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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의 그린라이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르웨느
작품등록일 :
2023.06.03 12:30
최근연재일 :
2023.06.24 11:27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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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966

작성
23.06.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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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2. 좀 맞아주고 살포시 잡아야지!

DUMMY

“야, 이 새키야. 눈 떠라이.”


얼굴을 쫙쫙 갈기는 손길에 눈을 떴다. 희뿌연 시야로 낯선 인물의 상이 비친다. 아? 아아. 나 무인텔에서 머물고 있었지.


“씨발새끼 너, 너.”


맨눈을 본 상대가 내가 누군지 알아챈 듯 말을 더듬었다. 제법 단디 쥐고 있는 저 나이프가 목젖을 노리기 전에 벌떡 일어나 상대의 턱주가리에 박치기를 먹이고 주위를 훑었다. 방 안을 아직 뒤지지 않았는지 이 침대 위 빼고는 멀끔한 상태다.


“이 애에기아!”


혀라도 깨물렸나, 발음이 왜 저래. 나이프를 치켜드는 꼬라지가 꼴 보기 싫어 제자리에 잘 놓여 있는 베개로 얼굴만 노리고 두들겨 팼다. 메모리폼 따위가 날붙이를 이길 수 없으니 푹푹 박히는데 그때를 맞춰서 상대의 팔목을 잡고 꺾었다.


“어, 어.”


침대 아래로 발을 내딛는데 놈이 뒷걸음질 친다. 귀찮게. 베개를 놓자 상대는 남은 손으로 주먹을 내질러 온다. 정말, 귀찮다.


엉거주춤한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차 무릎을 낮추게 만들고 그만큼 아래로 내려온 머리에 마저 내 무릎을 꽂아 넣었다. 거칠게 깨운 것치곤 시시하게 고꾸라지는 상대의 손에서 나이프를 빼앗고 놓아주었다.


휴대폰을 어디다 뒀더라. 충전기에 얌전히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곧장 시각부터 확인했다.


오후 11시 46분. 알람을 맞춰두진 않았다만 너무 잤네. 부재중 연락이 없는지 확인하고 경찰서에 먼저 신고했다.


“예, 여기 세븐 모텔이고요. 방에 강도가 잠입해서 제압했습니다.”


경찰 조사받고 과잉 방위 혐의 되면 형사 입건 될 건데 괜히 신고했나. 아냐아냐, 법이 아무리 그지 같아도 신고는 해야지. 때리지 않고 잡도록 좀 더 신경 써야 했는데 자다 일어나서 조금 감정적으로 박치기가 나가버렸다.


시간이 늦었으니 안 변호사님에겐 문자만 남기자.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니 2분도 안 걸려서 통화가 걸려 온다. 전화를 받고 열심히 해명을 했다. 아으, 칼 들고 위협한 건 저 미수범이 저질렀는데 왜 내가 혼나야 하는 걸까.


“여보세요, 우영이 형. 어디에요?”

“집이다, 이제 출발하려고?”


형의 목소리도 자다 깬 것처럼 걸걸하다. 이런, 내 전화 올 때까지 자두려고 했던 걸까. 그럼 연락올 때까지 기다릴걸 아꿉네.


“그러려고 했는데 일이 좀 생겨서요.”

“이 시간에 생길 일이 뭐가 있다고.”


저 미수범을 한 대 더 패면 안 될까. 범죄자가 정말 밉다. 이것저것 다 민폐야.


“그게, 제 방에 강도가 들어서요, 먼저 서에 가야 해요.”


이건 형사 건이니 인터넷 뉴스나 그튜브에 금방 다 퍼질 거다. 감춰서 감춰질 게 아니니 이실직고했다. 곧바로 우영이 형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그러게 우리 집에서 자라니까, 싫으면 호텔 가던가. 돈 없는 것도 아닌 녀석이 호텔 놔두고 뭐 하냐!”

“에이, 형 알면서. 호텔에선 현관 열고 자면 자꾸 문 닫아준다고요. 열어놔도 사람 왔다 갔다 인기척 다 들리고.”


상주하는 발현자 가드가 있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호텔과 별 이상한 놈들이 다 꼬이는 무인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모텔.


능력을 발현한 이들이 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 그들이 관리국을 피해 지방 곳곳의 무인텔을 떠돌다 보니 모텔의 이미지는 썩 좋지 않다. 지금의 내 경우처럼 모텔 투숙객을 노리는 범죄자도 제법 있고.


