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행복발송 님의 서재입니다.

양코배기 조선인이 쓰는 임진록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행복발송
작품등록일 :
2022.10.31 11:39
최근연재일 :
2023.02.25 06:1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16,236
추천수 :
235
글자수 :
463,226

작성
23.02.17 06:00
조회
39
추천
0
글자
10쪽

91화. 운명의 날

DUMMY

노무라가 사무라이들을 피해 뒷문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고수의 사무라이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놈! 어딜···!”


사무라이 한 명이 노무라의 등짝을 걷어찼다.


“어이쿠.”


노무라가 땅바닥에 나뒹굴자 십여 명의 사무라이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노무라를 결박했다.


“안된다! 어서 풀어줘라···!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다.”


츠키야마도노는 사무라이들을 막아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노무라는 사무라이들에게 붙잡혀, 오다 노부나가의 병영으로 끌려갔다.


오다 노부나가의 병영.


병영 중앙에 노부나가가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양쪽으로 부장과 장수들이 늘어섰다.


병영 바닥에 한 무장이 엎드려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아들 노무라가 저지른 일을 사과하러 온 것이다. 싸움에서 패배한 비참함이 가시기도 전에, 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감히···. 내가 그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도 그런 난동을 부리다니.“


오다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파워 게임이 극렬하게 부딪치는 자리였다. 현재 상황은 이에야스의 완벽한 KO패.


“장군······. 제 아들놈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에야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죽어야지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아버지 오다 노부나가 곁에 앉아 있던 며느리 도쿠히메가 더 난리였다. 시아버지의 사과에 앙칼진 목소리로 지청구를 날렸다.


저런···. 못된 년. 그래도 지 서방이고, 지 시부모인데···.


생각 같아서는 욕을 한바탕 퍼붓고 싶었지만, 지금은 배알이 뒤틀려도 참아야 했다.


“도쿠히메야······. 한 번만 용서해다오. 그래도 네 시아버지가 아니냐?”


시아버지 이에야스가 며느리에게 통사정했다.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하든 나는 살아야 한다.


잘못하면 아들과 아내뿐만 아니라 자기도 죽을지 모른다. 이에야스의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좋소···. 내 장군의 목숨은 보장하리다.”


큰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노부나가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도쿠히메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감정을 드러냈다. 오다 노부나가가 딸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나지막이 귀엣말을 건넸다.


“걱정 말거라. 나도 다 생각이 있다. 네가 생각하는대로 해주마.”


노부나가의 머릿속에 잔인하면서도 상대를 완전히 밟을 방법이 떠 올랐다. 그런 생각에 머물자 이에야스를 바라보는 미소에 음흉함이 깃들었다.


“장군의 목숨은 살려주겠지만, 당사자인 노무라와 그를 잘못 훈육한 그의 어미는 장군이 처리하시오.”


땅에 납작 엎드려 있던 이에야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뱀처럼 차가운 오다 노부나가의 시선과 마주쳤다.


“왜? 못하겠소?”


싫다 좋다가 아니고 하겠냐 못하겠느냐다. 이에야스가 며느리 도쿠히메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흥!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갔다.


도쿠히메가 콧방귀를 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이에야스가 다시 오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택한다며 자기냐 가족이냐 일뿐이었다.


“알았소···! 장군. 무슨 말인지 알겠소.”



***



이에야스가 힘없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포박을 당한 채 마당에 무릎 꿇고 있던 노무라가 소리쳤다.


“아버지······! 어떻게 됐습니까?”


“여보···. 우리 좀 살려 주시오.”


아내와 아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이에야스가 풀썩 댓돌에 주저앉았다.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뒤를 따라온 오다의 부하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빨리 처리하시죠···. 다이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주저하는 이에야스에게 사무라이 패거리들이 은근히 협박이었다. 처자식을 쳐다보는 이에야스의 눈에 망설임이 가득했다.


세상에···. 자기 살자고 처자식을 버린다?


그러나 처자식을 살리자고 자기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야스가 무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들이 대신해주게···.”


무사들이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에야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


“여보!!”


노무라와 츠카야마도노의 애절한 외침이 귀를 때렸지만, 이에야스는 성큼성큼 걸어 집을 나갔다.


“자결하시오.”


무사의 말에 노무라와 츠카야마도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버지!!”


“여보······! 살려주시오.! 우리 아들만이라도······.”


사무라이 왕초가 망설이지 않고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집행하라.”


무사 한 명이 츠키야마도노의 등 뒤에서 흰 비단을 목에 휘감았다.


“어억”


츠키야마도노가 두 손으로 비단을 움켜쥐고 발버둥을 쳤지만, 무사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질질질질


“어머니!!”


노무라가 피눈물을 뿌리며 소리쳤지만, 자기 몸조차 가늘 수 없는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목놓아 어머니를 부르는 것밖에 없었다.


무사가 츠키야마도노의 목을 휘감은 비단을 대들보에 걸었다.


“당겨라”


무사 두 명이 비단을 끌어당겼다. 츠키야마도노의 몸뚱어리가 허공에 걸렸다.


“컥컥”


단절적인 숨을 몇 번 몰아쉬던 츠키야마도노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축 처졌다.


한때 열도를 호령하던 공주 츠키야마도노는 어리석은 아들과 남편 때문에 비참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노무라가 마지막으로 내던진 말이었다. 무사가 긴 칼을 들어 노무라의 목을 내리쳤다.


“억”


단말마 같은 비명과 함께 노무라의 대가리가 땅바닥에 뒹굴었다. 그 위로 붉은 핏물이 빗물처럼 흩뿌려졌다.



***



“알렉 군사!!”


