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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죽으면 천재영웅이 됨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6.20 03:22
최근연재일 :
2024.08.20 23:23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791
추천수 :
11
글자수 :
86,198

작성
24.08.06 15:06
조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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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1)

DUMMY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궁금한 점 있습니까?”


면접관 중 한 명이 사무적인 어투로 물었다.


······마지막? 벌써?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긴장해서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최종 면접이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내가 대답은 더듬지 않고 잘 했었나? 면접 분위기는 어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기억을 되감아 보면서 면접관들의 표정을 스캔했다.


애매하다.

하나같이 좋다고 하기도, 안 좋다고 하기도 모호한 표정들을 짓고 있다.

이거 괜히 면접 전략을 수정한 건가? 약간 도박수긴 했는데.


남몰래 마른침을 삼킨 나는 마지막으로, 면접장에 입장한 내게 면접 전략을 수정할지 말지 고민을 안겨줬던,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면접관의 표정도 살펴보았다.

단련된 근육으로 옷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근육질 노인.

이 면접의 향방을 쥐고 있는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희미하게 짓고 있었다.


과연 저 미소는 청신호일까? 적신호일까?


만약 청신호라면, 내가 합격하는 일도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1세대 영웅, 구엽철.


그는 1세대 영웅들 대부분이 은퇴한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뛰는 몇 안 되는 영웅이자,

도시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등 전설적인 위업을 수차례나 이룩한 영웅 중의 영웅이며,

내가 지원한 여명 길드에서 굉장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잘 알려진 창립 멤버였으니까.


“하고 싶은 말 없어?”


어떻게 마무리해야 후회 없는 면접이 될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구엽철 영웅이 재촉했다.

어쩐지 기대와 흥미가 담긴 것만 같은 눈빛을 마주하며, 나는 고르고 고른 마지막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



최종 면접은 성공적이었다.


내 영웅학교 졸업 성적으로는 붙기 힘든 상향 지원이었는데.

그래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합격한 것이다.


나는 환희에 차서 가족과 친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모두에게 축하의 말을 배 터지게 얻어먹고, 새 학기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첫 출근날을 기다렸다.


그렇게 마침내 다가온 첫 출근날.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기상한 나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여명 길드에 출근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쿨럭!


기침과 함께 입 밖으로 핏물이 터져 나왔다.

혀에선 불쾌한 느낌의 쇠 맛이, 가슴에선 타는 것만 같은 격통이 느껴졌다.


모든 게 꿈만 같지만, 아니 꿈이라고 믿고 싶지만······.

이 절망적인 상황이 현실이란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촤아악!


심장이 뽑히는 듯한 감각과 함께 눈앞의 괴수가 기다란 혀를 회수한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를 내려 내 가슴 상태를 확인했다.

큼지막한 구멍이 뻥 뚫려있다.

웃기게도 나는, 저 괴수의 혀에 심장이 관통당한 것이다.

설마 혀가 공격 수단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생긴 건 고릴라처럼 무식하게 생긴 주제에.


“신주혁, 너 누가 단독행동하라고······!”


격한 감정이 서린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뒤쪽에서 다수의 얼음송곳이 날아들었다.

고릴라 괴수가 거대한 팔뚝을 방패처럼 휘둘러 송곳들을 쳐낸다.

코앞에 있는 나는 1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하긴 가슴이 뻥 뚫려 다 죽어가는 놈을 뭐하러 신경 쓰겠어.

마음 같아선 죽기 전에 날 무시하는 괴수 놈에게 어떻게든 한 방 먹여주고 싶은데······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몸 전제가 돌연 파업을 선언한 느낌이다.


툭.


그때, 다리 뒤쪽에 뭔가 닿는 느낌이 났다.

이것만은 죽기 전에 확인해야겠다 싶어 죽을 힘을 다해 고개를 꺾었다.

간신히 돌린 시야 끝에,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죽어있는 여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나 뭐한 거냐, 진짜.

왜 갑자기 나답지 않게 사람을 구하려고 해서는······.

아니 그래.

많이 양보해서 구하려고 할 순 있다 치자.

내가 착한 사람은 아니어도 눈앞의 곤경에 빠진 사람을 매몰차게 무시하고 지나치는, 그런 냉혈한은 또 아니니까.

근데 그럴 거면 하다못해 저 둘 중 한 명은 구했어야지.

