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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믄 님의 서재입니다.

통계학 교수가 축구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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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믄
작품등록일 :
2022.02.14 08:54
최근연재일 :
2022.03.15 19:14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4,464
추천수 :
69
글자수 :
92,283

작성
22.02.21 08:00
조회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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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꿈꾸던 평범한 삶

DUMMY

결승. 감독이 말한 결승은

U리그 왕중왕전 결승이라는 이야기일까?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혁준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혼란스러웠다.


룸미러를 통해 운전하고 있는

조금은 낯선 아버지의 얼굴도 계속 확인했다.


스마트 폰을 켜보니 2021년 12월 1일이다.

80년생에서 갑자기 00년생이 되고

다리가 멀쩡해진 겨울이었다.


12월, 겨울, 그러고 보니

그 당연함이 깨져있었다.


외부 기온이 30도가 넘었다.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경기도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뛰었다.


“근데 지금 여름인가?”

“여름이지.”

“12월인데?

“당연히 12월이 여름이지. 왜? 더워? 에어컨 세게 틀어줘?”

“아니요. 아니에요”


12월이 여름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혁준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예? 어, 고기요.”

“그래. 오늘 골도 넣었는데 소갈비로 가자.”


혁준은 부모님께 웃는 모습을 보여주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곳이 지구는 맞는 지도 의문이 들었다.


“서울은 맞는데······.”


혁준은 브라질에서 온 이후로

계속 서울에서 지냈다.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독립을 한 이후에도

부모님들은 서대문에서 지내다

재개발로 지방에 내려가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계셨다.


“집까지 얼마나 남았지?”


혁준이 떠보듯 물어보았다.

목동에서 여의도 쪽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한 15분? 20분? 왜? 힘들어?”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서대문이다.

차는 서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황이 비슷했고,

눈에 보이는 서울도 혁준이 아는 서울이었다.

도로 이정표에도 서울의 지명들이 보였다.


갈비집에 도착해서

아버지는 신나게 고기를 구우셨다.

그리곤 채 익지도 않은 소갈비를

혁준의 접시 위에 올려두었다.


“많이 먹어.”


혁준은 잊고 있었다.

자신의 축구 실력은 아버지의 자부심이었다는 사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축구화 살 돈도 없던

아버지는 혁준이 축구부에 처음 들어간 날

가장 좋은 축구화를 사오셨다.


매일 같이 함께 공을 찼고

혁준이 브라질에서 유학을 하는 동안

적어도 3달에 한 번은 꼭 브라질에 오셔서

혁준의 생활을 보고 가실 정도였다.


어머니는 말로는 주책이라 하면서도

내심 아버지가 아들에게 마음을 쏟는 것이

다정하다 느끼셨고, 혁준의 가족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고기를 먹으며 혁준은 목이 메였지만

꾹 참으며 아버지가 주는 갈빗살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맛있어요.”


울음을 참느라 코가 빨개진 혁준이

아버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많이 먹어.”


고기를 잔뜩 먹고

집에 도착한 혁준은 다시 한 번 놀랐다.

혁준이 살던 집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빨리 씻고 와 영양제 챙겨 먹어.”

“네.”


혁준의 방은 혁준이 쓰던 방과

가구의 위치, 구조는 같았지만

그의 방엔 없던 지단, 사비, KDB, 브루노 페르난데스 등

선수들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다.


혁준은 축구를 그만둔 후로

선수를 선망하는 것부터 그만했다.

그들이 더 이상 그의 목표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웅을 그저 수치가 좋은 선수로 보는 것까진

많은 시간이 들었다.


또 다른 건 사진이 모두 미드필더들이었다.

혁준이 좋아했던 호나우두, 셰브첸코, 앨런 시어러와 같은 공격수들이 아니었다.


잠자리에 든 혁준은 빈 천장을 보자

문득 두려움이 밀려왔다.


대한민국이 남반구에 있는 이곳.

00년에 축구를 포기한 한혁준이 아닌

00년생의 한혁준으로 살아야 하는 이곳.



이곳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인지

돌아간다면

다시 한강 위로 떨어져 죽게 되는 건지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런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아침이었다.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고 시간은 9시였다.

감독이 11시까지 오라고 했으니

천천히 준비하고 나가면 될 일이었다.


