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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백정 영의정 되기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한만수™
작품등록일 :
2024.05.20 21:29
최근연재일 :
2024.06.26 06: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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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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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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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한성에서 살아남기(2)

DUMMY

보은과 상주는 이웃이다.

상주는 예전에 경상도를 총괄하는 경상감영이 있던 지역으로 보은보다 훨씬 크다.

상주성 안은 통행금지 중일 것이다.

상주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문경으로 갔다.

문경으로 들어가니까 아침 해가 밝아 오고 있었다.

문경새재 앞에 있는 주막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점심때가 다 된 시간이다.

주막 앞에 있는 주(酒)자 깃발을 보인다.

어제저녁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돈주머니에는 벽사골을 떠날 때 가지고 온 2냥이 전부다.

백정의 신분을 벗어나려면 사람들이 많은 한성으로 가야 한다.

한성에는 벼슬아치들 중에 최고위층인 영의정부터, 최하위층인 창기, 무당과 박수, 떠돌이 장사꾼들까지 섞여서 산다.

머리만 잘 쓰면 충분히 백정의 신분을 감추고도 남을 곳이 한성이다.


한성까지 빨리 걸어도 보름이 걸린다.

달랑 2냥 갖고 한성까지 가려면 하루 한 끼만 사 먹고, 잠은 밤하늘을 이불 삼아야 한다.

주막을 그냥 지나치고 싶어도 허기가 져서 조령 고개를 넘어갈 수가 없다.


2냥은 몸이 아플 경우를 대비한 비상금으로 갖고 있기로 하고 무조건 주막 마당으로 들어섰다.

주모를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해 보거나, 숙박비를 대신할 수 있는 일을 해 줄 생각이다.


“어서 오이소. 한성 가시는 손님잉교?”


주막 정짓간 앞에서 칼을 갈고 있던 주모가 반갑게 일어섰다.


“손님?”


뭉치는 백정 일을 하면서 손님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뭉치라는 이름도 벽사골에서만 불리운다.

벽사골을 나가면, 야! 이놈아! 는 점잖은 말이다.

보통 물건을 지칭하듯. 이것아, 저것아, 개 같은 놈, 소 같은 놈이라고 부른다.

손님이라고 부르는 말에 누구를 부르는지 뒤돌아봤다.


“여기, 손님밖에 누가 또 있능교?”

“아, 그렇지···”


주모가 묻는 말에 뭉치는 뒤늦게 옷을 살폈다. 백정티를 안 내려고 벙거지를 쓰고 대충 옷을 갖춰 입었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길떠나는 길손 차림이다.


“고개를 넘어 갈라카모 사람들이 10명 이상 모일 때까지 주막에서 머물러야 합니더. 혼자 올라가시다 산적을 만나면 옷이며 돈이며 모두 뺏기는 것은 물론이고, 목숨도 위험합니더.”


주모가 숫돌에 갈던 정지칼을 들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칼날을 슬쩍 문지른다. 섬뜩한 감촉이 있어야 하는데 반들반들하다.


“어험! 요즘도 산적 떼가 기승을 부리는가?”


조선시대 때는 문경새재뿐만 아니라, 추풍령이며 가평 구둔령 등 고개가 험한 지역에는 산적들이 기승을 부렸다.

뭉치는 건성으로 물어보며 공짜 밥을 얻어먹을 방법이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봉놋방 앞에는 짚신이며 미투리 서너 켤레가 뒤엉켜 있다.

헛간 앞에 장작으로 만들어야 할 통나무가 가득 쌓여 있다.

장작을 모두 패주면 하루쯤은 먹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모, 조선에서 산적들이 제일 많은 데가, 여 고개 아잉교?”

“그런데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뭉치는 비록 지금은 백정이지만, 21세기에는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청와대 입성을 하루 앞둔 엘리트다.

조선시대 배운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밴 것처럼 자연스럽다.


“정지칼을 갈고 있는데 숫돌이 너무 닳아서 용쓰고 있습니더.”

“새 숫돌을 한 개 사지 그러나? 요즘 숫돌을 사려면 3냥은 줘야 할걸.”


뭉치의 머리에 반짝 불이 켜졌다.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주모 표정을 살폈다.


“숫돌을 사려면 돈도 돈이지만 문경이나 상주까지 나가야 합니더.”

“그렇다고 무딘 칼로 요리를 할 수는 없잖은가?”


잘만하면 공짜로 숙식을 해결할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맞는 말입니더. 무딘 칼이 사람 잡는다꼬, 손가락 좀 보이소.”


주모가 왼쪽 검지를 내민다.

손가락을 감은 헝겊 조각에 피가 베어 있다.


“내가 칼이 잘 갈리는 숫돌을 주면 무엇으로 보답을 하겠느냐?”


