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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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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6.2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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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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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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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창단 (4)

DUMMY

신규 기사단원을 뽑는 테스트는 열흘에 걸쳐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총 응시인원은 6천 2백여 명.


작은 성시의 인구 전체와 맞먹는 엄청난 인원이 기사단에 입단하기 위해 본부를 찾았다.


6천 2백명 중에서 각성 능력자는 5백명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 5천 7백명은 모두 비각성 전형에 응시한 일반인이었다.


비텐과 탈리아는 5백명의 각성 능력자 중에서 430명을 불합격시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텐은 2백명을 합격시켰는데, 탈리아가 그 중에서 130명을 추가로 걸러냈다.


그녀는 사람을 너무 적게 뽑은 게 아니냐는 비텐의 항의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부단장입니다만."


"뭐? 야, 다시 붙어. 한 판 더 해!"


비텐의 성질이 폭발하자, 탈리아가 그녀로서는 보기 드문 멘트를 남겼다.


"농담입니다."


그녀는 비텐이 추가로 폭발하기 전에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선배도 아시겠지만 기사단의 자금 여건이 썩 좋지 않습니다. 마력의 원천을 마음껏 사먹일 형편이 아니니, 소수의 인원에게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한다.


나는 5천 7백명의 비각성 전형 응시자 중에서 딱 한 명만 합격시켰다.


돈이 아까워서 인재를 쳐낸 건 아니다.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예산이야 얼마든지 쓰겠는데, 선재(仙才)가 라슬로 한 명 뿐이더라고.


스승님께서 그러셨지. 사제의 연은 하늘이 맺어주는 거라는.


테스트가 마감되자, 나는 76명의 신규 기사단원과 성대한 만찬을 함께했다. 76명 모두 패기만만한 인재였으나, 그 중에서도 두 명이 유난히 특출나다는 인상을 주었다.


한 명은 '스루달'이라는 오거였다.


아니, 한 마리라고 해야 하려나?


오거는 3미터가 넘는, 막강한 힘과 식인 습성을 가진 흉악한 괴물이다. 도감상으로는 용암 정령과 동급인 3등급으로 분류된다. 그런 몬스터가 기사 시험을 보겠답시고 나타났으니 얼마나 큰 소란이 벌어졌겠어.


스루달이 가진 각성 능력의 이름은 '지식 포식'이었다. 잡아먹은 생물 중에서 가장 똑똑한 생물의 지능을 흡수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는 한 불운한 '생태학자'를 골수까지 발라먹었다가 아카데미의 학자에 준하는 수준의 지능을 갖추게 되었고, 몬스터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되었다.


"인간과 몬스터를 분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가치지향적이느냐는 것입니다."


스루달이 말했다.


"몬스터였던 시절의 저는 그저 눈앞의 먹잇감밖에 탐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다릅니다. 저는 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공자님의 가치에 헌신하고자 합니다."


"음······."


뭐라고 대꾸를 해줘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목이 아팠다. 머리가 까마득하게 높은 위치에 있어서, 눈을 맞추려다 경추가 부러질 지경이다.


"내 어떤 가치 말이냐?"


"명예와 충성, 정의입니다. 공고문에 잘 써두셨더군요."


스루달은 내가 뿌린 공고문의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유명한 전기 작가를 고용한 효과가 있었다!


스루달의 각성 능력은 지능을 올려주는 효과가 전부였다. 전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테스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심지어 조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이유는 순전히 오거의 육체적인 스펙 덕분이었다.


웬만한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버리고, 독과 질병의 침투가 불가능하며, 맨손으로 바위를 부셔버리는 엄청난 완력에, 지구력은 그 자신조차도 한계를 모를 정도다.


심지어 그는 인간의 지능을 가지게 된 이후 검술까지 익혔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의 이름은 '샤카'였다.


그녀는 올해 15살이 된, 짙은 다크서클이 눈에 띄는 자그만 소녀였다.


그녀도 라슬로와 마찬가지로, 각성 능력을 발현시키기 위해 어릴때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온 아이였다.


라슬로의 아버지는 귀족으로서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다면, 그녀를 학대한 자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샤카는 입에 담기도 어려울 갖은 고문을 당한 끝에 마침내 각성 능력의 발현에 성공했다.


그녀가 발현한 각성 능력의 이름은 '텔레파시.'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텔레파시는 샤카 말고도 몇 명이 더 발현에 성공했을 정도로, 희소성으로 따지자면 중하에 해당할만큼 가치가 낮았다.


