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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단장

교화한 몬스터로 영지 디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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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단장
작품등록일 :
2024.08.05 11:52
최근연재일 :
2024.09.11 21:42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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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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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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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움트는 희망, 움패는 절망

DUMMY

테이머 영지 북동쪽으로 펼쳐진 벌판.

보라색 망토를 펄럭이며 질주하는 기사가 있다. 쉴 생각이 없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적갈색 단발머리는 뺨에 닿을 새도 없이 휘날린다.

평원에 휘몰아치는 바람의 정령은 알려주고 싶다. 그 망토를 벗어젖힌다면 조금이나마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텐데.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기사 또한 공기 저항에 대해 모르는 바 아니나, 이 망토는 주군이 그녀를 기사로 임명할 때 수여한 소중한 물건.

망토를 벗느니 머리카락을 밀어 바람을 덜 받는 쪽을 택할 것이다.


“더 빨리 못 따르겠나!”


릴리안은 그런 군인이었다.


“겨, 경비대장님. 저희는 괜찮지만 말들이 지쳤습니다. 잠시만 쉬어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동이 틀 때부터 달렸습니다.”

“···한 시간이다.”

“감사합니다. 헉헉.”


수통으로 나팔을 부는 테이머 영지 경비대원들과 쓰러져 누운 말들. 그들 모두에게 만드라고라니 뿔잎 쿠키 섭취를 명한 릴리안은 흙바닥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런데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울랙힘이라는 놈 말입니다.”

“키하라 남작령 밖에 더 있나.”


그녀는 곧 말발굽 자국을 찾아내었다. 편자의 무늬가 자신들 것과는 다른.


“방위는···동북동인가.”


말발굽 자국이 이어진 방향으로 몸을 돌린 릴리안.


‘관측경을 쓸까? 아니,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껴 놓는 게 좋겠군.’


눈을 부릅떠 아우라를 집중했다.

일렁이는 기운 속에서 희미한 흰색 점 하나와 그보다 작은 점 하나가 보였다.


‘백마? 우리 중대, 아니 경비대에는 한 마리도 없지만 파견 경비대에는 몇 마리 있었지. 그렇다면 역시 그놈이다. 멈춰 있는 걸 보니 쉬는 중인가.’


곧 릴리안은 눈을 감았다. 지붕 위의 눈더미가 쏟아지듯 눈꺼풀에 피로감이 몰려왔기에.


“저어, 대장님. 울랙힘을 찾아낸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멈춰선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한 상급 병사가 쭈뼛거리며 질문했다.


“끌고간다. 이의 있나?”

“아, 아닙니다. 단지 놈이 저항할 경우가 우려됩니다.”

“저항하면 즉결 처분할 뿐이다.”

“예? 방금은 끌고간다고 하셨-.”

“시체를 끌고 가면 된다.”


어미를 ‘다’나 ‘나’로만 끝내기로 맹세한 듯한 릴리안. 발에 차이는 돌부리를 밟아 부쉈다.

튀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분노도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다만 그 분노는 울랙힘에게가 아니라.


‘내 실수다.’


그녀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파견대장 그자에게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슈랙힘을 철저히 감시하느라 부하들의 동태를 살피지 못 한 것이 실책.


‘키하라 남작에게 고자질하는 것이 중요할뿐, 놈이 직접 갈 필요까진 없었던 거다.’


허드렛일을 못 해먹겠다는둥 소란을 피워댄 것은 연막. 자신에게 감시가 쏠린 사이를 틈타, 부하이자 아우인 울랙힘을 빼내 도주시킨 것이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저를 밑고 중책을 맡겨주셨는데 이런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다급한 나머지 선조치 후보고를 한 릴리안.


‘탈영한 놈을 본보기로 삼아 군기를 바로 세우리라.’


반드시 울랙힘을 잡아오리라 마음 먹었다.


“모두 일어난다.”

“예? 아직 30분도 안 됐지 말입니다. 시계를 보십-”


부하가 가져온 시계 바늘을 휙 돌려버리는 경비대장.


“한 시간 지났다.”

“존명!”


눈물을 삼키며 일어난 경비대원들 중 한 명이 북서쪽을 가리켰다.