봉놋방에서 뭉치 또래의 선비 차중식이 밖으로 나왔다.

귀밑에 큰 점이 있는 차중식은 자신도 모르게 코를 벌름벌름하며 얼굴을 찡그린다.

어디선가 쇠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백정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뭉치를 바라보다 바지춤을 움켜쥐었다. 빠르게 측간 쪽으로 걸어갔다.


뭉치는 은근슬쩍 옷 냄새를 맡아봤다.

비린내가 난다.

컴컴한 밤에 정신없이 몸을 씻었어도 아직 냄새가 가시지 않은 것이다.


“크음!”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고 어깨를 바로 세우며 주모를 바라봤다.


“아이고! 나리가 숫돌을 구해 주신다카모. 몇 날을 묵더라도 돈을 안 받겠습니더.”


주모가 뭉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다시 숫돌 앞에 쪼그려 앉는다.

숫돌은 겉으로 보면 매끄러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샌드페이퍼처럼 거친 면이 있어야 칼이 잘 갈린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손바닥보다 얇고 유리처럼 반질반질하다.


“지금 한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냐?”

“숫돌 못 주면 나리가 저한테 뭐 주실랍니꺼?”


주모가 칼을 갈다 말고 콧방귀를 끼며 물었다.


“나는 숫돌을 갖고 있으니까 못 줄 이유가 없지.”

“그카면, 숫돌 보여 주이소. 우리 주막에서 한 달 동안 묵으셔도 돈 안받겠습니더.”

“알겠다.”


뭉치는 싱긋이 웃으며 주모가 칼을 갈던 숫돌을 집어 들었다,


숫돌은 칼이 잘들게 가는 도구다,

칼이 잘 들게 하려면, 칼을 숫돌에 갈아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을 바꾸지 못하면 발전이 없다.

숫돌 끝을 잡고 돌에다 툭 두들겼다.

숫돌이 워낙 얇아서 절반으로 툭 부러졌다.


“소, 손님! 내한테 숫돌을 주신다고 안하셨능교? 있는 숫돌마저 못 쓰게 만들면 우짜자는 건데요?”

“칼 좀 줘 보게.”


뭉치가 빙긋이 웃는 얼굴로 주모가 들고 있는 칼을 들고 돌 위에 비스듬하게 세웠다.

이어서 깨진 숫돌로 칼을 갈기 시작했다.

숫돌로 슥슥 문지를 때마다 시커먼 때가 벗겨지고 칼날이 점점 크게 드러났다.


“자, 잠깐만 칼 좀 봅시더.”


주모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뭉치가 숫돌로 갈던 칼날을 살폈다.

몇 번 갈지 않았는데 벌써 칼날이 서고 있다.


“어머나! 숫돌을 살 필요가 없겠네 예.”

“이게 숫돌 아닌가? 주모가 한번 칼을 갈아 보게.”

“참말로 희한하네예.”


주모는 뭉치처럼 칼을 세워서 숫돌로 칼날을 문질렀다.

숫돌이 칼날을 문지르는 소리가 부드러우면서 강하다.

숫돌을 눕혀 놓고 칼로 숫돌을 갈 때는 열 번 스무 번을 갈아야 한다.

숫돌로 칼을 가니까 두 번만 문질러도 갈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자, 이제 주모가 약속을 지킬 차례인가?”


이것으로 오늘밤은 밤하늘 덮고 자지 않아도 된다.

뭉치는 우선 점심부터 배부르게 먹을 생각을 하니까 군침이 돌았다.


“하모요, 약속을 지키고 말고요. 손님 덕분에 주막 문닫고 문경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네예. 얼른 상 차려 올리겠습니더.”


뭉치가 점잖게 하는 말에 주모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칼날을 바라보고 있다가 해죽해죽 웃었다.

***

주막에서 이틀째가 되는 날 10명의 손님들이 채워졌다.

주막의 봉놋방은 양반이고 중인이며 보부상들을 가리지 않고 섞여 잔다.

잠은 한 방에서 섞여 자지만 밤은 형편과 신분에 따라 따로 먹는다.

양반들은 냄새나는 방을 피해 마당 한가운데 있는 평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보부상들은 저희들끼리 둘러앉아 먹고, 뭉치만 혼자 먹었다.

양반은 물론이고, 떠돌이 보부상들까지 뭉치에게서 비린내가 난다는 것이다.


“자네, 백정 아닌가?”

“말을 삼가세요. 비록 양반 족보는 없지만 뼈대가 있는 집안 자식이오.”

“그럼, 왜 이렇게 동물을 도축한 비린내가 나지?”

“김천에서 상주까지 백정하고 동행을 했더니, 냄새가 붙었나?”


