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일반소설

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44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6.15 23:30
조회
31
추천
0
글자
11쪽

46. 어긋난 조각 - 6

DUMMY

내가 갈 곳은 오직 하나, 우리 집 주상복합 내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하련이 1인용 종이컵에 담긴 딸기 아이스크림을 갖고 올 동안 나는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3인분치 종이컵을 가지고 하련과 자리를 마주 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이스크림에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하련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너 기분파였어?"


"꿀꿀할 때 먹는 아이스크림이야말로 인생의 낙이랄까?"


플라스틱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움큼 떠 그대로 내 입안에 던지는 순간은 행복 그 자체였다. 민트의 청량하고 깔끔한 맛과 꾸덕한 초콜릿의 조화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맛이었다. 카타르시스에 버금가는 이 쾌락이야말로 내가 민트 초코를 먹는 분명한 이유였다.


'강연아 또 민초 사줘!'


그 순간 나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려 손으로 눈물을 거두려던 순간 하련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빨개져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하련은 스푼을 입에 떼지 못한 채 폭소에 가까운 웃음보를 참아내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연이 너, 푸흡!"


그러나 하련이 감내하기엔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하련은 스푼을 테이블에 던져둔 채 참던 웃음을 터트리며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너무 크게 웃은 나머지 직원이 다가왔고 하련은 금세 웃음을 거두며 직원에게 사과의 뜻을 표했다.


나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다 가까이 인기척이 느껴져 이에 반응했다. 그 순간 하련이 냅킨 몇 장을 집더니 내 입가를 닦아냈고 그 냅킨을 내게 보여주며 실실 웃어댔다.


"얼마나 먹고 싶었던 거야? 아이스크림 값은 내가 쏠게!"


"잠깐,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우리는 진지하게 얘기를 하러 온 거라고."


내 언성이 높았던 건지 직원이 눈치를 줬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평정심을 찾아갔다.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먹으며 좀 더 시간을 할애한 뒤 하련과 대면했다. 말하기 앞서 나는 민아와 민후 형에 관한 자초지종을 하련에게 알려주었다.


얘기가 장황해져 하련은 아이스크림 컵을 비운 지 오래였고 어느새 내 민트 초코를 나눠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레미에서 아이스크림 먹을 땐 몰랐는데 하련 이 계집, 의외로 먹성이 좋아 내 민트 초코를 거침없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물론 이 상황에 시선 쏠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현재까지 일어난 일을 대충 일단락한 뒤 하련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하련은 스푼을 입술에 댄 채 뭔가 궁리하는 듯 시선을 아래로 두며 눈을 깜빡였다. 그동안 나는 모서리에 남아있던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이리저리 긁어 입안에 넣어댔다.


"뭘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몰랐어."


하련이 고개를 들더니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가만히 시선을 마주할 뿐이었다.


"민트 초코, 생각보다 되게 맛있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나는 놀랄 새도 없이 빈 아이스크림 통을 하련한테 집어던지려 했고 하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내게 양손을 젓다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미안, 네가 한 얘기 다 듣고 있었으니까 걱정 마."


"그럼 민후 형과 어떤 연줄이 있었는지 들어볼까?"


"알겠어."


나와 하련은 주변 자리를 정리한 뒤 아이스크림점을 나와 상가 주변을 돌아다녔다. 잠시 적막한 분위기가 흘러가나 싶더니 하련이 내게 가까이 붙어 목소리를 낮추었다.


"난 송민후 작가님 웹툰의 애독자 중 한 명이었어. 아마 축제 전쯤인가 그때부터 작가님이 너에 관해 조사했던 것 같아."


"그때부터, 왜지?"


"물증은 정확히 모르겠어. 하지만 그때 작가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


'잠깐만.'


나는 곧잘 민후 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축제 전에 민후 형과 연관될 법한 일이라면 내가 민아를 상대로 돌려차기를 날렸던 것밖에 없었다. 하련이 개의치 않고 넘어간 덕분에 나 혼자 생각을 정리해갈 수 있었다.


이후 하련의 언급이 계속되어 민후 형이 우리 학교를 취재차 방문하겠다고 말한 것과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남학생이 누구냐며 수소문한 사실을 듣게 되었다.


