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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백정 영의정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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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작품등록일 :
2024.05.20 21:29
최근연재일 :
2024.06.26 06: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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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8
추천수 :
498
글자수 :
198,050

작성
24.06.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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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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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1쪽

5화 한성 양반들(2)

DUMMY

벽사골에 있는 집들은 모두 울타리가 있다.

도둑을 맞을 것이 염려돼서 울타리를 세워 둔 것이 아니다.

산중이라서 산짐승들이 밤에 내려오는 수가 있다.

보은 고을에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겨우 마당을 가릴 정도다.

벽사골 울타리는 가시가 있는 망개나무를 겹겹이 세워놔서 산짐승들이 못 들어 온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먼 산에서 부엉이가 부엉! 부엉! 우는 소리가 아련하게 달렸다.


사립문을 밀어 봤다.

예상대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열리지는 않는다.

캄캄하게 불이 꺼져 있는 방문을 바라보다 땅바닥을 더듬었다.

작은 돌멩이를 들어서 방문 쪽으로 던졌다.


“툭!”


돌멩이가 문틀에 맞았는지 작은 소리가 밤의 정적을 얇게 깨트린다.

문은 열리지 않고 때출이 코 고는 소리가 갑자기 마당으로 흘러나온다.


“누구요?”


준호가 몇 번이나 돌멩이를 던졌을 때야 방안의 등잔불이 켜졌다.

이내 방문이 열리며 등불의 불빛을 등으로 받는 때출이 모습을 드러낸다.


“때출이 삼촌, 나 뭉치.”

“무, 뭉치라니?”

“벽사골을 떠났던 뭉치라구.”


준호는 예전의 뭉치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니, 니가 이 밤중에···”


때출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방안에서 뛰어나왔다.


마당이 쿵쿵 울리는 소리를 내며 뛰어와 사립문 앞에서 멈춘다.


“삽짝문 좀 열어 봐.”


때출이에게서 쇠비린내가 훅 풍긴다. 준호는 냄새가 싫지가 않았다.

비로소 고향에 온 느낌이 들어 숨죽인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내, 내 정신 좀 보라지.”


때출이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서둘러 사립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봐도 뭉치하고는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이다.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어둠 속으로 보이는 얼굴의 형태는 분명 뭉치다.

비린내가 풍기지 않아서 다른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해? 오랜만에 온 조카를 여기 세워 둘거야?”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때출이 서둘러 준호의 등을 빌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등잔불 밑으로 누더기 같은 이불이 한눈에 들어온다.

때출은 등잔불에 비치는 준호를 보고 흠칫 놀라며 뒷걸음쳤다.

얼굴은 뭉치가 맞다.

하지만 옷은 양반들이 입는 옷을 입었다. 게다가 얼굴이 땟국물이 묻어 있지도 않다.

잘사는 집안의 자식처럼 희멀건 얼굴 피부 하며,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무, 뭉치가 진짜 마, 맞는 겁니까?”


때출은 얼굴은 뭉치가 맞는데, 양반 차림을 하고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존칭을 했다,


“삼촌, 나 뭉치가 맞아. 그러니까 좀 앉아 봐.”

“어, 얼굴은 뭉치가 맞는데, 웬 나리가 이 방에···”


때출은 꿈을 꾸는 기분이다. 자신도 모르게 게처럼 기어서 구석으로 뒷걸음치며 더듬거렸다,


“사실은, 아버지는 백정이 아니셨어.”


준호가 때출의 손을 등잔불 앞으로 잡아당겼다. 일어나서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 버리고 때출의 앞에 앉았다.


“벼, 병삼이 형님이 배, 백정이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을···”

“아버지는 원래 대감집 아들인데, 역적으로 몰려서 여기로 숨어드셨어.”


준호가 때출이를 설득할 시나리오대로 속삭였다.


“벼, 병삼이 형님이 대, 대감집 아들이었다고?”


때출은 더 혼란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뭉치의 아버지 병삼은 백정이다.

다른 백정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크고 단단한 덩치답게 곧장 옳은 소리를 많이 하는 성격이다.

옳은 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관졸들에게 몰매를 맞아서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적으로 몰려서 벽사골에 숨어 사신 거야. 그래서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한테 글을 배웠어.”

“그, 그럼 네가 그, 글을 안단 말이냐?”

