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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발송 님의 서재입니다.

양코배기 조선인이 쓰는 임진록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행복발송
작품등록일 :
2022.10.31 11:39
최근연재일 :
2023.02.25 06:1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15,918
추천수 :
234
글자수 :
463,226

작성
23.0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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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78화. 벽제관 전투

DUMMY

“오늘 밤입니다.”


난 조심스럽게 세자에게 말을 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오늘 밤엔 반달이나마 떠서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어둡지도 않고 환하지도 않은 어정쩡함.


내 마음도 이러한 것인가···.


미래의 권력이면서도, 눈앞의 전쟁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조선이 만약 이 전쟁을 이겨낸다면···. 그건 다 백성들과 그대의 덕일 것이오. 난 죽어도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오.”


세자가 속마음을 툭 하고 드러냈다.


지존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조선에서는 얼마나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아는 나는 가슴이 찡해졌다.


“저하···. 조선은 앞으로도 몇백 년은 더 발전할 것입니다. 이 전쟁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시죠.”


내 말에 광해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소.”


아니. 정말인데···. 앞으로 3백 년은 더 유지되는데.


세상사가 어찌 마른자리만 있겠습니까···. 어쩌면 진자리가 더 많은 것이 인간사 아닐까요.




“저하! 성문이 열립니다.”


밤이 꽤 이슥해졌을 때. 평양성 남쪽 함구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리고 왜병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저놈들이···. 이번엔 아예 대놓고 척후 부대도 없이 그냥 밀고 나오는구나.”


세자의 목소리는 언제나 담담했다. 도무지 그 속을 가름할 방법이 없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아무도 내 말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세자만이 눈빛이 날카롭다.


“누굴 믿는단 말이오?”


난 담담히 세자에게 말했다. 더는 감출 필요가 없어졌다. 기왕에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여송과 고니시가 아마 밀약을 했을 겁니다.”


“밀약?”


밀약이란 말에 세자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에게 밀(密)자가 들어가는 말들은 전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왜병들이 성을 포기한다면, 추격은 하지 않겠다는 밀약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런 죽일 놈들.”


곽 대장이 화를 벌컥 냈지만, 세자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우리가 못난걸···.


“뻐꾹. 뻐뻐꾹”


곽 대장의 지시를 받은 의병이 낮은 뻐꾸기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밤하늘을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뻐꾹. 뻐뻐꾹”


저 멀리 남산에서 메아리처럼 뻐꾸기 울음소리가 여러 번 들려왔다.


“저하···.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구료···. 또 한 번 푸닥거리를 해 봅시다.”


세자가 바짓가랑이를 대님으로 잡아 묶었다. 그리고 넓은 도포 자락도 둘둘 말아 접었다.


저하···. 이런 분이 왜 그렇게 변하셨습니까.


난 차라리 할 수 있다면 이 전쟁보다는 세자를 돕고 싶었다. 부질없는 생각이었지만···.



***



“실수 없도록 해라.”


곽 대장이 의병들에게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저놈들이 사리원까지 철수할 때까지 지켜만 보아라.”


“예. 알겠습니다.”


난 왜병들이 다시 성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사리원까지 철수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세


“저기 옵니다”


희미한 달빛 아래 왜병들이 보였다. 선두에 말을 탄 장수가 아마도 고니시 같았다. 그 주위로 말을 탄 많은 장수가 따라붙었다.


“저놈이 고니시다. 저놈부터 잡아라.”


곽 대장의 의병들이 사리원으로 들어오는 평야에 숨어서 왜병들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에는 여기저기 짚단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저벅저벅


히히히힝


왜병들이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곽 대장이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쏴라!”


탕탕탕탕


밤하늘에 요란한 총소리가 폭죽처럼 터졌다.


“으악”


“억”


“적이다. 응사하라”


갑작스러운 공격에 왜병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속았다! 이여송···. 이놈!”


고니시가 이를 갈며 분노를 터트렸지만,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장군···.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알았다···. 전속력으로 개성까지 철수한다.”


고니시의 말이 떨어지자 부장이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서둘러라! 개성으로 향한다.”


“이럇!”


그 뒤를 따라 말을 탄 장수들이 고니시를 보호하면서 빠른 속도로 내달았다.


따각 따각


거친 말발굽 소리가 온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라!”


의병들이 틈을 주지 않고 조총을 쏘아댔다.


“으악”


“억”


왜병들도 응사하면서 계속 내달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은폐하고 쏘아대는 의병들의 총알 세례를 피하기가 어려웠다.


“멈추지 말고 계속 뛰어라!”


개성에는 왜병 중에서도 막강한 3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고니시는 일단 개성까지 퇴각할 생각이었다.


“멈추면 죽는다! 계속 달려라!!”


왜장들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다그쳤다. 조금씩 의병들이 쳐놓은 방어선이 뚫리기 시작했다.


“됐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라!”


격한 공방 속에서 왜병들이 의병들의 방어선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와와와와


달아나는 왜병들의 뒤를 의병들이 쫓았다. 숨 막히는 접전이 계속 이어졌다.



***



달빛이 사그라지고, 희미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사리원 너른 들녘에 왜병들의 시신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멈춰라! 더는 쫓지 마라!”


더는 왜병을 추격하기가 어려웠다. 날이 밝으면 병력에서 밀리는 의병들이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야 이놈들아!!! 아예 너희 나라로 꺼져라!”


왜병들은 사리원을 지나 평산까지 철수했다.


“분하다. 다 잡을 수 있었는데···.”


곽 대장이 못내 아쉬워했지만, 거기까지가 최선이었다. 사실 의병들 힘만으로는 어려웠던 작전이었다.


아무리 김충선이 조총과 화약을 제조해 보급한다 해도, 의병의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수고가 많았다.”


