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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백정 영의정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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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작품등록일 :
2024.05.20 21:29
최근연재일 :
2024.06.26 06: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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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050

작성
24.06.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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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화 폭풍전야(1)

DUMMY

사람들은 때출이 가까이 오면 얼른 길을 옆으로 터 줬다. 덩치가 커서 두리번거리며 걸어도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

전직 현감 김재오 집은 북촌에 있는 웬만한 벼슬아치 집보다 넓었다.

보기 드물게 마당 구석에는 연못도 있다.

큰 사랑방이 있는 안채는 네 개의 계단이 있을 정도로 석층을 쌓았다.

사랑방 앞에는 누각 형태로 난간이 있다.

집이 산자락에 있어서 여름에는 사랑방 문을 열며 턱밑으로 동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누각 밑에는 사랑방에 군불을 때는 아궁이다.


“현감나리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청지기 말에 장지문이 열렸다.

김진호는 현감에서 은퇴했다.

그런데도 현직에 있는 것처럼 현감들이 쓰는 삼 층 정자관을 쓰고 있다.


“시흥에서 왔습니다.”


준호가 일부러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건방져 보일 만큼 적당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시흥에서 뭔 일로?”


김진호는 준호와 구제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갓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양반들이다.

생면부지 놈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 괘씸하다.

어디 두고 보자는 얼굴로 시답지 않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현감나리를 찾아가면 급전을 5푼으로 빌릴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뭐라고? 날 찾아가면 급전을 5푼에 빌려준다고···”


김재오는 하마터면 어떤 미친놈이 그딴 개소리를 했냐며 버럭 화를 낼뻔했다.

사채는 기본이 2할이다.

너무 터무니없는 말을 툭툭 던지면 묘한 두려움이 밀려온다.

진호를 지그시 노려봤다.


“예. 반드시 빌려줄 것이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일단 들어 와 보게.”


말이라는 것이 통하지는 않아도 앞뒤는 맞아야 한다.

조선 팔도 어디를 가도 사채를 5푼에 빌려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김재오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나 들어 보자는 얼굴로 장지문을 홱 닫아 버렸다.


“들어가 보세.”

“놀라는 모습 보셨죠?”


구제기가 손가락으로 사랑방 쪽을 콕콕 찍으며 속삭였다.


“지금은 약과지. 앞으로 계속 놀랄 걸세.”


준호는 코웃음을 치며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김재오 앞에 넙죽 절을 하지 않았다.

가볍게 묵례만 했다. 윗목에 양반다리로 하고

앉아서 점잖게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마당에서 5푼이라고 했나?”


김재오는 너무 황당해서 진호를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5푼이면 1할이 안 되는 금리다.

사채 금리는 최저가 2할이다.

100냥을 빌리면 하루를 사용해도 20냥을 갚아야 한다.

보통 5할을 받고, 심하면 10할을 받는다.

10할은 일 년 후에 원금만큼 이자를 내야 한다.

1할도 안 되는 5푼에 빌려달라면 그냥 돈을 달라는 것과 같다.

알고 있는 방납업자나 대감들 중에서 돈을 거저 달라고 할 만큼 무지막지한 자들은 없다.


“예, 2푼도 빌려주겠지만 최소한도로 5푼은 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푼?”


김재오는 2푼이라는 말에 기절할 지경이다.

사돈이 급전을 빌려 달라고 해도 2할은 받는다.

2푼이라니?

터무니없는 이자로 돈을 빌려줄 것이라는 말에 더럭 겁이 난다.

분명 눈앞에 앉아 있는 두 놈을 보낸 사람은 최소한 대감급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말도 안 되는 금리로 돈을 빌려줄 것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예, 두말 안 하고 빌려줄 것이라 하였습니다.”

“도, 도대체 누굽니까? 5푼에 돈을 빌려줄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대감나리가?”


김재오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대감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대감나리가 존함을 밝히지 말라 하셨습니다.”


준호가 단칼에 김준오의 말을 막아 버렸다.

원래 대감이라 불리려면 벼슬 품계가 정 2품 이상이다.

임경원도 정 2품 벼슬이다.

하지만 정 3품만 되도 통상 대감이라 부른다.

