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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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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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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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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7,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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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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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진실의 늪 3

DUMMY

크로노스의 몸이 회복되어 혼자서도 침실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묶여있지 않았고, 그를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정기적으로 식사가 나왔고 화장실도 안에 있었다.


포로에 대한 처우라고 하기엔 대접이 상당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로노스가 이들에 대한 마음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동료 전우들을 무참히 살해한 반란군들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손잡이를 돌린다. 돌아간다. 당긴다. 열린다.

열린 문 바깥으로는 아무도 없다.


하얀 복도, 병동의 이름이 적힌 간판, 수많은 입원실.

지금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병원이었던 시설을,

주둔지로 이용하는 듯했다.

전투가 끝난 후 부상병들을 치유하기 위해선 적당한 장소일 테니까.


크로노스는 모퉁이마다 고개를 내밀어 다른 이들이 있는지 확인하며,

천천히 건물의 비상계단으로 빠져나간다.

비상계단에선 망설일 이유가 없다.


어깨가 다쳤을 뿐 다리는 멀쩡한 크로노스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5층. 4층. 3층을 내려오는 그때.


“어딜 그렇게 급히 가!”


뒤에서 들리는 중년의 목소리에 발이 얼었다.

이미 자신의 행보를 알고있던 감시인일까?


뒤를 돌아보니 다리를 절뚝이는 부상병이다. 나이는 40 중후반.


“자네는 꽤나 멀쩡하군. 미안한데 나를 좀 부축해주게.

담배 피러 나가고 싶은데 도저히 갈 수가 없어.”


부상병이 혹시 크로노스의 정체를 알까?


“그런데 자네는 어디 소속인가? 군단 소속도, 공작대 소속도 아닌 것 같은데.”


모른다. 하지만 크로노스 또한 지금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닥 위기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침묵하는 크로노스에게 중년은 먼저 말을 했다.


“하긴. 요즘엔 부쩍 혁명단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

소속도 다양해서 물으나 마나지. 말해도 몰라 서로들.”


‘그렇게나 규모가 커졌다는 말인가...’


크로노스는 그 말에 혁명단이라는 곳이 조금은 궁금해졌다.

어째서 사람들은 계속 상하이로 몰려드는 걸까.

하긴. 만약 자신이 아키텍쳐 스쿨을 무사히 졸업해 군인이 되지 못했다면 자신도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예전에는 서울역에서 마주친 노숙자들, 쥐 사냥꾼들과 같은 처지가 됐을지 모른다며 위협을 느끼곤 했으니까.


“어르신은. 어쩌다 이곳에 들어오게 됐습니까?”


중년병사는 크로노스의 부축을 받으며 잠깐 표정이 어두워졌다.


“딸애가 옐로카드를 받았었어.”


“그럼 따님과 함께 오신 건가요?”


“아니. 딸애는 수용소에서 죽었네.”


잠깐 크로노스의 걸음이 멈춘다. 그리고 부축이 중단된 중년도 본의 아니게 걸음을 멈춘다.


“괜한 질문을... 죄송합니다.”


“자네가 죽인 것도 아닌데 뭘.”


부상병을 부축해주게 된 일이 크로노스에겐 잘 된 일 같았다.

비상계단을 빠져나와 1층으로 내려가니 그곳은 온갖 군인들과 의사들.

그러니까 상하이 반란군들이 결집해있었다.

크로노스는 자연스럽게 의심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무사히 건물을 빠져 나왔다.

물론 병원이 주둔지의 전체가 아니었다.

중년 병사의 말대로 반란군, 아니 반란세력의 규모는 컸고,

무엇보다 군인외에 다양한 집단과 계층이 많았다.


요리, 세탁, 배달, 제조, 그리고 술.

그들은 홍콩의 한 개 구를 전부 메울 만큼의 생활터전을 이룬 것이다.


크로노스는 애써 놀람을 감춘 채 중년 병사에게 목례하며,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 부상병이 큰 소리로 말한다.


“왼쪽 말고 오른쪽 길로 가야 우리 주둔지를 나갈 수 있네!”


