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죽으면 천재영웅이 됨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6.20 03:22
최근연재일 :
2024.08.20 23:23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796
추천수 :
11
글자수 :
86,198

작성
24.08.17 16:06
조회
31
추천
1
글자
12쪽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7)

DUMMY

“어, 어?”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옆자리 남자의 어깨를 황급히 두드렸다.


“지, 지석아! 저거 좀 봐봐! 얼른!”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커피를 마시던 남자가 잔을 내려놨다.

여자가 가리킨 창가 너머를 본 그의 눈이 여자랑 똑같이 휘둥그레진다.


“마트에 불 난 거 아냐?”

“그런 것 같아. 빨리 119에 신고를······.”


그러면서 여자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을 집었다. 얄쌍한 손가락이 재빨리 잠금화면 위를 훑었다. 곧 화면에 숫자 키패드가 떠올랐다.

여자가 막 119 숫자를 순서대로 눌렀을 때, 남자가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단순한 화재가 아닌데?”

“뭐?”

“불 속에 사람이 있어. 멀쩡한. 각성자야, 각성자 테러라고······!”


불. 각성자. 테러.

안 그래도 여자가 호들갑을 떨 때부터 카페 안에 집중되어 있던 시선들이 세 단어를 듣고 어수선해졌다.

테이블에서 하나둘 일어난 사람들이 창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잖아.”

“진짜라고? 어디 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때, 인파 사이에서 누군가가 일행에게 물었다.


“야, 근데 우리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바로 길 건너편이잖아. 대놓고 능력으로 불 지르는 거 보면 제정신 아니거나, 게이트석 중독이거나 둘 중 하난데. 저놈이 여기로 올 수도 있는 거 아냐?”

“어······ 생각해보니 그러네?”

“혹시 모르니까 일단 피하자. 얼른 짐 챙겨. 나가게.”


한 무리가 본인들의 테이블로 돌아가 주섬주섬 짐을 챙겨 카페를 빠져나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카페 안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번지더니 누구 할 것 없이 짐을 챙겨 카페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원래도 붐비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한적하다 못해 썰렁했다.

빈자리 투성인 테이블 위에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하는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나는 스무디가 남아있는 차가운 유리컵을 만지작거리며 마트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입구에서 빠져나와 근처를 서성거리던 미친 방화범은 도망치던 시민 여섯 명을 태워 죽인 상태였다.

1회차 때는 내가 타깃이 되고 시간을 끌며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던 사람들 같은데, 이번엔 내가 없어서 그런지 벌써 여섯 명이나 추가 사상자가 발생해 있었다.


저 사람들은 나 때문에 죽은 걸까?

생각하던 찰나, 입구에서 천 같은 거로 입과 코를 가린 사람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미친 방화범이 그쪽으로 몸을 돌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불길이 치솟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거리가 있어 들릴 리 없는 비명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고막을 통해서가 아닌, 머릿속의 기억을 통해 비명이 재생되고 있었다.


꽈악.


나도 모르게 유리컵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본래의 목적대로 내게 생긴 현상이 타임루프라는 확신도 얻었으니 이제 슬슬 자리를 떠야 하는데,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쿵쿵 요란하게 뛰었고, 뾰족한 뭔가로 찔러대는 것처럼 가슴 안이 따끔따끔했다.


내 몸이 왜 이러지?


저기서 불타 죽는 사람들이 불쌍하기라도 하나?

아니면 저 미친 방화범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가? 그리고 영웅이 되고 싶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나 혼자 도망가는 게 양심에 찔려서 그러는 건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저기, 손님?”

“······?”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매몰되던 정신이 급부상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 카페직원이 날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피 안 하세요? 손님이 마지막이신데.”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말대로 가게 안에는 그와 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찝찝한 얼굴로 연신 마트 쪽을 힐금거리며 말했다.


“손님도 얼른 대피하세요. 저도 손님 가시면 바로 가게 문 닫고 대피할 거예요.”

“아, 네.”


내가 얼른 사라지길 바라는 눈치길래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컵은······.”

“그냥 놔두고 가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네, 그럼.”


가방을 챙겨서 카페를 나왔다.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건물 입구 앞에서 멈춰섰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마트와 멀어지려면 왼쪽으로 가야 하고, 마트와 가까워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나는, 어느 쪽으로 가길 원하는 걸까?