나도 죽고 저들도 다 죽으면, 내 죽음은 정말 개죽음밖에 안 되는 거잖아.

이게 뭔 병신같은 최후냐고.


“······.”


혼자 속으로 넋두리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는 멈추지 않고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실체를 가지고 다가왔다.

낮이라 밝아야 할 사위는 점점 어두워졌고, 시끄러워야 할 전투음은 희미해졌으며, 끔찍해야 할 고통은 편안해졌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 나 이제 곧 죽겠구나.


생각하자마자 간신히 버티고 있던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기우뚱, 하고 몸이 넘어간다.

이윽고, 어두컴컴한 세상 속에 거대한 충격이 들이닥쳤고······ 새까만 어둠에 휩쓸린 나는, 뭘 해볼 새도 없이 그대로 의식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



“야, 신주혁!”


불쑥 고막을 흔드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눈앞에서 나무젓가락 한 쌍이 까딱거린다. 그 뒤에는 어제도 봤던 형의 얼굴이 보였고.

순간 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뭐야? 난 죽은 게 아니었나? 왜 형이 여기에 있는 거지? 설마······.


“형도 죽은 거야?”

“뭐?”


내 말에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치킨 먹다 말고 멍 때리길래 뭔 생각을 하나 했더니······ 눈 뜨고 꿈이라도 꿨어?”

“어?”


꿈?

그러고 보니 주위 배경이 익숙하다.

가구라 불릴 만한 건 책상과 침대가 다인 방.

여긴 내가 영웅학교 졸업 후에 구한 자취방이었다.

거기다 식탁도 없이 맨바닥에 깔린 치킨 박스와 캔맥주. 마주 앉아 있는 형.

이건 분명 어제 있었던 일인 거 같은데······.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어제 날짜다. 시간은 저녁 7시.

그러니까······ 내가 모녀를 구하려고 했던 것도, 그러다가 고릴라 괴수의 혓바닥에 가슴이 꿰뚫려 병신처럼 죽었던 것도, 전부 다 내일을 배경으로 한 꿈에 불과하다는 건가? 현실이 아니라?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왜 나랑 아무 관계도 없는 모녀를 구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했는지.

꿈이라서 그런 거다.

꿈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도, 내 마음대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도 자주 나오기 마련이니까.


물론 치킨 먹다 말고 나도 모르게 졸고, 심지어 꿈까지 꿨다는 것이,

또 그 꿈이 꿈 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는 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뭐, 아예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니까.


어제 친구들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집들이 기념으로 멋대로 쳐들어와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가서 오늘 컨디션이 별로이기도 했고.


“왜? 진짜 꿈이라도 꾼 거야? 꿈에서 내가 죽었어?”

“아니. 형이 죽긴 왜 죽어. 그리고 꿈을 꾸긴 무슨. 잠깐 딴생각 좀 했을 뿐이야.”


재빨리 부정했다.

심각해지려던 형이 얼굴이 도로 느슨해진다.

형은 이런 미신 같은 걸 잘 믿는단 말이지.

내가 꿈에서 죽었다고 말하면 괜한 걱정을 사서 할 것이다.

그리고 막 조심하라고 이것저것 과하게 참견하겠지.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이와 비슷한 일로 쓸데없는 걱정과 참견을 수차례 받아본 내 입장에선 되도록 피하고 싶은 일이다.


“딴생각? 뭔 생각을 했길래 내가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왜? 막상 출근날이 다가오니까 없던 걱정이 샘솟기라도 해?”


형이 젓가락으로 순살 치킨 한 조각을 집으며 물었다.


“······뭐, 그렇지.”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막판에 생각을 바꿨다.

꿈을 꾸기 전까지는 별생각 없었는데, 어쩌면 꿈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현역 영웅인 형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사실 내가 면접에서 영웅적인 면모와 자질, 사명감에 대해 좀 많이 어필하긴 했거든.”

“그건 다들 하는 거잖아. 말로만.”


그건 그렇지.

면접에서 대놓고 전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벌기 위해 지원한 겁니다, 라고 할 순 없으니까.


“근데 나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어필했어. 나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경험도 엮어서.”

“특별한 경험? 너한테 그런 게 있었나?”

“나 어렸을 때 구도혁 영웅한테 구조된 적 있잖아.”


