게 있는지 헛기침을 앞세웠다. 그리곤 슬그머니 변명을 늘어놨는데, 귀동의 말마따나 잠시 전 낭순이를 경망스레 다그쳤던 게 나름 찔렸기 때문이다.


"쳇! 누가 진혁 형님 아니랄까 봐 이랬다저랬다, 아무튼 변덕쟁이가 따로 없다니까요."


급기야 귀동이 혀까지 차며 힐난에 가깝게 빈정대자 진혁은 낭순이에 대한 서운함이 다시금 상기되었다. 그만큼 귀동의 비아냥은 강도가 은근히 셌고, 진혁으로 하여금 방금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 있어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진혁은 기대고 있던 몸을 살며시 일으키며 인상부터 잔뜩 찌푸렸다. 그리곤 한껏 가늘어진 눈매로 낭순이를 째려보더니 이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입도 댓 발 가까이 튀어나왔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우쒸, 다시 생각해 보니 또 약이 오르네. 잡아 처먹었으면 먹은 티를 내지 말던가. 이건 뭐 '나 방금 전에 맛있는 산토끼 잡아먹었수'하고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걸 진짜 확!"


"게다가 입가부터 발톱까지 꼭 티를 내며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니잖아요. 그렇죠?"


애꿎은 낭순이한테 화풀이하는 진혁에게 귀동은 비아냥 대신 슬며시 장단을 맞춰 주었다. 진혁의 이런 모습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귀동이었고, 그런 만큼 이쯤에선 비아냥이나 핀잔 대신 비위를 맞춰 줘야 한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귀동 아우가 정확히 알고 있네. 맞아,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라고. 근데 그걸 귀동 아우가 어떻게 알고 있었어? 참, 신기하네."


'으이그, 그 이야기를 어디 한두 번 들었어야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수없이 얘기한 게 누군데······.'


하지만 귀동은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헤헤, 그건 그렇고··· 진혁 형님, 낭순이 이름은 도대체 몇 개예요?"


귀동은 비위가 떡판에 가 넘어질 만큼 비위를 맞춰 주다 그쯤이면 되었다 싶었는지 평소 궁금하게 여겼던 걸 떠올리곤 내친김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응? 우리 낭순이 이름? 그거야 뭐,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이 낭자, 평상시 그저 그럴 때는 낭순이, 그리고 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땐 똥 강아지부터 썩을 년, 호랑이 물어 갈 년··· 큭큭, 사실은 나도 다 몰라."


"에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똥 강아지는 너무 하는 거 아니예요? 그래도 명색이 늑대인데."


진혁이 낭순이의 이름을 얘기하다 똥 강아지까지 운운하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귀동이 그건 아니라는 듯 냉랭한 말투로 한마디를 건넸다.


"흥! 제 녀석 새끼 때 윤 생원네 암캐 젖 먹으며 컸으니 제까짓 게 날고뛰어 봤자 강아지밖에 더 되겠어?"


진혁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귀동의 말을 받았는데, 막상 듣고 보니 그 나름대로 일리도 있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아, 낭순이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요. 낭순이는 어쩌다 함께 살게 된 거예요?"


"이 녀석과 살게 된 사연? 이야기하자면 좀 길어··· 그러니까 아마 재작년 요맘때쯤이었을 거야. 겨울 동안 모아 두었던 가죽을 팔기 위해 아버지랑 정읍현에 나갔다가 소문 하나를 듣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귀가 솔깃한 소문이었어."


"귀가 솔깃한 소문요? 어떤 소문이었는데요?"


"사냥꾼들끼리만 오르내리던 소문이었는데, 다른 게 아니고··· 남원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 중에 영역 다툼에서 밀린 몇 마리가 순창 회문산 자락으로 스며들었다는 소문이었어."


"······?"


"물론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지만, 아무튼 그 소문을 듣고 아버지와 나는 쌍치골을 거쳐 회문산으로 향했지. 때마침 반달가슴곰들도 동면에서 깨어날 시기였으니까······."


