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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발송 님의 서재입니다.

양코배기 조선인이 쓰는 임진록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행복발송
작품등록일 :
2022.10.31 11:39
최근연재일 :
2023.02.25 06:1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16,237
추천수 :
235
글자수 :
463,226

작성
23.0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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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94화. 오다노부나가의 몰락

DUMMY

혼노시의 별당에서는 흔하지 않은 대국(對局)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대의 명수(名手)인 산사(算砂)와 리겐(利玄)이 바둑을 두었다.


바둑을 구경하면서도 노부나가의 머릿속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이에야스를 제압한 뒤 모든 정세(政勢)가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노부나가의 마음이 흡족했다.


그러다 모리 가문과의 권력 다툼 문제에 생각이 다다랐다. 그놈의 모리 가문···.


자기 주제를 알고 선(線)을 넘지 말았어야지.






바둑판 위에 돌을 놓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아케치가 잘 해주겠지.


노부나가는 오늘 아침 히데요시를 지원하러 떠난 아케치의 지원군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번에 모리 가문을 제거하면, 실질적으로 전국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게 된다.


비로소 이 땅에서 완벽한 자기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하비에르 주교 놈도 더는 내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못할 것이다.


그 양코배기 놈들···. 자기들이 마치 이 나라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짛고 까불지만···. 두고 봐라.


그 사이 바둑은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리겐이 다소 유리한 판세였다.


문제는 조선인데···.


조선과의 전쟁이 예상 밖으로 지지부진하고, 명의 개입으로 점점 더 교착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멍청한 고니시 녀석···.


노부나가는 막강한 육군을 거느리고도 제대로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고니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놈은 머리가 나쁜 놈이 욕심만 많아서. 쯧쯧쯧···.


이번 전투를 마치면 이에야스를 조선으로 보내는 게 낫겠어···. 그래야 두 놈이 피 터지게 싸우지.


어허···. 이런.


리겐의 작은 탄식이 들렸다. 노부나가가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삼패(三覇)였다.


잘나가던 리겐의 바둑이었는데···. 그만 산사의 대마(大馬)가 삼패에 걸렸다. 다 이긴 판을 놓친 것이다.


삼패(三覇)···?


노부나가의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일었다.


뭐지···? 이 불안함은···.


노부나가가 멍한 눈으로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리겐이 이길 수 없는 판세였다.


다 이긴 싸움을 놓치다니···.



***



와와와와


갑자기 절 밖에서 요란한 함성이 들려왔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외침 소리와 비명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사람들의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자신의 본거지인 교토에 쳐들어올 군사들이 있을 리 없었다. 설령 누군가가 군사를 일으켜도 정예 호위부대가 지키고 있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장군! 피하셔야 합니다. 적이 쳐들어 왔습니다.”


부장이 급하게 별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적이라니? 누가 쳐들어온다는 말이냐?”


노부나가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모처럼 조용히 바둑을 두고, 차를 마시면서 세상을 이야기하려는데 분위기를 깨다니···. 무식한 놈들.


“모르겠습니다. 많은 군사가 몰려오는 바람에···.”


이런 멍청한 놈···.


노부나가는 상황도 제대로 파악 못 하고 호들갑을 떠는 부장이 한심스러웠다.


“으악”


“악”


그런 와중에도 비명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그제야 노부나가는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젠장······. 내 갑옷을 가지고 오너라.”


시종이 투구와 갑옷을 가지고 나왔다.


“주인님···.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시종이 갑옷을 입히면서 말을 꺼냈다.


“이상하다니? 뭐가 말이냐···.”


“쳐들어온 적이···. 아무래도 아케치 장군 같습니다.”


“뭐라고? 아케치···?”


이놈이 미쳤나? 아케치는 지금 히데요시를 도우려 출전을 했는데···. 느닷없이 아케치라니?


“이놈! 네가 겁을 먹고 실성을 하였구나. 아케치는 지금 히데요시를 지원하러 가고 있는데······.”


