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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늑삼

1894 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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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22 18:26
최근연재일 :
2019.09.26 14:17
연재수 :
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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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9
추천수 :
333
글자수 :
667,027

작성
19.03.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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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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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8쪽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4)

DUMMY

* * *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노령 산줄기는 무주 덕유산에서 시작해 고창 선운산까지 이어졌는데, 그 산줄기 중간쯤에 있는 모악산을 지나 서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가을철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 내장산 아래엔 제법 큰 고을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는데, 샘물이 워낙 맑은 데다 흔하기까지 해 '정읍'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겨울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머물고 있는 정읍현 말고개 밑에 서너 채의 기와집과 열대여섯 채의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촌락은 가구 수가 많지 않아서인지 조용하고 호젓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는데, 다만 촌락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초가집만큼은 조용하고 호젓한 분위기가 아닌 다소 소란스러운 소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 초상난 데 춤추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오대 독자 불알 까고, 우는 애기 똥 멕이고, 늙은 영감 덜미 잡고, 애밴 부인 배통 차고, 우물 밑에 똥 누고, 애호박에 말뚝 박고, 똥 누는 놈 주저앉히고, 수절 과부 겁탈하고, 다된 혼사 바람 넣고, 목욕하는데 흙 뿌리고, 자는 애기 눈 벌려 놓고, 신혼부부 잠자는데 불이야 하고······."


판소리 중 흥부가의 한 구절이 초가의 싸리바자를 넘어 쉼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청아하고 여린 목소리로 보아 소리꾼이 앳된 여인인 듯했다.


잠시 후 그 초가의 싸리문 안으로 초로의 늙은이 한 명이 들어섰다. 그 노인은 얇은 솜옷에 양태가 좁은 중갓을 쓰고 있었는데, 그 차림새로 미루어 보아 양반과 상민의 중간 신분인 중인인 것 같았다. 여하튼 초가 마당에 들어선 그 노인은 안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는데,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소리가 어느 순간에 조용히 끊기자 그제야 노인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인기척을 안채에 알렸다.


"허험!"


덜컹!


송유석의 인기척에 그 즉시 안채의 방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나왔다. 안방에서 나와 마당으로 내려서는 두 사람은 모두 여인이었는데, 서로 얼굴이 비슷한 걸로 보아 자매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송유석을 부르는 호칭에서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자매지간이라는 게 자연스레 밝혀졌다.


"아, 아버지!"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마당으로 내려선 두 자매는 아버지 송유석을 향해 밝은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비교적 다소곳한 언니에 비해 동생으로 보이는 여인은 다소 들떠 있는 듯 천진난만한 표정에 홍조가 살짝 내비쳤는데, 여하튼 아버지를 향한 반가움만은 두 자매 모두에게서 물씬 풍겨 났다.


"오냐, 그래."


여전히 흐뭇한 표정을 보이는 송유석은 두 딸의 인사를 받으며 사랑채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다지 크지 않은 기역자집의 초가엔 사랑채가 싸리문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 가셨던 일은 어땠어요? 그 소문이 사실이예요?"


"허, 요 녀석아. 이 애비 숨 넘어가겠다. 숨이나 좀 트이고 나면 얘기하자꾸나."


송유석을 따라 쪼르르 사랑채로 들어온 두 자매 중 아직 애티가 남아 있는 동생 서연이 자리에 앉자마자 눈빛을 빛내며 아버지 송유석을 향해 다짜고짜 질문부터 건넸다. 그러자 송유석이 다소 과한 엄살을 피우며 질책했는데, 얼굴엔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헤헤··· 죄송해요, 아버지. 워낙 들뜨게 하는 소문이라 부지중에 그만 우물을 들고 마시려 했네요. 헤헤헤."


송유석에게 헤헤거리며 말을 건네는 막내딸 서연은 요즘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그 초조함과 더불어 살짝 들떠 있기도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동안 오매불망으로 꿈꾸어 왔던 자신의 바람이 조만간 눈앞에 펼쳐지며 현실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버지, 밖의 날씨가 아직까진 꽤 쌀쌀할 텐데요. 서연이 때문에 괜한 고생만 하신 건 아니세요?"


서진은 맏딸답게 차분하고 드레진 면을 제법 갖추고 있어 아직 철부지나 다름없는 서연과는 확연히 달랐는데, 아버지 송유석에게 건네는 말속에도 그러한 면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원 별 말을 다하는구나. 날씨도 생각보다 많이 풀려서 다녀오는데 큰 불편 없었으니 괘념치 말거라."


염려가 담겨 있는 맏딸의 말에 이미 그 마음을 훤히 알고 있는 송유석은 낯빛을 점잖이 바꾸며 인자로이 말을 건넸다.


"그래도 관아까지는 꽤 먼 길이잖아요."


