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ORAE

창공의 왕좌 : The wyver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Gracepark
작품등록일 :
2016.09.20 02:16
최근연재일 :
2016.10.18 22:31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178
추천수 :
282
글자수 :
92,749

작성
16.09.27 18:36
조회
568
추천
18
글자
11쪽

부자상봉

DUMMY

일디온은 해가 뜨기도 전인 어스름한 새벽녘에 외출할 채비를 마쳤다.

어제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 때문.

편지에는 다짜고짜 내일 해가 뜰때 지도에 표시된 지점으로 루시를 타고 오라는 말만이 쓰여있었다.

뜬금없지만 어차피 레펠리언을 만나거나 편지를 쓸 생각이기도 했고 그리 먼 거리도 아니기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가족들은 다 자고 있다.

조금 있으면 부지런한 갈리언이 일어나서 와이번들의 식사를 준비하겠지.

딱딱한 빵을 대충 씹어넘기고는 문을 열고 나섰다.

어제 밤에 아내에게도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해 놓았었다.


-키잇.


외출할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루시가 집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올라 타라는 듯 몸을 한껏 낮추어 일디온이 탑승하기를 기다렸다.


"루시···."


일디온은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로드아이 종(種) 특유의 짙은 회색을 띈 루시의 목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날개 뒷쪽으로 돌아가 루시의 다리를 밟고 허리 위로 올라타 목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부위에 얹은 가죽 안장에 자리를 잡았다.


"읏챠."


와이번이 알을 뱄을 때는 격렬한 움직임이 아닌, 일반적인 비행이야 가능하지만 누군가를 태우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루시는 영특하게도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지 순순히 일디온을 받아들였다.

사실 스스로 일디온이 자신에게 타기를 기다렸다고 말하는게 맞겠지만.


"너도 아버지를 보는건 진짜 오랜만이지?"


-키잇.


루시는 낮게 소리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원래 루시는 레펠리언의 와이번이었다.

마법사의 와이번, 세상 누구도 믿지 않을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일디온이 직접 목격한 일이기에.

일디온은 레펠리언이 루시를 대상으로 마법 실험을 했다고 믿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세상 어느 마법사가 와이번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윌리아 남동쪽으로 가자."


일디온이 루시의 목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이야기하자 루시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아는 목장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플레타 산맥의 관문과도 같은 도시다.

가죽 안장에 단단히 매여진 끈을 자신의 혁대에 부착된 쇠고리에 꼼꼼하게 맨 일디온은 준비가 다 되었다는 신호로 짧게 두번 루시의 목을 두드려 주었다.


엘드리퍼 목장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목장에서는 연한 회색의 와일러 종(種)을 사육한다.

일디온도 루시 외에는 모두 와일러 종을 사육하고 있기도 하고.

와일러 종은 개체수가 많고 비교적 사육이 쉬운데다가 힘이 강하고 체력이 좋으며 최고 속도가 빠르다.

무엇보다 전쟁 이후 루나레린에서의 와이번 사육이 금지되었고, 제국의 와이번 나이트들이 와일러 종(種)을 선호한다는 점이 대부분의 목장에서 와일러 종을 주력으로 사육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와이번을 구매하는 주 고객이 세틸리온 제국의 기사들이니까.


그에 반해 루시와 같은 짙은 회색의 로드아이 종(種)은, 매우 영리하며 민첩하다는 장점이 있다.

와일러 종에 비해 최대 속도는 느린 편이나 가속이 좋고 날개의 힘이 강해 방향전환과 급상승 및 급강하가 가능하다.

다만 개체수가 매우 적고 번식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목장에서의 사육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루시는 뱃속에 알을 품고 있기에 특유의 파워풀한 급상승 보다는 안정적인 비행을 택했다.

고지대에 위치한 목장의 지형을 살려 날개를 펼치고 서서히 바람의 흐름을 찾았다.

근육질의 다리로 박차를 가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일디온은 와이번 라이더의 필수품인 고글을 내려 썼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루시. 급하게 갈 필요 없어."


루시는 적당한 고도에 도달하자 날개를 펼치고 활강비행에 돌입했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아래를 바라보자 저 멀리 집이 손바닥 만하게 보였다.