노부나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음 한구석으로 스며드는 혹시 하는 마음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아닙니다. 주군······. 적들의 깃발에 ‘도라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뭐라고? 도라지?”


아케치의 문장이 노란 원안에 그린 굵은 도라지였다. 시종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아케치의 군사가 맞는다.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비켜라!”


노부나가가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때 혼노지의 고풍스러운 중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적들이 들고 있는 삼각 깃발에 새겨진 도라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노부나가는 갑자기 조금 전의 파둑판이 떠올랐다.


삼패?···! 이거였구나. 삼패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이놈!! 배신자! 아케치야!! 이리 나와라”


노부나가가 버선발로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이놈! 어디에 있느냐?! 비겁하게 숨지 말고 빨리 나오너라!”


노부나가가 치켜든 칼을 휘두르며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치사한 놈들을 전부 쓸어버릴 것만 같았다.


“챙”


무사가 노부나가의 칼을 쳐내며 앞을 가로막았다. 노부나가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나를 막아!”


노부나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기를 막아선 무사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과 실력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챙강”


무사가 가볍게 노부나가의 칼을 쳐냈다. 노부나가는 허망하게 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 이놈이···!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노부나가가 소리쳐 자기 부하들을 불렀지만, 이미 혼노지에 자기를 지켜 줄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혼노지를 지키고 있던 백여 명의 호위병들은 이미 대부분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병사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을 한 뒤였다.



***



“항복하라!”


노부나가를 에워싸고 포위망을 좁혀 오는 병사들이 길을 텄다. 말을 탄 아케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네 이놈···! 네가 감히···.”


노부나가가 땅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아케치를 향해 내달았다.


“챙챙챙”


여러 번의 칼이 부딪쳤다. 노부나가도 쟁쟁한 무장이었지만, 젊은 아케치를 당할 수가 없었다.


“이얏!”


아케치가 짧은 기합과 함께 노부나가의 칼을 쳐냈다.


“으윽···.”


노부나가가 칼을 떨어트렸다. 아케치가 천천히 말을 타고 노부나가를 향해 다가왔다.


“푸릉푸릉”


아케치가 탄 말이 노부나가의 이마 위로 콧바람을 불었다. 모욕감에 노부나가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이···. 이 노오옴.”


아케치가 칼등으로 노부나가의 턱을 추어올렸다.


“푸르릉”


말의 콧바람에 지저분한 이물질이 노부나가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날 원망 마시오···.”


“이···. 이···. 노옴···.”


노부나가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시오. 이것도 다 당신이 가르쳐 준 것이오.”


“이놈아!”


노부나가가 다시 땅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아케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라!”


아케치가 노부나가의 가슴을 사선으로 베었다.


“어헉!”


노부나가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노부나가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이···. 이놈”


“더는 미련을 두지 마시오.”


아케치가 자신의 장검을 노부나가의 목에 찔러 넣었다. 노부나가가 울컥하며 입에서 검붉은 핏덩이를 내뺐었다.


“으···. 으윽.”


노부나가가 짧은 비명을 끝으로 목숨을 잃었다.


“노부나가가 죽었다!!”


아케치가 칼을 높이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적장이 죽었다!”


“노부나가가 죽었다!”


“와와와와”


병사들의 함성을 들으며 아케치는 노부나가의 시신을 거두어 들고 혼노지 안으로 들어갔다.



***



“알렉 군사···. 왜 웃는 거요.”


수길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수길의 얼굴에도 엷은 웃음기가 보였다.


소이부답(笑而不答)


서로 말은 않았지만, 왜 웃는지를 알고 있었다.


갑옷을 다 입은 수길이 앞이마에 큰 뿔 두 개가 달린 코보시를 집어 들었다.


“제가 수행해도 되겠습니까?”


한 번도 그의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었는데···.


내 말에 수길은 물론 주위에서 군장을 꾸리던 장수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위험한 전장에 나갈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그 위험만큼 수길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난 안다.