"어쨌든 관아에 가서 예방을 만나 보긴 했다."


서진의 말을 받아주며 송유석이 예방을 만나 봤다고 하자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서연이 눈빛을 반짝이며 다급히 되물었다.


"뭐래요, 아버지?"


"음, 소문 내용은 말이다. 그러니까······."


송유석이 말을 하다 말고 짐짓 정색을 하며 뜸을 들이자 뭔가 애가 타는지 서연이 바짝 당겨 앉으며 독촉을 해 댔다.


"아이, 아버지. 뜸 들이지 마시고요."


궁금한 표정으로 독촉하는 서연과 달리 송유석은 다소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소문은 모두 사실이더구나."


"예? 정, 정말요? 아버지, 진짜죠?"


송유석의 말에 화들짝 놀란 서연은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며 그 대답에 대한 사실 여부를 연방 되물었다.


"허허허. 그래, 요 녀석아."


"와아! 언니, 언니. 우리 잘하면 한양 구경할 수도 있겠다. 헤헷, 도대체 이게 꿈이야 생시야."


무슨 내용인지 아직까진 알 수 없으나 송유석으로부터 뭔가에 대해 확인 받은 서연은 곧장 서진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나더니 급기야 폴짝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엉? 요 녀석아, 벌써부터 웬 김칫국이냐? 아직 첩첩산중이거늘."


"예? 아, 아버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서진을 붙들고 폴짝폴짝 뛰며 마냥 좋아하던 서연이 송유석의 느닷없는 한마디에 그 즉시 안색이 굳어지며 샐쭉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무슨 말인지 정녕 몰라서 묻는 게냐? 올 청명절 때 전주 사습 경연에서 장원을 해야만 한양 경연의 참가 자격이 부여되는데 네 녀석 실력으로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느냐? 허엄!"


다소 굳어진 얼굴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연에게 송유석이 힐난에 버금가는 말을 건넸는데, 설핏 짓궂은 미소를 보이는 걸로 보아 모종의 의도가 다분하게 엿보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뒷감당은 그 처지와 전혀 다른 난감함으로 잠시 후에 호되게 치뤄야만 했다.


"왜, 왜요? 아버지가 지금껏 그러셨잖아요. 제 실력이면 요쪽 동편제에선 그 누가 뭐래도 제가 으뜸이라고요. 그리 말씀하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으앙, 으아앙······."


거의 울상을 짓고 있던 서연이 송유석의 말에 반박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서연의 울음에 동기를 부여했던 송유석은 그 뒷감을 하느라 한동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모름지기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 그 상대의 사내로선 그 어떤 직위도 소용 없고, 그 어떤 자격도 무의미했기 때문인데, 그런 걸 보면 세간에 떠도는 말 중 '여자의 눈물 앞에 장사 없다'는 말도 웬만큼은 맞는 말 같았다.


"허억! 아, 아니다. 네 녀석이 으뜸이 맞다 맞어."


"그, 그렇죠? 훌, 훌쩍······."


"그, 그래. 그렇고 말고··· 그렇다고 이 애비가 농 한번 한 걸 가지고 다 큰 녀석이 질질 짜기나 하고 말야. 에엥."


가까스로 서연을 달랜 송유석은 진이 빠진다는 표정을 지으며 급기야 못마땅할 때 내는 콧소리까지 내야만 했다.


"훌쩍, 이제 이팔청춘밖에 안 됐는데 크긴 뭐가 다 커요?"


"뭐라, 이팔청춘밖에? 허어, 나이 열여섯이면 다들 시집갔을 나이가 아니더냐?"


"예? 시, 시집요? 벌, 벌써요?"


송유석의 입에서 시집이라는 말이 나오자 잔뜩 토라진 표정을 짓고 있던 서연이 일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뀌며 반문했다.


"허, 네 녀석 또래들을 한번 보거라. 누가 남아 있는지?"


"제 또래에서 시집간 얘들은 없는데··· 다들 남아 있어요, 아버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팔청춘이 훌쩍 지나 방년이 된 언니도 아직 시집 안 갔으니 다 안 컸잖아요. 그런데 동생인 저를 어찌 다 컸다고 그러세요?"


송유석의 호통 아닌 호통에 떨떠름한 표정을 보이던 서연이 갑자기 샐쭉한 시선으로 서진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소 엉뚱한 말을 조잘거리며 송유석과 서진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뭐, 뭣이라?"


"언니도 여태 시집을 안 갔으니 아직 다 큰 게 아니잖아요. 그렇지, 언니? 헤헤헤."


송유석이 간신히 달래 놓은 서연이 처음엔 눈물을 찔끔거리며 훌쩍대다 어느 순간 토라진 듯 뾰로통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종내엔 헤헤거리며 웃기까지 하자 송유석은 채신없이 입을 헤벌린 채 멍한 표정이었고, 서진은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뜬 채 마치 뭔가에 홀린 것마냥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아버지. 다, 다녀오신 일에 대해 자세히 말씀 좀 해 주세요."