* * *


재작년 이맘때쯤 진혁은 아버지 이경륭과 함께 칠보 산중에 있는 수간두옥을 떠나 쌍치재를 타고 넘어 회문산으로 들어갔었다. 당연히 겨울잠에서 깨어난 반달가슴곰을 사냥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렇게 회문산에 입산해 첫날을 허비하고 이틀째가 되는 날 여느 때와 달리 운이 따랐는지 어귀인 구림골에서 반달가슴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견 즉시부터 꼬박 한나절을 추적한 끝에 진혁과 이경륭은 마침내 반달가슴곰 한 마리와 조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꽤 오랜 시간에 걸쳐 힙겹게 추적한 반달가슴곰 곁엔 이미 다른 존재가 함께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천만몽외의 상황이라 진혁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런 진혁과 달리 이경륭은 곧바로 상황을 직시하고 활시위에 화살부터 재었다. 그리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반달가슴곰을 향해 화살을 쏘아 보냈는데, 이경륭은 그 한 발에 그치지 않고 연속해서 두 발의 화살을 더 쏘아 보냈다. 그 과정은 설명 못지않게 복잡했지만 군더더기 없는 속사로 인해 수유의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그만큼 그 모든 게 신속하고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어쨌든 그 직후 세 발의 화살을 맞은 반달가슴곰은 마치 썩은 고목이 쓰러지듯 힘없이 쓰러졌고, 그런 반달가슴곰을 향해 진혁이 득달같이 달려가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러자 쓰러진 반달가슴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다른 존재가 쓰러져 있었다. 그 존재는 다름 아닌 늑대였는데, 이미 몸 전체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가느다란 숨을 간당간당하게 내쉬고 있었다. 그런 걸로 보아 마지막 숨도 얼마 남지 않아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늑대는 어느 한 곳을 주시한 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진혁이 뭔가를 짐작하고 그 방향을 가늠한 다음 쭉 따라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늑대의 눈길이 닿는 곳엔 새끼 늑대 한 마리가 잔뜩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럼, 그때 그 새끼 늑대가 요 녀석이예요?"


"응, 태어나자마자 약육강식의 살벌함과 적자생존의 냉혹함까지 동시 다발로 겪은 가엾고 불쌍한 녀석이지··· 하필이면 겨울잠에서 막 깨어나 배고픔이 극에 달한 곰과 마주쳤으니 말야."


애잔한 눈길로 낭순이를 바라보며 진혁이 안쓰럽다는 듯 얘기하자, 귀동 또한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며 낭순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후우, 어쩌다······."


"아마도 어린 이 녀석 때문에 무리에서 뒤처졌을 테고, 그때부터 상위 포식자의 먹잇감으로 전락된 거지. 사실 이 녀석만 아니었다면, 그 어미 늑대는 아마 거구의 반달가슴곰과 마주친 순간 줄행랑부터 쳤겠지. 하지만 이 녀석 때문에 그러지 못했을 거고······."


"후우, 아마도 그랬겠죠."


진혁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안타까움만 더해지는지 귀동이 굳어진 얼굴로 연이어 한숨을 토해 냈다.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며 반달가슴곰에게 덤벼든 그 어미 늑대도 자신의 행동이 무모하다는 걸 아마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럼에도 덤벼든 것은 이 녀석만큼은 어떻게든 살리려고 그랬겠지."


"··· 듣고 보니 요 녀석한테 그런 아픈 사연이 있었네요."


"아픈 것도 보통 아픈 게 아닌 천추유한이 될 만한 그런 아픔이지."


귀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진혁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귀, 귀동 아우. 이 녀석 어미인 그 늑대를 어떻게 생각해? 한낱 미물로 취급하기엔 너무 숭고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흔히 한낱 미물로 간주하며 하잘것없고 보잘것없게 취급하는 짐승이 때에 따라선 그리 말하는 인간들보다 더 나을 때도 있었는데, 특히 요즘같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선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미 늑대요? 그, 글쎄요. 직접 보지 못했지만 형님 말마따나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긴 드는데, 그보다는 애잔한 마음이 더 앞서는 것 같아요."


"그래? 의외네. 하긴 귀동 아우의 심성이 워낙 착하고 순하니, 아마 그래서 그런 마음이 먼저 들거야. 아 참, 그나저나 불가사의한 게 하나 있는데 궁금하지 않아?"


"예? 뭔데요?"


귀동의 심성을 에둘러 칭찬하던 진혁이 별안간 뜬금없는 궁금증을 유발시키자 귀동의 눈에 이채가 스치며 그 즉시 반응했다.


"그게 뭐냐면, 이 녀석에 관한 건데··· 아버지는 이 녀석을 그곳에 그대로 두고 오자고 하셨어. 혹시 앞서 떠났던 무리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면서 말야. 그러면서 늑대는 야성이 강하기 때문에 집에 데리고 가 봐야 사람 손도 타지 않아 어차피 금방 죽을 거라고 하셨거든."


"그런데요?"


진혁이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마치 지난 일을 회상하듯 지그시 눈을 감자, 귀동은 뒷이야기가 궁금한지 바투 다가서며 귀를 쫑긋 세웠다.


"으응? 아, 어찌 된 게 이 녀석은 처음부터 내 손을 타더라고. 쓸개가 빠진 건지, 아니면 배알이 없는 건지 작디작은 꼬리까지 연신 흔들면서 말야."


"진짜요?"


"응. 아무튼 그렇게 처음부터 내 손을 타더니 하루아침에 저렇게 똥 강아지가 되어 버리더라고. 쩝!"


"푸웁! 크하하하!"


진혁의 말에 귀동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낭순이가 고개를 들며 으르렁거렸다.


크르르릉!


"어? 진혁 형님, 형님이 똥 강아지라고 하니까 요 녀석이 으르렁거리는데요. 요 녀석도 똥 강아지라는 말만큼은 기분이 나쁜가 본데요."


