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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백정 영의정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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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작품등록일 :
2024.05.2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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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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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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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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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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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탄핵 사유서(4)

DUMMY

팽나무는 홀로 잘 자라는 특성이 있다. 스스로 나무의 체형을 아름듭게 만들어 빛이 난다. 그래서 양반집 앞에는 팽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다.


“예, 팽나무 앞에 있는 집이, 박초시라는 양반이 사는 집여유. 박 초시 나리께 물어보면 혀감나리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어요.”

“그래?”

“당연하쥬. 박 초시 나리가 현감 나리 때문에 쫄딱한 집이니까.”


주모가 준호만 알고 있으라는 얼굴로 속삭이며 안됐다는 표정을 짓는다.


“소주 한 되만 주게.”

“술 더 드시게?”

“박 초시하고 한잔 하려고 그러네.”

“제, 제가 소개했다는 말씀을 하시면 아···안됩니다.”


주모는 다시 준호와 구제기의 신분이 의심스러웠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는 생각에 정색을 한 얼굴로 말했다.

***

60대의 박 초시 집은 싸리나무 울타리를 했다.

빈곤을 자랑하려고 작정을 했는지, 오래 된 싸리나무 삽작문은 비스듬하게 누워 있다.


명색이 양반집 사랑방인데 방바닥에 돗자리가 깔려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찌그러진 갓하며, 설랑에 걸려 있는 누렇게 변한 도포가 박 초시의 살림살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리 주게.”


박 초시의 늙은 하녀가 개다리소반에 술상을 차려서 들고 왔다.

아랫목에 앉아 있던 박 초시가 얼른 일어나서 술상을 받았다.


“아무리 누옥이지만 집에 오신 손님한테 술을 얻어 마시려고 하니까···”

“아닙니다. 저도 살림이 변변치 않습니다.”


진호가 술상을 받아서 방바닥에 내려놨다.

소주는 주막에서 사 온 것이다. 안주라고 쉰 김치에, 마른 멸치가 담긴 접시에 된장뿐이다.

너무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이라, 나갈 때 10냥 정도라도 안겨주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러니까, 현감이 시흥현감으로 있을 때 공물을 방납해 주는 일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박 초시는 나이가 들어서 초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다. 과거 초시에 합격한 양반이다.

진호가 볼 때 공무원 선배나 다름 없다. 공손하게 소주를 따라주면서 물었다.


“예, 김재오 현감이라는 놈이 백성을 옳은 길로 다스려서 잘 살게 할 생각은 안하고, 아주 고혈을 쥐어짰습니다.”


박 초시는 소주를 단숨에 마셨다. 속이 찌르르 하는 감촉이 진저리를 치고 멸치를 된장에 찍었다.


“아니, 방납료를 얼마나 받았기에 살림이 이 지경이 됐습니까?”


구제기가 준호의 잔에 소주를 따르면서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5년 전 가을에 태풍이 와서 농사가 파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감을 찾아가 방납료를 한 해만 미뤄 달라고 했더니, 차용증서를 쓰라는 겁니다.”


박초시가 말하는 현감의 공물을 대답하고 이자를 받는 방법은 고리대금업자들이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방납은 백성들이 내야 할 공물을 대납해서 납부하고, 이자를 붙여서 받는 방법을 말한다.

방납업자들은 방납을 해 주는 농가에서 낼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이자를 요구한다.

농가에서 방납금과 이자를 내지 못하면 친절하게 한 해 연기를 해 주면서 연체이자를 붙인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이자 부담에 제때 정산을 하지 못한 농가다.

방납료를 내지 못하면 논이라도 팔라는 업자의 말에 울며겨자 먹기로 연장을 한다.

한 해만 연장하면 방납금과 이자는 연체를 포함 세 배 이상으로 늘어서 도저히 갚을 수가 없다.

2년 차에도 돈을 갚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논이 방납업자 명의로 넘어간다.


“아니, 초시께서는 태풍으로 농사가 파농하면 공물을 면제해 주는 것은 법을 모르셨습니까?”

“공물은 면재가 되지만, 방납금은 개인 것이기 때문에 면제가 안된다는 겁니다.”


준호가 묻는 말에 박 초시가 스스로 술잔을 채우며 대답했다.


