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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올렛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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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올렛
작품등록일 :
2021.03.31 19:03
최근연재일 :
2021.11.03 18:40
연재수 :
2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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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44,787

작성
21.10.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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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12쪽

혹시 종이와 펜을 준비해 주겠나?

DUMMY

183. 혹시 종이와 펜을 준비해 주겠나?


한 달 뒤.


피오네 왕이 완전히 미쳐버렸다.


그가 미쳐버린 틈을 타

일라인 시절 테슬린 공작 같은 자,

오드르 알세이드 후작이자 왕국의 재상이 일어섰다.


제1 기사단장과 손을 잡은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군을 일으켜 반란을 진압하고,

같잖은 이유로 제국을 향해

군사도발을 하는 것이 아닌,

다른 파벌이었던 왕자 중 뛰어난 이를 골라

왕으로 옹립한 뒤, 이후를 도모하자고 외치던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원래 가장 컸던 세력과

가장 보편적인 의견을 제시한 세력이 손을 잡자,

다른 세력들은 들었던 손을 내리고,

열었던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파벌에 속한 귀족들은

회의와 자의에 의해 입을 닫은 것은 아니었다.


세력을 더욱 키운 재상이 주도한 첫 회의에서 그가,


"위대한 피오네 왕국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뜻에 따르지 않는 이와 영지를 반란으로 규정한다."


라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재상의 귀에 잡소리들이 사라지자

그는 결과가 이미 정해진 투표를 진행했다.


왕자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회의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나눠주며 그가 말했다.


"안타깝게도 일테라쇼 제국이

우리의 빛을 탁하게 물들여버렸습니다.

일테라쇼 제국 때문에 왕실이 어지럽고,

왕국이 혼란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귀족들이 하나로 뭉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 앞에 찬란하게 빛날 새로운 빛들이 있습니다.

네.. 아직은 그 빛이 미약하여

왕국 전역에 빛을 비추지 못하겠지요.

네. 그래서 우리가 더욱 힘을 내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운 빛을 모실 겁니다.

우리의 힘이 그 빛을 찬란하게 키울 겁니다."


쭉 나열된 왕자들의 이름.


끝에서 세 번째,

작은 표식이 달린 이름에 귀족들은 주목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은

장자 계승 원칙이 중요한 왕국을 증명하는

첫 번째 왕자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의 포악한 성격 탓에 귀족들 사이에서

은근히 다음 왕이 되기를 바라던

학식이 뛰어난 둘째 왕자의 이름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은 왕위 계승에 관심 없다며

왕성을 이미 떠나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지역에서

다른 왕자들보다 명성을 쌓은

셋째의 이름도 아니었다.


가장 힘없는 왕비의 아들이자,

존재감이 미약한 왕자.


검과 책이 아닌 정원과 꽃, 자연을 좋아하고

시와 그림에 소질이 있는

이제 고작 11살의 넷째 왕자,

스펜타 피오네였다.


재상과 뜻을 달리하던 귀족들은 그가

재상이면 왕위에 있는 재상이 되고자 함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뜻에 반대할 수 없었고,

정해진 이름 아래 가문의 인장을 찍었다.


만장일치의 결과를 가지고 재상이 찾아간 곳은

미쳐버린 왕이 있는 곳이 아니라

스펜타 피오네가 있는 궁이었다.


"쯧. 이런 곳에 살던 분이 본궁으로 옮겨 적응하실지.."


"진짜 주인도 아닌데.."


"할리. 그 입 다물어."


"이런.. 죄송합니다."


"됐다. 그대 말처럼 왕자께서 적응하던 말던

내가 알 바 아니지.

그래도 보고 듣는 이들이 있으니

말조심해야 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재상 각하."


"재상이라.. 참으로 자랑스러웠던 자리가..

이제는 마음에 들지 않아.. 쯧쯧.."


"빛 위에 하늘이 되실 겁니다."


"하늘이라.. 좋군..

하늘은 `태양`도 `달`도 품지.. 그렇지.. 그렇고 말고."


재상을 따르는 할리는

그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재상이 자리에 앉자

스펜타 피오네의 몸이 잘게 떨렸다.