구도혁 영웅.

그는 구엽철 영웅의 제자다.

역대 세계 최강, 최고의 영웅을 뽑을 때면 어김없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웅.

전 세계인이 우리나라 이름은 몰라도 구도혁 이름 석 자는 안다는 전설적인 영웅.

안타깝게도 세상을 지키다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했다.


“면접장에서 이렇게 말했지. 구도혁 영웅이 나를 보고 다음 세대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그때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진지하게 영웅의 꿈을 키워 왔고, 할 수만 있다면 구도혁 영웅의 의지를 잇고 싶다고.”

“음······ 면접장에 구엽철 영웅이 있었다고 했지? 스승인 그분에겐 조금 특별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네. 다른 사람들에겐 영 아니었겠지만.”

“지금 다른 면접관들의 의견이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나는 구엽철 영웅한테 영웅심을 어필해서 면접에 합격한 거 같거든.”

“근데?”

“붙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정확히는 꿈을 꾼 뒤에 든 생각이다.


“혹시 내가 긴급 대응팀 쪽으로 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긴급 대응팀은 문자 그대로 게이트 재해와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할 시 우선적으로 출동해서 대응하는 팀을 말한다.


소형 길드를 제외한 중대형 길드에는 법적으로 반드시 일정 수 이상 존재해야 하는 팀이자,

게이트 던전을 공략하는 일반적인 영웅팀보다 몇 배 더 영웅스러운 팀.

하지만 그만큼 부상, 사망 위험도도 몇 배나 더 높은 팀······.


그런데 하필이면 꿈에서는 내가 그 팀에 배정됐었다.

또 하필이면 배정된 날에 길드 인근에서 게이트 재해가 터져버렸고, 또 또 하필이면 첫 출동을 나가자마자 죽어버렸다.

만약 꿈에서처럼 내가 내일 긴급 대응팀에 배정된다면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도······.


“너도 참 별 걱정을 다 한다.”


진지한 내 얼굴을 보고 형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막 길드에 입사한 신입 영웅을 다짜고짜 긴급 대응팀에 넣는다고? 심지어 너는 여명 길드 같은 대형 길드 기준엔 좀 못 미치는 성적이잖아.”


그렇지.

대형 길드는 각 영웅학교 최상위권 얘들이 주로 들어가는 곳이니까.

그래서 내가 여명 길드에 붙었을 때 환호했던 거고.

형이 날름 치킨 한 점을 집어먹고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킨 후 다시 말했다.


“가끔 신입이 그 팀에 들어가긴 해. 근데 그건 영웅학교에서 전체 1, 2등 하던 엘리트들이나 그런 거고. 네가 그 정도 수준은 절대 아니잖아.”


형 말이 맞다.

맞긴 맞는데······.


“절대까진 아니지 않아? 내가 그래도 최상위권은 아니어도 항상 상위권 성적은 유지했는데. 죽을 만큼 노력하면 또 모르는······.”

“모르긴. 요번 연도 졸업생들 중에 특급 유망주로 유명한 애 있잖아. 남우현. 마침 각성 능력도 너랑 똑같은 염동이네. 네가 걔만큼 할 수 있다고? 정말로?”


하, 나를 뭘로 보고.

당연히······.


“절대 못 하지.”


걘 진짜 천재라고. 어지간해선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겠지만, 걘 정말로 타고난 재능부터가 다르다.

어느 정도냐면, 언론에선 벌써부터 그 녀석을 ‘제2의 구도혁’이라고 부르며 설레발을 치고 있을 정도랄까.


“내 동생이 자의식 과잉은 아니라서 다행이네. 하여간, 걔 정도 수준이 아니면 긴급 대응팀으로 빠질 일은 없어. 그러니까 있지도 않을 일 사서 걱정하지 말고 치킨이나 먹어.”


형이 젓가락으로 치킨 박스를 툭 쳤다.

대수롭지 않은 그 행동에 스르르 마음이 놓였다.

그래, 평소 걱정 많은 형도 저러는데 이러는 건 나답지 않다.

꿈에 무슨 내용이 나왔든 결국 꿈은 꿈일 뿐이니까.


그로부터 두어 시간 후.

치킨과 맥주를 깔끔하게 해치운 형이 돌아갔다.

뒷정리를 한 나는 내일 출근을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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