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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백정 영의정 되기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한만수™
작품등록일 :
2024.05.20 21:29
최근연재일 :
2024.06.26 06: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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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5
추천수 :
498
글자수 :
198,050

작성
24.05.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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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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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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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한성에서 살아 남기(1)

DUMMY

드디어 오리엔탈컨티넨탈호텔 로비에 도착했다.

모임 약속 시각은 벌써 30분이 경과했다.

정진욱은 선릉역부터 뛰어 왔더니 숨이 턱턱 막혔다.

2층 다이어몬드룸에서는 오늘 행정고시 동기회 모임이 있다.

모임의 주역 정진욱은 벌써 도착해 있어야 한다.

15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사이 없이 단숨에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지금처럼 숨이 턱에 턱턱 차도록 뛰어 본 적이 없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면서 숨이 턱턱 막힌다.


“왜, 이렇게 늦었어.”


다이아몬드연회장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다영이 눈물을 글썽이며 뛰어 왔다.


“왜 저···전화를 안 받아?”


사랑하는 여자의 눈물은 보석처럼 빛이 난다. 정진욱이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다영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어머! 폰 핸드백에 있는데, 전화했었어?”

“지하철 고장으로 전화를 했었거든. 어서 들어가자 30분이나 늦었어.”


정진욱이 다영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연회장 쪽으로 달려갔다.

입안에 침이 하나도 없어서 힘겹게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따갑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정진욱 동기 청와대 행정관 승진발령


200여 명이 참석할 수 있는 연회장 무대에 20M가 넘는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다.

몇몇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뛰어나왔다.

군대만 계급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공직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이 더 엄격하다.

정진욱은 동기 중에서 최초로 참사관으로 승진되면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발령받았다.

이 말은 정진욱이 동기들의 상사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동기들 대부분 중앙부서의 실무담당자라, 청와대의 지시를 자주 받는다.

당장 내일부터 정진욱의 명령이나 지시를 받아야 할 처지이다.

상사가 도착했으니 뛰어나가 맞이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 우리의 호프 정진욱 동기 입장! 열렬한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몇몇이 정진욱을 자리로 안내하는 동안 요란하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가 박수를 하자고 시킨 것도 아니다.

정진욱의 출셋길은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다.

길만 좋은 것이 아니다.

핸들을 잡은 차량도 6기통 스포츠카 포드 머스탱이라다.

악세레이더를 밟는 데로 질주할 수 있다.

포드 머스탱에 동승 할 기회를 얻으려면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야 한다.


“지금 막 도착한 정진욱 행정관이 승진 소감을 말하기 전에 먼저 회장님의 축배 제의가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다영이 얼른 정진욱의 잔에 샴페인을 따랐다.

정진욱은 아직 숨이 안정되지 않아서 샴페인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접싯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다.

목이 잔뜩 마를 때 갑자기 물을 마시면 기도가 막혀 죽게 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다.


“에! 우리 정진욱 행정관님은 언론이나 공문을 통해서 잘 아시겠지만, 지난해 AI를 이용한 수해 관리시스템을 개발하여, 대통령상을 표창받았습니다. 올해는 친환경 수리정책을 제안하여 국가발전 및 농업 생산성 향상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을 수훈 받으며 청와대에 입성하셨습니다.”


동기회 회장은 정진욱을 상사처럼 대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미래의 국무총리를 위하여!"


간단하게 정진욱의 승진 배경을 소개하고 축배를 제안했다.


“몸이 좀 안 좋아 보여. 마시는 척만 해.”


다영이 문득 정진욱을 바라봤다.

표정이 하얗다.

어디가 고통스러운지 숨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다.

정진욱 입술이 귀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속삭였다.


“아···알았어.”


정진욱은 미래의 국무총리를 위하여! 라고 외치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샴페인 글라스를 입에 댔다.

한 모금만 마신다는 것이 너무 목이 타서 단숨에 비워 버렸다.

샴페인의 탄산에 목이 콱 막혔다.

밀가루 반죽 같은 거로 기도를 틀어 막아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 진욱씨!”


다영의 비명이 짤막하게 울려 퍼졌다.

정진욱의 귀에 비명이 여운도 없이 뚝 끊어졌다.

