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피자 만들기
97화.
머엉.
루벤 남작은 유리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지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것 같았다.
"정신 차려!"
"아, 죄송합니다."
"이제 모래가 유리가 된다는 말은 이해가 되나?"
"그, 그렇습니다."
겨우 이해를 한 루벤 남작에게 유리의 활용 방식을 설명해 주었다. 유리를 만든다고 해도 판매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이런 유리를 어디에 어떤식으로 사용하는지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런식의 창틀을 만들어 사각형이나 원형의 유리판을 끼우면 멋진 유리 창문이 될꺼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또한 유리로 거울을 만들수도 있다. 이 유리에 수은을 덧입히면 거울이 된다."
이 대륙에서는 거울은 동(銅)으로 만든다. 즉, 구리 거울을 사용한다. 코스모 왕국의 더스틴 남작의 영애인 엘리사와 아리아에게 거울을 선물로 주었을때 굉장히 기뻐했다. 그만큼 유리로 만든 거울은 획기적이다. 귀족 여성들은 앞다투어 구입할것이다.
"수은은 몸에 해로운 물질이다. 그래서 수은을 유리에 바른후 수은이 노출되지 않게끔 수은위에 다른 물질을 발라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반사광도 뛰어나 좋은 거울이 된다."
"무얼 발라 주면 되는지요?"
"모른다. 그건 알아서 해라."
거울은 유리에 수은을 바르면 완성된다는것까진 알고 있었지만 수은위에 무얼 바르는지까지는 모른다. 그건 남작이 알아서 해야 한다.
"여러 가지 물질을 발라 보며 실험을 해 뛰어난 거울을 만들어 봐. 거울 크기도 얼굴만 비출수 있는 둥근 거울이나 몸 전체를 비출수 있을 정도로 큰 거울등 종류별로 만드는게 좋을꺼다. 남작 부인이나 영애에게 어떤 거울이 있으면 좋냐고 물어 보면 참고가 될것이고."
"감사합니다."
마법사여서 그런지 생각 자체가 달랐다. 어떻게 모래로 유리를 만들는 방법을 알고 있는진 모르지만 특산물도 없는 이 작은 남작령에 흔해 빠진 모래로 유리를 만들어 판매한다면 막대한 자금을 벌어 들일수 있을거다. 놀라는 한편 너무 좋아서 입이 찢어질려는 루벤 남작에게 한가지 더 소스를 말해 주었다.
"이 유리를 말이야. 이런식으로 뭉쳐 구멍이 뚫린 막대기에 끝에 붙인후 입으로 공기를 불어 넣으며 조금씩 막대를 돌려 가며 유리 덩어리가 아래쪽으로 늘어 지지 않게끔 조절하면 컵이나 물병등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수 있을꺼다."
"......."
손짓으로 흉내를 내면서 설명을 해 준 탓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것 같았지만 대충 알아 들었을것이다.
"그리고 뭉친 유리에 여러가지 색소를 넣어 투명한 유리가 아닌 색깔이 입혀진 유리를 만들수도 있다. 어떤 색소를 첨가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여러가지로 연구를 해 봐."
책임없는 발언이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모르는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해 주었다. 모르면서 괜히 아는척 할 필요는 없었다.
"저어, 그런데 색소가 무엇인지요?"
"모르나? 옷을 물들이는 염료는 알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색소는 염료와 같다고 생각하면 돼. 분말 형태의 색소를 녹여 유리에 첨가해 물병이나 스탠드 글래스, 장식용 접시등등 예술적인 것들을 만들어 귀족들에게 판매를 하면 아마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끌것이다."
일일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일이 귀찮았지만 성실히 아는것을 말해 주었다.
"다른 것은 여러 가지 연구를 해 봐. 먼저 유리를 세공할 장인들을 모집해서 피자를 굽는 가마 모양의 가마를 만들어 장인들에게 모래로 만든 유리 덩어리를 건네 주면 장인들이 알아서 할꺼다. 장인들은 처음엔 유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므로 남작이 설명을 해 주어야 해."
"근데 피자는 뭐고 가마는 뭔지요?"
얼떨결에 나온 말이 발목을 잡았다. 유리 세공을 하는 장면을 TV에서 본적이 있었다. 화면에 비친 유리 세공 장인이 사용하는 용광로같은 것이 피자를 굽는 가마와 비슷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남작에게 말해 준것이다. 이 대륙에서는 피자가 뭔지도 모른다. 피자부터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가마 구조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이런식으로 만들어 봐. 사용해 보고 불편하면 개량을 하고."
테이블 위에 피자 가마 그림을 그려 주었다. 구조를 잘 몰라서 이런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린것이어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피자는 음식이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둥글게 편후에 그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 놓고 구우면 완성되는 음식으로 알면 돼."