나와 하련은 상가 밖으로 나와 집 중앙에 위치한 연못 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못 안에 숨은 분수대가 막 터지기 시작해 다리 주변을 뛰노는 아이들과 뒤쪽 야외 테이블에서 지켜보는 부모들로 성황을 이루던 중이었다. 나는 잠시 모자를 벗어 분수 주변으로 시원해진 공기를 만끽했고 하련은 연못 옆 소나무에 몸을 기댄 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확인하다 교복치마 주머니 속에 넣어뒀다.


"그때 민후 형 심정이 영 달갑진 않았겠네. 사연 내용 보니까 민아를 극진히 아끼는 것 같더만."


"나는 좀 다른 생각이었어. 레미에서 벌이는 행사가 작가님이 알 정도로 널리 퍼졌나 싶었지."


나는 그 말에 실소를 짓다 교복 생활복 넥라인을 펄럭이며 더위를 해소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교사들 눈치 보고 있는 상황에 언플이라도 되면 골치 아플걸?"


"그럴까."


"여하튼 민후 형이 온다고 한 이후 어떻게 된 거야?"


"그때 못 봤나? 작가님 강당 2층에서 축제 다 보고 갔었어."


"뭐?"


분수가 멈추자 아쉬운 듯 야유를 보내는 아이들과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아 주변을 허우적대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시선 하에 나는 몸이 경직되어 지난날 축제를 조금씩 떠올렸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레미와 SMK, 거이에 소희까지 어디 하나 빠트릴 수 없던 내게 관객 배경을 둘러볼 여유 따윈 없었다. 덕분에 간담이 제법 서늘해져 후에 모자를 착용해도 한동안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왜? 부끄러워?"


"아니. 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것 같아서."


"축제도 벌써 열흘 가까이 지났네. 원래 같으면 SMK 잡으려고 안달이었을 텐데 참 다행이야."


하련이 머금은 미소가 산뜻하게 다가오던 것도 잠시 입술을 부르르 떠는 모습에 무리하게 한 것 같아 무안한 감정이 나돌았다. 분수가 다시 강렬한 물줄기를 타고 뿜어대자 아이들이 환호에 찬 웃음을 지으며 이리저리 모여 놀기 바빴다. 나는 물끄러미 분수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해갔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결국 축제 때 내 모습이 민후 형의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예측할 뿐이었다. 지금의 내가 과연 잘 해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련은 소나무에 몸을 떼 고개를 숙이다 내 왼쪽 손등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댔다.


"그 후에 나와 잠깐 만나서 짧게 인사만 하다 가셨어. 작가님 사인 받았던 건 덤이고."


"그렇군. 여러모로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간만에 남을 상대로 가볍게 웃음을 지어봤다. 그리고 난 마스크로 완전히 가려졌단 사실을 뒤늦게 눈치채 모자챙을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하련이 내 모습을 보고 웃어준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로 흘러가진 않았다.


여러모로 기반이 될 조건들은 갖추고 있었지만 내 행동으로 다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포용에 선을 넘질 않나 자기주장에 똥고집을 부리질 않나 여기 빗나가고 저기 빗나가는 꼴이었다. 이제 봉착한 문제를 어떤 식으로 유려하게 대처할지 곰곰이 생각할 단계만 남았다.


날이 저물어 갈 즈음, 내 왼손에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콕콕 찌르던 하련의 손은 내 손을 강하게 쥐고 있어 좀처럼 떨어지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뭔가 싶어 입을 열려던 차 하련은 먼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주눅 든 듯한 표정을 보였다.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나는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하련이 시선을 돌리며 나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정적이 이어졌다. 분위기를 미루어 짓궂게 굴고 싶은 상황이었다.


"왜? 날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그러자 하련은 잠시 몸이 굳더니 바로 내게 몸을 돌려 양 주먹으로 내 어깨를 때려댔다. 장난투로 던져본 건데 예상보다 격한 반응이라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당당무개한 분이 왜 이러실까? 주변 사람들 시선이 있으면 생기는 옵션이라도 되는 거야?"


"조용히 해! 고백 따위 할 생각 없었으니까!"


내가 어깨 부위를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할 동안 하련은 조금씩 이성을 되찾아갔다. 장난 정도가 심했는지 주변 아이들이나 부모로부터 조금씩 시선이 모였고 나와 하련은 조심히 자리를 나와 상가 바깥쪽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동안에도 하련은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하다 입구에 다다르자 내게 조심히 입을 열었다.


"축제 때 해줬던 화장 있잖아. 그거 조합이 뭐였는지 궁금해서 물어볼 참이었다고."