"저런.. 몸이 안 좋으십니까? 저하?"


"아닙니다.. 그리고.. 저하라니..

그런 말씀 마세요.. 재상..

형님들이 알면 저는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아니요. 왕자님께서는 이제

왕세자 저하가 되셔야하며.."


"왕세라니..!"


"허허.. 왕자님.. 아직 제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죄.죄송합니다.."


한 왕국의 왕자가,

이제는 자기 손으로 왕세자가 될 자가.

왕세가되고 얼마 뒤 왕이 될 자가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재상이 흡족하게 웃으며 품에 있던 것을 건네며

왕자의 옆에 있던 왕비에 시선을 돌렸다.


"이런. 인사가 늦었습니다. 왕비 전하."


"아니예요..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네.. 그 마음.. 변하지 않으셔야 겁니다."


정상적이라면 재상이 왕비에게 먼저 예를 갖추고

왕자에게 예를 올린 뒤,

방문 목적을 밝혀야 했음에도

이 방은 재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재..재상님.. 이건.."


"아.. 말을 계속 이어 하지요.

왕자님께서 왕세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것이 일테라쇼 제국에 의해 심신이 미약해지신

왕자님의 아버님이자 왕국의 빛을 위하는 일입니다."


"형님들께서 계신데.. 어찌.."


"왕자님. 계속 제 말을 끊으실 겁니까?"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좋아야. 건네드린 것은 귀족들의 뜻입니다.

이 왕국을 걱정하고 있는 귀족들 모두는 왕자님께서

왕세자가 되고 왕이 되어 이 혼란스러워진 왕국을

이끌어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살아남지 못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왕국의 모든 귀족이 왕자님을 받치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왕과 왕비, 둘 다 말이 없자

재상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왕자님? 아니 왕세자 저하?"


"네?"


"어떻습니까?"


"저..저는.."


"네.. 아직 어린 왕세자님의 어깨가 무거우시겠지요..

그 부분이 제가 직접 찾아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왕비 전하. 왕세자님께서 제왕학을 배우셨는지요?"


왕비는 테이블 밑에 있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기 아들이 왕세자가 되고

훗날 왕이 된다는 기쁨의 표현이 아니었다.


제왕학?


제왕학은 첫째 왕자의 기본 교육이었으며,

일부 귀족들이 몰래 둘째 왕자의 궁을 방문해

가르치고 있는 학문일 뿐,

넷째인 아들에게는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다 알면서 물어보는 재상이 가증스러워

속으로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제가 부족하며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무심하셔라..

괜찮습니다.

아직 늦은 나이도 아닙니다.

제가 직접 왕세자님의 교육을 담당하지요."


꽉 쥔 주먹 때문에

피가 통하지 않아 차가워진 손위로

아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네. 좋습니다.

모든 것을 저에게 맡기시고 이 후미진 궁을 벗어나

본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십시오.

아! 왕세자 저하께서

이 왕국의 유일한 빛이 되는 순간,

왕비 전하께서는 대왕대비가 되실 분이니

그에 맞는 궁도 마련하겠습니다.

왕비 전하의 궁도 같이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사를 받지도, 하지도 않은 재상이 떠나자

스펜타가 표정을 바로 하며 허리를 폈다.


"어머니. 잘 참으셨습니다."


"이 어미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


스펜타는 진짜 자신을 알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에셀."


스펜타의 부름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20대 초반의 하녀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왕자님."


1년 전 자신이 있는 궁으로

좌천 되다시피 배정된 하녀 에셀.


그리고 어머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알고 있을 거로 예상하는 여자였다.


"앉아."


"어찌 미천한 제가 왕자님 앞에서 앉을 수 있겠습니까?"


"일테라쇼 제국 황제 폐하의 동생인

프레시아 라이거 백작께서는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에

이미 영지 업무에 관여하셨다지?"


지금까지 보여주던 것과 다른 분위기와

감히 제국 황제의 핏줄을 입에 담는

스펜타의 모습에 에셀은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폐하와 라이거 백작님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았던 것이 두 분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역시.."


"저 또한 역시 군요.