수차례 신발 밑창이 들썩거리기만을 반복했다.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지금 이 순간이 어쩐지 앞으로의 내 인생을 결정하는 데 있어 크나큰 분기점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던 때.


화아아아아악!


마트에서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마트를 점령한 화마는 이제 옆으로 번져, 조금 떨어져 있는 건물마저 삼키려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마침내 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들썩거리기만 하던 신발을 들어 올려 크게 내디뎠다. 발바닥에 힘을 주고 마트가 있는 오른쪽으로 땅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휘이이이이······!


얼굴에 거세게 부닥치는 바람이, 내 기억을 들추고 지나갔다. 오래된 과거가 담긴 페이지가 팔락이며 넘어간다.


철이 없던 유년 시절.

내 꿈은 영웅이었다.

영웅학교를 졸업하며 다짐했던 돈 많이 벌고, 오지랖 부리지 말고, 몸 성히 은퇴하자는, 그저 그런 가짜 영웅이 아니라.

신종 고릴라 괴수를 처치했을 때 만났던 여자 꼬맹이가 말하던, 멋지고 정의로운 진짜 영웅.

나는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나잇대의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 멋있어 보여서. 대단해 보여서. 눈부시게 빛나 보여서.

그래서 별 고민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정했다.


현실적인 사항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린아이의 허황된 꿈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난 진심이었다.

오히려 타산적인 생각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기에 순도 100%라고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시절의 난, 진심으로 영웅이 되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지금과 같이 변한 건 두 개의 사건 때문이었다.


어떤 적이든 지지 않고 가뿐히 무찌를 것 같던, 나의 우상이자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오른팔을 잃은 사건과,

국제적인 인기를 끌며 세계 최고의 영웅이라 불리던, 임무 실패율 0%라는 경이로운 기록의 소유자인 구도혁 영웅의 사망 사건.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두 개의 사건은 달콤한 꿈에 취해있던 나를 강제로 깨워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 보도록 만들었다.


영웅이 멋있었던 이유. 빛나 보였던 이유. 대단해 보였던 이유.


그것들은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할 리스크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하나뿐인 목숨을 말이다.


눈에 쉽게 보이는 단편적인 면만 보고 있던 어린 나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차디찬 진실을 발견했고, 깨달았다.

그리고 고민했다.

과연 나는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을까?


답은 금방 나왔다.

그럴 수 없다고.


그 날로부터 내 꿈은 손을 뻗어도 도저히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버렸다.

정확히는, 내가 꿈으로부터 도망쳤다. 영웅의 무게에 겁을 집어먹고 겁쟁이처럼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고선 다른 이들도 다들 이런다고, 제 안위보다 소중한 게 어딨느냐고, 나름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변명하고 자위했다.

꿈을 포기한, 아니 외면한 것에 대해.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무슨 이유에서인지 겁쟁이인 내게 타임루프라는 능력이 생겼다.

영웅이 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가장 큰 리스크인 목숨. 그것이 해결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과 똑같이 도망친다면, 더는 변명조차 하지 못한다.

한 번은 실수일지 몰라도, 두 번부터는 실력이고 습관이니까.


그만 솔직해지자.

나는 영웅이 되고 싶다.

한 번 도망친 겁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되고 싶다.


이건 어린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순도 100%짜리 진심.


생각해보면 회식을 거절하고 이곳에 온 것부터가 내가 이러길 원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타임루프에 대한 검증은 던전에서 적록색 카멜레온석인이 나왔을 때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었고.

굳이 추가적인 검증이 더 필요하다 하더라도 다음날 뉴스로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엔 진심을 다해보자.

꼴사납게 도망치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보자.


후욱.


마트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열기가 뜨거워졌다.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숨을 쉬기 힘들게 만들었다.

나는 얇은 염동막을 만들어 신체에 둘렀다. 그 상태로 방해하는 모든 것을 거스르며 계속 달렸다.


그리하여 도달한 불길의 진원지.

검은 옷을 입은 미친 방화범이 누군가를 태우던 것을 잠시 멈추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엥? 넌 또 뭐야?”


날 발견한 그가 손을 대충 휘저었다.

새삼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그 결과물은 만만치 않았다.

화악, 주변의 불꽃이 거세지더니, 나를 향해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온다.


