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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발송 님의 서재입니다.

양코배기 조선인이 쓰는 임진록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행복발송
작품등록일 :
2022.10.31 11:39
최근연재일 :
2023.02.25 06:10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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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0
추천수 :
234
글자수 :
463,226

작성
23.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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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6화. 신뢰 쌓기

DUMMY

풍신수길...


과연 일국의 우두머리다웠다. 우스갯말처럼 쇼군의 칭호를 고스톱 해서 딴 게 아니었다. 다른 장수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수길은 곧바로 알아챘다.


“그래···. 일만 명이 삼만 명을 둘러싼다며, 오히려 3대 1의 싸움이 되겠구나.”


수길이 만면에 웃음을 지우질 못했다.


“그렇습니다. 어린진으로 운용하다 약간의 변화를 준다면···. 금상첨화가 되겠지요.”


“변화를 준다?”


“그대로 돌진해서 적의 진영을 둘로 나눠 버리는 겁니다.”


수길이 무릎을 '탁' 쳤다.


“스바라시이!!”


수길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렇게 되면···. 이에야스는 겨우 5천여 명의 병사들만 가지고 싸우는 꼴이 되겠구나.”


“허걱···. 그런 병법이 있었다니?”


왜 어린진을 펴야 승리를 할 것이란 내 전략을 듣고 나서 수길의 부하들이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그것참.... 절묘한 묘수다.


이기면 수길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고, 져도 그다지 아쉬울 게 없는 싸움이다.


오케이···.


수길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뭐라고? 적들이 어린진을 편다고?”


부장의 보고를 받은 이에야스가 반문했다. 부장이 이런저런 말을 이었다.


“아니다···. 내가 직접 봐야겠다.”


꾀가 많고 의심 많은 수길이 엉뚱하게 어린진을 편다고?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야스가 뛰다시피 장군대로 올라갔다.


“와와와와”


정말 타가하라 평원에 다케다 군사들이 두꺼운 일렬종대로 진용을 짜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눈을 씻고 바라보아도 틀림없는 어린진이었다.


“저런···. 어리석은 놈들 봤나.”


이에야스의 눈꼬리에 웃음이 펴고, 좁은 하관이 더욱 빨라졌다.


흐흐흐흐···. 이에야스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구나. 죽을 자리도 살피지 못하다니.


“오늘로써 이 싸움은 끝이 나는구나. 완전히 박살을 내주마.”


이에야스의 확신에 찬 말에 부장이 화들짝 놀랬다. 이에야스의 성급한 성격을 잘 아는 그였다.


“장군···. 안됩니다. 노부나가의 부대를 기다리셔야 합니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노부나가의 부대와 협공으로 적을 밀어붙여야 한다. 수적 열세를 상쇄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무슨 말이냐···? 기다리다니? 그러다 저놈들이 실수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어쩌려는 거냐!”


“아니···. 그래도.”


“너도 저놈들이 하는 꼴을 보고있지 않느냐?”


부장은 혼란스러웠다. 이에야스 말이 아니더라도 저건 누가 봐도 하책(下策)이었다. 이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분명해 보였다.


“장군···. 아무리 그래도.”


부장은 일만의 군사로 삼만의 군사와 맞선다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출전 준비를 해라!”


이에야스의 명령에 부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어떤 전술을 펴실 것인지요······.”


“학익진을 펴라.”


부장은 이에야스의 생각을 알았다. 일렬로 쳐들어오는 적들을 그물처럼 둘러싸는 공격을 하려는 것이다.


그래···. 좋은 병법이다. 학익진이라면 적을 격파할 가능성이 크다.


그제야 부장은 긴장이 다소 풀어지는 것을 알았다.



***



둥둥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이에야스의 군사들이 총과 칼로 무장하고 횡으로 부대를 펼쳤다. 그래도 다케다군은 여전히 어린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저놈들 정말 이상한 놈들이구나. 우리가 학익진을 펴는 걸 보면서도 어린진을 고집하다니···.”


출전을 앞둔 이에야스가 다케다 군들의 움직임을 보고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글쎄 말입니다. 혹시···.”


