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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백정 영의정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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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작품등록일 :
2024.05.20 21:29
최근연재일 :
2024.06.26 06: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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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2
추천수 :
498
글자수 :
198,050

작성
24.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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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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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화 홍문관 교리(3)

DUMMY

출세를 위해서는 그까짓 자존심은 헌신짝처럼 버릴 수밖에 없다.


김윤식이 다시 어전에서의 예절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술도 서로 따라주고, 건배를 외치지 않아야 한다.

왕이 먼저 잔을 비우고 나면 두 손으로 정중하게 술잔을 들어 고개를 왕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 소리나지 않게 비워야 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왕이 질문을 하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대답을 해야 한다.

대답을 할 때는 반드시 관등성명을 먼저 댄다.

신은 수원사는 고길동이라 하옵니다.

왕이 칭찬을 해 주면 고개를 더욱 낮게 숙여야 한다.

황공하옵니다. 전하의 하애와 같은 은혜를 입어 급제의 영광을 얻어사옵니다.

모든 공은 왕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왕이 얼굴을 들라고 해도 번쩍 치켜들면 안 되고, 건너편에 있는 대감의 가슴께를 바라보면 된다.


“정형은 어디로 발령이 날 것 같은가?”


예행연습이 끝난 후다. 대감들이 입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하응백이 준호 옆으로 가서 속삭였다.


“아직 모르네. 내일 이조에 가봐야 알지. 하 형도 내일 발령이 날 것 아닌가?”

“난, 사헌부로 발령이 날 거 같네.”

“아니, 그걸 어찌 아는가?”


사헌부는 문무백관에 대한 감찰, 탄핵할 수 있는 관청이다. 감사원과 헌법재판소 역할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준호가 놀란 얼굴로 속삭였다.


“무얼 그렇게 놀라나? 정형은 궐내각사에 발령이 날 것 아닌가? 사헌부는 궐외각사인데···”


하응백은 겉으로는 준호를 위하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코웃음 쳤다.

사헌부는 비록 궐 밖에 있지만, 끗발이 있다.

벼슬아치들을 감찰하고, 비리가 밝혀지면 내쫓을 수 있는 권력이 있다.


“내 말은 벌써 발령이 났다는 말인가?”

“아닐세. 외삼촌이 사간원에 근무하고 계시지 않는가? 외삼촌이 미리 알아봐 주셨다네.”


하응백의 외삼촌은 사간원의 헌납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벼슬 품계로 보면 정 5품으로 준호와 같다. 다만 호봉 수가 다를 뿐이다.

하응백은 일부러 외삼촌 최주봉의 직책을 밝히지 않았다.


“잘됐네. 앞으로 자주 만나세.”


김윤식이 곧 대감나리들이 입장하실 것이라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급제자들은 신병훈련소의 신병들처럼 일제히 정자세를 취했다.

양손을 앞으로 모아 살짝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내시부소속 궁녀들이 술과 안주를 쟁반에 들고 와서 각각의 독상에 차려 놓기 시작했다.

영의정을 필두로 기라성같은 대감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전하 납시옵니다.”


내시부의 우두머리 차 상선이 정조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굳은 얼굴로 서 있는 급제자들과 다르게 웅성웅성하던 대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습관처럼 양손을 앞으로 포개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그대들은 장차 나라의 주역으로 백성들을 보살피게 될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대감들을 본보기로 삼고, 민생 구제에 매진하도록 하라.”

“전하의 성은에 보답고저, 소신들이 백골이 낭만하도록 어명에 따르겠습니다.”


급제자들이 미리 연습한 데로 일제히 정조가 한 말에 보답을 했다.


“경들도 어서 앉아서 알성시에 급제한 유생들에게 축하주를 권하시오.”

“황공하옵니다.”


정조의 말이 떨어지자 비로소 대감들은 자리에 앉았다.


“급제자들도 앉으시게.”


김윤식이 작은 목소리로 급제자들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장원급제를 한 정준호에게 술 한잔을 내리도록 하거라.”


정조가 술잔을 가볍게 비우고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준호는 전하가 내리시는 어주를 받도록 하거라.”