김천에서 한성에 가려면 상주를 경유해서 문경으로 와야 한다.

뭉치는 팔을 들어 옷소매 냄새를 맡았다. 냄새가 나지만 시치미를 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백정과 길동무를 하다니?”

“백정이니까 길동무를 했겠지.”


보부상들은 저희끼리 결정을 하고 뭉치를 멀리했다.

밥을 따로 먹는 것은 뭉치도 이해했다.

돈 주고 밥 사 먹으면서 고약한 냄새까지 맡게 하는 것은 양심에 걸렸다.

문제는 아침을 먹은 후에 일어났다.


“주막이라서 하는 수 없이 잠은 같은 방에서 잤지만, 백정하고 무리가 되어 길을 떠날 수는 없다.”


차중식이 거친 목소리로 뭉치를 내쳤다.


“나는 백정이 아니오. 참 ‘진’자에, 아침 ‘욱’자라는 버젓한 이름이 있는 평민입니다.”


뭉치가 환생하기 전의 이름을 대며 대들었다.


“이놈, 같이 가기 싫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감히 뉘 앞이라고 글자를 아는 척하느냐?”


차중식이 호통을 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지금은 조선시대다.

호통을 치는 선비 말에 뭉치는 찔끔한 얼굴로 물러섰다.


“나리, 고개에 산적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호랑이들도 있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텁수룩한 수염이 난 보상이 등짐을 지면서 뭉치를 두둔했다.


“허허! 내가 지금 한성에 놀러 가는 줄 아느냐?”

“무엇 때문에 가시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한성 놀러 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뭉치가 마음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내 뱉었다.


“인간 취급도 못 받는 백정 따위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어서 출발을 하세.”


점박이가 뭉치를 아예 백정으로 묶어 버렸다. 백정의 말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다.

과거를 보러 올라가는 신성한 몸이 아니라면 몰매를 놔도 백 번은 놓고 싶은 백정이다.

뭉치 말을 무시해 버리고 허리춤에서 담뱃대를 꺼내며 돌아섰다.


“나리, 문경새재를 가볍게 보시면 안됩니더. 웬만하면 델꼬 가이소.”


뭉치에게 신세를 진 주모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허어! 주모까지 백정 편을 드는 것이냐?”


차중식이 주먹을 흔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땅을 박차며 꾸짖었다.


“나리, 백정하고 같이 가면 안 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요?”


털보가 어디 이유나 들어보자는 얼굴로 차중식에게 따졌다.


“내가 지금 한성에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일세. 몇 년 전에 충청감영에서 본 초시에 합격해서 세 번째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백정이 끼면 부정이 탄다는 말일세.”


차중식이 담뱃불을 붙이다 말고 역정을 내며 보상을 노려봤다.


뭉치는 과거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과거는 일종의 공무원 시험이다.

정식으로 벼슬에 하려면 과거에 응시해서 합격해야 한다.

지방 감영에서 실시하는 가을 초시에 합격하면, 이듬해 봄 경복궁에서 복시를 본다.

과거를 봄가을에 보는 것은 여름에는 농사철이기 때문이다.

헌데, 초시 합격자가 복시 시험을 볼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다.


뭉치는 점박이가 세 번째 복시를 보러 간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기꾼인가?

점박이가 등에 지고 있는 개피를 슬쩍 살폈다. 보자기 형태의 개피는 양쪽에 길쭉하게 끈이 달려 있다.

양반들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등짐 보따리다.

헝겊으로 만든 개피에 각진 부분이 있다.

책 몇 권이 들어 있다는 증거로 봐서 사기꾼은 아닐 것이다.


“어메! 과거는 봄하고 가을에 안 있습니꺼? 여름에 먼 과거 시험을 보러 가시능교?”

“주모 따위가 뭘 하느냐? 알성시라는 말을 들어보기라도 했느냐?”

“알성시?”


털보가 제 동료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과거시험을 볼일 없는 보부상 몇몇이 괜히 엉뚱한 데를 바라본다.


뭉치는 알성시를 알고 있었다.

알성시는 왕이 즉위를 하거나, 왕비를 책봉했거나, 세자가 태어 난 날 등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왕이 직접 주관하는 특별과거다.

그래서 다른 과거처럼 여름이고 가을이고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낙방회수 제한이 없다.

예전에는 성균관 유생들과 3품 이하의 조사들에게 제술시험을 보게 해서 몇몇만 급제를 주었다.

지금은 특별하게 성균관 유생들만 국한한다는 조건이 없으면 전국의 모든 유생도 응시를 할 수 있다.


뭉치는 대학교 다닐 때 유림에서 주최하는 모의 과거에서 장원급제 한 경력이 있다.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사서오경은 물론이고 논어, 맹자, 소학 사서까지 배웠다.