“한성으로 올라가서 과거에 급제해서, 지금은 벼슬을 하고 있거든.”

“그, 그럴 리가 없어!”


때출이 자기 얼굴을 힘껏 꼬집어 비틀었다. 눈물이 핑 돈다.

준호를 바라봤다.

내가 잠이 덜 깼나?

등잔불을 들어 준호 얼굴을 비춰본다.

분명 준호가 맞다. 이번에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악!

비명이 튀어나올 정도로 뺨이 얼얼하다. 분명 꿈은 아니다.

병삼이 형님이 대감집 아들?

뭉치가 과거에 급제를 했어?

백정은 과거를 보기는커녕, 글을 읽고 쓴다는 것만으로도 관가에 끌려가 초주검이 될 수 있다.

과거에 급제한 것이 진짜라면 병삼이 형님이 대감의 아들이라는 말이 맞다.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

꼭 감은 눈 속에 불빛이 반딧불처럼 반짝반짝거리는 것 같다.


“물 줄까?”


때출은 지금 공황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머리맡에 자리끼로 떠다 놓은 물 대접을 들고 때출 옆으로 갔다.

덩치가 황소만 해서 간신히 어깨를 껴안고 물을 먹였다.


“어! 푸푸루!”


준호가 억지로 먹인 물을 삼키지 못해 뱉어 버린 때출이 콧물 눈물이 섞인 재채기를 했다.

콧물과 눈물을 닦고 준호를 다시 바라봤다.


“그, 그러니까 병삼이 형님 부친이 원래 대감 나리셨는데···”

“그렇지. 역적으로 몰려 목숨을 구하시려고 벽사골로 숨어들어 백정으로 사신 거야.”


거짓말을 너무 완벽하게 하면, 거짓말을 한 사람도 진실로 받아들인다.

준호는 진짜로 아버지가 대감의 아들이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하나만 물어보자. 그러니까 네가 지금 벼슬을 하고 있다고? 보은 현감 서양춘처럼 그런 벼슬을?”

“여기서 다 말해 줄 수 없어. 그러니까 우선 옷을 갈아입어.”

“이, 이 밤중에 어디를 가는데 옷을 갈아입어?”

“나하고 한성에 올라가자.”

“하, 한성?”


때출은 한성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막연히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한성이 나온다고 믿는 정도다.

또, 한성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임금님이 사는 궁궐이 있다는 것 정도밖에 모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다. 한밤중에 불쑥 찾아와서 한성에 가자니?

도깨비가 사람으로 변신을 했나?

자신도 모르게 준호 얼굴을 쓰다듬었다. 도깨비가 아닌 분명 사람이다.


“아, 그냥 새 옷을 입으면 냄새가 나니까, 우선 냇가로 가자. 냇가에 가서 몸을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자.”


때출의 방에는 옷을 담아두는 상자가 없다.

벽에 걸려 있는 설랑에 빨래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다.

준호가 일어서서 때출이 명절 때나 입는 새옷을 챙겼다.


때출은 등잔 불빛에 그림자를 눕히고 있는 준호를 다시 바라봤다.

예전의 뭉치가 아니다. 서 있는 자세하며 당당한 말투가 벼슬아치처럼 보인다.


“배, 백정한테 백정 냄새가 나는 거는 당연한 거 아, 아닙니까?”


때출은 조금씩 현실 감각이 살아났다.

병삼이 대감의 아들이었다면, 뭉치도 대감의 손자다.

백정들은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높은 신분이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삼촌, 우리 둘이 있을 때는 그냥 뭉치라고 불러.”

“그, 그래도, 그. 그러면 아, 안되지 않을까요?”

“시간 없어, 냇가에 가서 우선 칡잎을 따자, 칡 잎으로 몸을 씻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아.”

“지, 진짜 한성으로 가, 가는 겁니까?”

“시간 없어. 어서 가자구.”


준호는 마음이 급했다. 밤을 걸어서 내일 아침에는 옥천에 도착해야 한다.

***

보은과 옥천은 경계다.

옥천 초입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새벽이 밝지 않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이 반짝 켜진다.

주막의 주모가 새벽밥을 지으려고 정짓간의 붉을 밝힌 것이다.


“삼촌, 주막에서 날 새기를 기다리자.”