최 상선이 준호 앞자리로 가서 술병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설마, 나한테도 어주를 하사하시겠지.


하응백은 준호가 어주를 받는 모습을 곁눈질로 지켜봤다.

벼슬로 성공하는 것을 떠나서 왕이 내리신 어주를 받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장원급제를 한 정준호는 초심을 잃지 않고 관직에 임하도록 하거라.”


정조는 사석이었다면 너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 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석이다.

왕이 정 5품의 정준호에게 기대를 건다는 것은 대감들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

점잖게 한마디 하고 일어섰다.

***

진호는 사령장을 받으러 이조가 있는 육조거리로 들어섰다.

과거 시험을 보기 전에 이런저런 일로 몇 번 와 봤다.

지금은 관복을 입은 차림으로 사령장을 받으로 가는 길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이조 청사 앞에는 관졸 두 명이 번을 하고 있었다.


“나리 오십니까?”

“그래, 수고가 많구나.”


진호는 처음으로 관졸에게 인사를 받는 기분이 묘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그머니 긴장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알성시 장원 급제한 정진호라고 합니다. 사령장 받으러 왔습니다.”


김윤식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진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대감 나리가 기다리고 계시네. 우선 차나 한잔하고 가자구.”


김윤식이 의자를 권하면서 직원에게 시원한 오지마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고향에서 영친의는 잘 치렀는가?”

“예, 제가 원래 떠들썩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조용하게 치렀습니다.”


진호는 민망하게 웃는 얼굴로 공손하게 대답했다.

영친의(栄親儀)는 과거에 급제를 하고 고향에 내려가면 현감이 주최를 하는 환영회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면서 집에까지 가는 길에 유가(遊街)를 했다.

동네 사람들을 동원해서 꽹과리를 치고 장구를 치면서 흥겹게 마을 한 바퀴를 도는 잔치 비용은 관아에서 부담을 한다.


“장원급제를 했으니까 현감도 대단히 자랑스러워 했을 걸세.”

“사실 영친의와 유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동네에 나이 드신 노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진호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계속 다른 구멍으로 끼우게 된다.

영친의를 했다고 하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된다.

결국, 꼬투리가 잡히게 되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허어! 이렇게 기특할 수가? 나이도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공자의 예를 통달했네 그려.”

“아닙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어디로 발령이 났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진호는 유가 얘기를 일방적으로 끊어 버리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어디로 발령을 받았는지 궁금하겠지. 나도 첫 발령을 받기 며칠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네.”


사령이 얼음을 동동 띄운 오미자차를 가져왔다.

김윤식이 먼저 찻잔을 들면서 빙긋이 웃었다.


“저도 그랬습니다. 두렵기도 하구요.”

“모두 비슷한 기분일 걸세. 발령이 나면 어쩐 자세로 일을 하겠는가?”

“그저 소임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겸손하기로 치자면 명종 대왕 시절 이황 대감 나리를 닮았군. 역대 대감들 중에 이황 대감만큼 겸손하고 헌신적인 대감나리는 안 계시지.”

“저는 그저 관리들이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몸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좌랑 나리도 이황 대감나리를 존경하십니까?”


이황은 성리학의 대가다.

진호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성리학의 원리를 알았다.

성리학은 말 그대로 성품을 다스리는 학문이다.

자신의 성품을 다스릴 줄 안다면 우주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도 성리학을 믿지만, 대감나리도 성리학 쪽에는 일가견이 있다네. 자네를 홍문관의 교리로 발령을 내셨네.”

“황송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감히 홍문관 교리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진호는 정조가 이조판서에게 궐내각사로 발령을 내라고 할 때 승정원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홍문관은 비서 역할을 하는 승정원과 다르게 왕의 자문기관이다.

왕을 기준으로 본다면 승정원은 왕 아래쪽이고, 홍문관은 왕의 머리 위쪽이다.


“이황 대감나리, 송준길, 류성룡, 이이 대감도 홍문관 출신이지. 한마디로 출세가 보장된 자리라고 볼 수 있지.”

“나리가 힘써 주신 공으로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인사위원회는 영의정을 중심으로 좌의정, 우의정, 이조판서가 연다.

인사 담당 김윤식의 입김이 작용할 리가 없다.

