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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죽으면 천재영웅이 됨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6.20 03:22
최근연재일 :
2024.08.20 23:23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797
추천수 :
11
글자수 :
86,198

작성
24.08.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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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4)

DUMMY

예지몽과 타임루프.


사실 따지고 보면 현실 같은 예지몽이든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루프든 특별한 구별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예지몽이든 뭐든 현실처럼 느껴진다면 어쨌든 그것은 내게 현실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이거다.


확신.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첫 번째 죽음에서는 죽기 전에 경험했던, 그러니까 1회차의 일이 죽은 후 2회차에 그대로 반복되어 일어났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이건 타임루프가 확실하다.


하지만 두 번째 죽음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회의는 비슷한 느낌으로 끝났지만, 이걸로 확신을 가지기는 애매하다.


카멜레온석인이 나오는 게이트 던전과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미친 방화범.

이 두 개의 중요 사건까지 확인해야 내가 죽으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내 이득을 위해 자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타임루프할 줄 알고 자살했는데, 뭔가가 잘못되어 의도했던 대로 타임루프가 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냥 목숨만 잃는다면, 그것만큼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없을 테니까.


“후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각성 능력은 한 사람 당 하나 밖에 각성되지 않는 게 아니었나?

혹시나 해서 염동을 사용해 봤다. 핸드폰은 허공에 둥둥 잘만 떠다녔다.


“뭐, 됐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건 기회였다.

던전에서 느꼈던 지독한 무력감을 이번에는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기회.

수정할 수 없는 과거를 내가 원하는 대로 수정할 수 있는 기회.


그러니.


한 번 최선을 다해보자.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는, 그런 바보 같은 실수는 범하지 말자.


마음속으로 결심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



“너 진짜 그러고 대련하려고?”

“네.”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네. 진심이에요.”


내 변함없는 대답에 차민우가 몇 초간 내 옷차림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현재 장비팀에서 빌려온 방독복을 입고, 얼굴에는 방독면을 착용하고, 등에는 이것저것 무거운 잡동사니를 집어넣어 무게를 올린 배낭을 메고 있으니까.


“다음 주에 들어갈 던전 때문에 그래? 아니, 던전 때문이겠지. 그래도 일주일 전부터 이러는 건······ 흠, 좀 많이 과한 거 같은데. 안 그래?”


전혀 과하지 않다.

던전에 들어갔었을 때, 내게 가장 치명적으로 다가온 건 독의 중독이었지만, 무거운 배낭과 방독면의 착용으로 인한 호흡량 감소 또한 나에겐 힘겹게 다가왔었으니까.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이 상태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적응을 끝마쳐야 한다.


“그리고 방독복은 또 왜 입은 거야? 배낭이야 각종 보조 장비와 내성 포션 같은 소모품을 넣는다고 치고, 방독면도 호흡으로 중독되는 독 종류가 제법 되니까 이해는 가는데, 방독복을 입어야 하는 능력은 단 한 놈밖에 가지고 있지 않잖아.”


그가 연습용 검을 어깨에 걸치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1퍼센트. 고작 1퍼센트도 안 된다고. 지금 네가 입고 있는 방독복이 쓰일 확률은. 이건 철저한 게 아니라 과한 거야, 과한 거.”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과한 거 같다고.

그래서 던전에 들어갈 때 방독복을 입지 않은 거고.


하지만 이젠 안다. 이게 결코 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방독복을 입는 것이 정답이었다. 배낭과 각종 보조 장비들이 오답이었고.


따라서 정답인 방독복을 입는 것은 필수다.

그리고 오답인 배낭과 각종 보조 장비들은······ 챙기기 싫지만, 이것들도 챙겨야 한다.

만약 내가 정답인 장비들만 들고 던전에 들어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테니까. 그리고 의심을 받을 테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필연적으로 내가 타임루프라고 추측하는 이 능력을 밝혀야 하는데, 그럴 경우 나는 거의 100% 확률로 곤란한 상황에 빠질 것이다.


간단하게 예시를 들자면 이런 거다.

어느 날 누군가의 소중한 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누군가는 죽은 소중한 이를 살리고 싶을 테고, 만약 내 능력을 알고 있다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부탁해 올 것이다.

내가 죽어서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소중한 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장소와 시간을 말이다.


분명 좋은 일이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간 세계와 현재의 세계는 서로 다른 세계라는 평행우주? 뭐 그런 어려운 가설은 차치하고 어쨌든 타임루프하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땐 사람을 한 명 살리는 일이니까.

그러니 부탁을 받는다면 잠시 고민은 하겠지만 들어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게 한 명이 되고, 두 명이 되고, 열 명이 된다면?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도 넘어, 세계인 전부가 위와 비슷한 종류의 부탁을 한다면?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절대.

나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심지어 악용될 여지도 충분하다.

탐욕을 부린 누군가가 날 납치해서 자신이 되돌리고 싶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나를 고문하며 죽일 수도 있으니까.


어느 모로 보아도 이 능력은 최대한 감추는 게 맞다. 그게 내 신상에 이롭다.

그러니 지금처럼 차민우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라도 나는 뻔뻔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나는 능력을 밝히기도 싫고, 던전에서 느꼈던 무력감을 또다시 느끼기도 싫으니까.


“선배. 저는 선배가 아무리 설득해도 이대로 던전에 들어갈 거예요. 그렇게 결정했어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설득은 그만하시고 평소처럼 대련이나 하죠?”

“하아······. 너 진짜 쇠고집이네.”


차민우가 체념한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마침내 검을 세우며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움직이기 불편하다고 봐주거나 하지 않는다?”

