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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쟁투 님의 서재입니다.

만가서점 영웅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와캬퍄
작품등록일 :
2022.06.26 17:42
최근연재일 :
2022.10.01 12:09
연재수 :
2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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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72
추천수 :
1,541
글자수 :
1,227,852

작성
22.08.13 12:58
조회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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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3쪽

92화

DUMMY

거대한 몸뚱이와 검고 윤기나는 털.

은빛으로 빛나는 철갑을 두르고 흉흉한 눈빛을 가진 말.

게다가 흑귀마라는 그 이름에 선우진은 마인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놈들은 분명 패왕총의 적토단이었고 말을 쓰다듬은 사내는 적수환이 분명했다.

선우진이 분노로 몸을 꿈틀거리자 만규성이 그를 잡았다.


“형님. 참으시오.”

“안다.”


지난번 선우진은 치욕스러운 패배를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참아야 하는 때.

선우진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일을 망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흑귀마가 코를 벌렁거렸다.

놈은 무슨 냄새를 맡기라도 한 것인지 회천단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자 선우진은 예전 사천당가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문곡아. 혹시 이 진법이 냄새도 막아주냐?”

“아니요. 단순히 모습만 감출 수 있어요. 환영으로 저희의 모습을 덮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숨소리나 냄새가 모두 들린다는 말이네?”

“소리는 술법으로 막을 수 있는데 냄새는······ 잘 모르겠네요.”

“그래, 그렇구나. 젠장, 모두 전투준비!”


그 순간 적수환의 창이 진법을 찢어버렸다.

모든 환영이 걷히고 회천단의 모습이 드러나버렸다.

선우진은 흑귀마를 보며 이를 갈았다.


“젠장. 저 개 같은 말을 잊었군. 하여간 말 주제에 코는 개코에요.”


사천당가에서도 놈이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바람에 만규성의 술법이 통하지 않았다.

설마 이곳에서 적수환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냄새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 컸다.

적수환은 선우진의 얼굴을 알아보자 오랜 친구를 만났다는 듯이 반가워했다.


“이게 누구야? 사천에서 본 상인 놈 아니냐?”

“그래 나다 이 새끼야. 만나서 참 반갑다. 표두 놈아.”

“역시 넌 무림맹 놈이었구나. 하하, 이번 토벌에 참여하길 잘 했어.”


적수환은 살기를 뿜으며 창을 들어 올렸다.

그가 얼마나 선우진과 재회하는 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애마 흑귀마가 독에 당해 피를 흘리며 죽을 뻔했을 땐 단주직을 버리고서라도 놈을 찾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이렇게 만나다니.

너무 기뻐서 놈의 목을 단숨에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적수환은 적토단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여기 앞에 있는 녀석은 내 먹이니 건들지 말고 다른 놈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라.”

“예. 단주!”

“웃기는 놈. 누가 죽을지는 대봐야 아는 거지.”


선우진은 코웃음을 치며 대검을 들었다.

그도 그동안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저번처럼 허무하게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흑련주 선우진이 투기를 드러내자 다른 사파인들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련주가 놈을 맡으면 그럼 난 누가 좋을까?”

“이거 오랜만에 저도 힘 좀 쓰겠습니다. 웅 방주님.”

“말고기가 그렇게 몸에 좋다는데 오늘 몸보신 제대로 하겠습니다.”


웅패심과 응사구를 비롯한 사파인들은 패왕총의 마인들을 상대로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정백대 또한 조용히 내기를 끌어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곧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회천단과 적토단은 서로를 향해 돌격했다.


***


패왕총 마인들을 눈앞에 두니 선혜성은 옛날 일이 떠올랐다.

그가 막 선우진에게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고 사천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때는 엄청난 크기의 말에 타고 있던 마인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동안 몇 번의 큰 싸움을 겪고 일 갑자가 넘는 내공을 가지게 되니 놈들이 우습게 보였다.

패왕총의 마인은 실실거리며 웃고 있는 선혜성의 얼굴에 분개하여 달려들었다.


“죽어라!”


선혜성은 정면으로 달려오는 말을 바라보며 조금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쥐고 있는 검을 더 꽉 쥐었다.

어느새 마인이 그의 코앞에 다가오고 선혜성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동안은 모르고 있었는데 사실 그의 검은 말의 목을 자르기에 적합한 길이었다.

검기를 머금은 그의 검이 사람과 말을 동시에 베어 넘겼다.


“으헉!”


마인을 벤 선혜성의 검은 다음 적을 찾았다.

주변을 보니 말을 탄 사람과 상대해 본 경험이 적은 정백대가 수세에 몰렸다.