거의 동시에 진공상태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면서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

국민훈장을 받은 날은 세계 물의 날이다.

물의 날을 기념하는 식장에서 대통령을 대신한 국무총리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훈장을 받고 나서 주요 공직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훈 공적 사항이 프로젝션을 통해 대형 화면에 펼쳐졌다.


하나의 댐을 건설하는데 약 1조 원의 비용이 든다.

댐을 건설하는 기간은 5년에서 10년이 넘을 수도 있다.

건설에 투입되는 인원도 5만 명에서 10만 명 사이다.


댐을 건설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홍수조절이다. 차선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수를 공급한다.

세 번째로 수력발전이다.

댐을 건설하는 비용 1조 원으로 산에 있는 잡초들과 잡목을 제거하면 전 국토의 홍수를 방지할 수 있다.

계곡에 갑자기 급류가 범람하는 원인은 숲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때문이다.

낙엽이 비닐 역할을 해서 비가 오면 한꺼번에 물을 계곡으로 쏟아붓기 때문이다.

잡초와 낙엽을 제거하면 비는 땅속으로 스며든다.

땅속으로 스며든 비는 계곡으로 내려가서 일 년 내내 물이 흐른다.

70년대에만 해도 산은 벌거숭이였지만 물이 마른 계곡은 없었다는 것이 증거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청수라서 식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부족함이 없다.


수로를 막아서 댐처럼 물을 가두지 않아도, 국토의 64%가 산이다.

산에 빗물을 저장해 두면 댐 3개에서 저장할 수 있는 분량의 물을 흙 속에 저장된다.

댐 하나를 건설하는데 1조 원 이상이 든다.

산 육림사업을 하는데 1조 원이면 연간 20만 명 이상의 실업자를 구제할 수 있다.

1년 내내 수량이 풍부해서 농업용수는 물론이고,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윽고 화면이 꺼졌다.

거의 동시에 일제히 기립하여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국무총리와 장관들도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 소리에 가슴이 벌렁벌렁 떨리기 시작했다.

국토부 장관이 내 일처럼 기뻐하며 손을 꽉 잡고 마구 흔들었다.


“축하하네. 축하해. 정 참사관 앞길은 내가 보장하지.”


악수만 하는 것이 아니고, 등을 아프도록 두들기며 격려를 했다.


“자, 장관님 너무 아픕니다. 너무 아픕니다.”


정진욱이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뒤틀다 눈을 떴다.

***

토굴처럼 어두컴컴한 방안에 비린내가 진동한다.

덮고 있는 이불은 때에 쩔어서 걸레 썩는 냄새가 난다.

흐릿한 창호문 밖의 마당은 햇살이 요란하다.


여기가 어디지?


일어나 앉으려고 하는데 가슴이 타는 것처럼 통증이 살아난다.

간신히 일어나 앉는데 저고리끈이 풀어지면서 앞섬이 벌어진다.

헬스를 한 적도 없는데 단단한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일어났냐?”


방문이 열리면서 햇볕이 컴컴한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누, 누구세요?”

“어허! 이 늙은이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아직도 제정신이 안 들어 왔나 보네. 자, 이것을 마시면 정신이 돌아올 것이다.”


허연 수염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상투 틀지 않았다.

지푸라기로 긴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목상이 진홍색 선지피를 한 사발을 들고 들어 왔다.

순간 피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너처럼 무자비하게 얻어맞으면 온몸 여기저기 피가 뭉쳐 있다. 백정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약이 없다. 마셔 봐라.”

“여, 여기가 어딥니까? 그리고 제가 누구에게 얻어맞았습니까?”

“이런, 포졸들에게 너무 얻어맞아서 아직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군. 어서 이 선지를 마시거라.”


묵상이 딱하다는 얼굴로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선지 대접을 내밀었다.


“포졸들이라면?”


정진욱이 그럼 내가 조선 시대로 환생했단 말입니까? 는 말을 입안으로 삼키며 물었다.


“정말 기억이 안 나느냐?”

“예···”

“이 동네가 백정들이 모여 사는 벽사 골이라는 것도 기억 안 나느냐?”

“예···”

“너하고 보은 현감 생일날에 쓸 소를 잡으러 갔던, 네 아비 병삼이가 포졸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것도?”

