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순은 노론 유일의 천주교 신자입니다. 김상헌의 봉사손으로 종가에 입양되었으나, 성리학 외의 다양한 학문을 접했고, 천주학을 받아들이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김건순은 18세에 남인, 북인(놀랍게도 이때까지 살아있는 북인들이 있었습니다..)들과 교류하며 조선 예학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주자가례를 비판하여 이가환 등의 남인 거두들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양부의 상을 당하고도 상례를 따르지 않아 사대부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말입니다.
이후 청으로 건너가 천주교 신부를 만나고 돌아온 그는 정조 시기, 소북의 해도병마설에 연관된 자로 지목당해 옥사를 치르게 됩니다. 일찍이 천주학을 따르며 상례를 부정한 데다 소북 인사들과 교류하며 해도병마설에 대한 지지를 표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서양 학문을 익혀 섬에 군사를 길러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자는 논의를 퍼뜨린 죄로 잡혀간 그는 꼼짝없이 벌을 받을 상황이었으나, 정조는 그를 특별히 예외로 삼아 귀양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본문에서 주자가례와 같은 예학 논의가 나오게 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이 엮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조의 치세를 생각하면 서학을 옹호하려 했다기보다는 아마도 그 가문의 배경과 정조의 안동 김문에 대한 신뢰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려워 본문에서는 김건순이 제 입맛에 따라 정조의 뜻을 논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신유박해의 전사로 진산사건은 어느 정도 유명하지만, 해도병마설 사건은 유명하지가 않아서 작중 관련 논의가 나오는 것이 난해하실까 싶어 몇 자 적어봤습니다..ㅎㅎ
원 역사의 신유박해에서는 천주교인임을 부정하여 배교하는 뜻을 밝혔으나, 끝내 숙청의 칼날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샤를르 달레나 황사영 등 당대인물들은 그를 순교자로 묘사하였지만, 종교적 신념보다 살아남기를 선택한 이력이 있기에, 작중 주인공의 의도에 따라 말을 꾸미는 역할을 맡겨보았습니다.
adribber/선교사들이 간첩 역할까지 한 것은 맞지만 모든 카톨릭 국가들이 교황>>왕 이런 관계구도를 당연시 여겼다고 보가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이미 개신교의 발흥과 카를 5세 시절 사코 디 로마로 교황의 권위는 바닥을 친지 오래고 30년 전쟁이 결정타를 먹이며 교황이 세속권력에 간섭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상황인데 조선이라고 당대 유럽 절대왕정 차럼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죠. 오히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불교를 기독교로 대체해 왕실 권위를 높힐 수 있는 상황인데요
듀라세/ 애초에 왕권신수설은 세속주의적, 정교분리가 강한 조선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자는 내용이 절대로 통할 리가 없어요, 게다가 현 개신교의 타락의 근본 원인이 기독교의 정치적 야합이 원인인데, 예로부터 한 종교가 국교가 되면 종교의 권력화에 따른 타락이 오게 됩니다. 솔직히 이 소설에서도 개신교의 타락과 행패를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그냥 공인 해주고 국교로 삼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공존해나가는 게 최선이에요,
그리고 제사문제는 조상님을 숭배하는 행위나, 기복신앙적인 면이 유일신 신앙인 기독교내에서 문제가 되는 거라서 그 부분만 해결되면 제사가 가능합니다. 애초의 제사의 본질은 공자님이 말했듯이, 우리의 조상님의 헌신과 뜻을 후손이 감사하고 기리면서 그 유지를 잇기로 다짐하면서 후손들의 유대를 강화하는 게 목적입니다. 공자본인도 무신론적 성향이 강해서, 조상의 혼령이 제사때 돌아온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조상님의 유지+후손들의 유대강화를 위해서 적극찬성한 겁니다. 그게 후대로 오면서 조상신을 섬겨와 재물과 복, 명예가 들어온다는 기복신앙이 되서 문제지, 제사는 기본적으로 조상님이 돌아온다는 믿음보다는 그분들에 대한 감사와 유지를 이으면서, 절보다는 고개를 숙이는 인사를, 신주나 위패를 없애고, 추모를 하면서 추모 예배형식을 유지하면 문제가 없어요, 실제로 개신교는 조상숭배 논란과 제사의 폐해때문에 없애고 금지시켰고, 대신 추모 예배만 드리지만, 카톨릭은 제사의 신앙적 면, 즉 조상이 식사하는 조상이 식사하는 동안 잠시 밖으로 피한다든지 하는, 죽은 이를 산 사람처럼 대한다든지 신으로 모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은 뺐고 신위(위패를 놓거나 지방을 붙이는 것)모시는 것은 금지해요
동안 잠시 밖으로 피한다든지 하는, 죽은 이를 산 사람처럼 대한다든지 신으로 모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은 뺐고 신위(위패를 놓거나 지방을 붙이는 것)모시는 것은 금지하지만
대신 추모 예배형식을 유지하면서 제사 중에 두 번 절하는 것도 허용+ 권장 제사 순서까지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있어요, 성당에서는 단체로 제사까지 드린다고
정순왕후와 벽파가 모든 군권을 갖고 있었는데 논리에서 밀렸다고 국문에 응한게 납득이 안되네요.
애송이왕의 말 따위 대놓고 무시하고 지들 꼴리는대로 시파 죄다 죽여버리는게 저들 방식인데 말이죠.
수렴청정 끝나도 대비가 계속 섭정하거나, 아예 폐위시키고 철종 같은 새왕 세우는게 쟤들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gogtamons / 물론 정치적 안정성만 따지면 유교만한 게 없기는 합니다만 애초에 머역물 주인공의 목표는 부국강병이 대부분이므로 조선을 배경으로 하면 시종일관 작은정부 지향하던 조선 베이스로는 부국강병 각이 때려죽어도 안나오니 서양과의 통상개방과 중상주의를 택하는 수밖에 없고 그걸 하려면 가톨릭과 야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서양 세력에 우호적으로 보이도록 종교의 자유를 풀 수밖에 없음.
애초에 한반도 생산력은 중국은 커녕 일본보다 못해서 단순 거래로는 매력이 떨어지니 서양에 우호적인 제스쳐를 뿌려서 꼬시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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