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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수 님의 서재입니다.

아르마노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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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수
작품등록일 :
2022.08.17 19:05
최근연재일 :
2024.06.07 16:49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1,040
추천수 :
49
글자수 :
339,124

작성
22.08.24 06:00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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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7쪽

아이의 꿈 (1)

DUMMY

아이의 꿈


---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열정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환상

하나의 그림자, 하나의 허구

그래서 가장 큰 행복은 작은 것

모든 인생의 꿈

그리고 꿈은 꿈일 뿐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인생은 꿈> 中-


---

3편 1화.jpg

언제부턴가 말발굽 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팔색조가 참나무 높은 가지에 앉아 우짖고, 전나무의 뾰족한 잎사귀 속에서는 울새가 찌르르하며 울었다. 나이폴 동쪽 작은 숲에서 나무 둥치에 자란 버섯에 독이 있을까 의심하던 얀은 고갤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달그락거리는 수레바퀴 소리도 어느새 들리지 않았다.



노을빛이 드리운 숲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얀은 빼곡한 나무 사이를 주시하며 독버섯을 지나쳤다.



새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찌르레기인가? 아니면 딱새? 얀은 곧 새소리가 아닌 사람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명? 비웃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얀은 곧장 숲길 쪽으로 향했다.



손수레 크기의 작은 마차가 좁은 숲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떤 남자가 마차에 묶인 당나귀를 끌어 내려 애썼다. 낡은 황토색 가죽옷에 녹슨 칼로 무장한 남자였는데, 소매가 넉넉히 남을 정도로 큰 외투를 걸치고, 바지도 헐렁거려서 어기적거렸다. 얀은 미간을 좁히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땀에 젖은 하늘빛 머리칼이 바람을 쫓으려 애썼다.



당나귀가 구슬프게 울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저 혼자예요! 혼자라고요! 아무도 없어요! 저 말고 아무도 없어요!”



마차와 당나귀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상인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소리쳤다. 사슬 갑옷을 대충 걸친 다른 약탈자가 창대로 상인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무어라 소리쳤다. ‘라셴! 아무도 없다는데?’ 그러자 마차 뒤편에서 대머리 약탈자가 소리 내 비웃었다.



대머리 약탈자 라셴이 마차 덮개를 들추자 상인의 거짓말이 허무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여자아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



상인이 울부짖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이의 비명이 약탈자의 피를 끓게 했다. 대머리 약탈자가 쪽쪽 빤 손가락으로 여자아이를 끌어내고는 낡은 원피스를 찢기 시작했다.



비명과 비웃음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기괴한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얀은 이 일에 끼어들어도 될지 고민했지만, 그의 손은 이미 부츠에서 단검을 꺼내고 있었다. 약탈자의 민머리와 구두의 죔쇠, 그리고 허리춤에 찬 손도끼가 노랗게 반짝였다. 얀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단검을 힘껏 던졌다.



단검이 빠르게 날아가 민머리와 목 사이에 그대로 박혔다. 속옷을 벗던 대머리 약탈자는 쟁반만 해진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목을 움켜쥐었다. 녀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여자아이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 대신 여자아이가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얀은 나무둥치를 훌쩍 뛰어넘어 대머리 약탈자의 손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는 소녀를 내버려두고 곧장 마차를 돌아 사슬 갑옷 약탈자에게 향했다. 약탈자가 깜짝 놀라 온갖 욕설을 지껄이며 창을 치켜들었다. 다채로운 욕설에 비해 약탈자의 창 솜씨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얀은 창날을 피해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날이 사슬갑옷이 찌그러뜨리며 약탈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약탈자가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다.



얀은 마지막 상대를 생각해 칼을 뽑아 들었다가 도로 칼집에 집어넣었다. 마지막 남은 약탈자가 헐렁한 바지를 움켜쥔 채 저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도망가는 모양새가 어찌나 허술한지 금세 따라잡을 수 있을 듯했지만 얀은 겁쟁이 약탈자를 쫓지 않았다. 더는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다.



숲은 여전히 소음으로 가득했다. 쏙독새가 울부짖고, 당나귀는 짜증을 냈으며, 여자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사슬 갑옷 약탈자도 죽음의 문턱에 매달려 어떻게든 숨을 이어가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들도 곧 조용해졌다.



