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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발송 님의 서재입니다.

양코배기 조선인이 쓰는 임진록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행복발송
작품등록일 :
2022.10.31 11:39
최근연재일 :
2023.02.25 06:1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15,919
추천수 :
234
글자수 :
463,226

작성
23.02.08 06:00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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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84화. 책사

DUMMY

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길을 바라보았다.


“그렇소···. 영길리인(人)이오.”


사명대사의 말에 수길이 나를 노려보았다. 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수길의 눈에는 어떻게 이 국면을 전환 시킬까 하는 고민이 비쳤다.


“아마도 총에 관해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소이다.”


사명대사가 먼저 운을 띄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이나 미사여구도 생략한 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수길이 듣고자 하던 딱 그 말만 했다.


역시나 총이란 말에 수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럼···? 조선군들이 지금 쓰고 있는 조총을 이자가 만든 거란 말이오?”


사명대사가 빙긋 웃으며 수길을 바라보았다.


“예. 그렇소이다.”


나를 바라보는 수길의 눈빛이 더욱 광채를 띄었다.


“총을 만드는 기술자라기보다는 나의 책사(策士)지요.”


“책사?”


수길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책사라니···. 그러면 지금 자신의 군대가 조선에서 낭패를 보고 있는 것이 다 저자 때문이란 말인가?


수길은 도무지 사명대사의 심중을 알 수가 없었다.


“하면···. 오늘은 누구를 잡으려고 책사를 대동하신 것인지?”


수길이 싸늘한 눈길을 계속 내게 보냈다.


“아니면 속죄양으로 데리고 온 거요?”


수길의 말에 사명대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아니오. 오늘은 장군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같이 왔소이다.”


“뭐라고요···?”


이건 또 무슨 소리? 수길의 의심증이 솟아났다.


죽고 죽이는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수길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오늘의 우군이 내일의 적군이 되는 게 하등 이상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나에게 소개시켜준다···?”


수길이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했다.


“장군에게 둘도 없는 인재가 될 것이오.”


사명대사의 말에 수길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양이 책사를 내 곁에 두면···. 앞으로 대사는 누구와 전투를 상의 할겁니까?”


솔직한 물음이었다. 자신의 책사를 적에게 소개한다는 것이 가당한 말인가.


사명대사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는 상의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외다.”


사명대사의 말은 뜻밖이었다.


대사의 말은 이제는 전쟁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가. 아직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 이건 무슨 의미일까.


설마 항복이라도 하겠단 말인가?


“하하하하···. 대사께서 덕이 깊고 앞날을 예견하시는 고승이라 들었소이다 만······.”


수길이 상체를 대사 쪽으로 기울이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사께선 뭔가 좋은 생각이 있는가 보구려. 이 소장에게 귀띔이라도 주시겠소?”


대답 대신 사명대사가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신기하게도 조금 전 따라 놓은 차였는데 식지도 뜨겁지도 않게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전쟁은 장군에게 득보다 실이 많을 겁니다.”



***



그랬다.


왜의 통일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전쟁의 목적은 이미 충분히 이룬 풍신수길이었다. 더 이상의 전쟁은 위험만 초래할 뿐이었다.


영악한 도사 같으니라고···. 그러나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말이지.


그랬다. 그건 풍신수길을 모르는 말이었다. 그는 한 마리 야생늑대였다. 끊임없이 달리는 것만이 그의 삶이었다.


“실이 많아도 단 한 푼의 득이 된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무서운 말이었다. 늑대는 죽기 전에는 멈추는 것을 모르는 동물이었다. 그런 늑대를 멈추라는 건 죽으란 말과 같았다.


어리석은 놈···. 네 목숨이 아니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느냐?.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수길이 내게 물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내게는 양이 책사가 필요없소이다. 아직은 대사에게 더 필요할 거요.”


난 수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저를 곁에 두지 않는다면···. 감히 장담하지만, 장군은 이에야스에게 죽을 겁니다.”