달리는 자세 그대로 준비하고 있던 염동방벽을 펼쳤다. 비스듬히 기울여 불꽃을 최대한 흘려보내고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저 녀석에게 원거리 공격은 의미가 없다.

원래 그런 건지, 게이트석을 섭취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현재 능력의 출력은 녀석이 명백히 날 압도하고 있었으니.


저 녀석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기 위해선 가까이 붙어야 한다. 그리고 강기를 사용해서······.


“헤에, 너 각성자야?”


미친 방화범이 입꼬리를 찢으며 히죽거렸다. 그러나 곧 화난 것처럼 정색했다.


“야, 대답 안 해? 내가 묻잖아. 내가!”


갑작스러운 고함과 함께 또 한 번 불꽃으로 이루어진 파도가 날 덮쳤다.

이번엔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파도의 중심에서 멀어지면서 피할 수 없는 불꽃들은 염동방벽으로 막아냈다.

그런데도 미친 방화범과 가까워져서 그런지 화끈한 열기가 염동방벽을 뚫고 들어온다.

뜨겁다. 쓰라리다.

마치 내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느낌이다.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고통을 참았다. 그리고 계속 전진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이 이번엔 의문을 표한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 안 아파?”


아프다.

지랄 맞게 아프다.


근데.


진심을 외면한 채 도망쳐서 가슴 속이 아픈 것보다는 훨배 낫다.


······아닌가? 이것도 장난 아니게 아프긴 한데.


잠깐 머릿속에 이상한 잡념이 피어났지만, 금방 지워버렸다. 딴 생각할 시간이 없다.

꾸준히 달려 미친 방화범과의 거리가 열 걸음도 채 남지 않게 되었으니.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집중해서 염동력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내 오른팔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검 대용이었다.

날카로운 검날에 사용하는 게 베스트긴 하지만, 검이 없는 관계상 이 방법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검을 챙겨오는 건데······.


“어? 그거······.”


미친 방화범이 내 강기를 보고 눈을 살짝 치떴다. 그리고선 재밌는 장난감 보듯 씩 웃었다.


“나도 비슷한 거 할 줄 아는데.”


그가 하늘 높이 팔을 들어 올렸다. 일순간 그의 몸에 일렁이던 불꽃들이 팔 쪽으로 모여들더니 채찍처럼 늘어났다.


“어때? 내 화염 채찍이?”


촤악!


불로 이루어진 채찍이 꿈틀거리며 내게 날아온다.


“윽······!”


염동방벽을 펼쳐 막았지만, 반은 녹아내리고, 반은 깨져버렸다.

황급히 강기를 사용한 오른팔로 쳐냈다.

하지만 불로 이루어진 채찍이 쳐내질 리 만무했다.

내 강기가 지나간 곳을 기점으로 애매하게 끊어진 채찍이 단숨에 불로 화해 내 몸을 덮쳤다.


······!


끔찍한 격통이 몰려왔다. 이미 한 번 겪어보아 알고 있기에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통증.

그에 나는 그만 달리는 관성 그대로 넘어져 땅바닥을 굴러버렸다.


그리고.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내 몸에 달라붙어 우악스럽게 타오르는 불꽃에 더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새까맣게 타 죽었다.


내 세 번째 죽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으면 천재영웅이 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개인사정으로 인해 오늘은 휴재입니다. 24.08.21 6 0 -
공지 매일 연재합니다. 연재 시간은 당분간 랜덤입니다. 24.08.08 33 0 -
16 영웅이라면(3) 24.08.20 15 1 13쪽
15 영웅이라면(2) 24.08.19 21 1 13쪽
14 영웅이라면(1) 24.08.18 31 1 12쪽
»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7) +1 24.08.17 32 1 12쪽
12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6) 24.08.16 30 0 12쪽
11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5) 24.08.15 35 0 11쪽
10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4) 24.08.14 41 0 11쪽
9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3) 24.08.13 47 0 13쪽
8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2) 24.08.12 47 0 16쪽
7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1) 24.08.11 55 0 12쪽
6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5) 24.08.10 59 0 13쪽
5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4) 24.08.09 60 1 12쪽
4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3) 24.08.08 66 1 14쪽
3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2) 24.08.07 67 1 12쪽
2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1) 24.08.06 89 2 12쪽
1 프롤로그 24.08.06 101 2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