“아버지가 포졸들에게 맞아 죽었습니까?”

“때출이 말로는, 소를 도축해 준 도축료를 이방한테 달라고 했다는 죄로, 포졸들에게 무자비하게···”


묵상에게 병삼의 죽음은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언제든 나도 억울하게 개처럼 얻어맞고 죽을 수도 있다는 울화에 치를 떨었다.


“소를 도축했다면 우리가 백정?”

“이제, 조금 정신이 드는구나···”


묵상이 마른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을 묶은 지푸라기를 풀었다. 대충 상투를 틀어서 지푸라기로 묶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데도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뭉치를 딱하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백정! 조선시대 소나 돼지 개를 도살하는 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그럼 내가 조선시대로 환생했단 말인가?

조진욱은 그때야 햇볕이 환하게 내려앉고 있는 마당을 바라봤다.

처마가 낮은 초가지붕 여러 채 보인다.

모두 울타리가 없어서 방문을 열면 거리가 보이는 움막들이다.

찌그러진 방문의 문종이는 찢어지고, 지난해 이엉을 하지 않은 지붕은 썩은 지푸라기를 지붕에 깔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소를 잡고 있는지 바람에 피냄새가 섞여 있다.

목상을 바라봤다.

주름살 투성의 얼굴이며 허름한 옷에도 피가 묻어 있다.

천천히 선지를 마시기 시작했다.


“윽!”


피비린내가 역하게 풍기며 속이 갑자기 역겨워졌다.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스꺼워지면서 현기증이 밀려왔다.

정신이 방안이 회오리바람처럼 빙빙 도는 느낌이 들어서 비틀거리며 바닥을 짚었다.


“무, 뭉치야!”


묵상이 놀라서 얼른 뭉치를 부축하며 낮게 부르짖었다.


“정신 차렸구나? 뭉치야, 어서 이 선지를 마저 마시거라”


목상이 놀라서 부르짖는 말에 갑자기 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정진욱은 환생한 이름이 뭉치라는 걸 인식할 틈도 없었다.

갑자기 밖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뭉치가 정신을 차렸어!”

“하느님이 그래도 있기는 있는 모양이군. 아비는 개죽음을 자식은 살려 주신 걸 보니···”


삽시간에 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뭉치는 회오리바람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서서히 맑아져 왔다.

문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조선 시대라도 그렇지.

국무총리는 못되도 장관을 꿈꾸고 행정고시에 인생을 걸었었다.

행정고시 패스해서 장관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장관은 커녕 상거지 꼴을 하고 있다.


문앞에 있는 동네 사람들은 하나 같이 상투를 틀지 않았다.

대충 머리카락을 둘둘 말아 노끈이나, 헝겊 조각, 지푸라기로 묶고, 상체에 걸친 잠방이는 떨어지거나 누더기다.

아니면 긴 머리카락을 뒤통수에서 말총머리로 묶은 스타일이다.

그래도,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얼굴은 기름기가 번들거린다. 남정네들의 상체는 근육이 단단히 뭉쳐 있다.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어 올린 장딴지는 힘줄이 불거져있다.


“동네 사람들이 전부 너를 걱정하고 있다. 어서 선지를 마시고 일어나거라.”

“예.”


뭉치는 신기하게도 코를 찌르던 비린내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선지를 마신 뒷맛도 비린내가 남지 않았다.

오랫동안 마셨던 음료 같은 느낌이 들면서 벽사골의 과거와 현재가 선명하게 기억 속으로 차르르 빨려들어 왔다.


눈앞에 앉아 있는 노인은 묵상은 벽사골을 다스리는 백정들의 두령이다.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 얼굴이다.

옆집에 사는 칠구 엄마며, 천득이 아저씨, 춘수 삼촌, 석봉이 아저씨···

벽사골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들에게는 무조건 삼촌, 결혼한 백정들은 아저씨, 아줌마, 형수라고 부른다.


“두령님 감사합니다. 아프던 것이 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어이구! 이놈이 날 알아보는 걸 보니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나 보다.”


목상이 다행이라는 얼굴로 하는 말에 문앞에 서 있던 백정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아이 가릴 것 없이 춤을 추며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소리가 동네로 울려 퍼졌다.