부장이 말끝을 흐렸다. 속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라니···? 쯧쯧쯧. 싸움을 앞둔 장수가 어찌 그 모양이냐. 적이지만 저 신겐을 보아라. 쯧쯧쯧.”


신겐은 ‘수길의 사냥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무식할 정도로 저돌적이고 무모한 장수다.


하긴···. 신겐이라면, 어린진이 아니라도 돌격하겠지.


부장이 말고삐를 손에 감으며 혼자만의 생각을 했다.




“돌격하라”


다케다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전력 질주하며 타가하라 평원을 내달았다.


“포위하라”


이에야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전력 질주하며 다케다 군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싸움의 양상이 묘했다.


한쪽 군사는 줄곧 앞으로 달려갔고, 한쪽 군사들은 그들을 에워쌌다.


“돌격하라!”


다케다 군은 무모하리만큼 앞으로만 달렸다. 마치 백미 터 달리기라도 하는 듯했다.


다케다군의 전열이 백여 미터를 이었고, 그를 덮어싸는 이에야스의 군도 자연히 늘어져 갔다.


자연히 양쪽 군사들이 맞닿은 전선이 길어졌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전진하라!”


마치 쫓기고 쫓는 것 같은 양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점점 전선이 단순해지고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이에야스의 군대가 다케다군을 에워싼 것 같았지만, 전선이 확대되면서 그물의 구멍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였다.


“조금만 더 진격하라!”


마침내 다케다 군이 이에야스 군을 중간을 뚫었다. 그 바람에 이에야스의 군대는 양쪽으로 분리되어 버렸다.


“성공이다!!”


다케다가 전진하던 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바꿨다.


“공격하라!”


다케다의 명령이 떨어지자 줄곧 달리던 병사들이 방향을 바꿔 이에야스의 병사들과 맞서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공격!!”


둥둥둥둥


양쪽 진영에서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와와와와


챙. 챙. 챙. 챙



***



개전 초기에는 이에야스 군의 우위였다. 그러나 전선이 양분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이 되어버렸다.


일만 명의 군대가 오천 명으로 쪼개지고, 명령체계가 끊겨버렸다. 순식간에 이에야스 군은 우왕좌왕하며 난맥을 드러냈다.


“공격하라!”


다케다 군은 밀집된 세력을 형성하며 이에야스 군을 몰아붙였다.


“이얏!”


“으윽. 억”


“챙챙챙챙”


시간이 지날수록 이에야스의 군이 뒤로 밀렸다. 전술적인 면에서 완벽한 실패였다.


“으악”


“악”


“챙챙챙챙”


칼과 창이 부딪는 소리가 타가하라 평원에 가득했지만, 쓰러지는 것은 이에야스의 군사였다.


반나절이 지났을 때 이미 승패는 결정이 났다.


이에야스의 완패였다.


부장이 쓰러졌고, 많은 가신이 쓰러졌고, 결국 이에야스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거점인 하마마츠 성으로 도피해야만 했다.



***



“깔깔깔깔”


수길의 경망스러운 웃음소리가 지요다성의 오모테관(館)을 뒤흔들었다. 다케다의 승전에 대해 보고를 받은 뒤였다.


“양이가 제법이군.”


웃음을 멈춘 수길이 나를 바라보며 한 마디 던졌다. 그의 목소리에 이제는 의심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같이한 수길의 장수들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들이 뒤엉겼다. 우습게 보았던 양이에게 완전히 체면을 구긴 것이다.


어떻게 이에야스가 어린진에 대해 학익진으로 대처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미친놈들이지···. 쪽수가 많은 놈은 어린진을 펴고, 쪽수가 적은 놈은 덩달아 학익진을 펴다니···.


그 많은 장수 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싸움의 양상이었지만, 그건 우연이 아니라 양이의 전략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길이 부하 장수들을 물러가게 했다. 민망스러운 부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남은 건 수길과 사명 대사. 그리고 나 세 명뿐이었다.


사명 대사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승은 이만 가볼까 합니다.”


왜에 온 목적을 마무리하겠다는 의미였다. 그걸 모를 수길이 아니었다. 수길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명 대사를 바라보았다.


“조선인 포로 이 백 명을 돌려보내겠소.”


그 정도면 귀국 선물로 충분하지 않소이까?