오랜만에 경기를 뛰어

긴장을 한 탓인지

등에 근육통이 있었다.


샤워를 하며 그는 또 다른 의문점이 생겼다.

18살에 그는 남미, 유럽의 팀들이 그를 주목했었다.

그렇다면 굳이 대학에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었다.

22살에 왜 대학 리그를 뛰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는 씻고 나와 유니폼을 챙겼다.

등 번호가 40번이다.

포지션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고

40번은 팀 내에서 위치도 후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가 학교에 도착해 버스에 오르자

민재가 가장 먼저 말을 걸었다.


“야! 한혁준! 왜 이렇게 늦어?”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혁준은 그의 옆에 앉으며

혼잣말 하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됐다.”


혁준은 시선을 창밖으로 옮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 어디 아픈가?”


민재는 그와 같이 연령별 국가대표를 함께 함께 뛰던 윙어였다.

빠른 방향전환으로 드리블 리듬이 좋고, 크로스가 좋아서

믿을 수 있는 레프트 윙어였다.


그는 프로 리그에서 뛰다 부상으로 은퇴 후

프로팀 유소년 감독을 하고 있었다.


혁준보다도 먼저 성인 무대에 데뷔한 그였기에

왜 대학리그에 뛰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버스에 정 감독까지 오르자

버스는 출발했고 결승지로 향했다.

혁준은 버스 안에서 물만 1리터를 마셨다.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랫동안 냉철하고, 성질 고약한 교수로 살다가

다시 00년생 대학생.

거기다 결승전 선발 선수로 뛰는 건 보통 긴장되는 일이 아니었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전남 지역구 1위 팀 남전대는 이미 도착한 듯 보였다.

결승이라 그런지 카메라도 많았고 관중이 꽤 많았다.

그게 혁준의 긴장감을 더 높이고 있었다.


라커룸으로 들어가자

코치들이 먼저 와서 세팅을 해두었고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혁준의 눈에 먼저 코치 보드가 보였다.


코치 보드의 선수들은

모두 모르는 이름이었다.

어제 포메이션이 아직 그대로 적혀 있었다.


축구부원이 부원들 이름을 모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는 빠르게 부원들의 이름을 훑었다.


9번 스트라이커 이성필

11번 왼쪽 윙어 김민재

12번 오른쪽 윙어 강 석


왼쪽 윙어는 김민재. 주장이었고

오른쪽 윙어 12번 강석이

어제 어시스트를 건넨 선수였다.


그의 이름은 SUB라고 적힌

후보 선수 리스트에 적혀 있었다.

후보 중에서도 한참 밑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13번 미드필더 김건훈

교체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혁준은 미드필더였다.


“내가 후보라고? 참나. 감독이 보는 눈이 없네.”


감독 이름을 찾아보니

보드 맨 위에

감독 정민철이라 적혀있었다.


정민철, 익숙한 이름이었다.


“정민철... 정민철...”


그의 기억 속 정민철은

2010년 K리그 수원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생각해보니 그와 얼굴도 똑같았다.


그는 체력적으로 가장 뛰어난 멤버 중 하나였지만

주전 선수에 비해 기술적인 부분이 부족한 선수였다.


왕성한 활동력으로 90분 내내

상대 선수가 질릴 정도로 따라다니는

수비형 미드필더 정민철.


우직한 체구에 그를

팬들은 그를 자라라 불렀다.

자라라는 별명에는 느린 패스 타이밍을

조롱하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었다.


혁준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는데

민재가 말을 걸어왔다.

혁준은 놀라 일어나

옷 갈아입는 척을 했다.


“너 어제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뭘?”

“그 골 말이야.”

“어떻게가 어딨어? 그냥 한 거지. 운이 좋았어.”


대답을 한 뒤 그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모르냐? 16년을 봤는데? 어제 너는 좀 달랐어.”

“다르긴”

“16년을 봤는데 다를게 뭐가 있어?”


혁준은 너스레를 떨었지만

대화를 길게 하다

신분이 들킬까 두려워

말을 빨리 끊으려 했다.


“그러니까 16년 동안 안 보이던 확신이 보였어.”

“네가 본 나는 어땠는데?”


혁준은 민재를 떠보았다.