이봐···! 저 자는 살인자야. 그를 자극하지 마.


뭐라고? 내가 죽어?


날카로워진 수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나는 하던 말을 끝냈다.


“내가 장군의 고민거리를 덜어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깔깔깔깔···. 양이가 우리 말을 아주 잘하는군.”


확실히 수길은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가 죽을 것이란 말보다는, 내가 왜의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을 입에 올렸다.


대단한 놈이구나···. 잘못하면 내가 먼저 당하겠다.



***



“그래···. 어떻게 내 고민을 덜어줄 생각이오?”


일단은 내 말을 들어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장군 목의 가시 같은 이에야스가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도록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수길이 굳어진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믿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한 번 들어봅시다. 어떻게 내 고민을 덜어주는지를.”


아마도 일종의 테스트였다. 잘되면 앓던 이를 뽑게 될 거고, 안되면 내 목을 치면 되는 불리하지 않은 패라 여겼다.


“다케다 신겐을 활용하시면 장군의 고민은 일거에 싹 사라질 겁니다.”




다케다 신겐.


지금 오다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연합군과 맞서고 있는 수길 진영의 장군이다.


“조만간 다케다가 패할 겁니다. 이에야스에게···.”


수길은 내 말을 듣자 앙소를 터트렸다.


“깔깔깔깔···.”


다케다는 지금까지 이에야스의 연합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승세를 굳히고 있던 차였다.


엉터리구나···.


어디에서 작은 정보를 주워듣고 지껄이는 작자를 내가 믿으라고?


“좋은 의견이오.”


수길이 나의 능력을 알았다는 듯이 거만한 웃음을 지었다.


“오시느라 피곤들 하셨을 텐데···. 가서 여독을 좀 푸시지요. 이곳 온천이 아주 좋다고들 합니다.”




다음 날 아침.


풍신수길은 조회를 열었다. 매일 여는 조회였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수길은 사명대사와 나를 조회에 참석시켰다. 우리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보고하라”


수길의 말이 떨어지자 장수들이 어제 있었던 전황과 계획들을 보고했다. 과연 우리를 감탄 시킬 만큼 대단한 군사력이었다.


수길이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떠냐? 이제 조금은 나에 대해 알겠느냐···? 깔깔깔.



***



“쇼군!! 큰일 났습니다.”


한 장수가 화급히 장막을 들어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느닷없는 상황에 장막 안에 있던 장수들이 당혹스러워했다.


“쇼군. 화급한 상황입니다.”


수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우리에게 보여주려던 위세가 초장부터 어긋나 버렸다.


저런···. 멍청한 놈.


수길의 광선 같은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장수는 큰소리로 외쳤다.


“쇼군! 다케다 신겐 장군의 지원 요청입니다.”


뭐라? 다케다 신겐···? 가만···? 그러고 보니 저자는 다케다의 참모가 아니냐?


수길은 장수가 다케다의 참모임을 깨닫는 순간, 나를 바라보았다.


난 무심한 눈으로 수길을 바라보았다.


어서 물어봐···! 궁금하잖아?


그러나 수길은 이미 알아차렸다.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을 ···.


“무슨 일이냐?”


수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케다의 부하가 급하게 말했다.


“예. 쇼군···. 연합군의 계략에 빠져, 지금 싸움에서 지고 있습니다.”


“싸움에서 졌다고? 그럼 다케다는?”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다케다 군은 군사적으로 요지인 하타리 성(城)을 버리고 백 여리를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제까지도 이기고 있지 않았었느냐?”


“쇼군! 죽여주시옵소서!”


참모장이 나섰다.


“쇼군. 아무래도 지원군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타리를 빼앗기면 다른 곳도 위험해집니다.”


그걸 모를 수길이 아니었다.


으음···. 진작 아베유키를 보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였다.


