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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믄 님의 서재입니다.

통계학 교수가 축구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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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믄
작품등록일 :
2022.02.14 08:54
최근연재일 :
2022.03.15 19:14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4,462
추천수 :
69
글자수 :
92,283

작성
22.02.16 08:00
조회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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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8쪽

다시 빛나게 될, 시작이 될 어느 날

DUMMY

전동휠체어를 타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온 혁준이 말했다.


“제 수업 때는 앞문 좀 열어 놓으세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한혁준 교수는 학생들을 올려보았다.

학생들은 응용통계학 수업 중 휠체어를 타고

수업하는 교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이상하게 하던 대화도 멈추고 그에게 주목했다.

장애인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느끼는,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장애인에게 느껴지는 그 이질감.

그게 그들을 주목시키는 듯했다.


혁준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훑었다.

그의 눈엔 모든 학생들이 멍청해 보였다.


“아시겠습니까?”


그제야 학생들이 힘없이 산발적으로 대답했다.


“오늘은 앞으로 기초 스포츠 통계학에서 할 것만 간단히 공지하고 끝내겠습니다.”


몇몇 학생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술 약속을 정하는 듯했다.

금요일 오후 4시 반 수업을 빨리 끝내준다니 학생들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한 학기동안 지루한 숫자놀이를 하게 되실 겁니다.”


혁준의 단호한 말투와 저음으로 깔린 목소리에 학생들이 집중했다.


“그 어느 수업보다 많은 데이터를 눈 빠지게 보게 될 것이고”


그가 잠시 휴지를 두자 학생들이 그의 다음 말을 긴장하며 기다렸다.


“이 수업이 기초전공 수업 중 가장 재미없는 수업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약 70명의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수강 취소할 분들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놀라 커진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겁이 난 얼굴로 눈을 꿈뻑거리는 꼴이 그에겐 우습게만 보였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음 수업 때는 수강자가 없었으면 합니다.”


그가 휠체어를 타고 나가자 학생들이 급히 짐을 들고 일어났다.

대학원 수업만 진행하던 그에게 학부 수업을 명령한 건

그가 교수가 되는데 크게 도움을 준 학과장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우리 과가 자퇴율 1위 먹었다. 스포츠 통계로 흥미 좀 올려보자.”

“말도 안 돼요!”

“야 네가 또 축구 좋아하는 애들 사이에선 유명하잖아.”

“이미 총장님이랑 얘기 끝냈어. 너 해야 돼.”


혁준이 꾀를 낸 것이 수강생을 줄여 강의를 없애는 방법이었다.

스포츠 통계학은 워낙 변화가 빠르고, 아직 연구할 부분이 많은 학문이기 때문에

학부생에게 그가 줄 수 있는 도움도 별로 없었고, 그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연구실에 도착한 혁준은 어떻게 회식을 빠져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미혼에, 친구도 별로 없어 고민하던 중

그는 민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하냐?”

“뭐하긴 훈련하지.”

“네가 가르치면 늘긴 하냐?”

“열 받게 하려고 전화했냐?”

“한 잔?”

“나 오늘 회식이야.”

“아이씨, 오늘이 무슨 회식의 날인가”


그나마 남아있던 핑계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에이씨, 모르겠다.”


고민하던 그는 36계를 선택했다.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눈치를 보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휠체어의 속도를 높여 주차장을 가로지르는데

자리도 많은데 자신의 차 앞에 누가 차를 대놓았다.


“아이씨, 뭐야 저거? 어떤 미친······.”


점점 가까워질수록 어떤 미친놈이 학과장이었다는 사실에 나오려던 쌍욕을 막았다.


“하, 대단하시네.”


차에서 학과장이 내려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내 차로 같이 가자.”

“참 할 거 없어. 진짜. 저도 차 있어요. 따라갈게요.”


학교 근처, 항상 가던 대포집에서 모였다.

왜인지 교수들은 자신들의 추억에 갇혀 사는 듯

자신들이 이 사회의 짐을 다 짊어진 힘든 지식인이라는 듯

대포집처럼 허름한 술집을 좋아하는 듯했다.

혁준은 항상 옛날이야기만 하는 그들이 싫었다.


“한 교수님, 첫 학부 수업은 어떠셨어요?”

“뭐 그냥 그랬죠.”


한참 빨리 교수가 된 후배의 물음에 그는 잔에 소주를 따르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우리 한 교수 국대 출신인 거 알지? 진짜 축구 잘했는데······.”


학과장의 혁준 띄우기가 또다시 시작됐다.


“18살에 한국의 셰브첸코 얘기 들었잖아. 그때 계속 했으면 유럽 갔지.”

“그만 해요. 옛날 얘기를 왜 해요?”

“이럴 때 옛날 얘기하는 거지. 그렇죠?”