“대, 대장님! 저길 보십시오.”


흙먼지가 폭풍처럼 일고 있다.

말 안장 주머니에서 관측경을 꺼낸 릴리안.


“[원거리 관측 - 최대 범위].”


시동어를 말하자 원통 속 마력석은 하늘색 빛을 잃고 투명해진다.


‘네 발 마물.’


흙먼지를 일으키는 것은 마물들.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진 않는다. 발굽이 있으니 소나 말 종류로 짐작할뿐.


‘빠른 속도. 하지만 우리 영지와는 반대쪽으로 이동하고 있군. 키하라 남작령 쪽인가. 그렇다면···.’


동북동 방향도 살펴보는 릴리안.


‘시냇물. 나무에 묶어 둔 말 한 마리. 그 옆에 누워 있는 무장 병사 한 명. 이제 확실하군.’


얼굴까지 식별할 순 없으되 형태는 잘 분간됐다.


‘놈과의 거리는 불과 십여 킬로메테. 가속 주문서를 쓴다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마물들이 그보다 빠르게 키하라 남작령에 도착할지 모른다. 그 경우 어떻게 해야 하지? 타이밍이 안 좋다면 마물들과 우리의 경로가 겹칠 수도 있다.’


∴ ∴∴ (마물?)

    ↘ 

      ●키하라 남작령    

    ↗

   ★(울랙힘)

  ↗

 ♥(릴리안)

◆(테이머 영지)


그녀가 한창 고민에 빠졌을 때.


“저, 저건 대체 뭐지?!”


테이머 영지 쪽에서 붉은 빛이 번쩍거렸다.

릴리안은 얼른 관측경을 들여다보지만 마력석은 어느새 투명함을 잃은 상태.


“···시쿱 그놈. 제때제때 마나를 채워 넣으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마법병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 그녀는 다시 눈에 아우라를 집중했다.


‘우리에게 알리는 신호인가?’


핏발이 서다시피 한 눈에, 깜빡이는 적색 구체 외의 무언가도 들어왔다.

깃발이 높이 뜬 채 펄럭이지 않는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영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릴리안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안장 주머니를 뒤져 스크롤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전원! 내게로 모인다!”


가속 주문서. 게임에서는 유닛들의 이동 속도를 일정 시간 올려주는 아이템으로 구현돼 있다.


“즉시 영지로 복귀한다!”


창날로 스크롤을 찢자 푸른 빛 마나가 흘러나와 말들과 병사들을 감싼다.


***


“···죄송합니다 영주님. 상황이 급했다곤 하지만 허락 없이 영지 밖으로 병력을 움직인 죄, 그럼에도 탈영병 울랙힘 추포에 실패한 죄를 지었습니다.”


영주의 앞에 무릎을 꿇은 릴리안 이하 경비대원들.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따라나선 대원들은 제 명에 따랐을 뿐 죄가 없는 점 부디 참작해 주시길 바랍니다.”


물끄러미 릴리안을 내려다 보던 호영은 툭 질문을 던졌다.


“밥은?”

“···예?”

“밥 먹었냐고. 전투 식량 말고 제대로 된 식사.”


예상치 못 한 질문에 황망하면서도 릴리안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다만 만드라-.”

“고라니 뿔잎 쿠키도 말고. 그게 밥이야? 간식이지.”

“···.”

“뭐, 추격에 몰두하느라 밥 지어 먹을 새도 없었겠지. 아니 그 전에, 냅다 창만 들고 달려갔을 테니 식량을 챙겨 가지도 않았을 거고.”


그간 릴리안과 부대끼며 그녀의 성격에 대해 파악한 호영.


“경비대장 릴리안 경과 그 휘하 대원들에게 명한다. 첫 번째. 앞으론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보급에 신경을 쓴다.”


긴급 상황에도 허가를 받아라는 말 대신 다른 명령을 내렸다.


“두 번째. 당장 식사하러 간다.”


추격조는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잘 못 들었습니다?”

“밥 먹고 오라니까? 저기 야전 취사 중이니까 얼른 가. 지금 영지에 닥친 위기에 대해선 들었지? 시간 없으니 빨리 가!”