50여 가구의 동네 사람들이 여기저기 움막에서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 뭉치야!”


백정들 틈을 비집고 황소처럼 우람한 때출이가 비틀거리며 방앞으로 왔다.


“몸은 괜찮냐?”

“괘, 괜찮구만유,”


묵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때출이에게 물었다.

때출이 입술이 퉁퉁 부어 있고, 왼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누가보더라도 인정사정없이 얻어맞은 얼굴이다.


“때출이 삼촌 괜찮아?”


뭉치는 보은 동헌 뜰에서 포졸들에게 개처럼 얻어맞던 때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난, 괜찮으니까 어서 누워라. 내가 볼 때 너는 며칠 누워 있어야 할 것 같구먼.”


때출이 뭉치를 방바닥에 눕히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난 괜찮은데, 삼촌 많이 맞았잖아.”


뭉치는 그때야 바닥에 담요가 깔려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흙바닥에 거적만 깔아 놨다. 그러고 보니 벽에도 벽지를 바르지 않아, 황토와 짓이겨 바른 지푸라기가 드문드문 삐져 나왔다.


“나는 참만 하다. 넌 병삼이 형님이 너를 감싸줘서 덜 맞았다는 걸 알고 있느냐?”

“때출이 말로는 병삼이가 너를 위에서 감싸준 덕분에, 매를 더 맞았다고 하더구나. 그렇다고 화를 내지 말아라. 백정 신세가 원래 개보다 못한 신세라는 걸 알아야 한다.”


묵상은 그 말을 남겨놓고, 산에 약초를 캐러 간다며 밖으로 나갔다.


“병삼이 형님이 너한테 유언을 남겼다.”


동네 사람들은 어느 틈에 동네 중앙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 밑으로 옮겨갔다.

늙은 개 한 마리만 방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유언을?”

“그래, 너는 혼절해 있어서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묵상이 어른한테는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비밀로 해야 한다.”

“아니, 동네 사람들한테 지켜야 할 비밀 유언을 남기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네가 깨어나면 몸을 추스르는 데로 벽사골을 떠나라고 하셨다.”

“백정이 벽사골을 떠나면 어디 가서 삽니까?”

“벽사골에서 백정질을 하다보면 언제 어느 시에 병삼이 형님처럼 개죽음을 당할지 모른다. 너는 똑똑하니까, 벽사골을 떠나 신분을 속이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 말씀이 유언이셨습니까?”

“그렇다. 내 무릎에 누우셔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다.”


뭉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부릅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 흙이 떨어지지 않게 갈대로 엮은 거적을 천장에 붙여 놨다.


이틀전이다.

보은 현감 생일을 앞두고 암소를 도축해 달라는 전갈이 왔다.

그래서 아버지와 때출이와 함께 소를 저승으로 보낼 촛대를 날카롭게 갈아서 들고 동헌으로 갔다.

백정들은 소를 도축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산영감을 저승으로 보내고, 이방에게 저승가는 여비를 청구했다.


“이놈들이 미쳤나? 현감 나리 생신 때 사용할 소를 잡아주는 것만 해도 평생 영광으로 삼아야 할 놈들이, 뭐? 저승갈 여비를 달라고?”

“나리, 저희들은 도축료라고 하지 않고 산영감을 저승으로 보낼 여비라고 합니다. 제 말이 나리 귀에 거슬렸다면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결국 돈을 달라는 말이 아니더냐?”

“제가 알기로는 암소는 동네 유지분들이 돈을 각출해서 현감나리께 선물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도축료도 주셨을 것 아니십니까?”

“그러니까 네 놈의 말인즉, 내가 도축료를 떼어먹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이장이 길길이 날뛰면서 큰 소리로 포졸들을 불렀다.

몇몇의 포졸들이 붉은색 주장을 들고 뛰어 왔다.


“이 세 놈을 죽지 않을 만큼 몹시 쳐라.”

“나리, 이 박달나무 주장으로 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요.”

“백정들 아니냐? 백정들이 감히 이방을 치사한 도축비 횡령범으로 몰았는데 살려 둘 생각이냐?”

“아, 아닙니다.”


이방이 게침을 질질 흘리며 길길이 날뛰며 소리치는 말에 포졸들이 마구잡이로 주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악!”


