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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백정 영의정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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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작품등록일 :
2024.05.2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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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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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한성에서 살아남기(3)

DUMMY

정진호는 이미 이 세상 인물이 아니다.

정진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늘 아래 단 한 명 나밖에 없다.

숲에서 울고 있는 새들은 알고 있겠지만 말은 못 한다.

정진호 신분을 빌리면 알성시에 응시할 수가 있다.


알성시에 합격할 자신이 있다.

이거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가 틀림없다.

정진욱은 조선시대로 환생해서 불과 며칠 사이에 이름을 두 번이나 바꿨다.

뭉치에서 정진호로···

앞으로 내 이름은 정진호다!

더는 백정 병삼의 아들 뭉치가 아니란 말이다.


왕이 직접 친림하는 알성시는 초시나 복시처럼 3차에 나누어 시험을 보지 않는다.

아침에 시작해서 오후에 급제자를 발표한다.

춘향전의 이도령처럼 급제를 하면 곧바로 벼슬길이 열린다.

당일 심사를 끝내는 시험이라서 제술과 시문(詩文)을 본다.


제술(製述)은 현 정치 상황에 대한 대책,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 같은 것을 정책 제안을 서술한다.

뭉치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서 국토개발부에 근무할 때도 정책 제안은 자신이 있었다.


호랑이는 배가 부르면 활동을 하지 않고 낮잠을 잔다.

토끼가 눈앞에 와도 잡아먹지 않는다.

정진호라는 과시생을 잡아먹었으니 당분간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뭉치라는 이름은 정진호의 존재 속에 묻어 버렸다.

정진호로 살려면 몸에 베어 있는 쇠비린내부터 없애야 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뭉치가 아니고 정진호다.

정진호는 초시 합격자다.

성균관에 들어갔으면 지금쯤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이다.

무슨 사정으로 성균관에 안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양반집 자식은 분명하다.

앞으로는 정 초시로 살아가야 한다.


숲에 흔하게 뻗어 있는 칡 잎사귀를 한 움큼 따왔다.

백정들이 대처로 외출을 할 때 비린내를 없앨 때 칡뿌리나 칡 잎사귀로 몸을 문지른다.

벽사골에서 나올 때는 마음이 급해 미처 칡 잎사귀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칡잎을 비누처럼 뭉쳐서 온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살갗이 아플 정도 문지르고 칡잎을 돌로 찧어서 샴푸를 만들어 머리도 몇 번이나 감았다.

***

문경을 출발해서 보름째가 되는 날 밤이 늦어 송파나루에 도착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되는데 사공이 주막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주막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경강을 건넜다.

과거 시험장소인 경복궁 근처 숙박여각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다.

마포나루나 양화진은 숙박여각도 많은 데다 과거 시험장인 경복궁하고 가깝다.

한여름의 땡볕을 피할 수 있는 나무 그늘을 차지하려면 가능한 한 일찍 과시장에 들어가야 한다.

경북궁 근처의 숙박여각은 과거시즌이 되면 가격이 몇 배로 뛴다.


주머니에 돈은 넉넉하다.

비교적 규모가 크고 깨끗해 보이는 진주여각 안으로 들어갔다.

객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무 거간이 나왔다.


“며칠 있을 생각이네. 하룻밤에 얼마씩인가?”

“점심은 거르시던지, 사드셔야 합니다. 아침, 저녁 두 끼에 하룻밤 주무시는데 5냥입니다.”


거간은 눈도 깜짝 안 하고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5냥이라니?

5냥이면 쌀이 한섬이다.

쌀 한 섬이면 쌀이 두 가마니, 5식구가 두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우리는 양심적으로 받는 편입니다. 다른 여각에 가시면 못 줘도 7냥은 줘야 할 것입니다.”


진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본 거간이 배짱을 부렸다.


“왜 그렇게 비싸게 받는 건가?”

“소문에 이번 알성시에 응시하는 과시생들이 3만 명 가까이 된답니다. 방을 달라는 손님들은 많고, 방은 적으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죠.”

“객주 좀 불러 주게.”


소비자는 많고 상품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 시장원리다.

시장원리도 어느 한계가 있다.

2푼짜리 짚신을 2냥에 파는 것은 시장원리가 아니고 폭리다.


“객주 나리는 왜요?”

“내가 여기서 닷새를 묵을 생각이네. 그럼 25냥 아닌가? 25냥이라는 거금을 주면서 객주 얼굴도 안 본다는 것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잠깐 기다리슈.”


