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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발송 님의 서재입니다.

양코배기 조선인이 쓰는 임진록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행복발송
작품등록일 :
2022.10.31 11:39
최근연재일 :
2023.02.25 06:1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15,915
추천수 :
234
글자수 :
463,226

작성
23.02.24 06:00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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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97화. 거사(2)

DUMMY

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길이 나를 바라보았다.


“화장실 좀 안내하겠소?”


여종이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다. 샤미센의 가는 현 긁는 소리가 날카롭다.


여종이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부축했다. 난 그녀의 몸에 기댄 채 비틀거리며 걸었다.


“미안하오.”


난 칼이 걸려 있는 벽 가까이 다가갔을 때 여종을 창호 문으로 확 밀쳤다.


“어마!”


여종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창호 문으로 넘어졌다. 그 바람에 와장창 창호 문이 부서졌다.


“엇!”


그 바람에 문 뒤에 웅크리고 있던 닌자 두 명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순간 나는 몸을 날려 거치대에 걸린 사무라이 칼 두 자루를 잡았다.




시중을 들던 여종이 머리에 꽂은 비녀를 뽑아 내게 던졌다. 그 동작이 너무 날렵했다. 비녀가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나를 향해 날아왔다.


“쨍강”


난 칼로 비녀를 되받아쳤다. 그러나 연속적으로 비녀 서너 개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이런 젠장···. 이럴 시간이 없는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수길이 천천히 방을 걸어 나갔다.


“멈춰라!!”


내가 수길을 향해 몸을 날리자 게이샤 두 명이 나를 막아섰다. 샤미센을 꺾자 그 속에서 작은 단검이 나왔다.


“이얏!”


게이샤가 양쪽에서 나를 향해 공격해 왔다. 난 살짝 몸을 비틀어 칼로 게이샤를 밀쳐내며 수길이 달아난 방향으로 내달았다.


“어딜.”


게이샤가 단검을 찌르며 앞을 막았다. 난 그녀들을 죽이지 않고는 이 길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하오···. 나를 원망하지 마시오.”


난 손끝에 정을 두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발초심사세였다. 칼은 사정없이 게이샤의 손목을 쳤다.


“어맛!”


이어서 용약일자세로 다른 게이샤의 가슴을 노렸다.


“으윽”


두 게이샤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미 수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젠장···.”


다급해졌다. 잘못하다가는 수길을 잡기는커녕 내가 잡힐 판이었다.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나는 죽은 게이샤를 뛰어넘어 수길이 달아난 복도로 접어들었다.



***



“이얏! 죽어라!!”


복도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격자문이 부서지면서 닌자 두 명이 칼을 빼 들고 나를 덮쳤다.


“챙강 챙강”


난 급하게 칼 하나로 한 명을 막아내고, 다른 칼로 닌자를 내리쳤다.


“챙”


닌자가 몸을 회전하며 내 칼을 피했다. 이어 내 허리를 향해 칼을 베어 들어왔다.


이런 지독한 놈들···.


닌자들의 검법은 동진어귀(同歸於塵)의 필살기였다. 자신의 죽음으로 주군을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가라!”


난 손목의 회전을 이용해 칼 끌에 힘을 줘 닌자의 목을 찔렀다. 나 역시 손끝에 정을 둘 여력이 없었다.


“억”


닌자 한 명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러나 또 한 명의 닌자가 내 등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이런···.”


피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 수길을 놓친다면 다시는 그에게 접근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난 달려드는 닌자를 향해 쌍칼을 휘둘렀다. 닌자가 내 칼을 피해 좌로 몸을 날렸다.


“가라!”


난 왼쪽의 닌자를 향해 빠르게 왼발로 땅을 박차고 올라 닌자의 머리 위로 칼을 뻗었다.


갑작스러운 내 변화된 초식의 전개에 복면 뒤에 감춰진 닌자의 두 눈에 공포와 당혹함이 어렸다.


난 공중에서 날아가는 자세를 취하면서 부드럽지만 아주 빠르게 칼을 직선으로 뻗었다.


금계독립세(金鷄獨立勢)


황금 닭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지면을 벅차올라 약이 바짝 오른 뱀의 모가지를 두 발로 움켜쥐는듯한 검법.


단순하면서도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초식이었다.


“어엇!!”


닌자가 뒤로 주춤 몇 걸음을 물러났다.


나의 칼이 워낙 빠르고 정확하게 찔러 들어오는 바람에 칼을 쳐내지도 손으로 막아내지도 못하고 그냥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난 그대로 칼을 뉘어 닌자의 목을 베었다.


