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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수 님의 서재입니다.

아르마노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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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수
작품등록일 :
2022.08.17 19:05
최근연재일 :
2024.06.0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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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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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3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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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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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마녀의 아들 (3)

DUMMY

“나라가 망조가 들었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시발.”



젊은 경비 대장 조제는 얼음주머니로 부풀어 오른 턱 아래를 문지르며 줄곧 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창고는 낡고 오래되어 선선한 봄바람에도 제 몸을 가누기 힘겨워 보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어느 나라가 범죄자에게 칼을 쥐여주나? 응?”



비좁은 창고에는 농기구들과 포댓자루, 빈 나무상자, 낡은 칼, 쥐똥, 먼지덩어리 따위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창고를 들쑤시던 얀은 구석에서 칼 한 자루를 꺼내더니 짧게 기침을 했다. 붉은 녹이 묻어나는 형편없는 칼이었다.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칼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무엇이 더 좋은 칼인지 비교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된 얀은 아무거나 꼬나들었다.



얀이 창고를 나서려 하자 조제가 막아섰다. 얀은 그가 있는 줄 몰랐다는 듯 놀란 시늉을 했다.



“무슨 볼일이라도?”



“씨발! 벙어리가 아니었네?!”



조제가 얼음주머니를 어깨 너머로 휙 던지며 말했다.



“개자식. 날 속여놓고도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



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조제가 계속해서 말했다.



“가증스러운 새끼··· 시치미 떼지 마.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네가 개 같은 사기꾼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뭣도 아닌 주제에 잘났다는 듯 굴지 말라고.”



“바쁜데 좀 비키지.”



“말 안 끝났어.”



조제가 이를 번득였다.



“바쁘긴 뭐가 바빠? 어차피 라 포이 호수로 가는 거 잖가? 무시무시한 괴물을 잡으러. 그치?”



“괴물이 있는지 없는지는 봐야 알지.”



아무래도 말이 길어질 모양새였다. 얀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눈으로 보기도 전에 떠들어댄다면 사기꾼이랑 뭐가 다르겠어? 난 너와 다르다고. 괴물을 직접 봤으니까.”



조제가 가슴을 쭉 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두 달 전, 라 포이 호수에서 말이야. 그날 호수에 이상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순찰에 나섰어. 달도 뜨지 않아 유독 어두운 밤이었지. 등불빛 너머로 보고만 거야. 내 두 눈으로 괴물을 말이야. 녀석은 등허리가 노인네처럼 잔뜩 굽어서는 시뻘건 눈을 부라렸지. 역겨운 냄새··· 얼굴은 편편하고 가운데에 구멍만 뻥 뚫려있었어.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빨들. 녀석은 뺨도 없이 이빨을 모두 드러낸 채 땅을 헤집고, 울부짖으며 돌아다녔어. 그것도 활짝 웃으면서... 혐오스러운 것··· 녀석은 저주받은 괴물이야.”



조제가 단번에 표정을 죽이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호수에 저주받은 존재가 있을까? 괴물이 땅속에서 절로 솟아난 건 아닐 텐데. 그래서 난 생각했지... 그리고 알게 된 거야. 괴물 말고도 혐오스러운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마녀가 있는 게 분명해. 마녀는 괴물을 만들잖나? 그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 그치? 마녀가 괴물을 낳는 셈이라고. 괴물의 부모는 마녀인 거고.”



“충고 고맙군. 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얀이 조제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농담하거나 거짓말하는 눈은 아니었다.



“그래. 고마워해야지. 내가 선의를 베푸는 건 흔치 않다고. 자, 내 충고를 받아들이고. 이 일에 손 떼.”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



“멍청하게 왜 그래? 기회를 주잖아? 너 같은 사기꾼이 맡기에는 아주... 좆 같은 일이라고. 네가 마녀나 괴물에게 죽기라도 해 봐! 젠장, 그렇게 둘 순 없지. 너도, 마녀도 모두 내 손으로 죽여야 하니까!”



조제가 삐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어조에서 뜨거운 결의 같은 게 느껴졌다.



“지금이 딱 좋은 기회겠네.”



얀이 말했다.



“아니, 아니지. 지금은 아니야.”



조제가 허공에 눈동자를 굴렸다.



“촌장이 날 건들지 말라던가?”



“뭐? 촌장? 내가 그 노인네 말을 들을 줄 알아? 그 겁쟁이의 말을? 뭣도 못 하게 하면서 순찰만 시키는 개 같은 놈··· 그놈은 항상 날 어린애 취급한단 말이야.”



“어린애처럼 굴지 말던가.”



“건방 떨지 마. 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널 죽일 거야. 내가 당한 치욕을 씻어낼 거라고.”