선혜성은 그들을 돕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의 검이 오로지 말의 목만 노리며 전장을 누볐다.


“젠장, 저 새끼부터 잡아! 우리 말을 노린다!”

“뭐 하는 거야? 말을 지키란 말이야!”


말의 목숨을 사람보다 우선시하는 패왕총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선혜성의 만행에 흥분하여 그를 포위했다.

놈들이 창을 들어 올렸다.

마인들이 선혜성을 노리고 앞뒤로 달려들자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허공에서 은신해 있던 차상철이 튀어나와 말 위에 탄 마인을 죽였다.


“썅. 살수 짓은 정말 하기 싫었는데. 그나저나 막둥아, 괜찮냐?”

“예. 형님. 전 멀쩡해요.”

“다행이다. 근데 너 우리들 몰래 좋은 것을 먹었다더니 진짜였구나.”

“예? 아, 하하.”

“아무튼 아직 전투 안 끝났으니 끝까지 조심해라. 난 다른 사람들을 도우러 가마.”


한 쪽에서 패왕총 무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팽도후의 비명이 들려온다.

차상철은 그를 돕기 위해 또다시 은신술을 썼다.

선혜성도 주변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 그의 눈에 창에 찔리기 일보 직전인 야오찬의 모습이 보였다.

선혜성은 처음 4장이 시작되었을 때 도와준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죽어라!”

“이런······.”

“뭐, 하는 거예요. 정신 똑바로 안 차려요?”


선혜성은 창을 걷어낸 뒤 그대로 말의 목을 베고 마인까지 갈라버렸다.

압도적인 선혜성의 무력에 야오찬은 입만 벙긋거렸다.


“형님, 말이 달려들어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냥 눈 딱 감고 굴러버린 뒤 말의 다리를 자르면 놈들도 아무것도 못한다니까요.”

“그, 그래. 알았다. 살려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그럼 전 가 볼게요.”


선혜성이 야오찬에게 했던 충고는 그가 처음에 패왕총 마인들과 싸웠을 때 차상철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때 차상철의 말대로 눈 딱 감고 바닥을 구른 뒤 말의 다리를 베어버리니 패왕총 마인도 힘을 쓰지 못했다.

그 후로는 마인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선혜성은 이 말이 야오찬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고 또 다른 적을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땀은 비오 듯이 흘렀고 거친 숨소리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어느덧 마르지 않을 것 같던 내공은 동이 나 버렸고 검을 쥔 손이 뻐근해졌다.

몸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음에도 선혜성은 입술을 깨물며 검을 고쳐 잡았다.

아직도 적은 많이 남아 있었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후욱, 후.”

“막둥아, 힘드냐?”

“예. 형님. 죽을 것 같은데요?”

“조금만 버텨라. 곧 끝이 보인다. 형제들이 네 등을 맡아 줄 것이다.”


어느새 흑사방은 똘똘 뭉쳐 패왕총 마인들과 맞섰다.

혁련수백 또한 그들의 사이에서 눈빛을 빛내며 검을 잡고 있었다.


“다들 검 잡기 힘들면 알아서 소매 찢어라. 괜히 놈들이 돌격해 왔을 때 손아귀에 힘 풀려서 검을 놓치면 쪽팔리잖냐.”

“에이, 규성 형님도 참. 우리가 그럴 사람들입니까?”

“상철아 떨리는 검은 좀 멈추고 말해라.”

“제가 언제 검을 떨었다고. 그런 말은 막둥이한테나 하세요.”


은근슬쩍 소매를 찢어 검과 손을 묶고 있던 선혜성은 그 말에 흠칫했다.

검을 쥔 손이 하도 저려와 고정시키기 위해 묶고 있었는데 차상철의 말 때문에 뻘쭘하게 되었다.


“흠흠, 형님도 참.”

“아무튼 다들 집중해라. 이번이 마지막이다.”

“예. 형님.”


어느새 그 많았던 마인들은 그들의 애마와 함께 차디찬 바닥에 몸을 뉘었다.

피가 흐르고 시체가 쌓여 있는 이곳은 시산혈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했다.

수많은 마인들을 베어버린 만큼 흑사방 방도들의 내공은 바닥난 지 오래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무기는 내공이 아닌 초항패검의 외공.

지쳤음에도 거력을 발휘하는 그들의 근육이 잔뜩 팽창하며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패왕총 마인들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됐다.

창 끝이 바람을 가르며 흑사방을 향해 쏘아졌다.

모든 것을 관통해버릴 것과 같은 돌격에 흑사방은 침착하게 그들을 바라봤다.

곧 그들과 마인들이 충돌하려는 순간 대력팔검의 제 일초 대력압살이 마인들을 쪼갰다.