머리를 심하게 맞아 비명을 지른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캄캄하다.

***

뭉치는 사흘을 더 누워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한밤중에 비로소 온몸이 온전해졌다는 걸 알았다.

몸에 기운이 나면서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랐다.

그렇다.

아버지는 당신의 몸으로 자식을 감싸서 목숨을 살렸다.

그 대가로 벽사골을 떠나라는 유언을 남겼다.


조선시대의 백정!

인도의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들이다.

도축장으로 달려가서 도축용 칼인 촛대로 목을 찔러 자결하는 것 났지, 아버지처럼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정으로 살고 싶지는 않으리라 결심했다.

대처로 나가 신분을 속이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성공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 나도 권력을 쟁취할 수 없는 것이 조선 사회다.

포졸들에게 개주검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도 백정 신분을 벗어나야 한다.


떠나려면 하루라도 일찍 떠나는 것이 좋다.

일어나서 갈아입을 옷가지를 들고 냇가로 갔다.

여름이지만 냇물은 얼음물처럼 차가왔다.

몸에 베어 있을 비린내를 없애려고 몇 번이나 온몸을 씻고, 가져온 옷을 입었다.


“뭉치야! 어기 가는 거냐?”


뭉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묵상이다.

묵상은 동네 사람들이 3명씩이나 변을 당한 것이 기도 부족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밤마다 정화수를 호리병에 담아 산기도를 하러 다니는 중이다.

오늘도 정화수 한 그릇을 산신령에게 바치고 산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중이다.


“두령님, 저는 여길 떠납니다.”

“떠나다니, 백정이 백정하고 같이 살아야지, 세상에 나가면 개돼지 취급받는다는 거 모르냐?”

“저는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백정은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아버지는 호랑이를 때려죽일 힘이 있으나 개처럼 얻어맞고 돌아가셨습니다.”

“누굴 원망하겠냐? 아비가 백정이었는데···”


뭉치가 예전처럼 보이지 않아서 묵상이 말꼬리를 흐렸다.


“두령님, 두령님이 제 앞을 가로막으시면 평생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길을 터주시면 언젠가 두령님도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뭉치는 대처로 나가면 반드시 성공할 생각이다. 묵상 앞에 무릎을 착 꿇고 앉아서 간절하게 말했다.


“네,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똑똑해졌냐?”


뭉치의 말은 모든 백정의 꿈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내 본 적이 없는 꿈이다.

묵상은 뭉치의 말에 반박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비켜섰다.


“고맙습니다. 두령님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말이 많으면 결심이 흐려질 수 있다. 뭉치는 벌떡 일어섰다.

묵상 앞에서 정중하고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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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4 송다
    작성일
    24.06.15 19:34
    No. 1

    개연성 밥말아먹고 조선을 요리하는 셰프 쓰시더니 또 조선시대 소설 쓰시네 연산군 시절 고추장 고춧가루 화폐 자유롭게 쓴건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더라

    찬성: 2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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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5화 한성 양반들(4) 24.06.13 274 9 11쪽
23 5화 한성 양반들(3) 24.06.12 269 11 11쪽
22 5화 한성 양반들(2) 24.06.11 302 13 11쪽
21 5화 한성 양반들(1) 24.06.10 322 10 12쪽
20 4화.탄핵 사유서(5) 24.06.09 346 11 11쪽
19 4화.탄핵 사유서(4) 24.06.08 330 14 12쪽
18 4화.탄핵 사유서(3) 24.06.07 344 13 12쪽
17 4화.탄핵 사유서(2) 24.06.06 360 13 12쪽
16 4화.탄핵 사유서(1) +2 24.06.05 365 13 11쪽
15 3화 홍문관 교리(5) +2 24.06.04 346 13 11쪽
14 3화 홍문관 교리(4) 24.06.03 361 12 12쪽
13 3화 홍문관 교리(3) +4 24.06.02 378 14 12쪽
12 3화 홍문관 교리(2) 24.06.01 394 15 11쪽
11 3화 홍문관 교리(1) 24.05.31 428 19 11쪽
10 2화, 1만 냥 벌기(5) 24.05.30 440 19 10쪽
9 2화, 1만 냥 벌기(4) +4 24.05.29 459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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