잠시 후 서진이 다급히 송유석을 불렀다. 그리곤 다녀온 일에 전말을 궁금해 했는데 언뜻 보면 궁금한 게 많아 독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어떤 걸 희석시키기 위한 얕은 수작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서연의 입에서 별안간 자신의 얘기가 나오자 그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입을 연 것이다.


"으응? 아, 그보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서연이 너, 요 녀석아. 네 언니가 아직까지 시집을 안 간 게 누구 때문이더냐? 다 큰 네 녀석이 아직도 코흘리개마냥 어린 짓만 해 대니까 네 녀석 뒷치다꺼리하느라 못 간 것이 아니더냐?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아, 아버지. 제, 제가 왜 코흘리개예요? 다 큰 지가 언젠데요."


"허어, 아직도 한참 어리기만 한 네 녀석이 크긴 뭐가 다 컸다고 그리 당치 않은 말을··· 엉?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아이 참, 저는 이미 다 컸다니까요··· 으응? 허걱!"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지없었다. 시간이 점차 지나며 적당히 때가 무르익자 두 부녀가 또 본말을 전도하며 삼천포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서진이 이젠 만성이 되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송유석을 나지막이 불렀는데, 하긴 그간 하도 많이 봐 온 모습이라 서진으로선 만성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 으응. 내가 무슨 얘기를 하다··· 아, 전라 감사 김문현 영감의 꿍꿍이속이 뭔지 그 저의를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왜요, 아버지. 뭐 걱정되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난데없이 전라 감사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송유석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지자 서진이 해연히 놀라며 다급한 어조로 되물었다.


"장기판의 졸때기 같은 우리가 걱정될 게 뭐가 있겠느냐. 다만 얼마 전에 고부에서 그 난리까지 터졌는데··· 이런 판국에 단오절 행사를 청명절로 앞당겨 치른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수작인지 도통 알 길이 없구나.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어디 정상이더냐."


"아버지, 이번 고부 난리로 인해 민심이 많이 동요되었잖아요. 혹시 그 동요된 민심을 달래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요?"


사실 얼마 전에 있었던 고부 민란은 인근 고을인 이곳 정읍현까지 그 소문이 파다했기에 비단 남정네들뿐만 아니라 서진같이 여인네들도 이미 훤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긴 이반된 민심을 아우르기 위한 방편일 거라고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더라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될런지는 모르겠구나. 후우, 어쨌든 그런 취지겠지······."


다소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하던 송유석이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어찌 되었든 소문 내용만큼은 모두 사실이라는 말씀이네요."


송유석이 뒷말을 흐리며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짓자 서진이 재빨리 나서 말을 받았는데, 화제를 바꿔 아버지 송유석의 기분을 풀어 주려는 나름의 기특한 노력이었다.


"그렇더구나. 요쪽 운봉, 남원, 곡성, 순창, 고창, 정읍의 소리꾼들은 오는 청명절 때 전라 감사 주관 하에 전주에서 사습 경연을 치러 장원을 뽑고······."


"······."


"저 아래 서편제 쪽의 보성, 장흥, 광주, 순천은 나주에서 나주 목사 주관 하에 경연을 치른다고 하더구나."


이제껏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던 서연이 자신의 관심사가 급부상하자 그 즉시 냉큼 끼어들어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그럼 아버지, 제가 만약 우리 동편제 쪽에서 장원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네 녀석이 장원을 하면 한양에서 열리는 경연에 참가 자격이 주어지니까, 그렇게 되면 중양절 때 한양으로 올라가 임금님이 보는 앞에서 서편제 쪽하고 중고제 쪽이랑 한바탕 겨뤄야 하지 않겠느냐."


"그, 그런 거예요? 그럼 한양에서의 경연은 결코 쉽지 않겠네요?"


"당연히 그렇다고 봐야겠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것저것을 연거푸 물어보던 서연이 송유석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점점 당황하는 기색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다 잠시 후엔 얼굴까지 벌겋게 붉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한양에서의 경연이 만만치 않겠다고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서연은 그렇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지 근심 가득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 기색이 여실하게 드러났는데,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뭔가 기대되는 것이 있는지 방금 전과 달리 눈에 이채를 띠고 있었다.


'내가 전주에서 장원하면 서편제와 중고제 등 다른 지방의 소리꾼들과 한양에서 겨룬단 말이지. 그렇단 말이지······.'