“야 이 씨! 그래서 어디 서인데? 중앙파출소? 가음정지구대?”


가출청소년 데리러 가는 부모님인 양 우영이 형이 씩씩대며 캐묻는다. 흥분한 형을 달래며 통화를 마쳤다.


케이스를 열어 장비를 살핀다. 씻어야 하니까 그사이에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둬야겠지. 얇은 와이어와 접이식 봉을 이용해 범죄자의 살에 파고들지 않도록 잘 묶어두고 간단히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샤워도 하고 싶지만 문 열어놓고 씻다가 경찰 분들 난입하면 서로 민망해, 새벽에 일 마치고 와서 하자.


방호복으로 갈아입는다. 친구 잘 둔 덕에 신기술과 신소재가 접목된 신상을 무상제공 받는 건 좋은데 디자인이, 너무 제복스럽단 말이지. 관성적으로 암 가드까지 결합을 마치는데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난다. 안경집에서 선글라스 꺼내어 장착해주고~ 전투화를 신고 복도로 나갔다.


이런 식으로 강도 잡아주는 해결사가 낯선지 창원시 경찰 분들이 요상한 표정으로 겨우 정신 차린 강도 미수범을 붙잡아 끌고 나갔다. 따로 챙겨둔 범행 도구를 내어준 후 나도 경찰차 뒷좌석 하나 받아 파출소까지 동행했다.


묻는 것에 답하고 쓰라는 것에 쓰고 있으니 자차를 몰고 온 우영이 형도 도착했다.


“어이쿠, 야밤에 수고하십니다. 야 이 녀석아, 넌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강도 미수당한 건 난데 왜 내가 등짝을 맞아야 하는 걸까. 억울해.


나와 좀 떨어진 자리에서는 강도 미수범이 피의자신문조서를 마치고 나를 맞고소하겠다고 고소장 쓰고 있었다.


형식상 합의를 입에 올린 형사님들은 일절 타협하지 않는 폭행당한 강도 미수범과 폭행한 피해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왜 일방 폭행이야?”

“안 맞아줬거든요.”

“좀 맞아주고 살포시 잡아야지!”


안 변호사님도 그렇고 우영이 형도 그렇고, 내가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 변명도 못 하겠다. 하, 나도 맨정신일 때 침입해 왔으면 칼 휘두르는 거까지 다 촬영하고 살포시 등 뒤로 팔 꺾어서 경찰 올 때까지 대치 상태 유지했지. 아으으.


“하지만 우영이 형, 저 사람 발현자에요.”

“이창석 씨는 발현자 등록이 안 되어 있는데요?”


형과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를 들은 담당 경찰 분이 키보드를 타닥타닥 치더니 반문해온다. 우영이 형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이다. 이럴 때면 나도 골치 아프다.


“아, 저 우리 신호가 발현자 등록 센터에서도 종종 외부 감독관으로 초대받는 사람이거든요. 기관에 연락하면 경력 나올 겁니다. 얘가, 신호등맨이잖아요. 이런 이현상 감지엔 대한민국 자타공인 넘버원.”


“그럼 이창석 씨는 미등록 불법 발현자인 겁니까?”

“야, 새끼들아! 내가 왜 발현자야, 너 개새끼 고소당하기 싫어서 헛소리하는 모양인데 이거 사람 누명 씌우는 거야! 어!”


발현자는 능력을 쓰는 장면만 목격되지 않으면 찾아내기도 증명하기도 어렵다 보니 그 사람이 범죄자일 때 참 곤란해진다. 무죄추정의 원칙이었나, 뭐시깽이 때문에 다음 범죄 현장에서 확증 잡힐 때까지 놓아주는 수밖에 없다.


경찰서라고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소리치는 걸 보니 아니꼬와 선글라스를 슬쩍 내려 같이 쏘아 봐주었다. 그러자 금세 쭈뼛거려 김이 새 다시 선글라스를 바로 썼다.


지금까지 범죄 이력이 없는 걸 보면 모습을 감추는데 용이한 계열인가? 대뜸 칼 쥐고 깨운 걸 보면 걸린 게 이번이 처음일 뿐,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는데. 흠, 자괴감 드네. 강도 미수범보다 내가 더 전과가 많다니.


“진술조서 끝났으니 저는 이만 가봐도 되지요, 경찰관님.”

“예, 근데 저, 이창석 씨가 고소장을 썼으니 검찰에 곧 송치될 겁니다.”