”으윽.“


닌자의 두 눈에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생생했다.



***



복도 끝은 좌우로 이어졌다. 난 좌우를 둘러 보았지만, 데칼코마니처럼 양쪽 복도가 똑같았다.


판단을 해야 했다.


좌측이야···.


좌측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그래···. 직감을 믿자.


난 그대로 좌측 복도로 내달았다.


그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다가왔다. 역시 검은 복장으로 휘감은 닌자가 공격해 왔다.


늦었다.


휙휙휙


난 달려드는 닌자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닌자도 만만찮았다. 몸을 돌려 금방 내 앞을 가로막았다.


”요요요요요요“


닌자가 괴성을 지르며 칼을 왼쪽에 비껴들고 내게 달려왔다.


이런······. 이놈들은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르나 보네.


닌자가 쓰는 살수 역시 자기의 죽음을 담보로 상대방도 죽이겠다는 검법이었다. 닌자의 괴성은 그런 자기의 두려움을 없애는 주문 같은 소리였다.


이 미친놈들···. 가미카제(神風)가 이 당시에도 있을 줄이야.


그러나 여기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닌자를 죽이려면 적잖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얏!“


난 닌자의 옆을 베는 척하면서 팔을 비틀어 닌자의 팔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날려 복도 끝을 향해 뛰었다.


예측지 못한 나의 변칙 공격에 팔목이 잘린 닌자가 품 안에서 대나무 대롱을 꺼내 입에 대고 훅하고 불었다.


”피융“


”윽“


작고 긴 화살촉이 내 허벅지에 꽂혔다. 다급한 마음에 적이 암기를 쓰리라는 것을 간과했다.


아. 치사한 자식···. 암기를 쓰다니.


닌자가 다시 바람 총을 입에 대는 것이 보였다.


한 번 맞은 것도 약오르는데 또······? 그건 안되지.


난 들고 있던 칼 하나를 인자의 가슴을 향해 던졌다.


”으악“


닌자가 가슴에 박힌 칼을 붙잡고 앞으로 쓰러졌다.


”으윽.“


다리의 힘이 쭉 빠져버렸다.


생각보다 허벅지에서 출혈이 심했다. 그리고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닌자가 쏜 화살촉에 미혼향(迷魂香)을 바른 것 같았다.


정신 차려!! 조금 있으면 적들이 또 몰려올 거야!!


일단 화살부터 제거해야 할 것 같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기절할 만큼 아플 거야.


”하나. 둘. 셋.“


난 화살을 힘껏 뽑았다.


”으헉······!“


삼각 화살촉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솟아났다. 다행히 동맥을 건드리진 않은 것 같았다. 난 서둘러 일어났다.


”으윽···.“


그러나 한 걸음도 떼기 전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괜찮겠어?


어디선가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찾는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여기 저곳에서 어지럽게 들려왔다.


”으음···.“


난 조심스럽게 입고 있던 옷을 찢어 허벅지를 꽉 묶었다. 어차피 살아서 나갈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죽는다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으윽······.“


기둥에 몸을 기댔다. 머리가 복잡하게 움직였다.


정신 차리자···. 제대로 판단을 해야 한다.


어쨌든 수길은 이 혼마루 내에 있다. 다른 출구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관문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쥐새끼 같은 놈.


아마 어느 방구석에 숨어서 부하들이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내가 먼저 수길을 찾아야 한다.



***



갑자기 어지럽던 발소리가 사라졌다. 난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느꼈다.


뭐지? 놈들이 다 사라진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불쑥


복도 끝에 있는 방에서 한 무사가 불쑥 나타났다. 시커먼 두 눈동자가 나를 쏘아보았다.


젠장···.


보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허벅지의 상처와 미혼향 탓으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왼발이 조금씩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뭐야···! 어쩌려고?


난 단전에 힘을 모으고 아픈 왼발로 바닥을 박차고 올랐다. 그리고 무사의 목을 향해 칼을 뻗었다.


설마 다친 다리로 박차고 오르리라고는 생각 못 했던 무사가 다급하게 내 칼을 쳐냈다. 내가 바라던 바였다. 무사의 허리가 비었다. 지금이다.


허리.


난 달려가는 탄력을 이용해 뒤돌려차기로 무사의 어깨를 쳤다. 무사가 칼을 위로 막았다. 이어지는 동작으로 난 칼로 무사의 허리를 베었다.