하련은 이내 불살을 찌푸리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랑곳 않고 스마트폰을 꺼내 화장품 관련 어플을 열었다. 화장 견본을 즐겨찾기로 분류해놓은 덕분에 리스트를 보여주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해당된 리스트를 캡처해 채팅창에 하련을 초대해 보내주면 끝이었다. 하련이 스마트폰으로 뭔지 확인할 동안 나는 하련 옆으로 다가가 캡처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봤다.


"내 화장이 맘에 들었나 봐? 제법 표정이 진지해졌는 걸."


이에 하련은 스마트폰을 쥐지 않은 손으로 주먹 쥐더니 또다시 내 어깨 부위를 내리쳤다. 나는 맞았던 부분에 또 맞아 고통에 몸부림치며 하련과 거리를 두었다.


"네가 그렇게 매를 버니까 민아가 싫어하지 않았을까?"


"내가 근엄하게 눈치만 보고 있었으면 채팅방에 짤막하게 올렸을 거면서. 빨리 끝내니까 후련하잖아."


"뭐래."


그대로 하련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뒤돌아 상가와 도청을 낀 큰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 감사의 표현이 없는 건 좀 찜찜했지만 하련이 내 진가를 알아준 것만으로도 나쁠 건 없었다.


나는 별말없이 집으로 돌아가 우편함이나 입구 쪽 메인 키호스크에 도착한 우편이 있나 확인했다. 그때 스마트폰에 알림음이 울렸고 살펴보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 고마웠어.'


얼마 만에 보는 감사의 표현일까 싶었다.


이제 집에 올라가면 또다시 누나와의 냉전이 이어질 거라 예상했다. 두려울 건 없었다. 기말 평가 때는 방과 후 일정이 대거 조정되기 때문에 민아도 누나도 얘기를 나눌 기회가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다음에 어떤 작전을 취해야 할지 가닥이 잡혀갔다. 그리고 작전의 조력자로 선유가 함께할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파트는 6부작으로 완필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같은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39. 마땅한 복수? - 4 20.05.12 30 0 15쪽
39 38. 마땅한 복수? - 3 20.05.11 32 0 12쪽
38 37. 마땅한 복수? - 2 20.05.09 38 0 12쪽
37 36. 마땅한 복수? - 1 20.05.02 43 0 12쪽
36 35. 기쁨을 주는 Make up! - 10 20.04.09 29 0 22쪽
35 34. 기쁨을 주는 Make up! - 9 20.04.06 31 0 14쪽
34 33. 기쁨을 주는 Make up! - 8 20.04.05 31 0 14쪽
33 32. 기쁨을 주는 Make up! - 7 20.04.04 30 0 13쪽
32 31. 기쁨을 주는 Make up! - 6 20.04.02 31 0 12쪽
31 30. 기쁨을 주는 Make up! - 5 20.03.30 35 0 12쪽
30 29. 벗어난 매듭 - 1 20.03.29 35 0 16쪽
29 28. 합법적 잣대 - 8 20.03.24 32 0 21쪽
28 27. 합법적 잣대 - 7 20.03.22 31 0 12쪽
27 26. 합법적 잣대 - 6 20.03.21 35 0 13쪽
26 25. 합법적 잣대 - 5 20.03.21 37 0 14쪽
25 24. 합법적 잣대 - 4 20.03.19 36 0 16쪽
24 23. 합법적 잣대 - 3 20.03.16 40 0 11쪽
23 22. 합법적 잣대 - 2 20.03.10 47 0 11쪽
22 21. 합법적 잣대 - 1 20.03.09 43 0 11쪽
21 20. 필연적 접근 - 7 20.03.05 49 0 11쪽
20 19. 필연적 접근 - 6 20.03.04 48 0 12쪽
19 18. 필연적 접근 - 5 20.02.20 50 0 19쪽
18 17. 필연적 접근 - 4 20.02.18 54 0 12쪽
17 16. 필연적 접근 - 3 20.02.16 48 0 13쪽
16 15. 필연적 접근 - 2 20.02.15 48 0 11쪽
15 14. 필연적 접근 - 1 20.02.14 55 0 11쪽
14 13. 망할 계집 - 7 20.02.12 67 2 11쪽
13 12. 망할 계집 - 6 20.02.11 68 3 10쪽
12 11. 망할 계집 - 5 20.02.10 69 3 14쪽
11 10. 망할 계집 - 4 20.02.09 80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