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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죽으면 천재영웅이 됨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6.20 03:22
최근연재일 :
2024.08.20 23:23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800
추천수 :
11
글자수 :
86,198

작성
24.08.0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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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4)

DUMMY

반으로 갈라진 고릴라 괴수의 사체.

콘크리트 바닥에 박힌 초거대 도끼.


“단단한 거랑 혓바닥 말고는 딱히 뭣도 없는 놈이었네. 분석팀은 뭐 이런 놈을 5등급이라고 해서는. 잘 쳐 줘봐야 4등급밖에 안 될 것 같구만.”


쯧, 혀를 찬 차민우가 도끼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도끼가 아무 징조 없이 허공에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긴장이 풀리며 뻣뻣하게 굳어있던 어깨에 힘이 빠졌다.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이번엔 죽지 않은 것이다. 나와 모녀 모두가.

뿐만 아니라, 예지몽의 정보를 활용해 고릴라 괴수를 손쉽게 처치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결말이었다.


괴수 사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던 차민우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한테 시선이 닿는가 싶더니 피 웅덩이를 훌쩍 뛰어 건너온다.

코앞에 멈춰선 그가 신기한 동물 보듯 내 얼굴을 뜯어봤다.

왜 그렇게 보냐고 물으려던 찰나, 그가 대뜸 물어왔다.


“너, 머리 괜찮냐?”

“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내 머리가 괜찮냐고?

머리를 다쳤냐고 물어보는 건가? 근데 난 괴수한테 머리를 공격당하긴커녕 닿은 적조차 없는데?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니까 그가 덧붙였다.


“아니, 좀 미친 거 아닌가 해서. 거기서 뛰어든 건 진짜 미친놈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잖아. 추정 등급 5등급에 안 그래도 신종 괴수라 무슨 능력을 보유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네가 팀장님처럼 상위 영웅인 것도 아니고. 오늘 갓 들어온 신입 주제에.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고.”


차민우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까만 눈동자에는 흥미와 호기심이 넘실거렸다.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뛰어든 거냐?”


무슨 생각으로 뛰어들었냐라······.

뛰어들던 순간, 나도 똑같이 가졌던 의문이다.

당시에는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제대로 된 이유를 떠올리긴커녕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지만, 차분히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니 답은 금방 나왔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정확히는 내가 다치지 않고 모녀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예지몽 속에서 나는 가슴이 꿰뚫린 상태로 죽어가며, 고릴라 괴수와 전투하는 차민우와 한소연을 지켜봤었다.

그렇게 알게 된 고릴라 괴수의 패턴은 단순했다.


단단한 외피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내기.

강력한 완력을 이용하여 공격하기.

개구리처럼 기습적으로 혀를 쏘아내기.


이게 전부였다. 차민우와 한소연에게 밀려 빈사 상태가 될 때까지 말이다.


은연중에 나는 혀를 쏘아내는 기습공격만 조심한다면 예지몽처럼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모녀가 넘어진 순간, 내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뛰쳐나가는 게 당연했다.

나는 내심 괴수의 공격을 전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내가 나서지 않는 이상 모녀가 죽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쉽게 비유하자면 괴수는 트럭, 모녀는 도로 위에 넘어진 사람, 나는 우연히 길을 지나던 보행자라고 할 수 있겠다.


넘어진 사람 코앞에 트럭이 달려들고 있다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하며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기만 하겠지만.

한참 멀리서 트럭이 달려들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아무 피해도 보지 않고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이 든다면.

구하려고 나서는 게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인 것처럼 말이다.


“뭐?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했다고?”


불쑥, 뒤에서 한소연이 나왔다.

전투할 때보다 더 싸늘한 얼굴이다.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너 목숨이 두 개야? 오늘 막 정식 영웅이 된 주제에, 겨우 그딴 이유로 내 지시를 무시하고 뛰어들어갔다고? 너 제정신이야?”


물론 제정신이지······ 라고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입 밖으로 꺼냈다간 어딘가 신체 한 부위가 얼어붙을 것만 같아서.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꿈에서 지금의 상황을 한번 겪어봐서 그런 거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진짜 미친놈 취급당할 것 같은데······.

나야 오늘 아침부터 여러 차례 꿈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현실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는 걸 몸소 경험했기에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지.

만약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그런 소릴 했다면, 하물며 오늘 처음 본 놈이 그런다면 나도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그나마 각성을 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예지 능력을 각성한 게 아니냐고 추측할 껀덕지라도 있지, 나는 이미 염동을 각성한 각성자라 그럴 가능성조차 없다.

한 사람당 하나의 능력을 각성한다는 건, 세상에 게이트와 괴수, 각성자가 등장했을 때부터 쭉 변치 않는 진리였으니까.


“야, 대답 안 해? 또 내 말 무시하는 거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한기가 도는 얼굴을 보며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나가야 하나 필사적으로 고민하던 그때.


“소연아, 왜? 무슨 문제 있어?”


버스 쪽의 괴수를 맡은 문기범 팀장이 돌아왔다.

괴수와 전투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처음 모습 그대로인 그는 나와 한소연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물었다.


“신입이 뭐 실수했어?”

“하, 실수요? 실수면 다행이죠.”


한숨을 푹 내쉰 한소연이 여기서 벌어졌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소연의 말을 들어보니 알겠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녀는 나를 영웅이란 이름과 낭만에 심취해 마음만 앞서는 철부지 신입 영웅으로 보고 있었다.

실제 나는 그 정반대에 가까운데.


“이번엔 운이 좋아서 아무 일 없이 넘어갔지만. 쟤, 이대로 두면 분명 큰 사고 칠 거라고요. 팀장님도 뭐라고 좀 해 봐요.”


