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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수 님의 서재입니다.

아르마노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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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수
작품등록일 :
2022.08.17 19:05
최근연재일 :
2024.06.07 16:49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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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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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글자수 :
339,124

작성
22.10.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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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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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8쪽

아이의 꿈 (3)

DUMMY

---

3편 2화.jpg

파도를 등진 글렘의 언덕에 서늘한 바닷바람과 온갖 악기 소리가 가득했다.



하늘을 울리는 북소리,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 그리고 나팔 소리. 그것들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의 집합체라 부르는 게 더 알맞을 듯싶었다. 음악에 문외한인 얀이 들어도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연주였다. 박자는 계속 어긋났고 제각각의 악기도 모두 제멋대로이니 불협화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난잡한 소리에 맞춰 마을 여자들이 춤추었는데 연주와 달리 합을 잘 맞춘 춤이었다. 단순하지만 경쾌한 발놀림이 짤막하게 자란 잔디 위를 오가며 언덕을 장식했다. 회색빛 치맛자락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가운데 무난한 차림새의 아이들이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강줄기와 바다가 만나는 곳, 어울리지 않게 우뚝 솟아오른 언덕에 바다신과 정어리를 위한 작은 축제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어색한 연주, 여자들의 노력이 깃든 춤사위, 천진난만한 아이들, 뜨거운 햇볕. 벼랑 끝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드넓은 하늘과 수평선만이 훤히 펼쳐졌다. 벼랑 반대편으로는 천막과 나무 기둥, 돛배에서 쓰던 끈으로 만든 간이 차양이 자리했다.



차양 아래는 음식과 술통, 마을 노인들, 트로피, 그리고 홀로 눈에 띄게 치장한 소녀가 차지했다. 소녀는 리본이 달린 하얀 원피스에 붉은색 치마를 두르고, 금줄을 두른 값비싼 담비 털외투와 꽃이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이 소녀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노인들에게 쫓겨나기 일쑤였다.


이그니스는 보이지 않았다. 얀은 이그니스를 생각했다. 20년 전,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던 이그니스를.



이그니스는 협회에서 재능과 능력만으로 인정받은 몇 안 되는 마법사였다. 어쩌면 최초의 인물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복잡하고 위험한 폭발 마법을 겨우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구사할 수 있었다. 당시 협회에서 폭발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는 야글로스와 이그니스가 전부였다.



흔치 않은 능력이었기에 협회가 이그니스를 특별히 아꼈던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신념 그 자체인 야글로스마저 이그니스를 위해 의견을 굽힐 정도였다. 그중에는 결코 사소하다고 볼 수 없는 ‘얀의 거취’ 문제도 있었다.



그런 이그니스에게 무엇이 부족했겠는가? 선천적인 선물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재능에, 그런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였으며, 그 안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도 가지고 있었다. 잘만 된다면 큰 보상과 특별한 지위도 약속되어 있었다.



이그니스가 협회를 떠날 거라고 누가 의심했겠는가?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고,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그니스가 떠나겠다고 말한 날, 야글로스는 노발대발했다. ‘대의를 저버린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동료들도, 친구들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녀를 어머니처럼 따랐던 움브라조차도 그러했다. 움브라는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이그니스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또 버려졌어.'



얀도 같은 심정이었다.



“잠깐 얘기 좀 괜찮겠소?”



누가 말을 거는 바람에 얀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은회색 털옷을 껴입은 노인이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옆머리와 뒷머리에 겨우 남은 노인이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



“보웬이라고 하오. 글렘의 장로이지. 당신 얘기는 트로피에게 들었소.”



“반갑습니다, 어르신. 잘 마시겠습니다.”



“트로피가 자네를 이그니스의 사촌 동생이자 내륙에서 온 손님이라 하더군. 그리고 참견이 많고 남을 가르치길 좋아한다는구먼.”



“생각보다 좋게 말해줬네요. 그래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얀은 잔을 홀짝이고는 코끝을 찡그렸다. 라즈베리 과일주였다. 노인이 목을 가다듬고는 가르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 론드 풍습에 대해서 아시오?”



“론드··· 말입니까?”



난데없는 주제에 얀이 눈을 끔뻑였다.