그렇겠지. 본래도 폭력이라 하면 피해자‧가해자 구분 없이 잘못이라 판결 내리던 나라인데 발현자가 무력을 썼으니 더 엄격한 기준으로 형벌을 내주겠지.

파출소를 빠져나오는데 우영이 형이 영 찝찝한 표정이다.


“불법 발현자인데 경찰끼리 두고 나와도 되냐?”


대한민국 공권력 권위 다 죽었네. 언제쯤에 발현자 비율이 높아져서 지방 곳곳에도 배치되려나.


“불법 발현자니까요. 미발현자라고 우기면 벌금형이나 징역살이 정도인데 그거 치르고 나와서 범죄 저지르는 게 인생 더 편해요. 그러니 대놓고 사람을 위협하진 않죠.”


형의 인상이 찡그려진다. 하지만 어쩌겠어, 열 명의 범죄자를 놓아주는 것보다 한 명의 무고자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잖아.


“넌 노렸잖아?”

“그러고 보니 얼굴 안 가린 거 보면 흔적 안 남기고 죽일 수 있는 능력이었나 보네.”


자는 걸 깨운 건 뭘 더 털어먹으려 했거나 짓밟으면서 죽이는 걸 선호하는 타입이었을 수 있다. 가정하면 할수록 질이 나쁜 사람이었던 것 같지만 추정만으로 예비 살인자라 할 수 없기에 언젠가 현장에서 잡히길 기도해야겠지.


이제 형은 아예 마른세수를 한다. 옛날부터 사람끼리 다투고 죽이고 하는 건 거부했던 터라 이런 가정조차도 듣기 거북할 거였다. 나도, 나는‧‧‧‧‧‧.


“너는 왜, 진짜. 씨.”


뭐라 말하려다 꿀꺽 삼키는 모양이 퍽 답답해 웃으며 형이 못다 한 말을 뱉었다.


“재관부나 발관국에 취업 안 하냐구요? 감찰 권한만 있어도 저런 놈들 현장에서 싹 다 처넣을 수 있을 텐데?”

“나 암 소리 안 했어! 짜샤. 네가 공무원 해봤자 대통령 옆에서 CCTV 하고 있겠지. 타기나 해.”


현실은 그렇다. 내 능력이라면 잡범들 감독보다는 중요 인물 보호에 투입되지.


발현자로서 공무직 한다는 거 그거 정말 사명감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돈을 벌고 싶은 거라면 냥꾼이나 결사를 하는 게 더 낫고 인기를 얻고 싶다면 스트리밍도 진행하면 된다.


공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애국심이나 발현자 범죄 때문에 복수심 같은 거 생긴 게 아니라면 저쪽 진로를 잡는 사람은, 음, 은근 없진 않지?


세상에는 사실 멋지고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가족이 머무는 사회의 평화라는 걸 생각해서 군대에 자진 입대한 발현자들도 없는 건 아니니.


그냥 내가 기관에 속하는 게 싫어서 별로다별로다 하는 것일뿐 누군가가 해주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꽤 있다. 덕분에 지금 사회가 겉모습이라도 대이변 이전처럼 돌아가고 있는 거고.


작가의말

과도기로 설정해놔서 작품 속 한국은 아직 제정할 법이 많습니다. ㅎ... 특히 공권력이 아닌 폭력을 허용하는데 있어서는 더 신중해야겠죠. 다시 한번 적지만 본 작품에 나오는 인명, 지명, 단체 등은 현실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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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좀 맞아주고 살포시 잡아야지! 23.06.22 14 0 10쪽
11 11. 알아, 네가 그런 녀석 아니란 거. 23.06.20 19 0 14쪽
10 10. 진짜 뭐 하는 놈들이지. 23.06.16 21 0 11쪽
9 9. 응, 내가 나빴다. 23.06.13 20 0 13쪽
8 8. 착각을 깨줄 방법이 없네. 23.06.13 20 0 10쪽
7 7. 제 책임은 없다는 건 명확히 해야 하니 23.06.12 29 0 11쪽
6 6. 오냐, 어디 1억짜리 진심 한 번 들어보자. 23.06.10 20 0 11쪽
5 5. 넌 언제까지 솔로할 거냐. 23.06.09 24 0 11쪽
4 4. 야, 너구나? 근데 눈을 왜 그렇게 떠. 23.06.07 24 0 10쪽
3 3. 거기 누워 있어! 23.06.06 27 0 11쪽
2 2. 이런 패기 없는 것들. 23.06.03 21 0 10쪽
1 1. 저는,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23.06.03 7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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