학과장이 대답을 강요하듯 묻자 다들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는 소주를 한 잔 들이켜고 자신의 다리를 보았다.

상반신에 혹처럼 붙어 있는, 아무 쓸모없는 살덩이들.

그저 혈전이나 만들어 내는

약을 먹지 않으면 언제 썩을지 모를 것들이었다.


회식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혁준은 교수들의 추억 놀이에 지쳐

혼자 술을 들이켜 꽤 취해 있었다.


“자 2차 가실 분?”

“저는 들어 가보겠습니다.”


혁준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에이, 한 교수님 같이 가요.”

“아닙니다. 이미 대리불렀습니다. 더 놀다 가세요.”


매정하게 휠체어를 돌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다른 교수들은 쳐다만 보고 있었다.

혁준은 술기운이 올라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오랜만에 마셨더니 취한다.”


혁준이 차 쪽으로 다가가자 웬 정장을 입은 신사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혹시 대리 부르셨습니까?”

“예. 대리 기사님이세요?”

“그렇습니다.”


정장을 입고, 멀끔하게 머리에 기름을 바른

중년의 대리 기사가 조금 놀랍기도 했지만

오히려 진중한 느낌이 들어 믿음이 갔다.

대리 기사는 혁준이 휠체어에서 뒷좌석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휠체어를 트렁크에 넣고 출발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한참 말없이 가고 있었다.


“혹시 축구 좋아하십니까?”


대리기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 예. 좋아합니다.”

“올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16강을 갈 수 있을까요?”

“글쎄요. 좀 힘들지 않을까요? 강팀들과 한 조가 됐는데요.”

“하지만 공은 둥근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혁준은 의미 없는 대화를 빨리 끝내려 더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대리기사는 말을 끝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확률 따위에 기댈 수만은 없기 때문에

재밌는 건 아닐까요?”


점점 격양되는 기사의 말투에 혁준은 조금씩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리 기사가 물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뒤를 쳐다보았다.

혁준이 그만하라고 한 마디 하려 앞을 보는데

덤프트럭이 혁준의 차로 돌진하고 있었다.


“앞에! 앞에!”


혁준의 다급한 목소리에 대리 기사는 핸들을 급히 꺾었다.

한강 다리 위에서 혁준은 차는 날았다.

차가 물 위로 떨어진 순간

혁준은 창문에 머리를 박았지만 의식은 있었다.

물은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차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혁준은 생각했다.


‘이 문을 열어도 살 수 없다.’

‘어떤 노력에도 지금 살아나갈 수 없다.’


혁준은 체념했다.

더 이상 버둥거리며 살고자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죄송했지만 숨이 끊어지기 전

그는 삶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갈 준비를 했다.


살 방법도 없었고

죽는 순간을 느끼고 싶었다.

혁준은 눈을 감고 몸이 물에 뜨는 것을 느꼈고

물 위에 누운 듯 폐에서 모든 산소가 빠져나가고

물이 폐에 모두 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리니 풀내음과 흙냄새가 났다.

혁준은 천국에 왔다고 생각했다.

땅이 느껴졌고, 혁진은 엎드려 있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땅이 보였다.

그때 누군가 혁준의 이름을 불렀다.


“한혁준, 야! 이 새끼야! 안 일어나? 누워 자냐! 수비하라고! 수비!”


누가 나를 저렇게 급히 부르는 거지?

여긴 어디지?

흐린 시야에 천천히 선명해지는 그곳은 축구장 센터 서클 위였다.

그리고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누군가 쌍욕을 하고 있었다.


"여기 어디야?"


작가의말

천천히 할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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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확신의 주전 선수 - 3 22.03.11 115 1 11쪽
15 확신의 주전 선수 - 2 22.03.09 121 2 11쪽
14 확신의 주전 선수 - 1 22.03.08 128 4 10쪽
13 확신을 잃은 후보 선수 - 2 22.03.07 141 0 14쪽
12 확신을 잃은 후보 선수 - 1 22.03.04 159 3 16쪽
11 출격 준비 완료 22.03.03 179 2 12쪽
10 결승. 우승. 해트트릭 22.03.02 183 2 10쪽
9 2021 U리그 왕중왕전 -5 +2 22.02.28 190 4 11쪽
8 2021 U리그 왕중왕전 - 4 22.02.25 205 4 9쪽
7 2021 U리그 왕중왕전 -3 22.02.23 239 4 9쪽
6 2021 U리그 왕중왕전 -2 22.02.23 266 3 11쪽
5 2021 U리그 왕중왕전 -1 22.02.22 308 4 12쪽
4 꿈꾸던 평범한 삶 22.02.21 422 6 11쪽
3 달리자, 다시 달리자 22.02.18 443 8 11쪽
» 다시 빛나게 될, 시작이 될 어느 날 22.02.16 500 9 8쪽
1 가장 밝게 빛나던 별의 몰락 22.02.14 588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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