“아니, 이건 현감이 아니고 고리대금업자도, 아주 악질 고리대금업자 아닙니까?”

“초시께서는 글을 모르시는 분도 아니신데, 그냥 맥없이 당하기만 하셨단 말씀이십니까?”


구제기는 자기 일처럼 흥분했지만 진호는 흥분하지 않았다. 차문한 목소리로 물으며 술잔을 들었다.


“경기감영에 솟장을 올렸습니다. 피해를 본 몇 사람 이름을 연대해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한밤중에 이방이 관졸들을 데리고 와서···”


박초시는 지금 생각해 봐도 분통이 터질 것 같아서 부들부들 떨며 술잔을 비웠다.


“이방이라는 놈이 경기 감영에 현감을 모함하는 솟장을 올렸다는 겁니다. 한밤중에 끌려가서 동헌 마당에서 죽을 정도로 볼기를 맞았습니다···”


박 초시는 동헌에서 죽을 정도로 볼기만 맞은 것이 아니다.

현감의 협박에 못 이겨 백성의 어버이인 착한 현감을 모함했다는 솟장을 다시 썼다는 것이다.


“네 이놈, 현감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탐관오리라는 누명을 쓴 죄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현감은 솟장을 쓰라고 협박할 때만 해도, 반성의 솟장을 쓰면 용서를 해 주겠다고 했다. 솟장을 쓰고 나니까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네 놈 때문에 위에서 날 안 좋게 보고 있다. 허니, 네 놈이 그걸 보상해야 한다.”


현감이 모함을 해서, 승진 길이 막혔으니 보상을 해달라고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보상액을 결정해서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풀려 났다.


“사헌부에 고소하시오. 그럼 관찰사가 살기 위해서 현감을 파면하지 않겠소.”


시흥현에서 혼자 걸을 수 없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등에 업혀 왔다.

상황을 전해 들은 아내가, 절대도 보상을 해 줄 수 없다며 통곡을 했다.

이러다 아내까지 병들어 죽을 것 같아 다시 솟장을 썼다.

경기감영 관찰사에게 악덕 현감을 고소했더니, 한 밤중에 이방하고 관졸들에게 뜰려가 고초를 당했다는 내용을 썼다.

볼기를 맞은 엉덩이가 채 낫기도 전에 가마꾼들을 사서 직접 사헌부에 찾아가서 고소를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사헌부 감찰이라는 작자가 돈 1백냥을 내면 현감을 파면시킬 수 있다며 요구했다.

1백 냥은 감당 할 수 없을 정도의 큰돈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현감에게 빼앗기는 것 보다 억울한 한을 푸는 것이 낳을 것 같았다.

논을 판 100냥을 사헌부 감찰에게 갖다 줬더니, 현감이 파면당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헌부 누구에게 돈을 줬습니까?”


사헌부의 감찰이면 정 6품이다. 당연한 업무를 처리해 주면서 피해자에게 100냥을 요구했다.

준호는 하응백 얼굴이 떠 올랐다.

정 6품이면 하응백 상관일 수도 있다.

가장 청렴해야 할 사헌부 감찰이 쌀 120섬 돈을 요구했다.

현감에게 당한 것이 너무 분한 박 초시는 논을 팔아서 그 돈을 줬다.

하응백에게 이 사실을 말해줘야 말하야 하나, 고민이 됐다.


“홍경식이라는 감찰입니다.”


준호가 구제기에게 이름을 기억해 두라는 눈짓을 보냈다.


“관찰사는 어찌 됐습니까?”

“관찰사도 처벌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경기감영을 떠났다는 말을 드었습니다.”

“혹시, 그 당시 경기감영 관찰사 이름을 압니까?”

“그런데, 정말 현감 나리한테 피해를 입은 분들이 맞는 겁니까?”


박 초시는 오랜만에 독한 소주를 연거푸 몇 잔 마시니까 팽 돌았다. 그래도 자꾸 술이 땡겼다. 스스로 술을 따르다 말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


“우리도 피해자니까, 현감에게 빼앗긴 재산을 찾아 줄 사람들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경기 관찰사로 있던 사람이 왕족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왕족?”


왕족이라는 말에 진호와 구제기가 서로를 바라봤다.

왕족이라면 탄원사유 조사 대상인 임경원도 포함된다.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납니까?”