거간은 진호 같은 손님을 한두 번 겪는 것이 아니다.

이 근처에서 여기만큼 깨끗한 여각이 없다.

양반 놈들은 꼭 제 돈을 주고도 욕먹을 짓을 한다.

귀찮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치며 안채 쪽으로 들어갔다.


진호는 누군가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문경새재 주막에서 본 점박이다.

고개를 숙이고 뭔가 생각하는 얼굴로 다가온다.


한성부 인구는 20만 명 가까이 된다.

그 많은 인구 중에 하필이면 점박이와 마주치다니.


슬쩍 고개를 돌리고 거간이 들어간 안채 쪽을 바라봤다.


차중식도 진호를 지나쳐서 안채 쪽으로 들어갔다.

느낌이 안 좋다.

점박이와 부닥쳐서 좋을 것이 없다

슬쩍 돌아서는데 거간이 50대 객주를 데리고 나온다.


“내가 객주요. 내 얼굴 봤으니 어서 숙박비를 계산하슈.”


거간을 뒤 따라 나온 객주가 별스러운 놈 다 본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치며 이내 돌아섰다.


“원래 숙박비가 얼마였는가?”


진호는 마음속으로 길게 심호흡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벼슬이 높아도 돈이 없으면 권력의 중심에 다가갈 수 없다.

권력의 중심으로 가는 티켓은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래도 그렇지,

한성에 올라와서 초장부터 객주에게 조롱받은 기분이다.

숙박여각의 객주면, 모텔주인이나 같은 처지다.

모텔주인에게 조롱받을 수는 없다.

가소로워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 평소에는 하룻밤 자고 두 끼 식사에 한 냥씩 받았소. 하지만 지금은 5냥을 받는다고 우리 거간이 말하지 않았소?”

“그럼 1냥만 받게.”

“지금, 이 나리가 뭐라고 하시는 게냐?”

“이놈, 나는 이래 봬도 초시에 합격을 한 정 초시다.”

“정 초시 나리가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게냐”


병원에 가면 맨 환자다.

검찰청에 가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검사다.

진주여각에 묻는 손님들 중 절반 이상이 초시 합격자다.

객주가 기도 안 막힌다는 얼굴로 비웃으며 거간을 바라봤다.


“글쎄요. 성문 밖에 있는 주막에서도 1냥씩 받는다고 하던데, 거길 소개해 달라는 말씀같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는데, 1냥씩 받게.”

“다시 말씀드리겠는데, 5냥 내슈.”

“그럼 나하고 거래를 하세.”

“아니, 초시나리는 숙박비를 내시고, 저는 숙박비를 받으면 되지. 뭔 거래를 하시자는 겁니까?”

“일 년에 과거를 몇 번씩 보는가?”

“그야, 3년에 한번씩 보는 식년시에, 중광시, 별시, 알성시, 정시···아니, 나리도 그쯤은 알고 계실 거 아뉴?”


객주가 아무 생각없이 대답하다가 슬그머니 놀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를 냈다.


“내가 이다음 과거 때부터 숙박비를 하루 10냥씩 받게 해 주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5냥도 많다고 하시는 분이?”

“나는, 이번 알성시에서 분명히 급제할 자신이 있네.”

“그래서요?”

“다음 과거 시험때는 문 앞에 알성시 급제자를 배출한 여각이라고 써 붙이게. 그럼 과시생들이 서로 여기서 숙박을 하려고 웃돈을 달라는 데로 줄 걸세.”

“그렇기는 하지만···”


진호가 하는 말에 거간의 눈이 반짝 빛났다. 객주도 진호의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급재를 한다는 보장이 없다.

말꼬리를 흐리며 진호의 얼굴을 살폈다.

눈썹이 짙고 눈빛이 총명하다.

관상을 모르는 이들이 봐도 총명한 상이다. 하지만 과거는 운이다.

운이 없으면 아무리 똑똑해도 낙방이다.


“내가 만에 하나 낙방을 하면 50냥을 내겠네.”

“50냥을?”

“그 대신 내가 급제를 하면 객주가 50냥을 내 놓게. 그래도 객주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네. 당장 가을에 초시가 있지 않는가? 그때는 10냥씩 받을 수 있네.”

“제 말은 나리가 50냥을 안 주고 그냥 가 버리면 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이···”

“내가 선금으로 50냥을 내겠네.”


진호가 돈이 들어 있는 개피를 벗어서 두들겨 보이며 자신있게 말했다.