임경원이 직접 김재오 뒤를 봐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사이에 징검다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임경원을 전혀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김재오는 권력의 힘을 아는 놈이다.

징검다리를 건너서 임경원에게 인사 정도는 다닐 것으로 판단했다.


“아니,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하셨다는 말인가?”


김재오는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말이 무섭게 들렸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말은, 어쩌면 충성심을 시험해 보는지도 모른다.


“예, 이자를 싸게 달라고 하면 존함을 밝히지 않아도 현감 나리가 누군지 금방 알아볼 것이라 하셨습니다.”

“누굴꼬? 나한테 가면 싸게 급전을 빌릴 수 있다고 하는 대감나리가?”


장죽의 물뿌리를 뻐금뻐금 빨면서 곁눈질로 진호를 바라봤다.

진호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돈을 얼마나 빌리러 왔는지?

담보는 무엇인지?

돈을 빌려주려면 기본적으로 채무자의 신원과 담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이자가 결정된다.

그런데도 김진호의 신원을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맹세코 사채를 놓기 시작한 이후 2할 이하의 이자로 돈을 내준 적이 없었다.

1할도 아니고 5푼으로 돈을 빌려 달라는 익명의 대감이 누군지에 만 온 정신이 쏠려 있었다.


“돈을 빌려주시지 않을 생각이면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준호가 자기한테 날아오는 담배 연기를 손으로 흩어 버렸다.

사채업자들에게 돈은 핏줄과 같다.

이자 한 푼 깎아 주는 것은 피를 덜어주는 만큼 아까울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어떤 대감이 이자를 깎아 주라는 말에 혈압이 상승하고 있을 것이다.


“자, 잠깐만. 돈을 누가 빌려주라고 했는지를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대감 나리 이름만 말해주게. 그럼 당장 음표를 써 주겠네.”

“저도 존함을 밝히고 싶습니다. 하지만 엄명이라서···”

“음···”


김재오는 옆으로 돌아앉았다. 벽에 걸려 있는 족자를 바라봤다.

족자에는 ‘청렴결백’이라는 가문의 휘호가 쓰여 있다.


김재오가 슬쩍 진호와 구제기를 바라봤다.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젊은 놈은 상전인 것 같고, 삼십 대 보이는 놈은 집사처럼 보인다.


갓을 쓰고 온 두 명의 양반은 왕십리 사람이 아니다.

시흥에서 왔다면서 다짜고짜 돈을 빌리러 왔다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것은 담보만 있으면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다.

문제는 한성의 어느 대감이 소개를 해서 왔는데, 싼 이자를 빌려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대감 나리냐고 물었더니, 그냥 한성에서 보냈다면 시흥 현감도 금방 눈치챌 것이라는 대답만 맹꽁이처럼 하고 있다.


“한성에 계신 대감나리께서는 훗날 현감나리를 부르신다 하였습니다.”


준호는 가능한 김재오를 현직 현감처럼 대하면서도 결정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아! 내 말은 내가 알고 있는 대감나리들이 한두 분이 아니시라는 점 이라구.”

“현감 나리께서 시흥 현감으로 재직하실 때 자주 찾아뵈었다는 말씀을 하시면 아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김재오가 벌컥 화를 냈지만, 준호는 초연했다. 마치 분노를 유발하려 작정이나 한 것처럼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가 시흥 현감을 1년밖에···”


김재오는 시흥현감을 하다 파면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보통 현감의 임기는 2년이다.

2년만 채웠더라면 지금보다 재산을 두 배는 늘렸을 것이다.

박 초시라는 놈이 사헌부에 쑤셔대는 통에 파면당하고 말았다.


“현감나리께서 사헌부 감찰에게 걸려서 억울하게 파면당해셨다는 것도 알고 계시더군요.”

“내가 억울하게 파면당한 사실은 시흥 사람들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김재오는 억울하게라는 말이 낯간지러웠다. 하지만 듣기는 좋았다.


“대감나리께서는 어느 몰상식한 초시가 모함을 해서 억울하게 파면을 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김재오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백성들에게 고리대금을 하다 짤린 것은 알만한 사실은 다 알고 있다.