“하하하하하···. 장군께서는 이 소승이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기를 바라는가 봅니다.”


웃기는 짜장 같은 소리 하지 말거라.


“좋습니다. 대사의 면도 있으니···. 천 명을 돌려보내지요.”


별다른 노력 없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소이까.


“아닙니다. 소승은 단 한 명의 조선인도 이곳에 남겨 두고 가지는 않을 겁니다.”


수길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사명 대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잔잔한 미소를 띠며 염주를 돌렸다.


수(數) 싸움이었다. 두 사람의 기 싸움은 긴긴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그동안 수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



“자박자박”


기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벽에 걸린 등에 불을 밝혔다. 어느새 저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수길과의 수 싸움이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대사···. 내가 졌소.”


수길이 혼자 오모테관으로 걸어 들어왔다.


“좋소. 조선인들은 전부 돌려보내겠소···. 다만 도공(陶工)들은 못갑니다.”


사명 대사가 염주 알을 굴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도공들은 왜?”


“조선 도자기를 배우고 싶소.”


한참을 생각하던 사명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그것 역시 우리들의 업이겠지요.”




“알렉 시주···. 몸조심 하시구료.”


따뜻한 훈풍이 불어오던 날. 사명 대사는 포로로 잡혀 온 조선인들을 데리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아이구···. 대사님. 고맙습니다.”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조선인 포로들이 사명 대사에게 몰려들었다.


“나무아미타불···. 다 부처님의 은덕입니다.”


“이제 고향으로 간다!”


“엉엉엉엉”


고향으로 간다고 풍족한 삶이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포로로 잡혀 왔던 조선인들은 풀려났다는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좋아했다.


흐유···. 아무리 업(業)이라고 하지만···.


사명 대사는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단장(斷腸)의 아픔을 속으로만 삭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다 부처님의 뜻인 거야···. 아미타불.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렇게 자신의 처지를 위로해봐도, 그건 솔직히 합리화이고 자기변명이었다.


적국의 아가리에 나만 홀로 남겨 둔 채 혼자 고국으로 가야만 하는 이 상황을 아무리 속세를 떠난 몸이라고 다독여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아무리 수길이 나를 신뢰한다 해도 적국은 변하지 않는 적국.


아하···! 이것이 다 위정자들의 못난 탓인데, 고초를 겪는 건 백성들이니.


당장 지금 죽음의 위협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적국에 나를 혼자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언제까지 끌탕만 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귀국할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대사님.”




<86화. 신뢰 쌓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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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3화. 혼노지의 변 23.02.20 34 0 10쪽
92 92화. 속고 속이는 게임 23.02.18 38 0 10쪽
91 91화. 운명의 날 23.02.17 37 0 10쪽
90 90화. 이간계(離間計) 23.02.16 37 0 11쪽
89 89화. 품을 수 없다면 베야지. 23.02.15 38 0 11쪽
88 88화. 물고 물리는 정세 23.02.14 42 0 9쪽
87 87화. 첫 번째 기회 23.02.13 44 0 10쪽
» 86화. 신뢰 쌓기 23.02.11 49 1 11쪽
85 85화. 어린진(魚鱗陳) 23.02.09 49 1 11쪽
84 84화. 책사 23.02.08 52 1 10쪽
83 83화. 도요토미히데요시 23.02.07 47 1 11쪽
82 82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23.02.06 57 1 10쪽
81 81화. 이이제이(以夷制夷) 23.02.04 61 1 10쪽
80 80화. 벽제관 전투(3) 23.02.03 62 1 10쪽
79 79화. 벽제관 전투(2) 23.02.02 52 1 10쪽
78 78화. 벽제관 전투 23.02.01 51 1 10쪽
77 77화. 명의 배신 23.01.31 56 1 10쪽
76 76화. 비격진천뢰 23.01.30 52 1 11쪽
75 75화. 평양성 전투 23.01.28 59 1 11쪽
74 74화. 이여송의 출전 23.01.27 54 1 12쪽
73 73화. 명의 원군 23.01.26 55 1 10쪽
72 72화. 왜에 간 사명대사 23.01.25 70 0 10쪽
71 71화. 일체유심조 23.01.20 8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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