“론드 놈들은 흉년이 들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지면 부자들에게 본인과 자식들을 판다오. 스스로 노예가 되는 거지. 또 그들은 해마다 숲의 괴물들에게 처녀를 바친다지. 남은 사람들만이라도 부디 살려달라고 말이오. 괴물에게 목숨을 빌다니! 게다가 엘프 놈들과 혼을 치르고 아이도 낳는다는군. 정신이 어떻게 된 게 분명해. 난 절대로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거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



노인은 목이 갈라지는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제법 뚜렷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하지만 난 그들의 풍습을 방해하지 않을 거요. 왜냐하면 그건 풍습이니까. 풍습이 만들어진 데에는 언제나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소?”



“그렇군요. 근데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얀은 귀찮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내가 론드인들의 풍습을 방해하지 않는 건, 그들에게 나는 그저 이방인에 불과하기 때문이오. 이방인이 그 지역에 가서 왈가왈부한다면 그것만큼 무례한 일이 또 어디 있겠소? 그래서 이방인에게 주의해야 할 것을 알려주려고 온 것이오. 혹시나 실수라도 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축제에 대해서 말이오.”



보웬이 춤추는 마을의 처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축제는 예전부터 행해온 마을 풍습이오. 이번처럼 물고기가 잘 안 잡히거나, 흉년이 들거나,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해오던 풍습.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해합니다, 어르신.”



“이해까지 바라지도 않소. 그저 우리 풍습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뿐이니까. 그럼 우리도 당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않겠소. 그러니까 당신의 파란 머리에 대해서 말이오. 약속해 주시오.”



“아주 고마운 말씀이네요.”



얀이 탐탁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게 무언가 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다행이구먼. 트로피 말처럼 무례하지는 않은 것 같네.”



노인이 혼잣말하듯 웅얼거리더니 바닷바람이 추운지 털모자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그리고 말이오. 저쪽, 벼랑 보이시오? 보다시피 벼랑 쪽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소. 나도 마찬가지지. 이것도 풍습에 따른 일이오. 그러니 당신도 벼랑 쪽으로는 절대로 가지 마시오. 바다신이 착각하지 않도록 말이오.”



“그게 제가 지켜야 할 전부입니까?”



“그래. 그게 전부일세··· 혹시 처녀들의 엉덩이를 만지려던 것은 아니겠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어르신···”



“좋아. 그럼 약속한 것으로 알겠네. 이제 가봐야겠구먼. 축제가 더 달아오를 거요. 더 늦었다가는 해가 저물겠지. 바닷바람이 어찌나 날랜지, 더 있다가는 내 몇 남지 않은 젊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겠소. 쑤시지 않는 관절이 없네. 빨리 끝내야지.”



보웬은 말하다 말고 혼잣말을 웅얼거리며 차양 쪽으로 향했다.



차양 아래서 트로피가 무어라 외치더니 처녀와 아낙네들이 춤추다 말고 모이기 시작했다. 북소리와 전통 악기 소리가 괴상한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날카로워지고, 또 빨라졌다. 축제가 점점 달아오르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얀은 피곤하고 지루할 뿐이었다.



“오셨네요, 나리. 재밌게 즐기고 계십니까?”



정어리 상인 하그위가 옆으로 불쑥 나타나 말했다.



“나름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다 뿌듯하네요. 지금 제 친구들은 저기서 북을 치고 현을 뜯고 있어요. 이 축제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죠. 저도 저기 있어야 하는데, 멜라르에 다녀오느라 연습을 통 못 했네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혼자랍니다.”



“저게 연습을 한 거였군요.”



얀은 차양 쪽을 곁눈질하며 대충 대답했다. 트로피가 한껏 차려입은 소녀에게 무어라 말하는 동안 마을 여자들이 차양 앞에 두 줄로 서서 길을 만들었다.



“옐사렘에서 오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거기 축제는 어떻습니까? 큰 도시이니 분명 엄청날 거예요. 그렇죠?”



하그위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겠죠? 온 거리가 음식 냄새로 가득하도록 말이에요! 또 바이올린과 류트 소리에 모두가 춤출 거예요! 우스꽝스러운 광대가 부리는 묘기에 웃음소리도 떠나질 않겠죠. 행진도 할 겁니다! 멋진 여자들이 펼치는 행진! 여자와 눈이 맞기도 하고, 그러면 그날 밤은 아주 뜨겁게··· 그리고 연설도! 아주 멋진 연설이요! 제 말 맞죠, 나리?”



“그럴 거예요. 아마도요.”



얀이 조용히 대답했다.



“아마도라니요?”



“실은 축제는 처음이거든요.”