쿵!


흑사방 방도들을 향해 돌격해온 마인들이 반으로 쪼개져 쓰러지고 그들은 온몸에 힘이 빠져 스러지고 말았다.


“으아, 뒤지겠네. 그래도 우리가 이겼다!”

“형님. 난 죽어도 더 움직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또 싸워야 한다면 날 죽이십쇼.”

“엄살은. 상철아, 둘러봐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끝냈어.”


어느새 주위에는 대부분의 마인들이 정리되어 서 있는 자들이 드물었다.

말을 탄 사람과 싸워본 적이 없던 정백대는 남궁위의 활약에 승기를 잡고 있었고 사흑련의 사파인들은 그 특유의 깡으로 싸워 이겨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백대와 싸우고 있는 마인들과 적수환 뿐이었다.


“상철아, 그래도 팽 대주는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정이 있는데.”

“난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습니다. 그리고 팽 대주를 돕는 것은 남궁위를 돕는 것 아닙니까? 제가 그것을 왜 합니까?”

“새끼. 속은 좁아 가지고. 뭐,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금방 정리되겠다. 형님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선우진과 적수환의 싸움도 이제 그 끝이 보인다.

새까맣던 흑귀마도 적수환도 피에 젖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선우진도 찢어진 옷 사이로 상처가 보였다.

선우진은 거친 숨을 내쉬며 검을 휘둘렀다.


“흐압!”

“크흡!”


치열한 혈투 속에서 말을 잃어버린 두 사람은 기합소리만 내뱉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싸움에 쏟아부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검게 빛나는 적수환의 창강이 선우진에게 쏘아진다.

이와 동시에 호랑이보다 날카로운 이빨의 흑귀마가 선우진의 어깨를 노렸다.

선우진은 침착하게 검을 눕혀 공격을 받아내며 생각했다.

지금의 싸움은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목숨을 잃게 된다.

무언가 적수환의 평정심을 흔들고 틈을 만들 수 있는 수가 필요했다.

그의 검이 대력압살의 초식을 펼쳤다.

그런데 언제나 모든 것을 갈라버리던 그의 초식은 그때만은 예리함을 잃고 뭉툭하게 적수환을 짓눌렀다.

적수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너도 지친 모양이구나. 네 검이 예기를 잃은 것을 보니 말이야.”


사천에서와 달리 다시 만난 선우진의 검은 그때보다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내공이 깊어져 강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힘 또한 더 강해져 있었다.

짐승인 흑귀마 조차 선우진에게는 힘에서 밀릴 정도였다.

예전에는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놈이 이제는 흑귀마와 함께 싸우고 있음에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랬던 검이 둔탁해진 것을 보면 그도 사람이기는 한 모양이다.

창을 통해 느껴지는 힘은 여전했으나 검은 예기를 잃어버렸다.

그러자 선우진은 똑같이 웃으며 적수환에게 속삭였다.


“멍청한 놈.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냐?”

“뭐?”

“네 말을 봐라.”


선우진의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든 그는 얼른 곁눈질로 흑귀마의 얼굴을 봤다.

흑귀마는 고통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냥 힘으로 짓누르고 있는데? 생각해 봐라. 한낱 짐승의 다리가 백 근이 넘는 내 대검과 내 힘을 버틸 수 있겠냐?”

“이, 이런······.”


애초에 선우진이 노린 것은 적수환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패왕총은 말을 자신보다 더 중요시하는 자들.

흑귀마가 무너지면 적수환의 평정심 또한 무너진다.

그의 예상대로 적수환의 얼굴에 초조함이 보였다.

그는 선우진의 검을 떨쳐내기 위해 억지로 몸을 틀었고 큰 틈이 드러났다.

선우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장쇄주를 펼쳐 적수환을 찔렀다.


“크헉!”


적수환이 피를 토했다.

선우진은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여 적수환과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낙마의 충격에 검은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결국 적수환은 심장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숨을 거뒀다.

주인의 죽음에 분개한 흑귀마는 미친 듯이 날뛰었으나 곁에서 지켜보던 웅패심의 낭아봉이 머리를 부쉈다.


“대당가, 괜찮나?”

“하하, 예. 형님. 몸에 힘이 쫙 빠져 움직일 수 없는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참, 사람도. 어서 일어나게.”

“잠시만요. 형님. 잠깐만 누워 있겠습니다.”

“응? 알았네.”


드디어 그때의 한을 풀었다.

사천에서 말에게도 밀리고 적수환의 창에 농락당하던 그때의 원한을.

선우진은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듣고 있는 사람들의 속을 모두 뚫어 버릴 것 같은 시원한 웃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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