“우리 같은 백정이 감히 무슨 주막이냐? 헛간을 빌려줘도 감사할 따름이지···”

“삼촌이 백정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벽사골 동네 사람들밖에 없다고 했잖아.”

“맞다.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또 잊어버렸다. 이, 이름은 뭐라고 했지?”


때출은 보은에서 걸어오면서 준호에게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들었었다.

막상 상황이 펼쳐지니까 자신도 모르게 백정 습성이 나왔다.


“정태규, 보은 사람 정태규라고 소개하면 돼. 내 이름은 뭐라고 했지?”

“주, 준호, 홍문관 교리 나리.”


때출은 준호의 신상은 정확하게 기억이 났다.

홍문관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는 관청인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보은 현감하고 같은 품계지만, 궁궐에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백정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벼슬을 하고 있으니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나하고 어떻게 만났지?”

“보은 친척집 청지기를 하는 중에 만났지.”


때출은 너무 꿈같아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정태규! 라고 마음속으로 불렀다.

준호는 한성에 올라가면 백정이 아니라 정태규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은 백정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홍문관 교리 정진호 집의 청지기로 살게 될 것이다.


“어디서 오시는 중이셔유?”


주모가 새벽을 밟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준호와 때출 앞에 쪼르르 달려나왔다.


“어디에서 오는 중이 아니라, 옥천으로 가는 길일세. 간단하게 요기 좀 하고 쉬었다 갈 수 있겠나?”

“아, 당연하쥬, 얼른 술국 끓여 탁주 한 되 드릴까유?”


때출은 너무 당당한 준호의 언변이며 행동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주모가 설설 길 정도로 준호의 모습에서 백정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봉놋방에는 양반이고, 보부상이며, 천민들도 섞여서 잔다.

주막에는 봉놋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양반, 천민 가릴 처지가 아닌 까닭이다.

얼큰하게 해장술을 마신 때출은 진호를 따라 봉놋방으로 들어갔다.

아랫목에는 양반으로 보이는 중년 두 명이, 문 앞과 윗목에는 보부상 3명이 자고 있다.

때출은 준호가 자리를 잡아 준 곳에 누웠다.

밤을 밟으며 50리 길을 걸어왔다.

해장술에 얼큰하게 취기까지 도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감히! 백정 놈이 봉놋방에서 잠을 자려 하다니?

누군가 옆구리를 내질러 버리며 고함을 지를 것 같아서 눈이 말똥말똥하다.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자기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다.


아침상은 양반이고 중인이나 보부상 가릴 것 없이 겸상을 했다.

준호는 때출과 상을 받았다.

아랫목에 앉은 양반들은 보부상들처럼 해장국을 먹고 있다.


준호는 해장국보다 비싼 고깃국을 주문했었다.

양반 두 명이 진호와 때출의 밥상을 바라봤다. 고기가 둥둥 떠 있는 소고기뭇국이다.

양반 한 명이 해장국을 숟가락으로 떠봤다.

빨갛게 양념이 된 국물에 기름기가 떠 있기는 하다.

소뼈를 밥 새 고와서 우거지를 넣고 끓인 것이다.


“밥맛 떨어지네.”


뚱뚱한 양반이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가 선비나 과거에 합격한 초시처럼 보인다.

겸상을 하고 있는 덩치는 새옷이 어울리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청지기나, 마당쇠 냄새가 난다. 그런데도 주인과 겸상으로 소고기뭇국을 먹고 있다.


“지금, 우리를 보고 한 말이신가?”


진호가 국물을 떠먹고 빙긋이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 양반을 바라봤다.

때출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양반들에게 평어를 쓰는 준호를 놀랜 눈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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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5화 한성 양반들(1) 24.06.10 32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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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4화.탄핵 사유서(4) 24.06.08 330 14 12쪽
18 4화.탄핵 사유서(3) 24.06.07 343 13 12쪽
17 4화.탄핵 사유서(2) 24.06.06 360 13 12쪽
16 4화.탄핵 사유서(1) +2 24.06.05 365 13 11쪽
15 3화 홍문관 교리(5) +2 24.06.04 346 13 11쪽
14 3화 홍문관 교리(4) 24.06.03 360 12 12쪽
13 3화 홍문관 교리(3) +4 24.06.02 378 14 12쪽
12 3화 홍문관 교리(2) 24.06.01 394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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