”억“


무사가 허리를 부여잡고 상체를 숙였다. 난 그대로 무사의 목을 베었다.


우당탕


무사가 쓰러지며 창호 문을 부수었다. 다다미 위로 붉은 선혈이 낭자했다. 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쪽이다!“


다시 성안이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난 달리듯 복도 끝을 향해 달리면서 좌우의 창호 문을 칼로 깨부쉈다.


우당탕


와장창


어느 방에 닌자가 숨어 있을지 모를 바에야 차라리 이 방법이 더 유리할 것만 같았다. 속전속결.


지금은 시간 단축이 급선무였다.


”피융······. 팍“


표창이 날아와 내 옆의 기둥에 박혔다. 한 발짝만 빨랐어도 머리에 꽂혔을 것이다.


”이런 젠장.“


서너 걸음 앞에서 손에 표창을 든 무사가 튀어나왔다. 난 달리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내달리며 무사를 향해 칼을 던졌다.


”헉“


표창을 손에 쥔 무사의 가슴에 칼이 관통을 했다. 무사가 고목이 쓰러지듯 옆으로 쓰러졌다.


”이쪽이다!“


또다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삐리리리


난 좁은 복도를 내달리며 무사의 가슴에 꽂힌 칼을 잡아뺐다. 붉은 피가 칼이 빠진 자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무사의 피가 내 온몸을 적셨다.


도대체 어디 숨은 거냐······.


피비린내가 코를 자극했지만, 닦아낼 겨를이 없었다.


”쉭“


갑자기 옆에서 칼이 훅 치고 들어왔다. 난 몸을 비틀었지만, 옆구리를 베이고 말았다.


”으윽···.“


통증과 함께 몸이 휘청거렸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몸이 기억했던 초식이 펼쳐졌다. 몸을 비튼 상태로 한 걸음 더 내디디며 칼을 휘둘렀다.


”으악“


칼을 가슴에 정통으로 맞은 무사가 창호 문을 부여잡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와장창창


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무사들의 외침이 가까워졌다.


”저쪽이다!“


삐리리리리


난 방향을 바꿔 복도 오른쪽으로 내달았다.


“휘익”


다시 앞쪽에서 무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칼이 치고 들어왔다.


“어딜.”


난 칼을 안으로 말아 감아 상대의 칼을 쳐냈다. 칼날이 부딪치며 불꽃이 일었다.


“가라!”


이어진 흐름으로 내 칼은 상대의 목을 베었다.


삐리리리




<97화. 거사(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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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9화. 거사(4) 23.02.25 31 0 12쪽
98 98화. 거사(3) 23.02.25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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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6화. 거사(1) 23.02.23 37 0 11쪽
95 95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23.02.22 33 0 11쪽
94 94화. 오다노부나가의 몰락 23.02.21 34 0 10쪽
93 93화. 혼노지의 변 23.02.20 34 0 10쪽
92 92화. 속고 속이는 게임 23.02.18 38 0 10쪽
91 91화. 운명의 날 23.02.17 37 0 10쪽
90 90화. 이간계(離間計) 23.02.16 37 0 11쪽
89 89화. 품을 수 없다면 베야지. 23.02.15 38 0 11쪽
88 88화. 물고 물리는 정세 23.02.14 41 0 9쪽
87 87화. 첫 번째 기회 23.02.13 44 0 10쪽
86 86화. 신뢰 쌓기 23.02.11 48 1 11쪽
85 85화. 어린진(魚鱗陳) 23.02.09 49 1 11쪽
84 84화. 책사 23.02.08 51 1 10쪽
83 83화. 도요토미히데요시 23.02.07 47 1 11쪽
82 82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23.02.06 57 1 10쪽
81 81화. 이이제이(以夷制夷) 23.02.04 61 1 10쪽
80 80화. 벽제관 전투(3) 23.02.03 62 1 10쪽
79 79화. 벽제관 전투(2) 23.02.02 52 1 10쪽
78 78화. 벽제관 전투 23.02.01 50 1 10쪽
77 77화. 명의 배신 23.01.31 56 1 10쪽
76 76화. 비격진천뢰 23.01.30 52 1 11쪽
75 75화. 평양성 전투 23.01.28 59 1 11쪽
74 74화. 이여송의 출전 23.01.27 54 1 12쪽
73 73화. 명의 원군 23.01.26 55 1 10쪽
72 72화. 왜에 간 사명대사 23.01.25 70 0 10쪽
71 71화. 일체유심조 23.01.20 8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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