사실 기호 지방의 중고제 소리는 그다지 활성화가 안 된 까닭에 별로 신경 쓰일 게 없었지만 남도 지방의 서편제 소리는 달랐다. 이쪽 동편제 소리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한층 더 구성지다는 소문을 그동안 익히 들어온 터라 서연으로서는 걱정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서사적인 사설을 말과 몸짓을 섞어 창극조로 부르는 판소리는 오랜 세월이 흐르며 유파가 시나브로 갈리었는데, 대표적으로 동편제와 서편제, 그리고 중고제로 각각 나뉘어졌다.


참고로 동편제는 영조 때의 명창 송흥록 선생이 만든 법제를 그대로 따라 부르는 창법으로 운봉, 남원, 구례, 곡성, 순창, 고창 등 전라도 동북 지역에서 전승되는 소리제였다. 우조를 많이 쓰고 발성이 무거우며 소리를 짧게 끊는 특징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웅장하고 청담한 시김새가 가장 큰 특징이었다.


반면 서편제는 조선 말기의 명창 박유전 선생이 만든 법제를 따라 부르는 창법으로 음색이 부드러우면서도 구성졌다. 특히 애절한 계면조를 바탕으로 둔 게 가장 큰 특징인데, 대체로 보성, 광주, 장흥, 나주 등 전라도 서남 지방에서 전승되는 소리제였다.


마지막으로 중고제는 서편제와 동편제의 중간적 성격을 띠는 창법으로 첫소리는 평평하게 시작했다가 중간을 살짝 높인 다음 끝을 다시 낮추어 끊는 것이 특징이었다. 경기도와 충청도, 즉 기호 지방에서 전승되는 소리제였다.


"그럼 아버지, 서연이하고 준비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여전히 근심 어린 얼굴로 이런 저런 걱정에 골몰하고 있는 서연과 달리 서진은 언니답게 현실 직시가 빠르고 상황 판단도 좀 더 앞서 갔다. 물론 걱정이 되는 건 서진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하지만 서연의 걱정처럼 저 멀리의 걱정이 아닌 당장 눈앞에 펼쳐진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이었다.


"음, 준비라··· 당연히 준비를 해야 되겠지. 그런데 왜 내가 준비를 해? 서진이 네 녀석이 해야지."


서진의 말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송유석이 어느 순간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바뀌더니 다소 뜬금없는 말을 건넸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보통 경연도 아닌 만큼 당연히 서연이하고 아버지께서 참가하셔야죠."


생각지도 못한 말을 느닷없이 들은 서진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 서진이 네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아까 이 애비가 사습 경연이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 만큼 이 애비는 이미 스승을 두고 있기에 애시당초 참가 자격이 없다. 그러니 잔칫집에 불려 다닐 때처럼 서진이 네가 북채를 잡고 서연이와 짝을 이루도록 하거라."


사습 경연은 말 그대로 스승 없이 혼자 배우고, 혼자 익힌 사람들의 시합이었다. 그런 만큼 이미 스승을 두고 있는 송유석은 참가할 수가 없었다.


"예, 그, 그럼 남장까지··· 해야 되잖아요."


"허험, 별수가 없지 않느냐. 그리고 남장하고 북채 잡는 고수들이 어디 한둘이더냐? 널리고 널린 게······."


서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남장 이야기를 꺼내자 그 즉시 헛기침까지 하며 서진의 눈치를 보는 송유석이었다. 그러나 괜한 억지로 눈치놀음을 하려다 도리어 서진의 타박 아닌 타박을 받아야만 했다.


"··· 뭐가 널리고 널려요? 어쩌다 가끔 가뭄에 콩 나듯 한두 명이죠."


"끄응··· 그럼 여건이 안 되는 걸 어쩌겠느냐? 참가하지 않을 것 같으면 몰라도, 참가하려면 그 방법밖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 아니더냐."


송유석은 결국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뒷말의 억양을 슬그머니 낮추더니 곁눈질로 슬쩍 서진을 훔쳐보았다. 그 눈길엔 안쓰러워하는 마음과 기꺼워하는 마음이 반반씩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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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2) 19.04.08 185 7 16쪽
13 제 3장 : 유위전변(有爲轉變。인연에 의해 세상일이 변한다) (1) 19.04.05 229 7 13쪽
12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6) 19.04.04 216 4 15쪽
11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5) 19.04.03 172 4 16쪽
10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4) +1 19.04.02 238 7 13쪽
9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3) 19.04.01 26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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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 2장 : 민간질고(民間疾苦。정치의 변동이나 부패로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다) (1) 19.03.28 325 5 11쪽
6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5) +1 19.03.27 387 5 16쪽
»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4) +1 19.03.26 479 8 18쪽
4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3) 19.03.25 602 6 13쪽
3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2) 19.03.24 883 9 13쪽
2 제 1장 : 춘치자명(春雉自鳴。봄이 되면 꿩이 스스로 운다) (1) 19.03.23 1,481 13 20쪽
1 서장 : 탈신도주 (脫身逃走。몸을 빼내어 달아나다) +5 19.03.22 2,720 1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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