나폴레이 책사님께서는 이번에도 옳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천하를 내려다 본다는

제국의 책사가 그대를 보냈던 거군."


"책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피오네는 그 아이에 의해 망국의 재가 될지,

우리의 벗이 될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저의 정체를 알고 부른다면

이런 말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폐하께서 내리는 처음의 기회이자

더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기회다.`"


에셀의 말을 들은 스펜타의 작은 머리가 끄덕여졌다.


"나폴레이 책사님께서는 예지 능력이 있으신가?"


"책사님께는 오러나 마나도 함께하지 않습니다.

예지 능력이라.."


에셀은 하나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스펜타의 맞은 편에 앉았다.


"뭐.. 책사님을 모르는 이들은

그분의 정확한 판단을 보고

그런 상상을 할 수 있겠지요.

책사님에 관한 것은 그분의 말씀처럼

`벗`이 된 후에 해결하시고..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어머니."


"왕자님. 저는 괜찮습니다.

이 어미는 왕자님이 절벽에서 뛰어 내린다 해도

함께 할 겁니다."


"어머니가 계셔서 지금까지 버텨왔고

이렇게 기회도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왕비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스펜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셀. 혹시 종이와 펜을 준비해 주겠나?"


손이 없어 부탁한 것이 아니라 자기 뜻을

제국의 황제에게 전해 줄 수 있냐는 의미였다.


에셀은 싱긋 웃으며 상의를 살짝 들어 올려

옷 안에 숨겨진 벨트를 만지작거렸다.


"하.. 벨트형 아공간이라.."


"신기해하실 것 없습니다.

제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은

각자의 임무에 맞는 형태의

아공간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공간에 종이와 펜을 꺼내 왕자에게 건넨 에셀은

왕비를 바라봤다.


"왕비님.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어머니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를 키워준.. 아니 사육했던 아버지를

5살에 제 손을 죽였으니

부모의 사랑과 헌신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현명한 아들이라도

고작 11살의 아들을 믿고,

아들을 위해 절벽도 함께 뛰어내리겠다는 말씀과

그동안 왕비님께서 참아왔던 시간에

존경을 표합니다."


왕실이 주체한 연회에 처음으로 참석한

남작 영애인 쉬린 라미게스는

하필이면 그날 왕의 눈에 들어

강제와 다름없는 하룻밤을 보냈고,

스펜타를 임신했다.


스펜타가 태어나던 날.

그녀는 갓 태어난 아들을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는 것을 끝으로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왕가에 대해 복수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는 와중에도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꼭 잡은 작디작은 아이의 모습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아이만큼은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스펜타가 5살이 될 때까지 그녀와 스텐파는

왕비의 신분과 왕자의 신분을

스스로 버리고 없는 듯 숨어지냈다.


스펜타가 7살이 된 해,

아들이 처음으로 부탁이라는 것을 했다.


`엄마. 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요청한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요청한 이가 힘없는 왕자일지라도

왕의 핏줄의 `배움`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떨리는 두 다리로 서서 아들의 부탁을

왕에게 전한 왕비의 모습과 달리,

그날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피오네의 왕은

흔쾌히 허락했다.


첫째 왕자를 낳은 왕비가 찾아와

그림에 필요한 도구들과 책들을 적선하듯 던져주며

`왕자의 신분으로 그림이라니.. 쯧쯧.. 하긴 나쁘지 않아요.

혹시 모르죠. 훗날 스펜타 왕자가

왕세자가 될 우리 아들의 멋진 모습을 그려준다면

모자의 목숨이 붙어있을지도`라고 말하고는

웃으며 나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왕과 왕비의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자

스펜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스펜타는 또 다른 부탁을 했고,

그때부터 그녀와 스펜타의 둘만의 비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


일테라쇼 제국의 첩자에 의해 자신과 아들이 인정받았다.


쉬린 라미게스 왕비는 왕실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아들이 아닌 이의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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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인연이 허락한다면 다시 만나자꾸나. 21.10.19 582 23 12쪽
185 이곳 백성 모두가 말인가? 21.10.18 606 26 11쪽
184 날을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1.10.17 631 2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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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마지막 만찬이 될 것이다. 21.10.08 772 2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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