"쉿! 그런 게 아냐··· 잠시만 조용히 해 봐."


귀동이 낭랑한 웃음을 웃어 보인 후 낭순이의 으르렁거림을 제멋대로 해석해 우스갯소리를 하자, 진혁이 그런 귀동을 다급히 제지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미세한 차이였지만 평소와 다른 낭순이의 으르렁거림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닌 게 아니라 저 멀리 산 아래에서 커다란 굉금이 연이어 들려왔다.


꽝! 꽈꽈꽝! 꽈꽝!


"진혁 형님, 어제 본 그 금광에서 또 막대기 폭약을 터뜨리나 봅니다."


귀동이 약간 경직된 얼굴로 막대기 폭약이라는 걸 언급하자 진혁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입에선 침음이 새어 나왔다.


"음, 다이너마이트라고 했던가. 이름도 요상하기 짝이 없는 그 조그만 게 저리 큰 위력을 지니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랍기 그지없군."


"그러게 말이예요. 여기까지 이리 크게 들릴 정도면 진짜 어마어마하겠는데요."


진혁과 귀동은 어제 이쪽 산자락으로 넘어올 때 저 아래 금광을 지나쳐 왔었다. 그때 마침 방금 전과 폭음이 터져 해연히 놀랐는데, 깜짝 놀란 진혁이 금광에 있던 왜인을 붙잡고 폭음에 대해 묻자 그 왜인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더듬거리는 조선말로 간략하게 설명을 해 줬다. 그 왜인 말에 의하면 그 폭약의 명칭은 '다이너마이트'라고 했고, 삼십여 년 전쯤 서양에서 발명된 폭약이라고 했다.


"제기랄! 우리 조선 반도에 꿀이 발라져 있는 것도 아닐진대 뭔 왜인들이 저리 꼬이는지."


마뜩잖다는 듯 낯빛을 바꾸며 진혁이 투덜거리자 옆에 있던 귀동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마치 혼잣말을 하듯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꼭 꿀이 아니더라도 똥파리들은 아무 곳이나 꼬이는 것 같던데······."


"어? 큭큭, 그것도 그렇네··· 그나저나 우리 조선도 이젠 어딜 가나 왜인들 천지라고 하던데."


왜인들이 설치고 다니느 게 영 못마땅한지 진혁이 탄식 섞인 어조로 불만을 토로하자 귀동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진혁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긴 이 산골 벽지까지 저렇게 왜인들이 설치고 다닐 정도면 그 말도 과언은 아니겠네요."


"후우, 이러다간 우리 조선이 왜인들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가 걱정하셨는데······."


생각할수록 마뜩잖은지 진혁은 기어코 한숨까지 토해 내며 한마디를 더 중얼거렸다.


"춘, 춘장 어르신께서요?"


진혁이 아버지 이경륭을 언급하자 귀동이 그 즉시 눈에 이채를 띠며 반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귀동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귀동에게 있어 이경륭은 일생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없이 고마운 존재였고, 그에 더해 귀동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이경륭이었기 때문이다. 귀동에게 그런 나름의 이유가 있는 만큼 그리 반색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 응."


미소가 가득한 귀동과 달리 진혁은 괜스레 나빠진 기분 때문에 다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눈치 빠른 귀동이 화제를 슬며시 다른 데로 돌렸다.


"한데 진혁 형님, 저렇게 폭약을 터뜨리면 진짜로 금이 쏟아져 나올까요?"


"으응?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다만 이쪽 고장에 매장되어 있는 금이 다른 고장보다 더 많은 건 사실인가 봐. 각 고을의 지명만 봐도 그렇고······."


"하긴 그러니까 저 난리를 피워 대는 거겠죠?"


사실 그랬다. 현재 진혁과 귀동이 앉아 있는 곳에서 앞쪽으로 펼쳐진 고장엔 다른 고장보다 유달리 금이 흔했다. 그에 대한 사실은 예로부터 전해져 온 이 고장의 고을 지명에서부터 확인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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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6) 19.04.12 193 5 24쪽
17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5) 19.04.11 179 6 10쪽
16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4) 19.04.10 175 6 15쪽
15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3) 19.04.09 186 5 11쪽
14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2) 19.04.08 185 7 16쪽
13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1) 19.04.05 229 7 13쪽
12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6) 19.04.04 215 4 15쪽
11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5) 19.04.03 172 4 16쪽
10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4) +1 19.04.02 238 7 13쪽
9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3) 19.04.01 268 7 11쪽
8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2) 19.03.29 279 6 13쪽
7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1) 19.03.28 325 5 11쪽
6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5) +1 19.03.27 387 5 16쪽
5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4) +1 19.03.26 478 8 18쪽
4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3) 19.03.25 602 6 13쪽
3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2) 19.03.24 883 9 13쪽
»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1) 19.03.23 1,480 13 20쪽
1 서장 : 탈신도주 (脫身逃走。몸을 빼내어 달아나다) +5 19.03.22 2,719 1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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