“다··· 당신··· 머리가··· 설마··· 마-”



상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얀은 땀에 젖은 파란 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상인의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아니··· 그··· 그게··· 저는 가진 것 없는 시골 상인인지라··· 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래도 부디 저와 제 딸의 목숨만은··· 당나귀는··· 저희 생계가 걸린 친구라···”



노랗게 반짝이던 숲이 조금씩 물러나고, 땅거미가 드리웠다. 얀은 떨리는 손으로 딸아이를 꼭 끌어안은 상인을 바라보았다. 얀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늘빛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차를 타고 싶은데요. 동쪽으로, 글렘까지요.”



---



나이폴 동쪽 끝 작은 마을, 글렘의 생선 상인 하그위는 장부를 다 쓰기 무섭게 무용담을 펼치기 시작했다.



“여기 상처 보이십니까, 어르신? 여기 보여, 네셀? 엄청나지? 보통 상처가 아니야! 엄청난 일이 있었다고! 겨우 이틀 전에! 정말이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날이었지. 봐서 알겠지만 정어리 흥정이 잘 안됐거든. 딸내미 신랑감도 못 구하고··· 젠장. 하여튼 마을 생필품과 딸내미를 데리고 버드나 숲을 지나던 중이었어. 소변이나 볼까 싶을 때, 웬 무뢰배들이 불쑥 나타난 거야! 어르신! 족히 열 명은 되었어요! 열 명이나!“



“무뢰배? 그러니까 도적 떼를 말하는 거냐? 버드나 숲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몇 개 남지 않은 이빨을 드러내며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그래요, 훈가 어르신! 저도 놀랐어요! 버드나 숲에 도적 떼라니! 저도 숲을 10년을 오다녔지만, 도적들을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니까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신이 노한 게 분명하구만···”



한평생 그물을 손질하느라 허리가 완전히 굽은 발렌티나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하그위가 계속해서 말했다.



“도적놈들이 내 앞길을 막으면서 그러는 거야. 가진 걸 모두 내놔! 그래서 내가 말했지. 네 녀석들에게 줄 물건은 아무것도 없어!”



“네가 그렇게 말했다고?”



얼굴이 새까맣게 탄 네셀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네셀은 줄곧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럼! 내 딸을 지켜야 했으니까!”



“넌 우리 마을에 제일가는 겁쟁이잖아?”



“닥쳐! 아무튼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녀석들이 글쎄 날 마차에서 끌어 내리려는 거야. 그래서 막 싸웠지! 덩치도 크고 힘이 무지막지하게 센 놈이었어. 그런 놈을 상대로 난 버티고 또 버텼단 말이야. 근데 쪽수 앞에는 장사 없더라고. 놈들이 몰려와서 날 마차에서 끌어 내리고는 목에 칼을 들이밀었거든. 한마디만 더 하면 죽이겠다더군!”



“에그머니나! 얼마나 무서웠을꼬···”



발렌티나 할머니가 그물을 엮다 말고 말했다.



“그래도 난 말했지. 아무도 내 입을 막을 순 없다고 말이야! 그러자 녀석이 칼을 높게 쳐들고 내 목을!”



“세상에나!”



하그위가 칼을 휘두르는 동작을 하자 발렌티나 할머니가 그물을 꽉 움켜쥐었다.



“치려는 순간! 기사 나리께서 갑자기 나타나신 거야!”



“기사 나리? 너랑 같이 온 그 남자를 말하는 게냐?”



훈가 어르신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물었다.



“맞아요! 아까 봤죠? 그 젊은 기사 나리. 순식간이었죠! 도적 떼가 낙엽처럼 픽픽 쓰러지는데, 마치 바람에 쓰러지는 것 같았다니까요?”



“벌벌 떠느라 못 본 거겠지.”



“이건 운명이라고 할 수 있지!”



하그위는 네셀의 비아냥을 못 들은 척하고 소리쳤다.



“나와 내 딸이 도적놈들에게 잡힐 뻔했을 때, 때마침 기사 나리께서 나이폴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숲을 지나고 있었고, 심지어 우리 마을 글렘으로 오시던 길이어서 길동무가 되어드릴 수 있었으니, 운명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우연이 있겠어?”



“운명? 운명이라고?”



네셀이 까맣게 탄 코끝을 찡그리며 노골적으로 코웃음쳤다.



“지금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거야? 이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도?”



“얼굴이 아니라 그 남자를 말하는 거야!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네셀이 소리쳤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것 좀 해봐! 어느 누가 우리 마을을 제 발로 찾아오겠어? 여긴 나이폴 동쪽 끝이라고! 훈가 어르신. 우리 마을을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이 이제껏 있었어요?”



“내가 아는 한··· 한 명 있지. 신도들을 제외하면···”



훈가 어르신이 허공에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고.”