세자가 곽 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하···. 적들을 살려 보냈습니다.”


곽 대장은 왜병들이 달아난 것이 자기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송구스러워했다.


그런 곽 대장을 보고 세자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도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심전심. 염화시중의 미소가 이러했을까.


“다음 기회가 또 있을 겁니다.”


이 평양성 싸움으로 이 전쟁이 끝날 리 없었지만, 세자도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았다.


“그러하겠지. 이만한 승리도 아주 값진 것이지.”


군자다운 모습이었다.



***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이여송이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으로 들어왔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밤새 왜병들이 성을 포기하고 달아난 것 같습니다.”


이여송이 세자에게 말을 건넸다. 간밤에 의병들의 작전을 아직 모르는 듯했다.


“글쎄 말입니다. 신기한 일이 아니겠소.”


세자의 말에 날카로운 비수가 담겼다. 조선에는 한없이 너른 분이었지만, 왜나 명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다 세자 저하의 흥복이십니다.”


이여송이 입에 침을 바른 아부를 했다. 아마도 구린 곳이 마음에 찔렸나 보다.


세자는 더 이상 이여송을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부서진 평양성을 보수하고 임금을 이곳으로 모시는 것이 급선무였다.




섣달 보름날.


임금이 대신들을 데리고 평양성으로 돌아왔다. 의주로 피신을 떠난 지 거의 1년이 지난 뒤였다.


부서지고 망가진 성이었지만 허허벌판 의주보다는 훨씬 나았다.


우선 급한 대로 내성을 보수하고, 전각을 수리했다. 임금의 거처가 마련 되는대로 근정전을 보수할 생각이었다.


“아니다. 짐의 거처보다는 먼저 대신들과 국사를 논할 수 있는 근정전부터 마련하라.”


임금이 뜻밖의 말을 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옥체를 보전하셔야 이 조선이 사는 길이옵니다. 거두어 주소서.”


세자는 혼란스러웠다. 이기적인 임금이 갑자기 나라를 먼저 생각했다.


“내 뜻이 그러하니, 대신들은 더는 다른 말을 하지 마라.”


그럼에도 대신들은 저마다의 충성심을 드러냈다.


아니 되옵니다 부터 왕의 뜻을 거둘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겠다는 협박까지 나름의 표현을 쏟아냈다.


대신들의 청을 마다하던 임금이 결국은 지고 말았다.


“알았다. 경들의 뜻이 그러하니···. 내 뜻을 거두겠다.”


“황공무지로소이다. 전하.”


그래도 임금이 평양성에 거하니 한결 모든 것이 체계를 잡아갔다.


무엇보다 정보와 명령의 흐름이 원활해졌다.



***



일단 조정(朝政)을 안정시킨 뒤 나는 세자와 향후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저하······. 적들이 벽제관에 재집결할 겁니다.”


내 말에 세자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벽제관 싸움은 어떨 것 같소?”


세자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그것참.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세자가 솔직하게 물었다.


“그냥 그대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주구료.”


그래. 뭘 망설여···. 좋은 말 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게는 쓴소리가 더 필요하오···. 좋은 소리는 저 대신들의 말만으로도 충분하오.”


오죽하겠는가.


“벽제관 싸움에서는 우리가 질 것 같습니다.”


“그렇소?”


세자도 예상했었는지 그다지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렇긴 한데······.”


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손가락으로 턱을 문질렀다. 세자가 그런 나를 바라보다 물었다.


“이기는 방법이라도 있는 거요?”


헛된 희망은 차라리 독보다 더 치명적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작은 희망이라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이여송 장군입니다.”


“이여송 장군?”


내 말에 이번에는 세자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자라면···. 내가 어찌 한번 해 보겠소.”


세자가 명쾌하게 말했다. 이여송은 윽박지르기보단 자존심과 논리로 승복시켜야 한다.


자존심과 논리라면 나 광해 아니더냐···.


“자. 뭐가 문제인 거요? 그자 때문에 싸움에서 지는 이유가······.”




<78화. 벽제관 전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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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3화. 혼노지의 변 23.02.20 34 0 10쪽
92 92화. 속고 속이는 게임 23.02.18 38 0 10쪽
91 91화. 운명의 날 23.02.17 37 0 10쪽
90 90화. 이간계(離間計) 23.02.16 37 0 11쪽
89 89화. 품을 수 없다면 베야지. 23.02.15 38 0 11쪽
88 88화. 물고 물리는 정세 23.02.14 42 0 9쪽
87 87화. 첫 번째 기회 23.02.13 44 0 10쪽
86 86화. 신뢰 쌓기 23.02.11 48 1 11쪽
85 85화. 어린진(魚鱗陳) 23.02.09 49 1 11쪽
84 84화. 책사 23.02.08 51 1 10쪽
83 83화. 도요토미히데요시 23.02.07 47 1 11쪽
82 82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23.02.06 57 1 10쪽
81 81화. 이이제이(以夷制夷) 23.02.04 61 1 10쪽
80 80화. 벽제관 전투(3) 23.02.03 62 1 10쪽
79 79화. 벽제관 전투(2) 23.02.02 52 1 10쪽
» 78화. 벽제관 전투 23.02.01 51 1 10쪽
77 77화. 명의 배신 23.01.31 56 1 10쪽
76 76화. 비격진천뢰 23.01.30 52 1 11쪽
75 75화. 평양성 전투 23.01.28 59 1 11쪽
74 74화. 이여송의 출전 23.01.27 54 1 12쪽
73 73화. 명의 원군 23.01.26 55 1 10쪽
72 72화. 왜에 간 사명대사 23.01.25 70 0 10쪽
71 71화. 일체유심조 23.01.20 8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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