때로는 물리적인 시간과 물리적인 장소에 함께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를 가깝게 만든다. 내 시간만큼이나 그의 시간도 소중한 법이다.


또 어차피 가야 할 거라면 차라리 내가 먼저 나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참에 수길의 측근들을 살필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거사를 위해 꼭 필요한 정보였다.


“그래도 갑옷은 입는 게 좋을 것 같군.”


시종이 쪼르르 달려와 내게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혔다. 허벅지에 보호대가 달려 있어 웬만한 충격은 막아 줄 것 같았다.


“말은 좀 탈 줄은 아는가?”


수길이 반은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


난 시종이 끌고 온 말에게 다가가 말의 목덜미를 다독거렸다. 손바닥으로 말의 콧등을 쓰다듬었다. 촉촉하고 뜨거운 콧바람이 느껴졌다.


좋은 말이군···.


말이 목덜미를 내 어깨에 비벼댔다. 이 정도 교감이면 되지 않을까···? 난 어느 정도 말이 진정해지는 것을 본 뒤 가볍게 말 등 위로 올라탔다.


히히히힝


말이 다소 거칠게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난 가볍게 말고삐를 잡아당기고 한 손으로 목덜미를 다독거렸다.


“워워······. 괜찮아. 괜찮아.”


내 말을 들었는지 말이 몇 걸음 투덕거리다가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제법이군···. 말을 다룰 줄 아는군.”


수길이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책상머리 문관이 아니라는 것에 동질감을 팍팍 느끼는 것 같았다.


이 사람아···. 잉글랜드에서는 걸음마를 떼면 곧바로 말을 타거든.


수길이 앞서고, 난 그의 두어 걸음 뒤를 따랐다.


부장들이 줄지어 대가하고 있었고, 그 뒤로 일만 오천 명의 병사들이 장창으로 땅바닥을 두들기고 있었다.


차락 차락


쿵쿵쿵쿵······.


장창의 소리와 병장기들의 마찰 소리가 병영 가득 무거움과 함께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94화. 오다노부나가의 몰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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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6화. 거사(1) 23.02.23 3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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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화. 오다노부나가의 몰락 23.02.21 37 0 10쪽
93 93화. 혼노지의 변 23.02.20 35 0 10쪽
92 92화. 속고 속이는 게임 23.02.18 39 0 10쪽
91 91화. 운명의 날 23.02.17 40 0 10쪽
90 90화. 이간계(離間計) 23.02.16 38 0 11쪽
89 89화. 품을 수 없다면 베야지. 23.02.15 41 0 11쪽
88 88화. 물고 물리는 정세 23.02.14 43 0 9쪽
87 87화. 첫 번째 기회 23.02.13 45 0 10쪽
86 86화. 신뢰 쌓기 23.02.11 51 1 11쪽
85 85화. 어린진(魚鱗陳) 23.02.09 52 1 11쪽
84 84화. 책사 23.02.08 54 1 10쪽
83 83화. 도요토미히데요시 23.02.07 49 1 11쪽
82 82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23.02.06 58 1 10쪽
81 81화. 이이제이(以夷制夷) 23.02.04 62 1 10쪽
80 80화. 벽제관 전투(3) 23.02.03 64 1 10쪽
79 79화. 벽제관 전투(2) 23.02.02 55 1 10쪽
78 78화. 벽제관 전투 23.02.01 53 1 10쪽
77 77화. 명의 배신 23.01.31 58 1 10쪽
76 76화. 비격진천뢰 23.01.30 53 1 11쪽
75 75화. 평양성 전투 23.01.28 60 1 11쪽
74 74화. 이여송의 출전 23.01.27 58 1 12쪽
73 73화. 명의 원군 23.01.26 57 1 10쪽
72 72화. 왜에 간 사명대사 23.01.25 72 0 10쪽
71 71화. 일체유심조 23.01.20 8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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