게다가 전투의 목적으로도 결코 위력이 강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저 머릿속 생각을 전달하기만 할 뿐인 능력이니까.


샤카가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고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머릿속에 든 것을 잠깐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이 정신이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녀가 보내오는 사념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명예나 정의 같은 건 없어요."


샤카가 음울한 어조로 말했다.


"인간은 짐승이니까요.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그럴듯한 가치로 자신을 포장할 줄 안다는 것뿐이죠."


"샤카, 저는 세상을 여행하며 인간이 짐승보다 낫다는 증거를 숱하게 보았습니다."


스루달이 부드러운 톤으로 반박했다.


"그럼 제 머릿속을 1초만 들여다보실래요? 당신의 생각을 바꿀만한 게 이 안에 들어있는데."


샤카가 자기 머리를 검지로 가리키며 킥 웃었다.


정신상태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녀는 내가 내건 세 가지 가치인 명예, 충성, 정의 중에서 충성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기사가 될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했다.


샤카는 아바로 백작령에 기근이 들었을 때 성시에 유입된 난민 중 한 명이었다. 그때 루시안이 내 이름으로 음식과 옷가지를 나누어주었고,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대가 없는 호의라는 걸 겪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나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실제로 보고 나니 더 마음에 들었고,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사람이라면 날 학대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데······.


···왠지 자세히 알아서는 안 될 것 같다.



**



기사들에게 충성 서약을 받은 뒤 나는 다시 업무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단원을 선발하는 건 기사단 창단 과정에서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다음날 나는 모험가 길드의 마스터를 본부로 불러들였다. 마력의 원천의 공급 계약을 맺기 위함이었다.


"길드가 공급해드릴 수 있는 마력의 원천은 5등급과 6등급에 한정됩니다."


마스터는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이지적인 눈을 빛내며 내게 설명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마력의 원천의 가격이 많이 상승했습니다. 귀족분들이 앞다퉈 물건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이덴 공자님과는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지금 계약을 해주신다면 공급가를 매입가에 가깝게 낮춰드리겠습니다."


"내게 잘해주려는 이유는?"


"먼저 저를 잘 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크리스 공자님과의 거래는 썩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마스터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속으로 납득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혹시 마벨 형님은 거래할 때 어떤 모습이셨지?"


카로이에게 들었던 마벨 흑막설이 아직도 뇌리에서 맴돌았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선 얼마든지 가면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을 상대할 때, 그때는 숨겨둔 본성이 나올 것이다.


"마벨 공자님께서는 저희 길드와 공급 계약을 맺지 않으셨습니다."


마스터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길드와 공급 계약을 맺지 않다니? 마벨 형님도 개인 기사단을 거느리고 계시잖아."


"저희가 유일한 마력의 원천의 공급처는 아닙니다. 전문 헌터들을 거느린 상회도 있고, 암시장도 성행하니까요."


그는 마벨 형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듯했다. 나는 형님의 뒷조사는 이쯤 하기로 했다.


나는 그와 연 80만 바트에 달하는 공급 계약을 맺었다. 마력의 원천이라는 단 한 가지 항목에 기사단 예산의 40퍼센트가 할당되었다.


그가 물러가고 나자, 기다리던 다른 방문객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번 손님은 스무 살 가량의 젊고 순박한 청년이었다.


"반갑다, 카스파르."


"이, 이덴 전하를 뵙습니다."


청년이 떨리는 어조로 인사를 올렸다.


이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청년은 얼마 전, 날 지키기 위해 험상궂은 용병들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자기 힘으로는 벌레 한 마리 눌러 죽일 힘도 없으면서.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하녀가 뜨거운 차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두 잔씩 올려놓았다.


"아닙니다. 저는 뭐든지 가리지 않습니다."


카스파르가 차를 조금씩 홀짝였다.


좋은 군주가 되려면 논공행상이 정확해야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카스파르를 이곳에 부른 이유는 단순히 상이나 주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면 은인을 걸음하게 하는 실례는 범하지 않았겠지.


"제안은 생각해봤나?"


"예, 요 며칠 동안 한 숨도 주무시지 못하고 고민하셨습니다."


"대답은?"


"송구그럽습니다만, 루퍼트 할아버지께선 연로하신데다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제의해 주신 자리를 맡기엔 어렵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게 끝이 아닐 텐데."