네셀이 자리를 고쳐 앉더니 상처투성이인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 남자가 왜 우리 마을을 찾아왔겠어? 응? 심심해서? 난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보는데? 아니면 쫓기는 몸이거나.”



“지금··· 기사 나리를 의심하는 거야?”



“뻔한 거 아니야?”



“뭐가 뻔해?”



“파랗잖아!”



네셀이 답답한 나머지 버럭 소리쳤다.



“이틀 동안 같이 지냈다면서? 그동안 못 본 거야? 눈깔이 어떻게 됐어? 젠장! 머리가 파랗다고! 딱 봐도 마녀잖아!”



“네셀!”



“이 망할 자식! 마녀보고 생명의 은인이라니! 개소리나 지껄이고 말이야! 우리 마을을 망칠 작정이야? 안 그래도 정어리 때문에 골치 아픈데!”



“네셀··· 목소리를 줄여야 할 것 같아··· 들리겠어···”



훈가 어르신이 주먹만 한 창문을 연신 힐끗거리며 속삭였다.



“들으라고 하세요. 난 이 멍청한 하그위처럼 순순히 당할 생각 없으니까.”



“그럼. 마녀는 조심해야지.”



발렌티나 할머니가 여유롭게 그물을 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부로 말하지 마, 네셀! 넌 그분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잖아.”



하그위가 말했다.



“파란 머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파란 머리는 마녀야. 마녀는 파란 머리라고! 그것도 몰라? 젠장! 똥개도 알겠네!”



“중요한 날에 싸워서 쓰나?”



마을 장로 보웬이 마을회관의 허름한 문을 밀고 들어오며 말했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옆머리와 뒷머리에 겨우 남은 노인이었다. 장로 보웬은 은회색 털옷에 묻는 소금가루를 탁탁 털어내고는 네셀과 하그위를 노려보았다.



”장로님! 하그위가 마녀를 마을에 들였어요! 한 말씀 해주세요! 정신 좀 차리라고요!”



“진정하게, 네셀. 소리 지른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네. 무슨 일인지 천천히 말해보게나. 하그위? 옷은 잊지 않았겠지? 축제 때 쓸 옷 말일세.”



“당연하죠. 여기요. 그리고 소식통도 있어요. 멜라르 시청에서 받은 거예요.”



하그위가 붉은색 치마와 화려한 담비 털 외투, 그리고 실링으로 봉한 편지를 건넸다. 장로 보웬이 옷이 구겨지지 않도록 받으며 소식통을 살피는 동안 네셀이 얼른 말했다.



“얘기라고 할 것도 없어요. 이 멍청한 녀석이 마녀를 들인 건 사실이니까!”



“마녀 아니라니까? 그분은 기사예요! 제 목숨을 구해줬다고요!”



“꿍꿍이가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럼 넌 내가 그곳에서 죽어야 했단 말이야? 도적놈들에게?”



“마을에 마녀를 들이는 것보다는 낫지!”



“이 개자식이!”



“그만 싸워!”



장로 보웬이 소리쳤다.



“자식도 있는 놈들이 코흘리개처럼 싸워서야! 게다가 오늘은 축젯날이란 말이다! 부정 타지 않게 조심해야지! 하그위! 말해보게. 그 기사인지 마녀인지 하는 사람은 지금 어디 있지? 왜 우리 마을에 온 건가?”



“요 근처에 있을 겁니다. 사람을 만나러 왔다더군요.”



하그위가 대답했다.



“누굴?”



“이그니스라던데요?”



“이그니스 파트리치오? 시장 안사람?”



네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어쩐지! 내가 이상하다고 했지! 내가 말했잖아? 이그니스, 그 여자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다고! 훈가 어르신이 아까 말했던 마을을 찾아온 한 사람이 그 여자이지 않습니까?”



훈가 어르신이 코를 훌쩍이며 고갤 끄덕였다. 네셀이 계속해서 말했다.



“거 봐! 외지인 둘이서 우리 마을을 어떻게 해보려는 거야! 그녀도 마녀겠지!”



“하지만 이그니스 아가씨는 빨간 머리인데잉?”



발렌티나 할머니가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레어티스 말이에요! 그 이상한 녀석! 녀석 머리가 파랗잖아요!”



“이런··· 네셀, 아무래도 이제부터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네.”



장로 보웬이 소식통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공고문이야. 옐사렘에서 왔어. 마녀를 발견했다는군.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이웃을 죽이게 한 마녀. 자경단이 직접 처형한 모양이야.”



“자경단이요? 무슨 도적단 같은 건가?”



“주민들이 직접 처형했단 뜻일세.”