남작에게 피자를 설명해 주면서 피자가 먹고 싶어졌다. 굽는 것은 굳이 피자 가마가 없었더라도 마법으로 살짝 구우면 해결된다. 생각난김에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맘 먹었다.
"주방으로 안내해. 피자를 만들어 볼테니까."
"주, 주방요?"
귀족 신분과 마찮가지인 마법사가 주방에 들어 간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직접 피자라는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안내하지 않고 뭐하나?"
"아, 알겠습니다."
드래곤으로 짐작되는 켄 마법사님의 말을 무시할순 없었다. 남작이 주방으로 들어서자 주방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요리사들이 깜짝 놀라며 바닥에 꿇어 앉았다.
"남작님을 뵙습니다."
"모두 일어나라."
남작의 명령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요리사들은 무슨 일로 남작이 직접 주방안으로 들어 온것인지 긴장하며 불안해했다. 요리사들은 모두 5명이었다. 이 5명이 남작의 가족 입을 책임지는 요리사들로 모두 중년의 여인들이었다. 주방안은 제법 넓었다. 화덕은 돌로 쌓아 놓은 형태로 그위에 큰냄비가 걸려 있었다. 그런 화덕이 3개였다.
"모두 물러나라."
중년의 요리사들이 남작의 명령에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주방 밖으로 나갈려고 했다.
"어딜 가는거냐?"
"......."
켄의 물음에 요리사들은 무슨 뜻인지 모르는듯 발을 멈추고 섰다.
"너희들은 내 일을 도와라."
요리사들이 남작을 바라 보았다. 처음 보는 귀족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주방밖으로 나가야 하는지 남작의 허가가 있었야 했다.
"마법사님이시다. 마법사님의 말대로 해라."
"예에..."
마법사라는 소개에 요리사들은 두려워했다. 마법사들이 어떤 족속들인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듯 했다. 괴팍하다고 소문난 마법사들은 대륙인 모두가 껄끄러워한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자기 중심적인 마법사를 조심스러워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대륙에 떠도는 소문도 한몫을 했다.
마법사들중에 자기 말을 무시하면 개구리로 만들거나 돼지로 만들어 버린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런 소문을 들은 평민들이 마법사를 두려워하지 않을수가 없는거다. 빈손에서 불덩어리가 생성되고 얼음 덩어리가 생성되는 믿지 못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마법사다.
"이곳에 있는 야채를 한개씩 가져 와라."
피자를 만들기전에 이 대륙에는 어떤 야채가 있는지 알아야했다. 중년 여인이 긴장한채 바구니에 담아 온 야채를 보았다. 모두 처음보는 야채들뿐이었다.
"생으로 먹을수 있는것과 삶거나 데쳐서 먹는것을 나눠라."
중년 여인 요리사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종류별로 야채를 나누었다.
"이것들은 생으로 먹을수 있는 것이고 저것은 데치거나 삶아도 됩니다. 그리고 이건 삶아야 합니다."
생으로 먹을수 있다는 야채를 직접 먹어 보았다. 상추와 비슷한 야채는 조금 쓴맛이 느껴졌다. 당근과 비슷한 모양의 보라색 야채도 먹어 보았다. 조금 단맛이 느껴지는게 지구의 당근같았다. 그외에도 생으로 먹을수 있는 야채는 먹어 보았다. 양배추와 비슷한 모양의 야채는 풀냄새가 입안 가득 느껴졌다. 이런 야채들로 어떤 피자를 만들지 고민을 해야했다.
"빵을 만드는 반죽을 해라."
"예."
무슨 일로 빵 반죽을 하라고 하는지 모르는 요리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여 반죽을 해 둥근 모양으로 뭉쳐 두었다. 이대로 구우면 빵이 된다. 하지만 피자는 이 반죽을 둥글게 펴야 한다. 방 반죽과 피자 생지 반죽이 같은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빵 반죽으로 피자 생지를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요리사들에게 어떤식으로 만드는지 설명을 해주며 야채들을 올려 놓으라고 했다.
"토마토는 없나?"
"......"
토마토를 모르는것 같았다. 설명을 해 주자 요리사 한명이 노란색의 감과 비슷한 것을 가져 왔다.
"뽀모드르(Pomodere)라고 합니다."
"생으로 먹어도 되나?"
"됩니다."
아싹.
토마토였다. 색깔은 다르지만 맛은 토마토와 똑같았다. 지구에도 노란색 토마토가 있다. TV에서 본적이 있었다.
'근데 토마토를 그냥 뭉개서 생지위에 올려 놓는건가? 아니면 잘라서 올려 놓아야 하나?'
토마토를 사용하는 피자는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다. 방울 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올려 놓은 피자는 먹어만 봤지 직접 만든 경험은 한번도 없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서 실패를 감안하고 만들어야했다. 토마토를 대충 잘라서 생지위에 올려 놓았다.
"치즈는 있나?"
"......"
치즈도 뭔지 모르는것 같았다. 어쩔수 없었다. 치즈가 없는 피자를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이걸 구워 봐."