“바라던 바예요.”


염동력을 끌어올린 나는 마주 검을 세우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



“족발 대자 나왔습니다.”


밑반찬이 깔린 테이블 중앙에 큼지막한 접시가 놓였다.

접시 위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갈색 족발이 보기 좋게 썰린 채 담겨있었다.


“먹을까요?”

“그전에 짠부터 하죠.”


맞은편에 앉은 최영호가 소주잔을 들었다. 잔을 부딪치고 단번에 털어 넘겼다.

이어 야들야들한 족발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새우젓에 콕 찍어 먹었다.

껍질 부분은 쫄깃쫄깃하고. 살코기 부분은 부드럽고.

족발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이다.

그렇게 내가 첫 점의 감동을 음미하고 있을 때, 최영호가 상추에 족발을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저희 동갑 아니에요? 24살. 맞죠?”

“네. 말 놓을까요?”

“그래. 놓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말을 놓고 한결 편해진 분위기 속에서 물었다.


“남우현 씨는 왜 안 오는 거래?”


며칠 전 휴게실에서 날 잡아 동기들끼리 밥 먹기로 한 약속.

추진력이 상당한 최영호는 바로 다음 날에 가능하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남우현이 안 된다고 해서 취소됐다.

그 다음날도 남우현 때문에 안 됐고.

그 다음날도 또 남우현 때문에 안 됐다.

그렇게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이대로는 영영 자리를 가지지 못 할 것 같아서 안 된다는 남우현 빼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널널한 우리 둘만 따로 만나기로 했다.

그게 오늘 저녁, 나와 최영호가 족발집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이유다.


“정확한 이유는 말 안 해주고 그냥 바쁘다는데?”

“매번?”

“어. 매번 바쁘데.”


그렇게 매번 바쁠 수가 있나?

같은 신입 영웅인 나랑 최영호는 그렇지 않은데?

이 정도면 일부러 피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수준이다.

그때, 붉은 양념이 듬뿍 묻은 막국수를 앞접시에 덜며 최영호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너 요즘 길드에서 유명하던데.”

“내가?”

“너 방독면하고 방독복 입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대련한다며. 길드에 소문 다 퍼졌어. 아마 길드 안에서 네 이름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그게 퍼졌다고?

순간 뇌리에 요즘 들어 자주 겪던 까닭 모를 묘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길드 로비나 복도를 거닐다 보면 직원들이 날 보고 자주 수군거리거나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곤 했는데.

아. 그게 그 소문 때문이었구나.


“하······.”


한숨이 나왔다.

대체 누가 퍼트린 거지? 탈의실에서 대련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누가 본 건가? 딱히 본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설마 차민우가······.

“던전 때문이지?”

“······뭐?”

“던전 들어갈 때를 대비해서 그렇게 훈련하는 거 아냐?”

“아, 맞아. 다음 주에 들어가는 던전 괴수가 카멜레온석인이거든. 근데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는 몰라. 그래서 갖고 들어갈 수 있는 장비들은 최대한 갖고 가려고 고생 중인 거지.”

“대단하네.”“응?”“난 그렇게까진 못할 것 같거든. 나는 인생 모토가 용의 허리가 되는 거라서.”

“용의 허리라면······ 중간만 하자, 뭐 그런 뜻이야?”

“중간보단 살짝만 더 잘하자. 뭐 그런 거지.”


뭐야. 그건······.


“나도 그런데?”

“뭐?”


희한한 말을 들은 것처럼 최영호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너 첫날에 출동 나가서 목숨 던져가며 시민 둘이나 살렸다면서. 그런데 너도 그렇다고?”


그 일은 타임루프 덕분에 가능했던 거고, 실제 나는······ 아니 그보다.

“너가 그 일은 어떻게 알고 있어?”


나는 말해준 기억이 없는데?


“그냥 여기저기서 다들 말하고 다니던데?”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속담이 이런 거였나?

황당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 최영호가 낄낄거렸다.


“야, 원래 영웅에 대한 소문은 금세 퍼져. 그런데 영웅인 데다 새로운 얼굴인 신입 영웅? 이건 뭐 더 말할 필요가 있어?”


없지.

앞으론 길드에서 무언가를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겠다.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넌. 나 같은 가짜 영웅이 아니라는 거지. 굳이 분류하자면 진짜 영웅 쪽이랄까.”


최영호가 붉은 양념이 묻은 젓가락으로 본인과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가짜 영웅과 진짜 영웅.

미디어에서 자주 나오는 용어다.


타인보다 나를 위하면 가짜 영웅.

나보다 타인을 위하면 진짜 영웅.


그런데 내가 진짜 영웅이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왜 웃어?”

“아니. 내가 진짜 영웅이라는데 웃지 않고 배겨? 혹시 너 벌써 취했냐? 주량 몇 병, 아니 몇 잔이냐?”


얘는 알까?

진짜 영웅이라는 내가 타임루프로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아마 알면 방금 한 말은 바로 철회할 것이 분명하다.


“흠, 난 진지한데.”

“알아. 그래서 더 웃긴 거고. 난 네가 생각하는 진짜 영웅이 절대, 네버 아니거든.”


내 말에 그가 지그시 내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선 장난기라곤 조금도 담겨있지 않은 진지한 눈동자를 한 채 입을 열었다.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결국, 그 사람이 진짜 영웅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건 본인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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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4) 24.08.14 42 0 11쪽
9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3) 24.08.13 4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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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지몽이 아니라 타임루프(1) 24.08.11 5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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