“내가 본 너는 감은 있는데

몸이 따라주는 않는 선수.

미드필더로는 큰 장점이 없는 선수”


그 말을 들은 혁준은

미드필더라는 포지션 선택이

그를 대학 리그로 오게 만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잘 아네. 나 그 한혁준이야.”


혁준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라커룸에서 나와

운동장으로 향했다.


혁준이 그라운드를 밟는 순간

몸을 풀고 있던 선수들 옆으로

다시 숫자들이 보였다.


“헛것인가?”


혁준은 고개를 털며 눈을 감았다.

눈을 떠도 숫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수치는 경기 수, 패스 횟수와 같은 기본적인 데이터였다.


그는 코치 보드에 적혀있던 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유니폼 백넘버 12번에 KANG SEOK 이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보였다.

마른 몸에 큰 키, 긴 다리를 가지고 있어

윙어치고 밸런스가 좋지 않아 보였다.


어제 경기에서 스타트가 늦은 것도

하체 근육이 부족한 탓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쯤

그의 옆에 떠 있던 데이터가 바뀌었다.


[드리블 성공률 : 28/36 78%

패스 성공률 : 44/68 65%]


그 순간 그에게 가장 필요한 데이터였다.

그의 생각과 함께 데이터는 변화했다.

신기함에 그는 여러 명의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그러는 사이 부원들이 운동장에 모이고,

코치와 감독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오늘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겨야 한다.”

“네!”

“상대의 장점이 빠른 패스인 건 너희도 알고 있겠지.”


모두 감독의 말에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라인을 맞추며 지역수비로 간다.

원 볼란치 4-3-3으로 빠른 좌우 스위칭을 가져가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결승 경기를 앞둬서인지

선수들의 사기는 높았다.

선수들의 얼굴에 긴장과 함께 기대감이 보였고

감독의 얼굴에도 자신감이 보였다.


“오늘 선발 부른다.”


코치가 선발을 부르는 동안 정 감독이 민재와 혁준을 불렀다.


“뒷공간 노려라. 너희 둘이 해야 된다.

한 박자 빠르게 공간 패스를 노려야 돼.

혁준. 그게 너를 쓰는 이유야.”


잠깐 뛰었지만

한민대는 상대 뒤 공간을 노리는 플레이가 부족한 듯했다.

라이트 윙어 강석은 습관처럼 사이드로 빠지는 듯했고

스트라이커 이성필은 186cm의 키를 가져 피지컬 자체는 좋았지만

속도에서 단점을 보였다. 믿을 건 민재뿐이었다.


골키퍼부터 수비수까지 부른 코치가 미드필더를 부르기 시작했다.


“미드필더 가운데는 철민이 오른쪽 재창이, 왼쪽 한혁준”


혁준의 이름이 모두 건훈을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코치 보드에 보이던 주전 김건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건훈이는 오늘 벤치에서 시작해라.”


공격수까지 모두 부르고는

코치들이 그라운드에 콘과 스텝 래더, 마커 등을 놓았다.

선수들은 익숙하다는 듯

선발 선수들이 스텝 연습, 밸런스 등 기본기 연습을 하며

웜업을 시작했다.


스텝 래더 앞에선 혁준은 조금 떨렸다.

20년 만에 해보는 스텝 연습이었다.

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삶이 지금 눈앞에 펼쳐졌고

그 삶은 생각보다 많이 평범했다.


그리고 어쩌면 평범하지 않을

결승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작가의말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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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확신을 잃은 후보 선수 - 1 22.03.04 159 3 16쪽
11 출격 준비 완료 22.03.03 179 2 12쪽
10 결승. 우승. 해트트릭 22.03.02 18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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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21 U리그 왕중왕전 - 4 22.02.25 205 4 9쪽
7 2021 U리그 왕중왕전 -3 22.02.23 239 4 9쪽
6 2021 U리그 왕중왕전 -2 22.02.23 267 3 11쪽
5 2021 U리그 왕중왕전 -1 22.02.22 308 4 12쪽
» 꿈꾸던 평범한 삶 22.02.21 423 6 11쪽
3 달리자, 다시 달리자 22.02.18 443 8 11쪽
2 다시 빛나게 될, 시작이 될 어느 날 22.02.16 500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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