한소연이 한쪽 눈썹을 날카롭게 치켜세웠다.

문기범 팀장은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일단 마무리 지을 것부터 마무리하고 얘기하자.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기다리는 사람?

버스 쪽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나?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누가 내 어깨를 톡 건드렸다.


“저기······.”


뒤를 돌아보니 모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둘이 남아 있었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머니 쪽이 허리를 푹 수그렸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어머니는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연거푸 허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아······.”


순간 목구멍이 턱 막히며 말이 안 나왔다.

가슴 속에 거대한 무언가가 들어차서 목구멍을 막고 있는 기분이다.

따뜻하고, 간질간질하고, 빈자리 없이 꽉 채워진 듯한 충족감. 만족감. 뿌듯함.

학교에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의무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녔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입가 근육이 제멋대로 풀린다. 이상한 표정이 튀어나올까 봐 얼른 얼굴에 힘을 주고 표정관리를 했다.


“윤아야, 너도 감사하다고 해야지.”


어머니가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의 바지 옆단을 붙들고 있던 여자아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포동포동한 볼살과 큼지막한 눈이 사랑스럽다.


바로 뭔가를 하지 않고 멀뚱히 나를 보고만 있길래 낯을 가리는 성격인가? 하고 생각했을 때.

아이가 바지를 놓고 씩씩하게 걸어왔다.

어머니 쪽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여장부처럼 걸어오는 게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영웅 아저씨.”

“······어?”

아저씨? 나 아직 서른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살짝 충격을 받았지만, 금세 받아들였다.

유치원생인 조카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것 같으니까.


“저랑 엄마,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배꼽에 손을 올리고 힘차게 인사했다.

그 귀여운 모습에 결국 표정관리가 무너졌다.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이래서 아빠들이 딸한테 껌뻑 죽는 건가?

승천하려는 입꼬리를 최대한 내리며 쪼그려 앉았다.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그래, 넘어진 데는 괜찮니?”

“네! 피 안 나요!”

“다행이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아이가 손을 뻗어 내 바지를 붙잡았다.

응? 뭐 더 할 말이 있나?

갸우뚱하면 시선을 내리자 아이 특유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쏘아져 들어온다.


“아저씨, 아저씨 같은 영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구도혁 영웅에게 구조되었을 당시, 나도 비슷한 질문을 했었는데······.


“······나 같은 영웅?”

“네! 저도 커서 멋지고 정의로운 영웅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


그런데 이거 어쩌냐.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나는 네가 생각하는 멋지고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거든.

뭐, 그래도 아예 해줄 말이 없진 않으려나. 내가 그런 영웅은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영웅이자 멋지고 정의로운 영웅인 구도혁 영웅에게 들은 말이 있긴 하니.


눈을 반짝이며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어머니 쪽의 반응을 우선 확인했다.

소수이지만 우리 엄마처럼 영웅이란 직업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은은한 미소를 짓는 어머니.

우리 엄마랑 다르게 영웅이란 직업에 호의적인 분이신가 보네.

그럼 보호자한테 허락도 받았으니까······.


“영웅이 되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해. 반찬 투정하지 말고, 아침 점심 저녁 잘 챙겨 먹어야 하고. 그래야 쑥쑥 크니까.”

“······네?”


잔뜩 기대감에 차 있던 아이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네가 지금 어떤 심정일지는 내가 아주 잘 알지.

아마 잔뜩 기대하며 선물상자를 열었는데 안에서 문제집이 튀어나온 것만 같은 심정일 거다.

나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또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하고. 체력 훈련도 빼먹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해.”


몇 개 더 비슷한 말을 하니까 아이가 팍 식은 얼굴로 불평했다.


“피이, 그게 뭐예요. 아저씨가 말한 건 전부 각성 능력이랑 상관없는 것들뿐이잖아요.”

“너 나이 때는 능력보단 몸이 성장하는 게 우선이니까.”


그리고 잠깐 알려준다 한들 겨우 초등학생이나 됐을 법한 아이가 고단한 훈련을 꾸준히 잘 이행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아마 구도혁 영웅도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원래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정해진 순서란 게 있는 거야. 지금부터 기본 바탕, 그러니까 각성 능력을 감당할 신체를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성장시키면 분명 능력을 다루는 일도 수월해질 거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커서 네가 바라는 영웅도 반드시 될 수 있을 거야.”

“······정말요?”


아이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좀 전까지만 해도 거짓말 말라는 표정이었는데. 확실히 애는 애인가 보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넘어올락 말락 하는 거 보면.


“그럼 정말이지. 이 아저씬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걸. 네가 커서 영웅이 됐을 때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구도혁 영웅이 내게 해줬던 마지막 말을 전해줬다.


“그러니 네가 클 때까지는 이 아저씨랑 다른 영웅들이 세상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그 다음 세대는 네게 부탁해도 될까?”

“저, 저한테요?”


믿기 힘든 말을 들은 거처럼, 아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언제 불평을 했냐는 듯이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걱정 말고 저한테 맡기세요!”


조그만 주먹이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제가 빨리 쑥쑥 커서 아저씨 금방 은퇴하게 해줄게요!”

“······그, 그러니?”


순간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말을 절었다.

그때 은퇴하면 사실상 은퇴라기보단 실업 쪽에 더 가까울 것 같은데······.

설마 내가 듣기 싫은 소리 좀 했다고 일부러 노리고 말한 건······ 아니겠지?

에이, 얘 나이가 몇인데.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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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2) 24.08.12 47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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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4) 24.08.09 61 1 12쪽
4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3) 24.08.08 66 1 14쪽
3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2) 24.08.07 6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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