꽤 오랜만의 비행이지만 해가 뜨기 직전의 절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흐음!"


루시를 믿고 양 손을 고삐에서 놓은 일디온은 힘차게 기지개를 켜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았다.

봄이긴 하지만 새벽, 게다가 꽤 높은 고도로 올라오자 엄청난 한기가 느껴졌다.

기세좋게 기지개를 켰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온 몸을 웅크리고 오들오들 떨었다.


'으··· 몸이 옛날같지 않군. 추워!'


젊었을 때는 어떻게 한겨울에도 루시를 타고 하늘을 누볐을까.

조금 더 따뜻하게 입고 오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지만 조금씩 해가 떠오르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띄워졌다.

비행은 언제나 즐겁다고 생각했다.

아니, 조금 더 자신에게 어휘력이 풍부했다면 즐겁다 라는 표현 보다 훨씬 훌륭한 말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키잇. 키잇.


하늘을 비행하는 자유로움과 일출의 경관을 즐기고 있는데 루시가 날카롭게 소리를 내어 윌리아 근처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려왔다.

가까운 거리라 방심해서 방한 장비를 제대로 챙겨오지 않아 입이 얼어버린 일디온이 고삐를 살짝 당겨 루시를 인도했다.


***


"우히! 어이이 아이? 어이아!"


일디온은 입술이 파랗게 얼어붙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깜짝 놀라며 루시의 등을 툭툭 쳤다.

하지만 루시는 용케도 그 말을 알아 들었는지, 날개를 세로로 비스듬히 세워 속도를 늦추어 서서히 고도를 낮추었다.


편지에 쓰인 장소 그대로였다.

윌리아 남동쪽에 위치한, 작지만 튼튼해 보이는 통나무집.

루시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안정적으로 하강했고, 일디온은 루시의 목을 꽉 붙들어 매고 착지에 대비했다.


"오행해어!"


10미터에 달하는 덩치임에도 별 충격없이 능숙하게 착지한 루시는 일디온이 내려오기 쉽게 몸을 숙여주었다.

여전히 얼어붙은 입을 풀기 위해 혀를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고 손으로 비빈 일디온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이우에오."


굳게 닫힌 오두막의 문을 바라보며 정상적으로 입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일디온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문으로 다가섰다.

오두막 안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6년만에 아버지를 만나는 건데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죄송하다고 해야 할까.

설마 마흔을 훌쩍 넘긴 아들을 두들겨 패기라도 하진 않겠지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긴장되는 마음으로 튼튼해 보이는 나무 문을 밀었다.


끼익.


"······."


나무 냄새와 흙 냄새가 섞인 실내에는 은은한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 아버지?"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 노인.

쭈글쭈글하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새치가 가득하고 푸석한 긴 장발.

볼 양옆이 푹 패여 그간 고생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한 얼굴.

일디온은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며 노인에게 다가가 서서히 손을 뻗었다.


"아버지. 접니다. 아들입니다."


슬며시 다가가 노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을 걸었다.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노인의 주름진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눈꺼풀이 열리고 흔들리는 갈색 눈동자가 일디온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음?"


복받쳐오르는 눈물을 미처 참아내지 못하고 노인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은 일디온은 이내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스스로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보고 싶었던 것인지, 26년간의 그리움이 한번에 터져나왔다.

오열하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마구 울어대자 노인의 몸이 살짝 떨리며 일디온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허크헉··· 죄송해요, 아버지. 사실 정말 찾아 뵙고 싶었는데 도저히 뵈러 갈 수가 없었어요.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주세요. 어흐헝!"

"허허···."


노인은 딱히 뭐라 대답해주지 않고 허허 웃으며 숨넘어갈듯 울어대는 일디온의 어깨를 토닥여 줄 뿐이었다.

한참을 울고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시뻘개진 눈으로 노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버지··· 진짜 많이 늙으셨네요. 눈가에 주름이··· 그나저나 눈동자가··· 어··· 원래 갈색이셨나요?"

"흠흠."


사람이 눈동자 색을 바꿀 수 있을까.

마법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다지만, 26년 만에 아들을 만나는데 그럴 이유가 있겠는가.

일디온도, 그의 아버지도, 아들들도 죄다 푸른 눈동자를 가졌다.