그가 면목이 없다는 듯이 몸을 배배 꼬며 대답했다.


"대신 저는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저도 나름 오래 할아버지께 연금술을 배워온 몸이라······."


예상했던 대로의 흐름인지라, 나는 미소부터 지었다.


나는 스승님께 약학을 배웠지만, 지난 세계에서는 인삼이나 버섯 따위가 쓸 수 있는 재료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 세계는 재료의 폭이 차원이 다르더라고. 영물에서 채취한 수많은 부산물들,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각종 영과(靈果)와 영초(靈草)들······.


그것들을 잘 조합하면 우담화 저리 가라 할 단약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약학과 약초학에 통달한 전문가가 필요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많은 가게를 탐문하고 다녔지만, 40년 동안 연금술 외길만을 걸어온 루퍼트를 능가하는 연금술사는 없었다.


루퍼트는 자기 가게를 버리고 싶지 않을 테지만, 공작의 아들과 자기 손자를 이어줄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식구가 된 걸 환영하지."


나는 카스파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엉겁결에 내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았다.


"공자님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누는 무슨, 내가 오히려 덕을 볼 텐데. 공방은 3층에서 왼쪽으로 가면 나와. 이따 들러서 조합식을 같이 짜볼 테니, 먼저 가서 시설을 살펴보고 있으면 돼."


"예."


"아, 이것도 미리 말해줘야겠군."


카스파르의 표정이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있었다. 나는 그의 기대를 망칠 생각에 싱글벙글이었다.


"네게 맡길 일은 연금술이 아니라 연단술이다."


"···예?"


"이야기를 못 들었나보군?"


"어, 저는 연금술 공방의 마스터를 구하신다고만······.연단술이라는 말 자체를 생전 처음 듣···!"


카스파르는 당황한 나머지 찻물을 입이 아닌 코로 마셔버렸다. 그는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 연신 기침을 해댔다.


"쿨럭, 쿨럭! 죄송합니··· 크허헉!"


나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당황하지 않아도 돼. 연단술하고 연금술은 형제나 마찬가지니까. 방식은 비슷한데 목표가 조금 다르다고나 할까."


"여, 연단술의 목표가 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인공적인 마력의 원천을 만들어내서······."


나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말허리를 한 번 끊어주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카스파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연단술의 목표는 불로장생,


즉 신선이 되는 것이다.


그 장구한 여정의 중간에 절맥도 고쳐보고, 기사단도 강화해보고 하는 거지.


카스파르가 물러나자, 나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 호젓하게 찻잔을 기울였다.


창단을 준비하느라 지난 한 달 동안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조금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찻잔을 아무리 기울여도 찻물이 마셔지지 않았다.


······응?


나는 찻잔을 뒤집어서 들여다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찻물이 찻잔째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내 손과 함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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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화염 거인 (2) +6 24.06.19 2,658 82 12쪽
26 화염 거인 (1) +6 24.06.18 2,746 94 13쪽
25 해프닝 (0) +5 24.06.17 2,788 88 13쪽
» 창단 (4) +4 24.06.16 2,926 88 13쪽
23 창단 (3) +3 24.06.15 2,934 99 14쪽
22 창단 (2) +3 24.06.13 3,152 88 11쪽
21 창단 (1) +4 24.06.12 3,443 108 21쪽
20 수상한 애완동물 (3) +5 24.06.11 3,732 98 14쪽
19 수상한 애완동물 (2) +6 24.06.09 3,840 106 15쪽
18 수상한 애완동물 (1) +5 24.06.08 3,910 122 13쪽
17 경매 (0) +6 24.06.07 3,887 106 15쪽
16 용돈벌이 (3) +3 24.06.06 3,942 121 13쪽
15 용돈벌이 (2) +3 24.06.05 4,065 112 14쪽
14 용돈벌이 (1) +1 24.06.04 4,252 107 11쪽
13 가정 교습 (3) +3 24.06.03 4,490 129 10쪽
12 가정 교습 (2) +6 24.06.02 4,513 137 10쪽
11 가정 교습 (1) +3 24.06.01 4,671 136 10쪽
10 불과 얼음의 노래 (3) +6 24.05.31 4,956 132 11쪽
9 불과 얼음의 노래 (2) +6 24.05.30 4,958 158 12쪽
8 불과 얼음의 노래 (1) +4 24.05.29 5,099 14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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