수길이 내 이름을 부르며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오모테 관을 들어왔다. 가벼우면서도 들뜬 걸음이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난 시치미를 딱 떼고 수길에게 물었다. 수길이 맞은편다다미에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 절제된 행동을 하던 수길이 오늘은 완전히 긴장이 풀린 모습이었다. 그만큼 마음의 무게를 털어낸 것이다.


“츠카야마도노와 노무라가 죽었다는군.”


난 다관을 들어 말차를 수길의 잔에 따르며,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다가 이에야스를 살려주었나 봅니다.”


수길이 찻잔을 들었지만, 입에 대지는 않았다.


“그대가 예상했던 그대로가 아니오?”


“예상은 했지만···.”


난 말끝을 흐렸다. 결론은 항상 수길이 먼저 내리도록 여운을 두었다.


“병사들을 오다 노부나가에게 넘기고, 자기의 영지인 미카와로 도망갔다는군.”


수길이 손바닥 안에서 찻잔을 천천히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약간의 두려움도 비쳤다.


저 영감탱이······. 속으로 날 재고 있겠지. 이제 내가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무섭지···.


피식.


나는 아주 가볍게 웃었다. 채신머리가 없을 정도로···.


물론 그런다고 저 여우 같은 수길을 속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혼란스럽게는 만들 것이다.


수길은 지금 망설이고 있었다.


나를 믿고 계속 군사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후환이 될지도 모르는 싹을 잘라 버릴지···.


바보 아니면 천재. 적 아니면 아군.


매사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수길에게 나는 적 아니면 아군일 것이다.


자기가 취할 수 없으면 베어버릴 것이다. 차라리 베어버리지, 남에게는 절대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군요.”


오다와 이에야스의 이간계를 성공시킨 나의 계략은 내게는 양날의 칼이었다.


제갈량이 될지, 아니면 마속이 될지는 오로지 자만심과 자존심으로 가득 찬 수길의 마음에 달렸다.


난 이런 상황이 올 것이란 걸 알면서도 이 방법 외에는 달리 묘책이 없었다.


수길의 신뢰를 얻으려면 수길에게 칼을 쥐고 있다고 믿게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



“아쉽군요······. 이에야스의 힘을 줄였는데, 노부나가만 어부지리로 힘을 더했군요.”


실망해 하는 내 말에 수길이 큰소리로 웃었다.


“깔깔깔깔”


성공이다.


나의 발연기같은 행동이 수길의 의심 가득한 마음을 한 번은 더 머뭇거리게 만들어 주었다.


“깔깔깔깔······. 새옹지마라고. 지금의 사태가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허허실실. 난 나름의 생존 전략을 구사했고, 성공한 것이다.


와우···. 저 영감탕구 속여 먹는 재미가 쏠쏠한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건은 일단은 노부나가가 득이고, 히데요시는 변함없고, 이에야스가 몰락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안다.


노부나가의 득이 그를 자만심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


그 후에 히데요시가 득을 취할 것이고, 이에야스는 여전히 찌그러져 있을 터였다.


그러나 최후에 웃는 자는 누구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나밖에 모른다.


아직은 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역사가 나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건지, 내가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자. 다음은···. 어떻게 전개할 생각이오?”


수길의 갈라진 목소리가 내 생각을 멈추게 했다. 하긴 게임은 중간에서 멈출 수는 없는 법.


어떻게 전개‘될’ 것이 아니라, 전개‘할’이었다···. 전개 할!! 할할할···.


이런 젠장!···! 이 지독한 영감탱이 최대한 우려먹는구나.


가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보다 단순한 면이 있지요.”




<91화. 운명의 날> 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양코배기 조선인이 쓰는 임진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0 100화. 에필로그 23.02.25 65 0 11쪽
99 99화. 거사(4) 23.02.25 35 0 12쪽
98 98화. 거사(3) 23.02.25 27 0 11쪽
97 97화. 거사(2) 23.02.24 32 0 11쪽
96 96화. 거사(1) 23.02.23 39 0 11쪽
95 95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23.02.22 34 0 11쪽
94 94화. 오다노부나가의 몰락 23.02.21 36 0 10쪽
93 93화. 혼노지의 변 23.02.20 35 0 10쪽
92 92화. 속고 속이는 게임 23.02.18 39 0 10쪽
» 91화. 운명의 날 23.02.17 40 0 10쪽
90 90화. 이간계(離間計) 23.02.16 38 0 11쪽
89 89화. 품을 수 없다면 베야지. 23.02.15 41 0 11쪽
88 88화. 물고 물리는 정세 23.02.14 43 0 9쪽
87 87화. 첫 번째 기회 23.02.13 45 0 10쪽
86 86화. 신뢰 쌓기 23.02.11 51 1 11쪽
85 85화. 어린진(魚鱗陳) 23.02.09 52 1 11쪽
84 84화. 책사 23.02.08 54 1 10쪽
83 83화. 도요토미히데요시 23.02.07 49 1 11쪽
82 82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23.02.06 58 1 10쪽
81 81화. 이이제이(以夷制夷) 23.02.04 62 1 10쪽
80 80화. 벽제관 전투(3) 23.02.03 64 1 10쪽
79 79화. 벽제관 전투(2) 23.02.02 55 1 10쪽
78 78화. 벽제관 전투 23.02.01 53 1 10쪽
77 77화. 명의 배신 23.01.31 58 1 10쪽
76 76화. 비격진천뢰 23.01.30 53 1 11쪽
75 75화. 평양성 전투 23.01.28 60 1 11쪽
74 74화. 이여송의 출전 23.01.27 58 1 12쪽
73 73화. 명의 원군 23.01.26 57 1 10쪽
72 72화. 왜에 간 사명대사 23.01.25 72 0 10쪽
71 71화. 일체유심조 23.01.20 87 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