원래 다케다는 그다지 믿음이 가는 장수는 아니다. 장수로서 개인적인 무용은 출중하지만, 작전 능력이나 병사의 운용 면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수길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일부러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조회에 참석한 장수들을 흩어보았다.


이자가 무모하게 전쟁을 벌인 것만은 아니었구나.


수길의 부하 장수들은 일당백을 할 만한 인재들이었다. 설령 조선을 집어삼키지는 못하더라도, 전쟁에서 쉽게 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알렉···? 그대의 말이 맞았구려.”


수길이 내게 말을 던졌다. 조회에 참석했던 장수들이 나와 사명대사를 쳐다보았다.


“그다지 어려운 예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지원군을 보내는 것이 맞겠소? 아니면 다케다 혼자 해결하도록 해야겠소?”


수길이 또다시 나를 시험했다.



***



“지원군을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내 말에 장수들 사이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아니! 저자는 누구기에 저따위 말을 하는 거냐?”


“전투 상황도 모르는 양이가 무슨···.”


장수들은 노골적으로 내 말에 반기를 들었다. 참다못한 참모장이 앞으로 나섰다.


“쇼군. 죄송합니다만···. 지금 치기 어린 자의 말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다케다의 참모가 무릎을 꿇었다.


“쇼군! 염치없는 말이지만, 전세가 화급합니다. 빨리 지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더 큰 화를 부를 것입니다.”


수길이 나를 바라보았다.


백전노장들이 전부 지원군을 보내라 한다. 어찌할까?


난 수길을 바라본 뒤 다시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적개심만이 가득했다.


그래···. 그 적개심을 더 많이 태워라. 그래야 내가 이긴다.


난 수길에게 말했다.


“장수들이 그리 말을 한다면···. 쇼군께서 당연히 그 말을 받아들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수길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질 것 같으니까 꼬리를 빼는구나.


“저랑 내기하시겠습니까?”




<84화. 책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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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9화. 거사(4) 23.02.25 32 0 12쪽
98 98화. 거사(3) 23.02.25 25 0 11쪽
97 97화. 거사(2) 23.02.24 30 0 11쪽
96 96화. 거사(1) 23.02.23 37 0 11쪽
95 95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23.02.22 33 0 11쪽
94 94화. 오다노부나가의 몰락 23.02.21 34 0 10쪽
93 93화. 혼노지의 변 23.02.20 34 0 10쪽
92 92화. 속고 속이는 게임 23.02.18 38 0 10쪽
91 91화. 운명의 날 23.02.17 37 0 10쪽
90 90화. 이간계(離間計) 23.02.16 37 0 11쪽
89 89화. 품을 수 없다면 베야지. 23.02.15 38 0 11쪽
88 88화. 물고 물리는 정세 23.02.14 42 0 9쪽
87 87화. 첫 번째 기회 23.02.13 44 0 10쪽
86 86화. 신뢰 쌓기 23.02.11 48 1 11쪽
85 85화. 어린진(魚鱗陳) 23.02.09 49 1 11쪽
» 84화. 책사 23.02.08 52 1 10쪽
83 83화. 도요토미히데요시 23.02.07 47 1 11쪽
82 82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23.02.06 57 1 10쪽
81 81화. 이이제이(以夷制夷) 23.02.04 61 1 10쪽
80 80화. 벽제관 전투(3) 23.02.03 62 1 10쪽
79 79화. 벽제관 전투(2) 23.02.02 52 1 10쪽
78 78화. 벽제관 전투 23.02.01 51 1 10쪽
77 77화. 명의 배신 23.01.31 56 1 10쪽
76 76화. 비격진천뢰 23.01.30 52 1 11쪽
75 75화. 평양성 전투 23.01.28 59 1 11쪽
74 74화. 이여송의 출전 23.01.27 54 1 12쪽
73 73화. 명의 원군 23.01.26 55 1 10쪽
72 72화. 왜에 간 사명대사 23.01.25 70 0 10쪽
71 71화. 일체유심조 23.01.20 8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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