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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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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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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27
추천수 :
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11.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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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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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야만의 협상 4

DUMMY

호텔 막달라 앞에 선 론리는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한다.

얼마 전 도원에서 자신과의 하룻밤을 요구하는 옥저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나는 판도라와 만나는 사이야.”


“거절이야? 그럼 나도 하지 않겠어.

설마 정의 실현이나 진실탐사 같은 유치한 호승심을 나에게 기대한 건 아니지?”


“장난하지 마.”


“장난 아니야.”


옥저의 눈은 진지했다.

심지어 이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론리에게 화난 것 같았다.


“왜? 남자들은 권력을 이용해서 여자의 몸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잖아.

나도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이 있는데 그러면 안 돼?

널 좋아하는 거 진작 알았잖아.

내가 싫었으면 확실히 마음 끊어냈어야지.


내 마음 갖고 이용한 거나 마찬가지야.

이런 목숨 걸 상황에 날 끌어들이기나 하다니.

넌 정말 최악이야 론리 져스틴.


그러니까 내 말 똑똑히 들어. 13일 줄게.

1주일은 짧고 2주일은 너무 기니까 하루 빼서 13일.

마음 정하면 그날 저녁 9시까지 막달라 호텔로 와.”


호텔 로비에 선 론리가 직원에게 물었다.


“옥저라는 손님이 묵는 방이 있나요?”


“이름이?”


“론리 져스틴입니다.”


호텔보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분께서 져스틴 씨에 대해 특별히 요청하셨네요.

1103호로 가시면 됩니다.”


객실 문을 열자 정면에 침대에 걸터앉은 옥저가 보였다.

옥저는 이제 론리를 보기만 해도 수줍고 부끄러워하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표정과 태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옷차림도 마찬가지였다.


블랙으로 이루어진 실크원피스.

적당히 쇄골을 보여줄 만큼 넓었지만, 가슴골은 보이지 않았다.

무릎 아래를 덮을 정도로 길었지만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종아리를 내보였다.

타이트하진 않지만,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바디라인이 비칠 정도로 밀착되었다.


옥저의 입술은 주황에 가깝도록 밝고 붉었다.

눈 주위는 어두운 보랏빛이 멤돌아 사납고 야한 여우처럼 끝이 올라갔다.


하지만 망설이는 눈빛을 감추지는 못했다.

옥저는 론리의 품 안까지 걸어들어왔다.

나쁜 일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앞에 선 남자를 올려다보고 눈치를 봤다.


“내 옷을 벗겨줘.”


론리가 망설임없이 옥저의 어깨에 지탱하던 드레스를 그의 몸 바깥으로 벌렸다.

원피스가 스르륵 옥저의 몸을 스치며 다리 아래로 구겨졌다.


레이스가 화려한 브레지어와 속옷만 남았다.

판도라만큼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크기의 가슴이 모여 만든 골과, 군살없는 허리가 드러난다.


론리는 모욕감과 수치심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았다.

NC시스템의 결함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판도라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자신의 속살을 처음으로 남자에게 보인 옥저는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그 남자가 론리라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마치 옥저 스스로가 어른이 되어 금단의 과실을 먹는 것만 같았다.


조금은 신난 표정과 기대하는 표정으로 옥저는 론리를 끌어안았다.

맨발을 조금씩 옮겨 그를 침대 쪽으로 끌고 온 뒤,

한쪽 다리를 접어 침대에 올린 채 엉덩이로 깔고 앉았다.


론리의 옷을 벗겨 몸을 구경해볼까.

아니면 입술을 훔쳐볼까 즐거운 고민을 하던 사이에 문득 론리의 표정이 들어왔다.


슬픈 눈을 가진 것은 그렇다 쳐도,

남자로서 가진 본능적인 욕망이 옥저에게 전혀 전해지지않았다.

자신의 알몸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는 론리의 반응은 옥저의 마음을 차갑게 했다.

마음이 차가워지자 몸도 식어간다.


‘너한테는 내가 그렇게도 매력이 없는 거야?’


옥저는 더는 이 유치한 놀이를 하기가 싫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상대의 반응이 완고할 줄 몰랐다.

분한 마음을 감추며 입술을 깨물고 론리에게 물었다.


“판도라에게 말했어?”


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했구나. 너는 정말 판도라에게 숨김이 없구나...

판도라는 허락해줬어?”


론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이런 걸 허락해 줄 수가 있지?”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아니까.”


“너는? 판도라가 뭘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아니?”