조제가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강조하면서 말하더니 얀의 손에 들린 형편없는 칼을 보곤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드는 칼은 찾았나 보네? 어때. 쓸만한가?”



“쓸만해 보이는데.”



얀이 녹슨 칼을 들어 보이더니 불쑥 조제에게 던져 넘겼다. 조제가 엉겁결에 칼을 받는 동안 얀이 조제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 들었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몸놀림이었다. 얀은 그대로 조제의 칼을 살피며 창고를 나섰다. 조제의 칼은 날이 두껍고 넓었으며 기름을 먹여 번들거렸다.



“잘 쓰고 돌려주지. 걱정 마. 망가뜨리진 않을 테니까.”



“내 칼! 저 사기꾼 새끼! 가져오지 못해?”



뒤늦게 칼이 없어진 걸 깨달은 조제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는 얼른 얀을 뒤쫓으려다가 녹슨 칼을 떨어뜨려 제 발등을 찧고 말았다. 조제는 발을 붙잡은 채 겅충겅충 뛰었다. 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



드넓은 들판 위로 새들이 날아올랐다. 새들은 곧장 숲으로 날아갔다.



얀은 라 포이 호수를 향해 들판과 숲을 가로지르는 대신, 강줄기를 따라갔다. 숲을 가로지르는 게 더 빨랐지만, 따라갈 길이 없어 오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외지인의 입장에서 길을 잃는 것보다는 늦는 편이 더 나았다.



라 포이 호수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줄기는 아주 깨끗했다. 왜가리가 바위에 서서 물속을 탐색했고, 청둥오리들이 무리 지어 강을 가로질렀다. 강변을 따라 자란 갈대 속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얀은 골짜기를 따라 오르고 또 올랐다.



켜켜이 쌓인 바위를 넘고, 우거진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 축축하게 젖은 진창을 지나고 나서야 얀은 라 포이 호수에 다다랐다. 거대한 나무숲과 바위로 둘러싸인 호수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큰 폭포가 있어 물안개가 짙었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얀은 칼로 수풀을 헤치며 호수 변두리를 따라 걸었다. 꽥꽥거리며 시끄럽게 우는 오리들, 나무를 두들기는 딱따구리, 애인을 찾는 개구리. 물을 마시는 암사슴도, 굴속으로 도망가는 토끼도, 꿀을 빨아 먹는 벌새도 보였다. 평화로운 호수였다.



얀은 간만에 모자를 벗고 한숨 돌렸다. 선선한 바람이 하늘빛 머리를 흔들었다.



“괴물이 있다고는 도저히 못 믿겠는데.”



그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발을 질질 끄는 소리였다. 얀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덤불 뒤로 몸을 숨겼다. 무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거친 신음을 내쉬었다. 가래 끓는 듯한 소리였다. 그것은 조약돌을 툭툭 차고 나뭇가지를 뚝뚝 부러뜨리며 느릿느릿 움직였다. 웅얼거리고 훌쩍이더니 첨벙거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얀은 소리를 죽이며 호숫가로 다가갔다. 뿌연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물을 헤집고 있었다.



얀은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인간도 아니었고 짐승도 아니었다.



깡마른 체구에 흉하게 일그러진 몸뚱어리, 흑갈색 빛을 띠는 육체와 굽은 목 아래까지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털, 얼룩덜룩하게 축 처진 살점, 코 대신에 뚫린 조그마한 두 구멍과 동그랗게 드러난 벌건 눈동자, 호숫물을 헤집는 네 개뿐인 손가락... 그것은 섬뜩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뺨 속에 숨어있어야 할 이빨을 훤히 드러낸 채.



얀은 절로 튀어나오려는 탄식을 겨우 집어삼켜야 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이 그를 짓눌렀다. 차가운 혐오감이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라 온몸을 훑었다.



칼을 꽉 움켜쥐며 얀은 좋게 생각하려 애썼다. '차라리 잘됐어. 소문이 가짜였다면 정체를 알아내느라 질질 끌렸을 거야.' 얀은 숨을 몰아쉬며 칼을 치켜들었다. 준비는 끝났다. 단 세 걸음이면 충분했다.



얀은 번개처럼 뛰쳐나가 괴물을 호수 밖으로 넘어뜨렸다. 그리고 거침없이 목을 베었다.



분명 그러려고 했다.



“으악!”



미소로 가득한 입으로 단말마의 비명이 쏟아졌다. 그것이 얀을 올려다보았다. 눈꺼풀 없이 훤히 드러난 시뻘건 눈동자. 겁에 질린 눈이었다. 얀은 괴물과 눈을 마주한 채로 굳어버렸다.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새들만 요란하게 날아오를 뿐이었다.