“감사합니다 어르...!”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주둔지를 나가려 한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뒤를 돌아보니 그 부상병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앞에는 빅 브라더가 서 있었다. 공작대와 함께.

그럼 그렇지 하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크로노스는 빅 브라더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저씨의 딸 이야기도 지어낸 건가?”


“아니. 그건 사실이야. 일부러 당신에게 붙여둔 건 인정.”


“나 당신이 누군지 기억났어.

우리 아버지와 일했던 자. 마약을 제조하고 사람들에게 가짜 네임카드를 달아줬던 자.

빅 브라더지?”


빅 브라더는 담배를 물며 대답한다.


“드디어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이네. 도련님.”


크로노스는 빅 브라더가 쳐놓은 덫에서 벗어난 것처럼 승기를 잡은 기분이었다.


“위선자군. 12구역에서 그딴 만행을 저지르며 이익을 추구하고선,

쫓기듯이 도망친 곳이 상하이인가.

반란군들은 신념과 노력이 아니라,

불만과 포기로 똘똘 뭉친 집단이었군.”


크로노스는 양팔을 벌리고 포기했다는 듯이 외쳤다.


“마음대로 해라. 네놈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네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테니까.

매일같이 지금처럼 탈출을 시도할거다.

같잖은 배려나 얄팍한 술수는 네 골치만 아파질 거라고.

그러니까 차라리 지금 죽이란 말이다!”


“모처럼의 기회인데. 보지 않고 가도 되겠나?”


“뭣...?”


빅 브라더는 크로노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주둔지를 나가는 길을 가리켰다.


그곳은 거짓말처럼 지금의 마을과는 다르게 한산했고,

사람하나 없는 상하이 거리가 보였다.


그가 이곳을 나가면 상하이 반란군들은,

정말로 그를 추적할 수 없을 터였다.


“말했을 텐데.

기계화보병연대의 대대장 한 사람쯤 우리에겐 가치도 없어.

당신이 과거 제가 모셨던 분의 아드님이라는 것도 의미 없고.


하지만 지성과 인품을 지닌 한 인물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은 꽤 값어치가 있어서 말이야.”


크로노스는 빅 브라더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머뭇했다.

한 걸음만 떼면 마을을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상하게 빅 브라더가 내미는 손을 뿌리칠 수 없다.


“갈 땐 가더라도, 마을 구경 한 번쯤은 괜찮잖아?”


그래. 예전부터 그랬다.

우라노스와 거래를 할 때도 빅 브라더는 언제나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곤 했다.

이 녀석의 말 몇 마디만 듣고 있으면 논리가 정연하고 전략은 신박했다.


크로노스는 빅 브라더를 따라가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의 언변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도련님. 마약을 만들고 파는 게 나쁜 건가?”


“어디서 개수작이냐. 당연한 말하지 말고 안내나 해봐.”


“그럼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건?”


“지금 그게 서로 같다고 생각하나?”


“나의 것을 빼앗는 강도를 죽이는 건?”


크로노스는 빅 브라더의 끈질김에도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의 세금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유용하는 정부에 대항하고,

우리의 계급을 결정지어 분배의 수혜를 박탈한 지배자들에게 마약을 파는 건?”


크로노스가 듣자 하니 참을 수 없어 발끈한다.


“사회가 지정한 능력과 성과대로 이익을 나누는 시스템일 뿐이다.

과열 경쟁과 과다한 욕망이 과거에 어떤 사회를 만들었는지 배우지도 못했나?

자신이 받은 네임카드대로 적정선에서 일하고,

적정선에서 분배받는 사회에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란 말이냐!”


“옐로와 블루. 아니 그레이까지도. 아니 바이올렛과 레드도!

그 누구도 적정선에서 일하지 못하고 적정선에서 분배받지 못한다.”


언제나 웃기만 하던 빅 브라더가 서늘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그의 분위기에 크로노스는 등골마저 오싹해졌다.


“그...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야?”


어느새 공장과 같은 폐시설에 들어선다.