“정말이요? 의외네요! 도시는 항상 축제로 떠들썩한 곳인 줄 알았는데! 아마 기사 나리께서 그런 축제에 나선다면 인기 폭발일 겁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도 계집들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물론 얀도 마을 여자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도전적이고 열망에 찬 시선이라기보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라는 편이 더 알맞았다. 익숙한 시선이었다.



트로피의 말을 들은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자들이 만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상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도시의 축제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어떻습니까? 바다신께 저희의 마음과 성의를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이제는 정어리가 잔뜩 잡힐 겁니다. 엄청나게요. 예전보다 더 좋아질 거예요. 뭐··· 조금은 아쉽지만, 어떡하겠습니까? 본인이 원했으니, 모두에게 잘된 일이죠.”



얀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하그위를 바라보았다. 하그위는 털이 수북이 자란 턱을 긁적이며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쉽다니요? 정어리가 잘 잡히면 모두에게 잘된 일 아닙니까?”



“이별을 해야 하잖아요. 이별 앞에서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죠.”



얀이 다시 소녀를 보았을 때, 소녀는 마을 처녀들 사이를 지나 벼랑 끝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소녀의 걸음걸음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별이요?”



“이별. 그러니까 헤어지는 것 말이에요.”



“아니··· 그니까 저 아이하고 이별한다는 겁니까?”



“제물이 되면 이별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물이라니요?”



“제물은 신에게 바치는 선물을 말하는 겁니다, 기사 나리.”



하그위의 목소리가 왠지 들뜬 기분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저 아이가 제물이라는 겁니까? 고작 물고기 때문에 제물을 바쳐요?”



“물고기 때문이라니요? 물고기를 위해서죠! 우리 마을에서 물고기는 전부예요.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해요.”



“그러니까··· 저 아이가 제물이라는 겁니까?”



“모르셨습니까?”



어찌나 당연한 표정으로 되묻는지 얀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고 얼굴이 일순에 창백해졌다.



“저 아이가 어떻게··· 제물이 되는 거죠? 설마 저기서-”



“바다신의 시종이 될 겁니다. 영원히 말이에요. 다신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본인이 원했으니 어쩔 수 없죠. 테스는 잘할 거예요. 똑 부러지는 아이거든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뭐든 열심이거든요. 마을에 유명한 효녀이기도 해요. 눈먼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하고··· 하여튼 정말 착한 아이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정말 바다신이 있다고 믿는 겁니까? 바다신을 본 적이 있긴 해요?”



얀의 어조가 점차 열띠었다.



“계시지 않겠습니까? 보웬 장로님께서 그러셨어요. 축제를 열어 바다신을 기쁘게 하고 여자아이를 시종으로 바치면 모든 게 잘될 거라고요. 때마침 우리 테스가 제물이 되겠다고 직접 나서서··· 기사 나리? 잠깐만요!”



소녀가 언덕 끝에 다다라 새하얀 하늘에 폭 둘러싸이는 순간이었다. 얀은 소녀를 향해 뛰쳐나갔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하그위가 필사적으로 매달린 탓에 얀은 소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나리?! 가면 안 돼요! 안된다고요! 아이가 직접 택한 일이에요! 이미 늦었어요! 지금 가면 바다신이···”



“이게 무슨 소란이오!”



보웬이 허겁지겁 달려오며 소리쳤다.



“이방인! 내가 말하지 않았소! 방해하지 말라고! 저놈을 못 가게 막아!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막으라고! 연주 멈추지 마!”



“안 돼!”



얀이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상인을 뿌리치자 다른 마을 사람들이 앞을 겹겹이 가로막았다. 얀은 욕설을 내뱉고는 벼랑이 아닌 언덕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나리!”



“하그위! 내버려둬! 도망가게 두라고! 축제를 마쳐야지! 멍청한 놈.”



언덕 아래로, 사람이 더는 보이지 않을 만큼 내려오자 얀은 언덕을 끼고 빙 둘러 능선 아래를 따라 내달렸다. 앙상한 풀싹이 곳곳에 자란 언덕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날카롭게 깎아 지르는 절벽의 옆태와 거대한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은 거칠고 미끄러웠다. 얀은 깎이고 튀어나온 돌부리를 밟으며 신속하게 중심부로 나아갔다. 바닷새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멀어졌던 북소리가 금세 가까워졌다. 찢어지는 듯한 현악기 소리가 온 하늘을 뒤덮는 듯했다.



중심부에 거의 다다르자 얀은 고개를 들어 벼랑 끝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치마가 바닷바람에 매달려 마구 펄럭였다. 얀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파도가 절벽을 거칠게 때렸다.