개피 안에는 60냥 정도가 남아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이야, 최고급 방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요.”


객주가 언제 내가 진호 앞에서 거들먹거렸냐는 얼굴로 해해! 웃었다.

***

숙소를 정했으니 슬슬 과거 시험장을 둘러볼 계획이다.

방을 나와서 미투리를 신는데 옆방 문이 열린다.


“어!”


주막에서 본 점박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왜 그러시오?”


진호는 차중식과 마주칠 않는 것이라는 예상은 못 했다.

주막에서는 평민 차림이고, 지금은 갓을 쓰고 도포까지 차려입은 선비다.

그런데도 단번에 알아보는 것을 보니 눈썰미가 보통은 넘는다.


“우리 서로 구면이죠?”

“구면이라니?”


진호가 시치미를 뚝 떼고 건방지다는 얼굴로 점박이의 위아래를 훑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대인배는 백정들을 짐승 취급하지 않는다.

점박이 같은 놈은 약자 앞에서는 호랑이처럼 굴고, 강자 앞에서는 토끼처럼 구는 소인배다.

강하게 나갈수록 놈은 꼬리를 내리고 설설기게 될 것이다.


“얼굴이 너무 눈에 익어서 많이 본 분 같은데···”

“얼굴이 평범하게 생겨서 그런 말은 많이 듣는 편이기는 하지만 나는 노형을 처음 봅니다.”


진호가 할말 다 했다는 얼굴로 뒷짐을 지고 밖으로 향했다.


“자, 잠깐! 정말 날 모르십니까? 충청도 보은 사는 차중식이라는 사람인데···”


차중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호 앞을 가로 막았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그것도 오래전이 아니고 최근에 본 얼굴인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은이라면 속리산이 있는 곳이란 것은 알지만 가 본 적은 없소이다.”


진호는 차중식이 자신을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차중식의 기억력을 흩트려 놓을 생각으로 시치미를 뚝 뗐다.


“한성에는 어찌 오셨습니까?”


차중식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속이 답답했다. 분명히 최근에 본 얼굴인데 어디서 봤는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계속 말을 걸다 보면 기억의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며칠 후에 있을 알성시를 보러 왔소이다.”

“아! 그럼, 어제 혹시 경복궁 안에 있는 경희루에 갔었소?”


차중식이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얼굴로 활짝 웃으며 물었다.


“어제 거기에 가긴 했었는데···”


진호가 차중식의 의심을 풀어줄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러면 그렇지. 저도 알성시 시험보는 장소를 둘러보다 경희루에 갔었거든요. 보은사는 차중식이라 합니다.”


차중식이 잘됐다는 얼굴로 진호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예, 나는 설천사는 정진호라고 합니다. 공부는 많이 했소?”


차중식은 이번에 세 번째 시험을 보러 올라왔다.

세 번이나 낙방했지만 시험의 경향은 알고 있을 것이다.

진호가 차중식의 손을 맞잡고 흔들며 자연스럽게 물었다.


“공부야 열심히 했지만···”

“차 형이 공부한 부분이 시험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군요.”


진호는 시험 정보를 알아볼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여각 안에 있는 식당 쪽으로 향했다.


“아니, 그걸 어찌 아셨소?”

“저의 조부가 주역 공부를 많이 해서, 저도 사람을 보는 얕은 지식이 있습니다.”


식당 안에의 마루방에는 보부상 몇몇이 술을 마시고 있다.

진호도 온돌방으로 가지 않고 마루방에 앉았다.


“주역에 능하면 관상도 잘 보시겠네요.”

“관상도 좀 볼 줄 압니다. 시험에서 자주 낙방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가 뭔지 아십니까?”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시험 운이 없어서 떨어졌다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 사노비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차중식이 말꼬리를 흐리며 진호에게 뭘 먹겠냐는 눈짓을 보냈다.


“소주하고 생선구이를 가져오게.”


진호가 차중식의 상전이나 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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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4화.탄핵 사유서(3) 24.06.07 344 13 12쪽
17 4화.탄핵 사유서(2) 24.06.06 361 13 12쪽
16 4화.탄핵 사유서(1) +2 24.06.05 366 13 11쪽
15 3화 홍문관 교리(5) +2 24.06.04 348 13 11쪽
14 3화 홍문관 교리(4) 24.06.03 361 12 12쪽
13 3화 홍문관 교리(3) +4 24.06.02 379 14 12쪽
12 3화 홍문관 교리(2) 24.06.01 394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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