모의 과거에 응시를 하면서 과거 절차는 물론, 시험 유형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장원급재를 한 후에 심사위원장으로부터 만약, 조선시대 태어났어도 장원감이라는 칭찬까지 들을 정도였다.


“쪼매 뒤따라 가이소. 저 양반 부정탄다카니까, 할 말이 없네 예.”


주모가 뭉치 옆으로 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주모의 친절이 고맙기는 하지만 뭉치는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과거를 본다는 것은 벼슬을 하겠다는 의지다.

벼슬을 하려면 자고로 백성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한 말이 있다.

군자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다 (君子以百姓為本)

논어를 모르면서 과거를 봤다가는 백전백패다.

놈은 이번에도 과거를 보고 귀향하는 발걸음이 천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거울 것이다.

***

문경새재는 경상도 사람들이 한성으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이다.

문경새재가 있는 산의 이름 경상도 쪽에서는 주흘산이라 부르고, 새재를 넘어 괴산군 쪽의 산은 조령산이다.

고개를 넘는 산세는 우뚝 솟았다는 뜻의 주흘산쪽 보다 조령산쪽이 험하다.

조령산(鳥嶺山)은 지명은 그대로 하늘을 나는 새도 산이 높에서 쉬어 간다는 뜻이다.

조선에서는 ‘천하제일험’ 이라고 불릴만큼 험난한 고개다.


뭉치는 차중식과 보부상 일행 한참 뒤에서 혼자 고개를 올라갔다.


고개를 올라가니까 산바람이 불어도 땀이 났다.

고개를 내려가면 계곡이 있을 것이다.

계곡에 들어가 차가운 물로 등목이라도 해야지, 이대로 갔다가는 비린내가 더 심하게 풍길 것 같았다.


고갯마루에서 한참을 내려가니까 소나무 숲 사이로 계곡이 보인다.

길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물이 많은 계곡일 것이다.

소나무 숲으로 난 숲길을 삼십보 가량 올라가니까 새재길이 보이지 않는다.

얼른 등목을 하고 일행을 뒤따라 갈 생각으로 계곡 앞으로 갔다.


뭐지?


계곡 옆 소나무 가지에 허연 것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귀신인가?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아 숨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봤다.

바람에 펄럭이는 것은 양반들이 입고 다니는 도포다.


누가 벌써 먼저 와서 목욕을 하나?


서둘러 도포가 걸려 있는 소나무 앞으로 갔다.

소나무 밑에는 속옷이며 바지, 저고리와 가죽으로 만든 미투리에 개피까지 있다.


옷과 개피 주인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들리는 것은 산새소리와 바람소리밖에 없다.


이게 뭐지?

솔잎이 깔려있는 땅바닥에 핏자국이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핏자국은 계곡으로 이어져 있다.


누군가 옷을 홀랑 벗고 목욕을 하다 호랑이에게 물려 간 것이 틀림없다.

쪼그려 앉아서 솔잎에 묻어 있는 피를 만져봤다.

손가락에 피가 묻지 않는 걸로 봐서 최소한 오늘 참변을 당한 것은 아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개피를 펼쳐 봤다. 몇 권의 책과 필통이며 먹물도 있다.

엽전 꾸러미가 들어 있는 돈주머니가 꽤 묵직하다.

붉은색 비단 보자기를 펼쳐 보니 전라감영에서 발급한 초시합격증이다.


초시 합격자 이름은 정진호

신기하게도 환생하기 전의 이름과 「진」자 항렬이 같다.

어쩌면 조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조상일지도 모르는 정진호는 점박이처럼 알성시를 보러 가는 길일 것이다.

더워서 땀을 식히려 계곡을 찾았다가 변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 이건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점박이가 나를 떨쳐 놓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 환생하여 현대의 고시와 같은 과거를 거쳐서 다시 관직에 오르라는 신의 계시일 것이다.

조선시대라고 장관이나 영의정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것은 현대에서 이루지 못한 장관이나 국무총리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라는 계시다.

개주검을 당한 아버지의 원수도 갚을 수가 있다.


뭉치는 갑자기 기운이 솟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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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4화.탄핵 사유서(4) 24.06.08 330 14 12쪽
18 4화.탄핵 사유서(3) 24.06.07 344 13 12쪽
17 4화.탄핵 사유서(2) 24.06.06 360 13 12쪽
16 4화.탄핵 사유서(1) +2 24.06.05 365 13 11쪽
15 3화 홍문관 교리(5) +2 24.06.04 346 13 11쪽
14 3화 홍문관 교리(4) 24.06.03 361 12 12쪽
13 3화 홍문관 교리(3) +4 24.06.02 378 14 12쪽
12 3화 홍문관 교리(2) 24.06.01 394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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