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XXX - 4화 Man vs Wild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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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Man vs Wild -
민준은 뭔가 빛을 막거나 걸러줄 것을 찾기 위해 가방을 뒤졌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려고 했던 교재, 연습장, 필통, 취미로 수집하고 그뒤로 항상 가지고 다니던 슈어파이어 KL1 라이트, 레더맨 사(社)에서 나온 Charge-Xti, 할리데이비슨에서 나온 구조용 폴더 나이프 그리고 제법 아웃도어에 심취했다고 생각했던 자신도 살 때 처음 들어본 SANRENMU에서 나온 주로 택배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자르던 작은 폴더 나이프와 핸드폰과 핸드폰 고리가 나왔다. 핸드폰 고리에도 Jil Lite에서 나온 나름 시리얼 번호 까지 붙은 작은 플래시 라이트가 달려 있었다.
사실 보통 사람은 이런걸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민준은 아웃도어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이후로 가방이나 바지 주머니에 이런 것들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물론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봤다.
부모님이나 가족, 친구들 역시 왜 그런걸 가지고 다니냐며 위험하니 집에 두고 다니라며 설득했다.
그러나 이미 카페에도 가입하고 이런저런 글을 올리며 활동하고 있던 민준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몸에서 이것들을 떼어 놓지 않았고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약간 괴짜로 통했다.
어떤 친구는 농담으로 누굴 찌르려고 가지고 다니는 거냐며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름 인정 비슷한걸 받기도 했다.
기숙사 옆방에 살던 선배는 방에서 참치캔과 컵라면을 먹으려다가 캔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 민준에게 달려오기도 했었고, 과일을 먹을때도 그의 나이프를 빌렸다. 또한 급하게 레포트를 준비하던 친구는 표지 위에 검정테이프를 붙이고는 민준의 나이프로 양옆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나름 짜가 맥가이버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 뒤로 뭐라 하는 사람도 없자 가방안에 몇 개씩 넣고 다니기도 했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갖고 싶어하던 나이프를 수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눈을 찌르는 빛을 막아줄 무엇인가였다.
민준은 가방 주머니를 다시 한번 뒤져 보기도 하였으나 나오는 것은 쓰레기뿐이었다.
지갑도 뒤졌다. 하지만 적당히 빛을 여과해줄 것은 없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필통을 열고 뒤적이던 민준은 똑딱이 검정펜을 집어 들었다.
똑 딱. 똑 딱. 똑 딱.
무심하게 똑딱거리던 민준은 왜 그것을 똑딱이는지도 모른채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뭔가 생각해 냈는지 똑딱이 펜을 돌려 안에 있는 심을 분리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심이 제거된 빈 펜을 들어 올려 눈에 가까이 가져갔다.
펜은 색깔에 따라 겉의 색깔도 따라가기 마련이다. 빨간색 펜은 빨간색으로, 파란색 펜은 파란색으로, 녹색 펜은 녹색으로, 당연히 검은색 펜은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펜을 통해 바라본 세상.
어두웠다.
“좋아! 이거거든.”
민준은 꺼내 놓았던 것들을 다시 가방에 넣어 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손엔 지팡이 오른손엔 검정 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는 등뒤 가방 끈에 엮어 영화에 나오는 무사처럼 등에 메었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웠던 것이다.
틈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게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민준은 조심스럽게 숲 밖으로 향했다.
“좋아, 좋아 좋아.”
민준은 뿌듯한듯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더 이상 눈이 아프지 않았던 것이다.
민준은 그대로 눈이 펜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조심하며 사방을 둘러 보았다.
눈 덮힌 산. 눈 덮힌 계곡. 눈 덮힌 벌판.
어디에도 건물이나 도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민준은 아찔함에 눈을 감고 두 팔을 늘어뜨렸다.
주저 앉고 싶었다.
집에서 나온 시간 8:30. 지금 시간 대략 12시. 3시간 30분 동안 걸어 숲을 빠져 나왔지만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카메라맨도 스태프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하던 민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거 혹시… 서바이벌 게임 프로인가?”
얼핏 인터넷에서 생존 게임을 통해 엄청난 상금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것 같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있는 상태에서 한명 한명 제해 나가는 것이었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지금처럼 한 지역의 여러 장소에 사람들을 떨어트려 놓고 목표지점을 향해 찾아오게 하는 것도 그럴싸 하다고 생각 되었다.
아마 그렇다면 승리하는 사람은 제법 큰 상금을 손에 쥐게 될 터였다.
“아놔, 누가 본인 허락도 없이 신청한거야? 부모님인가? 아니면 누나들? 이거 메뚜기 자식이 나 골탕 먹일라고 신청한거 아냐? 그래놓고 어디서 낄낄 거리는건가?”
민준은 혀를 찼다.
“아오, 돌아가기만 해봐 아주. 누가 그랬든 소원 열가지다!”
장난 스럽게 말한 민준은 다시 검정 펜을 들어 눈에 가져갔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민준의 눈 밑으로 한방울 물이 흘렀다.
스윽.
하지만 금세 그의 손은 한방울 물을 훔쳐 내었다.
민준은 대학교까지 나온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게다가 인터넷이 발달된 한국 사람이었다.
책과 텔레비전 그리고 인터넷은 하루 24시간 쉴새없이 양질의 정보를 쏟아 낸다. 이러한 정보는 막으려 한다 해도 막을수 있는게 아니었다. 버스를 타도, 지하철을 타도, 식당이나 터미널, 길거리, 집. 그 어디라도 안전지대는 없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는 반강제적으로 인간에게 주입된다. 그리고 기억된다. 그러다 보니 전문적이진 않다 하더라도 대략적인, 큰 흐름은 알고 싶지 않더라도 저절로 알게 된다.
그것이 고무대야를 생산하는 일일지도 모르고, 배를 타고 꽃게를 잡는 일일수도 있다. 아니면 우주선이 발사되는 원리나, 빙하가 녹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니면 어떤 법이 있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시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는지 등 해당 전문가처럼 확실하고 자세한 지식은 아닐 지언정 대략적으로 어떤식으로 이루어지고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알게 된다.
민준도 알고 있었다.
본인의 동의 없이 방송사에서 그를 촬영할수 있는지.
여권이 없는 그가 어떻게 해외에 있을수 있는지.
그리고 과연 기억의 끈김 없이 다른 장소에 와 있을수 있는지.
하지만 민준은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을 인정할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억지로 밝게 행동하며 불안감을 떨쳐 내기 위해 쉬지 않고 사람을 찾아, 문명의 흔적을 찾아 걸어야 했다.
어딘가에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거라 자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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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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