빅 브라더는 시설에 들어가기 전에 크로노스의 질문에 대답한다.


“혼돈에서 탄생한 평등한 무력. 평등한 협상력. 그것이 내가 바라는 질서다.”


크로노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군수시설.

MFR생산설비였다.


생산된 것만 벌써 8기가 넘었고, 생산 중인 것이 수십 기다.

게다가 주요 장착 무기와 엔진 등의 핵심부품들도 직접 제조중이었다.


‘믿을 수 없어. MFR생산은 자동차와는 비교도 안되는 첨단기술의 집약체야.

이런 것을 상하이 반란군들이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우리가 이런 것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나?”


빅 브라더가 생산설비를 빙 두르며 안내한다.

로봇의 팔과 다리. 레이져 증폭기. 파동공격을 위한 입자가속기. 반대로 공격을 튕겨내는 실드배리어.


그리고 파일럿들의 조종석. 그곳에는 머리에 부착하는 스캐너와 인공신경케이블이 있었다.


거기에서 크로노스는 다시 발을 뗄 수 없었다.


MFR을 파일럿들이 움직이는 원리는 모델에 따라 크게 두 가지다.

모든 것을 정해진 조작키로 수동조작하는 운전식.

그 다음 파일럿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몸동작을 극대화하는 신경자극식이다.


그런데 팍스 사가 최신 무기백서에 2277년 버전으로 발표한 신식 MFR이 있다.

그것이 바로 파일럿의 생각을 스캔해 로봇으로 동작을 구현하는 인공신경망 방식이다.

밸류 컴퍼니와 제휴해 활용한 마인드 스캐너 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그것은 고도로 훈련된 요원의 경우,

운전식이나 신경자극식보다 몇 배는 더 빠른 반응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이런 설비와 기술은 반란군이 가지고 있어선 안되었다.

아니, 이것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이들은 단순한 도적떼나 반란군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생산자와 기술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과거 밸류 컴퍼니는 대표가 두 명이었지. 공동창업이었으니까.

마인드 스캐너도 공동개발했다고 볼 수 있겠군.”


빅 브라더가 상의를 벗는다.

크로노스는 빅 브라더의 어깨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지개처럼 다양한 빛깔을 품은 네임카드.


“한 명은 감마선의 가공법으로 유명해져 감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여자.

그리고 또 한 명은 그 여자의 남편. 퀴리.”


“그럼... 당신이 퀴리란 말이야?”


“잠깐 옛날얘기를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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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그래도 역사는 돈다 3 19.11.14 23 1 7쪽
94 그래도 역사는 돈다 2 19.11.13 28 1 7쪽
93 그래도 역사는 돈다 1 19.11.12 27 1 7쪽
92 눈물 3 19.11.11 29 1 9쪽
91 눈물 2 19.11.10 25 1 7쪽
90 눈물 1 19.11.09 38 1 10쪽
89 야만의 협상 4 19.11.07 29 2 7쪽
88 야만의 협상 3 19.11.06 31 1 14쪽
87 야만의 협상 2 19.11.05 25 1 8쪽
86 야만의 협상 1 19.11.04 24 1 12쪽
85 골고다 프로젝트 5 19.11.04 26 2 10쪽
84 골고다 프로젝트 4 19.11.01 32 1 7쪽
83 골고다 프로젝트 3 19.10.31 48 1 10쪽
82 골고다 프로젝트 2 19.10.30 27 1 11쪽
81 골고다 프로젝트 1 19.10.29 28 1 10쪽
80 진실의 늪 4 19.10.28 46 2 6쪽
» 진실의 늪 3 19.10.27 34 2 10쪽
78 진실의 늪 2 19.10.26 26 1 9쪽
77 진실의 늪 1 19.10.25 38 2 8쪽
76 적과의 동침 6 19.10.24 36 1 8쪽
75 적과의 동침 5 19.10.24 28 1 8쪽
74 적과의 동침 4 19.10.22 27 1 11쪽
73 적과의 동침 3 19.10.22 59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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