빵을 굽는 화덕안에 주방장이 피자를 넣을려고 했지만 난감한 표정이었다. 화덕은 사각형으로 돌을 쌓아 만든것이다. 중앙이 뻥 뚫린 구조로 중앙을 둘러싸고 툭 튀어 나온 공간에 빵을 올려 놓고 위쪽의 입구에 두껑을 닫아 굽는 구조였다. 공간이 그렇게 넓지 않은 관계로 둥근 피자를 올려 놓을 공간이 없었다.
"잠시만."
즉석에서 아공간을 열어 사각형의 철판을 꺼냈다. 마법진을 새기기 위해 준비해 놓은 철판을 이곳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화덕 크기에 맞게 마법으로 자른후 화덕안의 튀어 나온 공간에 올려 놓았다.
"클린!"
철판을 깨끗하게 청소한후 피자를 넣으라고 했다. 처음 철판을 사용할땐 기름을 바르고 고온으로 달구어 철판안에 기름이 스며 들게끔 수십번 반복을 해 주어야 한다고 들었다. 텟빤야키(鉄板焼き.철판 구이) 가게를 개점할땐 그런식으로 철판을 준비한다. 피자가 구워지는 광경을 화덕 위에서 내려다 보며 피자 겉면이 조금 타들어 가자 피자를 꺼냈다. 맛은 어떤지는 모르지만 냄새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칼은 어딧나?"
"여기 있습니다."
피자를 자르는 전용 도구가 없는 탓으로 칼로 피자를 조각냈다. 치즈가 없어서 칼에 덕지덕지 달라 붙지 않아 자르는데도 문제없었다.
"먹어 보자."
맛이 없었다. 루벤 남작도 피자 한조각을 입에 물었다.
"음, 이게 피자라는 음식입니까?"
"그래. 실패작이다."
"실패작요? 그럭저럭 먹을만 합니다만."
루벤 남작의 표정으로 볼때 거짓말은 아닌것 같았다. 하지만 켄의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치즈가 없는 탓이기도 했지만 치즈를 사용하지 않은 피자도 있으므로 피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빼 먹은것이 있었다. 피자를 자세히 살펴 보며 빼 먹은게 무엇인지 알아 내야만 했다.
"응? 소스를 바르지 않았잖아."
피자 생지에 소스를 먼저 바른후 그위에 여러 가지 야채나 치즈등을 올려 놓고 굽는 식이다. 가장 중요한것을 잊어 먹은것이다.
'근데 소스는 어떻게 만들지?'
피자 생지에 바르는 소스는 붉그스럼한게 토마토 소스로 생각되었다. 사실 토마토 소스밖에 모른다. 다른 종류의 소스도 있겠지만 가방끈이 짧은 켄이 여러 종류의 소스를 알리가 없었다. 대충 TV에서 본것을 흉내낼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곳의 요리사들이 알고 있는 소스를 바르면 될것 같다.
"이곳에도 소스가 있나?"
"소, 소스라니요?"
"스테이크에 곁들이는 소스를 말하는거다."
"........"
요리사들의 눈치로 볼때 스테이크도 소스도 모르는것 같았다. 아마 지구와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울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구운 소고기를 뭐라고 하나?"
"비스띠카(Bistica)라고 합니다."
"비스띠카?"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당연히 지구와 언어가 다르므로 스테이크를 부르는 명칭도 다르다.
"그럼 그 비스띠카에 곁들이는 소스는 없나?"
"비스띠카는 소금을 뿌려서 구워 완성시킵니다. 소스는 뭔지 모릅니다."
역시였다. 이럴때 케첩이라도 있으면 편리하다고 생각되었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케첩은 어떻게 만드나?'
케첩은 토마토로 만든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확실히 어떤식으로 만드는지는 모른다. 실패를 각오하고 만들어 보기로 했다.
"붉은 뽀모드르는 없나?"
"있습니다."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주방장인 중년 여인이 다른 요리사에게 눈짓했다.
다다닥.
잰걸음으로 달려 나간 요리사는 잠시후 붉은색 토마토를 가져왔다. 겉모양은 감(柿)과 비슷했다.
"이 뽀모드르를 살짝 데쳐라."
토마토 위쪽을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낸후 건네주자 요리사들이 데쳐냈다. 그런 토마토의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낸 껍질 부분을 살짝 잡아 당기자 토마토의 옷이 홀라당 벗겨지며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자루(ザル. 채) 같은건 없나?"
"......"
또다시 자루가 뭔지 설명을 해 주어야 했다.
"그런건 없지만 비슷한 것은 있습니다."
이번에는 주방장이 요리사들에게 눈짓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뭔가를 가지고 왔다. 겉모양은 소쿠리와 비슷했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 자루 대용으로 사용하기에 문제는 없어 보였다.
- 작가의말
즐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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