멍한 표정으로 난감한 표정의 노인을 올려다보는데 뒷통수에서 서늘한 느낌이 느껴졌다.


빠악!


"으억!"

"이 멍청한 놈!"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기억날 듯 기억나지 않을 듯 한 감촉.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자 자신이 안겨 울었던 낯선 노인이 아닌, 희미한 기억이지만 확실히 자신의 아버지가 그 곳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어, 어어. 아버지?"

"애비도 못알아보는거냐? 이 망할놈이."


그제서야 의자에 앉은 노인의 다리에서 후다닥 떨어진 일디온은 바닥에 주저 앉은 채로 레펠리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멍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황망하게 소리쳤다.


"아, 아버지! 아들 나이 마흔 다섯입니다! 뒷통수를 후려갈길만한 나이가 아니라고요! 그것도 26년 만에 보는건데!"

"너만 나이 먹은 줄 아냐! 나는 곧 일흔이다! 그리고 네 녀석이 백살을 먹더라도 난 니 애비다!"


26년 만에 이루어낸 부자 상봉 치고는 유치한 대화.

일디온이 부친과 원래 이런 관계였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레펠리언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다른 의자에 앉았다.


"26년만에 보는데도 여전하구나."

"아··· 흠.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그, 그래도 정말 보고 싶었다고요. 그나저나 이 분은?"

"허허. 이 집 주인이올시다. 그럼 자리를 비켜드림세."


노인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집 밖으로 나가려다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인자한 모습으로 울던 일디온을 토닥여 주던 차분한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비명도 함께 지르며.

아무래도 자기 집 마당에 얌전히 앉아있는 10미터 짜리 와이번을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일디온이 괜찮다고 착한 녀석이라고 말해줬지만 노인은 손을 더듬어 문 옆에 놓아둔 도끼를 쥐고는, 어설프게 다리를 벌리고 루시를 경계하며 게걸음으로 사라져갔다.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그나저나 그 편지는···?"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고민되었지만 일단 편지 이야기부터 꺼냈다.

워낙에 절묘한 타이밍에 도착한 편지인지라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이렇게 달려온 것은 분명히 아버지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디온."

"예, 아버지."


일디온은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신이 돌아오고 나니 처음 보는 노인의 다리를 붙잡고 울었던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자신을 그다지 반가워 하지 않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복잡해져 있었다.


"벨리언이 마나에 소질이 있더구나."

"뭐, 제 아들이지만 엄청난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 아버지가 어떻게 벨리언을 알죠?"


작가의말

연참에 실패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창공의 왕좌 : The wyver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민트경과 함께 +2 16.10.18 122 9 9쪽
21 록탈라의 크레이터에는 전설이 있지 +3 16.10.17 129 10 8쪽
20 민트의 기사 2 +3 16.10.16 147 8 9쪽
19 민트의 기사 1 +3 16.10.15 162 6 9쪽
18 봉변 +3 16.10.14 202 10 9쪽
17 펠스팅스 5 +4 16.10.12 195 10 10쪽
16 펠스팅스 4 +2 16.10.11 222 10 13쪽
15 펠스팅스 3 +4 16.10.10 303 9 10쪽
14 펠스팅스 2 +6 16.10.09 317 10 11쪽
13 펠스팅스 1 +3 16.10.08 325 11 9쪽
12 6년 후 +7 16.10.07 324 8 10쪽
11 위드 더 그레이트 빙빙 +6 16.10.05 421 12 9쪽
10 특이종 +5 16.10.04 404 11 7쪽
9 마나 컨트롤 +10 16.10.03 410 11 10쪽
8 실험대상 4번 +5 16.10.02 441 14 9쪽
7 미친 재능 +12 16.10.01 447 15 8쪽
6 착각과 기대감 2 +6 16.09.30 448 14 11쪽
5 착각과 기대감 1 +12 16.09.29 490 15 13쪽
» 부자상봉 +10 16.09.27 569 18 11쪽
3 엘드리퍼 와이번목장 2 +17 16.09.25 559 21 10쪽
2 엘드리퍼 와이번목장 1 +15 16.09.24 748 26 11쪽
1 프롤로그 +15 16.09.24 794 24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