박 초시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함을 당해 억울하게 파면당했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나쁜 짓을 좋게 봐준다면 내 편이라는 말이 된다.

어떤 대감인지 모르지만, 뒤를 봐주고 있는 대감일 것이다.

뒤를 봐 주는 대감 중에 가장 높은 벼슬은 호조 참판으로 있는 임경원이다.

임경원은 여러 대감들처럼 상인들을 동원해 방납업을 하고 있다.

방납이 뭔가?

백성들의 공물을 미리 내주고, 나중에 고리 이자를 붙여서 받는 업이다.

고리대금하고 사촌지간이다.

고리대금을 하는 임경원이 이자를 싸게 주라고 사람을 보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 누구지?

김재오는 평소 뒤를 봐주는 대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 본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뒤를 봐주는 대감들은 모두 고리대금하고 연관이 있거나, 고리대금 바닥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 연락을 해서 나한테 사람을 보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준호는 김재오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며 담뱃대 물뿌리를 뻑뻑 빠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공무원이 납품업자에게 혼자 돈을 받아먹다 걸리면 즉시 파면이다.

무엇보다 공직사회 시스템 자체가 혼자 돈을 받아먹게 되어있지 않다.

공무원들이 가장 쉽게 떡값을 받아먹을 수 있는 곳이 납품업체다.

어떤 직종에 근무하던, 납품업체와 연결이 되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환경과나 민방의과에 근무를 해도 관련 업종이 있기 마련이다.

납품업체 대표는 새로운 직원이 오면 일단 접대를 한다.

접대하는 자리에는 당연히 선배 직원이나 상사가 동행한다.

선배나 상사는 이미 납품업체로부터 각종 편의를 받은 경험이 있어서 전입 직원은 손바닥 안에 두고 있다.

명절 때나, 휴가 때가 되면 어느 정도 돈이 들어오는지도 꿰차고 있다.

혼자 독식할 수 없는 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연결이 된다.


현감이 고리대금을 하다 걸리면 파면에 그치지 않는다.

전 재산 몰수는 기본이고, 파면은 당연하다.

최소한 곤장 100대부터 시작해서 참형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법률적 해석이다.

현실은 벼슬아치나 양반들 사이에 고리대금이 큰 죄는 아니다.

나라에서 주는 녹봉이 적으니까 권력을 이용해서 암암리에 고리대금업자와 연결이 되어있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걸리면 처벌을 받지 않지만, 법에 걸리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일단 법에 걸리고 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김재오도 박 초시에게 돈 1백 냥을 받아먹은 홍경식 때문에 현감 자리에서 물러났다.

홍경식은 돈 1백 냥을 받아먹은 박 초시의 청탁을 들어 줬으니 김재오가 처벌을 받든 안 받든 상관이 없다.

현감 주제에 다이렉트로 왕족인 임경원과 연결은 안 되었을 것이다.

그사이 중개인 역할을 하는 대감들이 있었을 것이다.


구제기는 준호와 김재오를 번갈아 바라봤다.

현재 스코아로 볼 때 준호가 유리한 패를 쥐고 있다.


김재오는 준호가 감추고 있는 패가 허수라는 걸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준호가 너무 엄포를 놔서, 엄청나게 큰 패를 쥐고 있는 줄 알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돈을 빌려주겠네. 얼마나 필요한가?”


김재오가 마침내 준호가 쥐고 있는 패를 보여 달라는 투로 말했다.


“3천 냥이 필요합니다.”

“사, 삼천 냥?”


김재오는 3천 냥이라는 말에 공포가 밀려 왔다.

삼천 냥의 2부 이자면 6백 냥이다.

6백냥을 포기하고 150냥만 받으라고 협박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건방져 보이는 놈을 보낸 대감이 대단한 위치에 있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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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화.탄핵 사유서(2) 24.06.06 361 13 12쪽
16 4화.탄핵 사유서(1) +2 24.06.05 366 13 11쪽
15 3화 홍문관 교리(5) +2 24.06.04 348 13 11쪽
14 3화 홍문관 교리(4) 24.06.03 361 12 12쪽
13 3화 홍문관 교리(3) +4 24.06.02 379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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