이윽고 괴물이 소리 질렀다.



“뭐, 뭐야!”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얀의 눈이 거의 두 배는 커졌다. 얀은 침을 꿀꺽 삼켰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넌 도대체··· 뭐야?”



“그러는 당신은 누,누군데···”



쥐어짜는 목소리로 겨우 말하던 괴물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괴물은 얀의 푸르른 머리칼을 보고 있었다.



“다,당신 마녀예요?”



“아니. 그냥 평범한··· 그러는 너는··· 괴물인가?”



“괴,괴물? 괴물이라니··· 저도 그저··· 그보다 우선··· 칼부터 어떻게 좀···”



얀은 머뭇거리면서 천천히 칼을 치웠다. ‘그것’은 부자연스럽게 딱지투성이 목을 쓰다듬으면서도 얀의 푸른 머리카락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얀도 그것의 훤히 드러난 이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얀은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분명 어머니가 파란 머리는 마녀라고···”



“호수에 괴물이 있다고···”



“전 괴물이 아니에요!”



“나도 마녀가 아니··· 젠장.”



얀은 하던 말을 멈추고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상대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점토로 마구 빚어놓은 듯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전... 괴물이... 전 괴물인가요?”



얀은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도로 삼켰다. 다시 보니 상대는 살점이 얼룩덜룩한 게 아니라 너저분한 흑갈색 옷을 입었을 뿐이었고, 코도 조금이나마 형체가 보였다. 겨우 한 마디뿐이었지만 다섯 번째 손가락도 있었다. 그러나 훤히 드러난 뺨과 도드라진 눈동자는 여전히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상대는 완전히 주저앉았다.



“절··· 죽이실 건가요?”



얀은 대답 대신 칼을 완전히 거두었다. 상대가 일어나려 애썼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도 얀은 선뜻 손을 뻗질 못했다. 결국 상대는 일어서지 못하고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상대가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죽여줘요.”



그러고는 도드라진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이렇게 숨어 사는 것도 더는 못 하겠어요. 제발··· 제발 죽여주세요.”



상대는 기이하고도 불편한 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울었다. 얀은 어찌할 바를 몰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상대가 필사적으로 기어와 얀의 다리를 붙잡았다.



“전 죽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원래 절 죽이려 했잖아요?”



“그럴 생각 없어.”



얀은 목에 힘주어 침착하게 말했다. 상대가 얀을 올려다보았다.



“왜요? 제가 불쌍해서요?”



얀은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나직이 대답했다.



“네가 누군지 궁금해서.”



상대가 숨을 들이켜더니 조용히 물었다.



“누군지 알려주면··· 그러면 도와줄 건가요?”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난 얀 트로엘이야.”



얀이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저는··· 자이드 오소트리···”



“오소트리라면··· 그래. 어쩌다 이렇게··· 아니, 왜 여기서 지내는지 알려주겠어?”



자이드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마을에서 쫓겨나서··· 제가 이렇게 생겨서···”



자이드는 숨을 헐떡이다가 겨우 숨을 들이켰다.



“갈 곳이 없어서··· 몸이 안 좋아서 멀리 갈 수도 없고... 여기가 최선이었어요. 어머니께서 라 포이 호수가 병을 낫게 해줄 거라고도 하셨고···”



“그럼 지금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건가?”



자이드가 고갤 끄덕였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지?”



“집에... 건너편 오두막에요. 원래 어머니가 그물을 걷으시는데,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으셔서··· 그래서 제가 왔어요··· 발이 느려서 좀 오래 걸렸는데··· 어머니가 집에 혼자···”



자이드가 힘겹게 눈물을 훔치더니 결심한 듯 혼자 힘으로 몸을 일으켰다.



“죄송해요, 트로엘 씨. 아무래도 지금은 죽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어머니를 돌봐야 해서···”



“그래.”



얀이 고갤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그물을 걷고,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네. 도와줄게.”



“아니··· 그렇게까지 하실 필욘 없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말해.”



자이드는 침을 삼키더니 점토 같은 손으로 호숫가 쪽을 가리켰다. 호숫가에 자그마한 그물통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주먹만 한 물고기가 두 마리 들어있었다.



“두 마리면 많이 잡힌 건가?”



“풍년이네요.”



자이드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



병세가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 자이드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금세 발이 느려졌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얀이 물고기 통을 들어주었는데도 그랬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지 자이드는 결국 주저앉았다. 자이드는 연신 훌쩍였다. 흉측한 얼굴에 눈물까지 흘리니 기괴하기까지 했지만, 얀은 연민을 느꼈다.