론리는 고개를 숙인 채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네 세계에 갇혀있어.

오로지 네가 하는 일만 옳다고 생각하지.

나를 제대로 봐. 내 몸을 똑바로 보라고!”


론리가 고개를 들어 옥저를 바라본다.


“이런 내 모습 본 적 없지? 내 매력 제대로 봐주려고 한 적 없잖아.

날 똑바로 봐. 그리고 네가 결정해. 나인지 판도라인지.”


“나는 네가 더 이상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길 바랄 뿐이야.”


론리는 옥저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정했던 그의 굳은 마음을 안다.

그것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다만 사랑에 이유가 없다면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없다.

옥저가 좋은 사람이고 매력적인 여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한때는 론리 스스로도 그와 정해진 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옥저의 몸과 마음을 스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판도라를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옥저가 그의 마음속에 파도를 일으켰다면 판도라는 해일이었다.

자신의 세계를 몇 번이라도 감싸고도 남을 커다란 애정이 생기면서,

옥저에 대한 마음은 티끌처럼 변해버렸다.


옥저는 론리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었다.

옥저는 뒤돌아 침대를 지나쳐 창가의 커튼을 걷었다.

서울의 야경이 옥저의 몸을 샅샅이 훑는다.


“판도라는 로봇일 뿐이야.”


그냥 론리를 보내줄까도 생각했지만, 생떼라도 써봐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판도라는 판도라야.”


론리의 말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창문이 닫혀있지만 바람이 부는 것만 같았다.

그 쌀쌀함이 옥저의 몸을 차갑게 하는 것만 같아,

론리는 창가로 다가가 뒤에서 옥저의 몸을 끌어안았다.


“옥저도 나에게는 옥저야.”


그의 말에 옥저는 자신의 속옷 바람만 더 비참하고 부끄러워져 버렸다.

옥저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다시 입을 뗐다.


“도와줄 테니 나가.

혼자서 세상 구하려고 발버둥치는 꼴 제대로 구경해줄 테니까.”


옥저의 몸은 도무지 따뜻해질 생각을 않는다.

론리도 알고 있다.

옥저가 자신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도, 싸움 실력도, 똑똑한 판단력도 소용이 없었다.

사랑에 고통받는 사람을 치유하기엔 자신이 턱없이 작아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론리는 객실 문을 열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서로를 더 구차하게 만들 테니까.

문손잡이가 무거웠다.

옥저의 맨발과 닿은 바닥이 별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옥저는 론리가 나갔다는 것을 확인하고 침대에 팔꿈치를 괴어 두 손을 모았다.

종교가 없는 세상이었지만 본능적으로 그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았다.


혹시라도 신이 있다면 들어주십시오.

그가 저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저는 그 사람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평생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게 해주소서.

그래도 부디 시켜야겠다면 반드시 살아남게 하소서.

힘겨운 세상 속에 그 사람만 따뜻하니까.

신이 없는 삶에 그 사람만 정의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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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그래도 역사는 돈다 1 19.11.12 27 1 7쪽
92 눈물 3 19.11.11 29 1 9쪽
91 눈물 2 19.11.10 25 1 7쪽
90 눈물 1 19.11.09 37 1 10쪽
» 야만의 협상 4 19.11.07 29 2 7쪽
88 야만의 협상 3 19.11.06 31 1 14쪽
87 야만의 협상 2 19.11.05 25 1 8쪽
86 야만의 협상 1 19.11.04 24 1 12쪽
85 골고다 프로젝트 5 19.11.04 26 2 10쪽
84 골고다 프로젝트 4 19.11.01 32 1 7쪽
83 골고다 프로젝트 3 19.10.31 48 1 10쪽
82 골고다 프로젝트 2 19.10.30 27 1 11쪽
81 골고다 프로젝트 1 19.10.29 28 1 10쪽
80 진실의 늪 4 19.10.28 46 2 6쪽
79 진실의 늪 3 19.10.27 33 2 10쪽
78 진실의 늪 2 19.10.26 26 1 9쪽
77 진실의 늪 1 19.10.25 38 2 8쪽
76 적과의 동침 6 19.10.24 36 1 8쪽
75 적과의 동침 5 19.10.24 28 1 8쪽
74 적과의 동침 4 19.10.22 27 1 11쪽
73 적과의 동침 3 19.10.22 59 1 8쪽
72 적과의 동침 2 19.10.21 27 1 11쪽
71 적과의 동침 1 19.10.19 2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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