“어찌 저희가 지금 한가롭게 식사를···.”

“아, 노가다는 밥심인 거 몰라?! 지금 땅을 잔뜩 파내야 한단 말야. 근데 너희 상태를 봐. 새벽부터 쫄쫄 굶고 골골 거려 가지고 삽을 들겠어?”


답답하다는 듯 내뱉고 돌아서는 영주.


“천천히 먹어. 체하면 전투력 손실 나니까.”


***


천사 하리아드를 모시는 성직자들은 회색 사제복을 입는다. 그것은 하천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긴 가르침을 받든 것.

‘순백색은 물들 수밖에 없고, 순흑색은 물들 수조차 없다.’

교파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르지만, ‘맹목적으로 선을 지향하지도, 광신적으로 악을 멸하지도 말라.’ 혹은 ‘속세와 담쌓고 수행만 해서도 안 되고, 세상 만사에 너무 관여해서도 안 된다.’라는 것이 신학계의 정설.


“쳇. 이럴줄 알았으면 어제 빨래 안 하는 건데.”


루비아의 해석은 조금 달랐다.


“너그러운 하천사시여. 사제복을 회색으로 만드심에 감사하나이다. 살리아드 모시는 그 엘프 싸가지들마냥 흰색 옷 입었으면 어휴. 빨래하다 세월 다 보냈을겨. 그렇다고 드워프 사제들처럼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시커먼 옷 입는 건 싫고.”


흰 옷은 금방 더러워지고 검은 옷은 더러워진 걸 금방 알 수가 없으니, 회색 옷이 활동하기 편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미안합니다 사제님. 옷을 더럽혀서.”


창백한 몰골로 누워 있던 전사가 힘없이 말했다.


“응? 아냐 아냐. 댁한테 뭐라하는 거 아니니 신경쓰지 마시길. 그보다 다리 부상은 대충 치료했으니 상체를 보자고.”


전사의 상의를 조심스럽게 들추는 루비아.


“오우. 복근 보소. 좋아, 아주 튼실해.”

“···사제님?”

“아, 튼튼한 복근 덕분에 상처가 얕아서 다행이라고. 예, 뭐.”


그녀의 감탄대로 복근의 상처는 별 거 아니었지만, 옆구리에 난 구멍들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좀만 참으셔.”

“이···이게 뭡니까?”


전사는 깜짝 놀랐다. 사제가 웬 진흙 덩이를 환부에 치덕치덕 바르는 게 아닌가.


“어···엇?!”


순식간에 아무는 상처.


“힐링 연고.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해. 우리 영주님이 발명한 거야.”


휘발성이 강해 그냥은 사용하기 힘들었던 도둠 나무 수액을 흡착토와 섞은 것이다.


“푹 쉬고 영양 보충 잘 하면 금방 회복할 거야. 자, 그럼 다음 환자. 어이쿠. 등짝 좀 보게.”


엎드려 있는 남자 마법사. 호그리폰의 발톱에 등을 잔뜩 긁혔는지 로브가 넝마가 됐다. 그 아래 피부도 마찬가지.


“마법사들은 대체 왜 갑옷을 안 입는 거야? 로브 안 입으면 마력이 안 나오는 저주라도 걸린 거?”

“너무 무겁고 가려워서···.”

 “아니, 누가 풀 플레이트 아머 입으래? 가죽 갑옷이라도 하나 걸쳤으면 됐잖아. 그럼 등 좀 긁혀도 시원해지고 말았을 텐데. 로브 쪼가리만 걸치니 이 지경이 돼잖아.”

“···크흑.”


루비아는 그에게도 연고를 발라준다.


“뼈까지 상하진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그럼 이제 마지막 환자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젊은 여자. 루비아와 같은 사제복을 입고 있다.


“이래서 파티에 사제는 둘 이상 넣어야 한다니까?”


여사제를 내려다 보며 혀를 차는 루비아.


“다른 파티원이 다치면 사제가 치유해주는데, 사제가 다치면 누가 치유해 주냐고.”

“···면목 없군요. 급히 후퇴하다 제가 힐링 포션을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마법사의 반성.