보웬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좋은 소식이네요! 우리도 그렇게 하죠!”



“근데 머리가 검다는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셀? 마녀의 머리가 검은색이야.”



“검어요? 그럼··· 검은 머리가 마녀라는 겁니까?”



네셀이 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검은 머리였다.



“아니지, 네셀. 그게 아니야. 머리색만으로는 마녀를 알 수 없다는 말이야.”



“그럼 파란 머리는 마녀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거봐! 내가 뭐라 했어? 기사 나리는 마녀가 아니라고! 넌 지금 생사람을 잡고 있던 거야!”



하그위가 기세등등해져서 가슴을 쭉 펴며 소리쳤다.



“그렇지 않네, 하그위.”



장로가 단칼에 잘라 말했다.



“이제 우린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거지. 어떤 머리색이든 말일세.”



하그위와 네셀은 할 말을 잃고 서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훈가 어르신도 코를 훌쩍이며 장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손님이구만. 간만에 온 손님.”



발렌티나 할머니가 느긋한 얼굴로 그물을 엮으며 말했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이윽고 네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떡하긴? 축제를 준비해야지! 굶어 죽기 싫으면 얼른 나가서 축제 준비하게! 이방인은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 얼른 나가!”



불호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셀이 얼른 뛰쳐나갔다. 하그위도 느릿느릿 네셀을 뒤따랐다.



대낮의 바닷바람은 짜고 부드러웠다. 하그위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 고민했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고민하는 게 익숙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린 것이다. 하그위는 한숨을 내쉬고는 회관의 벽을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셨네요.”



하그위가 깜짝 놀라 숨을 크게 들이켰다. 파란 머리 얀이 회관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다. 얀은 무표정한 모습이어서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하··· 혹시··· 들으셨습니까?”



얀은 고개를 끄덕였고, 하그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언제부터···”



“처음부터요. 과장이 심하시더군요. 무뢰배 말이에요. 열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는데.”



“그랬나요? 전 열 명인 줄 알았는데.”



하그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네셀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닐 거예요, 기사 나리.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괜찮아요. 익숙하니까. 그것보다 기사라는 호칭부터 어떻게 안 될까요? 어제부터 말씀드렸지만, 전 기사가 아니에요.”



“왜요? 멋진 칼을 가지고 있잖아요? 솜씨도 훌륭하시고요. 그리고 얼마나 정의로우신데-”



“알았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얀은 얼굴이 뜨거워져 얼른 말을 자르고는 바로 주제를 바꾸었다.



“이제 이그니스의 집을 알려주시겠어요? 그것 때문에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이고! 아직 말씀을 안 드렸네요! 내 정신 좀 봐. 죄송해요. 광장 지나서 오르막길 끝에 있는 붉은 지붕이에요.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죠. 시장의 집이니까요.”



하그위가 얼른 말했다.



“고마워요. 또 하나 물어도 될까요?”



“뭐든지요!”



“마을에 사람이 안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얀이 텅 빈 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작은 생선을 입에 문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거리를 후다닥 지나갔다.



“아! 다들 마을 언덕에 있을 거예요. 제가 말씀드렸죠? 마을에서 축제를 한다고요. 바다신을 위한 축제요. 중요한 축제예요. 재작년부터 정어리가 크게 줄더니 요새는 영 잡히질 않더라고요. 마을에 정어리가 정말 중요한데··· 뭐가 문젠지는 몰라도, 바다신께서 노하신 것 같아 기분을 풀어드리려고요.”



“그렇군요.”



뭔지 잘 몰랐지만 얀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님께 들키기 전에 가봐야겠네요. 기사님도 축제 때 오세요! 아마 두세 시간 뒤쯤에 시작할 거예요. 아! 기사님? 혹시 저도 뭐 좀 물어도 될까요?”



얀이 고갤 끄덕였다. 하그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이그니스 씨와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이런 변두리 마을까지 굳이 힘들여서 찾아올 이유가 있나 싶어서···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하그위는 자기 말이 변명처럼 느껴져 말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얀은 그런 하그위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더니, 괜스레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닷새가 물결처럼 맑은 하늘 아래를 빙빙 돌고 있었다. 이윽고 얀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가족 얼굴 보고 싶어서. 그것뿐이에요. 아마도요.”


작가의말

일러스트는 Midjourney에서 생성한 AI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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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끝 그리고 시작 (3) 22.08.19 50 4 14쪽
3 끝 그리고 시작 (2) 22.08.18 61 2 20쪽
2 끝 그리고 시작 (1) 22.08.17 11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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