“제 기억이 틀림없다면 임경원이라는 왕족 일 것입니다.”


박 초시 입에서 ‘임경원’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준호와 구제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경원은 상인들을 앞세워 방납을 하고, 고리의 이자를 거뒀다.

현감하고 어떤 고리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일단 현감을 만나봐야 겠군. 먼저 나가 있게.”


준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구제기를 먼저 내 보냈다.


“벌써 가시렵니까?”


박 초시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방문을 닫았다.

문경세재 주막 앞에 도착했을 때 장작이라도 패 주고 끼니를 해결하려고 했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저녁에 부인하고 고깃국이라도 끓여 드세요.”

“아, 아니. 이. 이게 왠 돈 입니까?”


준호가 내미는 10냥을 받아 쥔 박 초시가 놀라서 소리치는 말에 안방문이 덜컥 열렸다.

남루한 옷을 입은 박 초시 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대청으로 뛰어 나왔다.


사랑방 문이 열리면서 상인처럼 생긴 젊은 이가 나온다.

그 뒤를 박 초시가 맨발로 따라 나오며 감격의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다.

***


박 초시 집에서 나온 준호는 현감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탁주와 소주를 짬뽕해서 마셨더니 얼굴이 붉으스름 하다.

김재오가 아무리 탐관오리 출신 현감이라고 하지만 초면이다.

초면에 술 취한 얼굴로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중에 흠이 될 수가 있다.

오늘은 홍문관으로 들어가서 박 초시를 만나 얻은 정보를 보고를 하리라 생각했다.


“내일 오후에 김재오 집에 가 보는 걸로 하세.”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송구스럽지만 홍문관에서 일을 하려면 모든 관리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호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막쪽으로 향하는 것을 본 구제기가 입을 열었다.


“나도 들었네. 홍문관, 사간원, 사언부 삼 사에 관리들은 탁주를 한 잔만 마셔도 한 말을 마셨다는 소문이 돈다고 하드만.”

“사헌부에서 일했다던 홍경식 같은 작자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홍경식은 지금 쯤 정 5품으로 승진을 했을 것이다.

정 7품의 구제기가 동네 개 부르는 표정으로 홍경식을 거론했다.


“그런 자가 지방 현감으로 나가면 김재오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짜겠지. 지금도 사헌부에 근무하고 있을까?”

“원래 사헌부나 홍문관은 다른 중앙부서 보다 승진이 빠를 겁니다. 5년 전 일이라면 지금쯤 승진을 해서 다른 곳에 근무를 할 것입니다.”

“돈을 뜯어 낼 생각이면 현감으로 자원했겠지.”


정 6품 이상은 900일 이상, 7품 이하는 450일 근무를 하면 전보를 하거나 승진을 한다. 전보는 승진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부서나 지방 관아로 발령이 나는 것을 말한다.

사헌부 같은 경우는 무조건 승진이 되면서 전보를 한다.


“제가 사헌부에 들려서 알아 보고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구제기가 육조 거리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사헌부는 육조거리 병조와 예조 사이에 있다.

***

준호는 일단 박 초시를 만난 결과를 보고 할 생각으로 간략하게 김재오의 탈법행위에 대하여 기록하기 시작했다.


“교리 나리, 응교 나리께서 오시라는 분부가 있었사옵니다.”


서리가 준호 책상 앞으로 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준호는 그렇지 않아도 박 초시를 만났던 일을 보고 할 생각이었다.


“참, 임경원 호조참판 탄핵 건 말일세.”


서리가 하는 말을 엿들은 조창인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얼굴로 준호를 바라봤다.


“예, 지금 조사 중입니다.”

“그거, 없었던 일로 하시라는 분부가 내려 왔다네.”

“그럴리가요?”

“정 교리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이해가 안 될 걸세. 하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네.”


조창인은 구언교서 쓰는 일 좀 도와주면 안되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서리가 보는 앞이라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목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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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화.탄핵 사유서(2) 24.06.06 360 13 12쪽
16 4화.탄핵 사유서(1) +2 24.06.05 365 13 11쪽
15 3화 홍문관 교리(5) +2 24.06.04 346 13 11쪽
14 3화 홍문관 교리(4) 24.06.03 361 12 12쪽
13 3화 홍문관 교리(3) +4 24.06.02 378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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