얀은 이 여린 사내에게 칼을 맡기고 등에 업었다. 자이드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라 머리 위를 지나갔다. 얀은 자이드와 물고기 통을 들고 나무와 덤불과 호숫가와 진창을 지났다. 지치고 지독한 냄새에 머리가 아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물론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죄송해요···”



자이드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저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제가 마녀라고 부르기까지 했는데···”



“다들 그렇게 오해하곤 하지. 그래서 머리카락을 어떻게 숨겨야 할지 늘 고민이야.”



“전··· 이해할 수 있어요.”



자이드가 침을 삼키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마을에 살 때는 얼굴에 붕대를 감고 지냈어요. 살이 자꾸 썩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흉측한 얼굴을 감추고픈 마음이 더 컸죠. 눈에 띄지 않으려 조용히 지내기도 하고··· 결국 아무 의미 없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



얀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이드가 코를 훌쩍였다.



“저와 가족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우리가 만만했던 거예요. 그래서 쫓아낸 거예요. 마을 사람들이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죠. 예를 들면 조제네 집이라든지··· 아, 조제는 비고트 마을의-”



“알고 있어. 경비병이지. 건달이기도 하고.”



“맞아요. 건달이에요. 망할 자식···”



자이드가 어색하게 욕설을 내뱉고는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쫓겨나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그냥··· 무서웠죠. 곁에 어머니마저 없었더라면 전 버틸 수 없었을 거예요.”



“좋은 분이겠네.”



“맞아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에요. 요리도 잘하시고, 농사도 지으세요. 그물통도 어머니가 만드셨죠. 또 항상 저의 손과 발이 되어주세요.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요.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제가 어머니의 분신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한결같이 자신 없던 자이드의 목소리에서 잠시나마 활기가 흘렀다.



“열심히 살아야겠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래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날이 저물고 하늘이 잉크빛으로 물들었다. 호수가 별들과 보름달로 반짝였다. 멀리서 멧비둘기 우는 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아버지가 걱정이에요.”



자이드가 말했다.



“마을 근처에서 지내시는 것 같은데··· 뭔가 일을 꾸미고 계신 것 같아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오두막은 거대한 바위 절벽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되어 곳곳이 삭은 오두막이었다. 마당에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연기가 꼬불꼬불 피어오르는 모닥불 흔적도 있었다. 조그마한 굴뚝에서는 연기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흘러나왔다.



모닥불 주변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자이드는 불이 꺼져있는 게 이상하며 꺼진 모닥불을 살폈다. 그동안 얀은 물고기 통을 두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계세요? 아드님이 돌아왔어요. 전··· 아드님 친구예요.”



오두막은 조용했다.



문은 열려있었다. 오두막 내부가 칠흑같이 어두웠다. 불씨만 겨우 남은 벽난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문을 더 열어젖히자 달빛이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기다란 원피스를 입은 누군가가 젖은 마룻바닥에 누워있었다.



얀은 오두막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마비된 코를 뚫고 소름 돋는 비린내가 밀려들었다.



“젠장···”



얀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엄마?”



자이드의 기이한 그림자가 얀에게 드리웠다. 얀은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자이드의 벌겋게 충혈된 눈이 그의 시야를 가리길 바라면서.



핏발 선 눈동자 아래, 훤히 드러난 이빨이 쩍 벌어졌다. 공포로 마비된 표정. 그 표정은 마치 웃는 것 같았다. 싸늘한 광기마저 느껴졌다.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 결여된 듯한, 저주받은 얼굴이었다. 공허하고도 차가운 미소였다.



“···엄마야?”



공허한 미소가 말했다. 달빛. 마을의 경비병이 기름을 먹여 번들거리는 칼에 달빛이 반짝였다.



“자이드··· 그 칼 돌려줘. 진정하고··· 제발-”



얀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자이드는 칼을 치켜들었고, 얀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피를 보았다. 뜨거운 폭포가 순식간에 얀을 덮쳤다. 기이한 육체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오두막은 어둡고 조용했다. 쏟아지는 달빛과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마저 없었더라면, 세상이 무너져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라 여겼을 터였다. 얀은 어둠 속에서 달빛 아래로 한걸음 물러섰다. 오두막 바닥에 모자母子가 다정히 누워있었다. 둘이 닮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쪽은 얼굴이 엉망이었고, 다른 한쪽은 머리가 없었다.



마룻바닥에 검은 호수가 서서히 몸집을 부풀렸다.



마치 물속을 걷는 듯했다. 얀은 자기 목을 더듬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두막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그마한 마당 너머, 달빛이 비치는 호수가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얀은 문득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와 이그니스 누나가 생각났다.



왜 그들이 생각난 건지 얀은 알 수 없었다. 그저 구토를 쏟아낼 뿐이었다.

3화.jpg


작가의말

일러스트는 Midjourney에서 생성한 AI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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