“낙마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고 했지? 이건 연고로는 안 되겠군. 귀찮아도 기도를 올릴 수밖에.”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여사제는 곧 깨어났다.


“정신이 드십니까 자매님?”

“어엇. 여, 여기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여사제에게 파티원들이 설명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하천사시여! 넘어진 저희에게 한 가닥 깃털을 내려 주셔서.”

“아니, 치료해준 건 난데 왜 하리아드께 기도를 하셔? 사제복을 보아하니 평사제신데, 혹시 품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자매님? 난 4품인데. 7품이라고? 빠졌네 빠졌어. 너 어느 신전 소속이야.”


군종 사제가 군기 확립에 신경쓰던 중 호영이 들어왔다.


“앗, 변방백님.”


호영을 발견하고 일어나려는 전사와 마법사.


“그래, 감사 인사를 할 거면 영주님에게 하라고. 당신들을 구해낸 건 저 분이시니.”

“아아, 됐소. 그대로 누워 계시오.”


손사래를 치는 호영.


“뭐라고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변방백 님이 아니었다면 저희 모두 호그리폰 밥이 됐을 겁니다.”

“인사는 무슨. 이 황량한 서쪽 평원에선 서로 돕는 게 도리 아니겠소?”


호그리폰에게 쫓기던 모험가 파티.


“말도 지쳐 쓰러지고 기절한 동료를 간신히 업고 가다 모래 폭풍이 불었을 때···전 거의 희망을 내려 놨습니다. 그 붉은 빛을 보고 따라가지 않았다면 방향도 길도 잃어버렸겠죠.”


테이머 영지에서 띄운 마력등을 보고 달려온 이들을 호영이 구출해낸 것이다.


“제 검에 맹세코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미력한 마력으로나마 보탬이 되고 싶으니 뭐든 말씀하시지요.”

“감사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돌보시는 하천사의 축복이 이 영지에 영원히 깃들기를.”


「인재 영입! 모험가 파티는 수호자님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은 테이머 영지에 머무는 동안 기꺼이 도움을 주는 건 물론, 다른 모험가들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36화 - 움트는 희망, 움패는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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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한 몬스터로 영지 디펜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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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트는 희망, 움패는 절망 24.09.11 13 0 13쪽
35 신호탄 24.09.10 18 0 13쪽
34 스폴리아티네 글라사테 24.09.09 25 0 13쪽
33 마력토 24.09.06 25 0 13쪽
32 단다니움의 연금술사 +1 24.09.05 25 0 11쪽
31 작은 기적 24.09.04 26 0 12쪽
30 보직 변경 24.09.03 20 0 12쪽
29 덮어 줄게 24.09.02 32 0 10쪽
28 백이 없는 변방백 24.08.31 30 1 10쪽
27 백을 가진 자 24.08.30 27 1 10쪽
26 도약 강타 24.08.29 28 1 10쪽
25 경로 이탈 24.08.27 38 1 11쪽
24 갈림길 24.08.26 49 2 10쪽
23 교활한 몬스터로 영지 디펜스 24.08.25 45 2 10쪽
22 닼템 드랍 24.08.23 53 3 10쪽
21 고 볼링! 24.08.22 50 3 10쪽
20 박격진천뢰 24.08.22 53 3 11쪽
19 빡격포 24.08.21 53 3 10쪽
18 고블린 슬레이어(2) 24.08.20 57 3 10쪽
17 고블린 슬레이어 (1) 24.08.19 59 3 11쪽
16 검은 안개 24.08.19 58 3 10쪽
15 Get ready for the next defense 24.08.15 73 3 12쪽
14 폭발을 사랑한 드워프 24.08.14 68 4 11쪽
13 2 E J 24.08.13 74 3 12쪽
12 하나만 좀 24.08.12 83 4 11쪽
11 고라니 파티 24.08.09 84 4 12쪽
10 만드라고라니의 효능 24.08.08 86 4 10쪽
9 디버퍼는 뒤에 24.08.07 84 4 11쪽
8 만드라고라니 24.08.06 89 5 10쪽
7 위험과 보상 24.08.06 104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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