더구나 공직사회에서는 초임부터 너무 쌔게 나가면 말년이 안 좋다.

어린 것이 일찍 출세를 하면 시기하는 관료들이 느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조나 호조, 공조 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다.

하지만 궐내 각사에 자리를 주라는 것은 어명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도 진호는 벌떡 일어나서 김윤식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공직사회의 기본은 선배 직원부터 챙겨야 발을 넓혀 갈 수가 있다.


“허허! 이 사람아! 내가 자네보다 나이가 많고, 관리 경험이 많을 뿐이지. 자네한테 인사를 받을 처지는 아니네.”

“아닙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고, 하루살이도 아침에 출생한 것하고, 점심때 출생한 것과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좌랑 나리는 이조의 핵심 업무라 할 수 있는 인사를 담당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진호의 말을 단맛으로 치자면 천연꿀 맛이다. 진호의 말을 듣는 김윤식이 같은 정5품 관직으로 민망스러울 정도로 비행기를 태웠다.


“나는 대과 출신이고, 자네는 장원급제 출신 아닌가? 난, 자네가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네.”


김윤식은 의자에 앉아 있기가 민망해서 일어났다.

이조판서 이진생이 목이 빠지도록 기다릴 것이라며 일어섰다.

김윤식은 슬슬 가 보자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판서 나리 좌랑 김윤식, 알성급제한 정진호를 데리고 왔습니다.”

“들라 해라.”


김윤식이 문 앞에서 정중하게 보고를 하는 말에, 이내 이진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호는 행정고시에 패스하고 장관 사무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조선시대에 이조판서 사무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판서 대감 나리를 뵙고 가는 길에 나한테 들리게.”


김윤식은 진호에게 빠르게 속삭이고 이내 돌아섰다.


“그래, 고향에는 잘 다녀 왔느냐?”


이진생은 진호를 사위 반기듯 반기는 목소리로 맞이했다.


“대감나리, 고향에서 유가를 행하지 않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 인사만 하고 왔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진호에게 칭찬을 과분하게 들은 김윤식이 먼저 봄바람처럼 살랑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허! 보기 드문 인재를 이제야 만나다니···”


성리학을 믿는 이진생은 장원급제를 한 진호가 낮은 자세로 고향방문 했다는 말에 진실로 감동을 받았다.


“부끄럽습니다. 저는, 그저 도리를 다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는 목민관이 가져야 할 기본을 알고 있는 사람일세. 목민관은 자고로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며 살아야 근본이 다져지는 법이지.”

“대감나리 말씀 새겨듣고 앞으로 평생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벼슬아치가 몰락하지 않는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하늘에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 왜 그런지 아느냐?”

“위로 올라갈수록 백성들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정치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호가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제일 먼저 느낀 점은 과장급만 돼도 민생은 찬밥이다.

승진과 관련된 업무만 골라서 배팅을 하는 과장들이 흔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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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67 무중생유12
    작성일
    24.06.02 06:13
    No. 1

    하응백 설정이 왜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네요. 하응백이 원래 잠자리 제공래주니 장원급제 하게 해주다던 패물까지 기어코 넘긴 염치를 아는 사람 설정 아니었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한만수™
    작성일
    24.06.02 15:33
    No. 2

    감사 합니다. 관심 가져 주시어서 ~~시장에서 산 패옥을 집안의 가보라고 거짓말을 한 선비 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우룡(牛龍)
    작성일
    24.06.06 02:50
    No. 3

    그걸 왜 댓글로 알려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한만수™
    작성일
    24.06.06 21:32
    No. 4

    제가 이 바닥 생리를 잘 모르거든요. 지금 3번 째 쓰고 있는데 여전히 헤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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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4화.탄핵 사유서(4) 24.06.08 331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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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화.탄핵 사유서(2) 24.06.06 360 13 12쪽
16 4화.탄핵 사유서(1) +2 24.06.05 366 13 11쪽
15 3화 홍문관 교리(5) +2 24.06.04 347 13 11쪽
14 3화 홍문관 교리(4) 24.06.03 361 12 12쪽
» 3화 홍문관 교리(3) +4 24.06.02 379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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