"너무 위험해... 여길 뛰어내릴 수는..."



얀은 고갤 들어 아이에게 소리쳤다.



“제발 뛰지 마! 제발!”



얀은 마치 아이에게 목숨이 걸린 것처럼 애원했다. 그러나 얀의 목소리는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악기 소리와 발아래를 가득 채우는 파도 소리 앞에서 한없이 작기만 했다. 소녀는 양손을 모으며 무어라 웅얼거렸다. 얀은 생각했다. 마법만 할 줄 알았다면.



소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얀도 마찬가지였다.



바다는 찬 숨을 내쉬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품으로 두 손님을 맞이했다.



---



얀을 깨운 것은 쏟아지는 빛이었다. 감긴 눈꺼풀을 간지럽히다 못해 쿡쿡 찌르는, 뜨거운 태양 빛이었다.



하늘을 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얀은 어깨와 무릎을 이용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가 끈적한 가래침과 함께 물을 한껏 토해냈다. 목 끝에서 찝찔하고 비린 냄새가 맴돌았다.



바닷새 우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북소리도 조그맣게나마 들렸다. 파도가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얀의 발을 적시고 부서져 내렸다. 그제야 얀은 자신이 절벽과 멀지 않은, 작은 모래사장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옆에는 소녀가 누워 있었다. 옆으로 살짝 돌려 눕히자, 소녀는 힘겹게 숨을 토해내더니 물을 뱉어냍다.



얀은 고통스러운 와중에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얀과 아이 둘 다 파도에 휩쓸려 온몸이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나? 얀은 짜디짠 침을 뱉어내며 생각했다. 아니면 누군가 도와준 게 아닐까?



그때 그림자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얀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정말로 고마워요··· 무어라 감사를 표해야 할지···”



얀은 상대를 보고 깜짝 놀라 숨을 훅 들이켰다. 어린 남자아이였던 것이다. 겨우 다섯 살은 되었을까 싶은··· 그것만으로도 놀라 말문이 막히기는 충분했다. 누구라도 그럴 터였다. 그러나 얀을 놀라게 한 것은 상대의 나이뿐만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파랬다. 얀보다도 더 짙은 파란색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칭찬받을 일을 하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소리치고 밧줄을 던진 것뿐이에요.”



아이답지 않게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파도를 거스르고 이곳까지 헤엄쳐온 건 삼촌이에요. 그것도 테스를 데리고 말이에요. 자신을 칭찬하는 게 맞을 거예요.”



얀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의 새파란 머리만 멍하니 쳐다볼 따름이었다. 이를 눈치챈 아이가 제 머리를 매만지며 계속해서 말했다.



“제 머리 때문에 놀랐나 봐요. 삼촌도 저랑 같은 데도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놀랐거든요. 저 말고 파란 머리는 처음이에요. 근데 테스는 괜찮나요?”



“테스? 아··· 그래···”



얀이 겨우 입을 열었다가 입술을 꽉 깨물며 가슴 아래를 붙잡았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통증이 가라앉자 얀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혹시 네가 레어티스니?”



“맞아요. 삼촌은 얀 트로엘, 맞죠?”



“날 아니?”



“그럼요. 어머니께서 종종 이야기해 주곤 했거든요. 어머니 어릴 적 이야기를요. 움브라라는 삼촌도 알아요.”



레어티스가 계속해서 말했다.



“근데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곧 축제가 끝나거든요. 마을 사람들과 마주쳐서 좋을 것 없을 거예요.”



더는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얀은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너 정말 똑똑하구나···”



“어머니께 도와달라고 할까요?”



“그래 주겠니?”



“좋아요. 좀 쉬세요. 아무도 오지 않을 거예요. 한동안은 말이에요.”



“고맙다··· 잠깐, 근데 왜··· 여기 있는 거니? 다들 축제에 갔잖아. 네 아버지도 그렇고.”



레어티스가 크고 깊은 눈으로 얀을 바라보더니, 살며시 미소 지었다.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게 차분한, 이그니스를 쏙 빼닮은 미소였다.



“전 혼자가 편해요. 삼촌도 아시잖아요?”


작가의말

일러스트는 Midjourney에서 생성한 AI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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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끝 그리고 시작 (3) 22.08.19 49 4 14쪽
3 끝 그리고 시작 (2) 22.08.18 60 2 20쪽
2 끝 그리고 시작 (1) 22.08.17 109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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